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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2007 에스더 제1강(1장~4장) 무엇을 위한 아름다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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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바울
댓글 0건 조회 2,870회 작성일 07-09-30 10:57

본문

2007 가을학기 에스더 제1강
말씀 에스더 1장~4장
요절 에스더 4:14
무엇을 위한 아름다움인가?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오늘의 주제는 ‘미(美)’에 관한 것입니다. ‘미’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미란 “눈 따위의 감각 기관을 통하여 인간에게 좋은 느낌을 주는 아름다움”이라고 사전은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미 이상의 미를 가진 에스더가 나옵니다. 그녀는 미스 페르시아로 선발되었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은 단순한 얼짱, 몸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녀에게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민족을 구원하고자 하는 신앙적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또한 순종하고 희생하는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BC 5세기 경 페르시아 제국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스라엘은 세 차례에 걸쳐 바빌론 포로로 끌려갔고 스룹바벨에 의해 1차 귀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1차 귀환에도 불구하고 고국 이스라엘로 돌아가지 않고 페르시아에 남아 있던 유다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선지국에서 동화되어 구별됨이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에게 대적자들을 통해 신앙적인 위기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신앙적 각성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상황에서 에스더는 어떻게 자신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사용했습니까? 

  제1장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예비된 한 사람, 에스더(1,2장)
  1절을 봅시다. “이 일은 아하스에로 왕 때에 있었던 일이니 아하수에로는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백이십칠 지방을 다스리는 왕이라.” 본문에 등장하는 아하수에로 왕은 헬라어로 ‘크세르크세스’라 불린 페르시아 3대 왕으로, B.C.485년에서 465년 사이에 통치했습니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그의 책 ‘페르시아 전쟁사’의 1/3을 아하수에로 왕의 그리스 침공 사건에 할애할 정도로 그는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다리오 왕은 그리스와의 마라톤 전투에서 패했습니다(B.C.490). 이에 아하수에로는 큰 군사를 일으켜 다시 그리스를 치지만 스파르타의 특공대 300명에게 막혀 고전을 면치 못합니다. 이것이 페르시아 전쟁 중 스파르타 300명과 페르시아 100만 대군의 전투를 그린 ‘테르모필레 협곡의 전투’인데, 이 사건이 ‘300’이라는 영화에 소개되었습니다. 그리스 연합군은 스파르타 특공대가 시간을 끄는 동안에 전열을 가다듬고 전쟁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를 얻습니다. 결국 아하수에로 왕은 그리스 해군과 세계 4대 해전 중의 하나인 살라미스 해전(B.C.480)에서 패배하게 되고 세계사의 주도권을 유럽에게 넘겨줍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비록 유럽 정복에는 실패했지만, 고대 근동 아시아 거의 전역을 차지하고 있던 페르시아 제국을 효과적으로 다스린 야망이 많고 무자비한 통치자요, 뛰어난 전사였습니다.
  2,3절을 봅시다. 당시에 그는 수산 궁에 즉위하고, 왕위에 있은 지 3년에 모든 방백과 신복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는 이 잔치를 통해 앞에서 언급했던 그리스와의 전쟁을 준비하고자 했습니다. 백성들의 사기를 북돋고 제국의 화합과 단결을 이루기 위해 180일 동안이나 잔치를 벌이며 그 영화로운 나라의 부요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고자 했습니다(1:4). 그는 제국의 왕답게 광내기를 좋아했습니다. 후에 그는 살라미스 해전 때 바다의 상태가 안 좋아 패배를 당하자, 바다에게 채찍 100대를 때리도록 하고 바다에 족쇄를 채우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여하튼 180일의 잔치가 끝난 후 수산 성 귀천간의 백성을 위해 7일 동안 잔치를 또 열었습니다. 한편 왕후 와스디도 여인들을 위해 따로 잔치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7일 잔치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잔치가 무르익어 갔습니다. 왕은 술을 마시고 흥에 겨운 나머지 어전 내시 일곱 명을 왕후에게 보내어 왕후의 관을 정제(整齊)하고 왕의 앞으로 나오게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1b절입니다. “그의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지방관들에게 보이게 하라 하니 이는 왕후의 용모가 보기에 좋음이라.” 왕은 왕비의 아름다움을 뭇 백성과 방백들에게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12절을 봅시다. “그러나 왕후 와스디는 내시가 전하는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마음속이 불붙는 듯하더라.” 왕후 와스디는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했습니다. 왜 싫어했을까요? 왕후는 뭇 사람의 눈요기 감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왕의 과시욕을 위해 자신의 아름다움이 이용당한다고 생각하니 매우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자존심을 아끼기 위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베풀지는 못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 나라의 왕비로서 전쟁을 앞에 두고 ‘왕명을 따르기를 싫어했다’는 것은 좋지 못했습니다. 왕후로서 자신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 몰랐던 것 같습니다. 한 나라의 왕후라면 자기에게 주어진 아름다움과 영광을 남편을 위해, 그리고 나라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위해 얼마든지 보여줄 수도 있었습니다. 연회를 더욱 흥겹게 하고 백성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격려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존심 때문에 왕명을 따르기가 싫었습니다. 왕후로서 왕과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려는 자세가 부족했습니다.
  왕은 연회를 통해 제국의 영광을 나타내고, 자기 와이프의 아름다움을 만천하에 과시하고 싶었지만 사람들 앞에서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습니다. 그는 127도를 관할하는 대 제국의 황제였지만, 자기 와이프 하나 간수하지 못하는 자로 신문에 대서특필되게 생겼습니다. 13절을 보니, 왕이 규례와 법률을 아는 현자들에게 이 일을 상의했습니다. 이때 일곱 측근 중 하나인 므무간이 조언했습니다. 16~20절을 봅시다. 왕후가 왕에게만 잘못할 뿐 아니라 방백과 뭇 백성들에게도 잘못한 것이다. 이러한 왕후의 일이 제국 모든 여자들에게 알려져 봐라. 아내들이 그 남편을 멸시할 것이다. 아내들이 사사건건 자존심을 내세워 남편의 명을 무시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가정의 질서는 물론 한 나라의 질서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므로 왕후의 행동은 묵고할 수 없는 일이다. 당장 왕후를 폐위하여 일벌백계(一罰百戒)로 삼아야 제국의 모든 여자들이 자기 남편을 존경할 것이고 남편들이 집을 제대로 주관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한마디로 왕후를 폐위하여 페미니즘 세력을 막아야 남성들의 자존심이 살 것이고 그래야 한 나라의 질서도 바로 선다는 조언입니다. 매우 설득력 있는 조언입니다. 게다가 ‘300’이라는 영화에서처럼 무참히 깨질 때도 꼭 정면돌파만 고집하는 자존심 강한 아하수에로 왕의 마음에 속 드는 조언입니다. 결국 왕은 왕후를 폐위하고 말았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아내를 자기 과시를 위해 이용하려 했고, 자기 자존심을 세우고 자기 영광을 위한 것으로 삼았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가진 권위는 오로지 자기 영광, 자기 자존심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왕이나 왕후나 자기에게 주어진 아름다움과 영광의 자리를 제국공동체보다 자존심을 세우는 것으로 삼았습니다.
  2:1절을 봅시다. ‘그 후에’란 말은 위와 같은 일이 있은 후 3년쯤 지난 후, 곧 왕이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배한 후를 말합니다. 기가 꺾인 왕은 노가 그치며 와스디를 폐위한 일을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측근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급히 새 왕후를 간택하도록 조언했습니다. 그래서 온 나라의 모든 아리따운 처녀들을 수산성으로 모아 왕의 간택을 기다리도록 어명이 내려졌습니다. 이때 에스더도 수산성으로 끌려오게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베냐민 자손인 모르드개의 사촌으로, 부모님과 사별한 후 모르드개가 딸처럼 양육했습니다. 에스더란 ‘별’이란 뜻인데 그 이름처럼 그녀의 용모 또한 곱고 아리따웠습니다. 8절을 보면 그녀는 왕궁으로 이끌려 가서 궁녀를 주관하게 하는 헤개의 수하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와스디처럼 자기주장이 강한 여성은 아니었습니다.
  16절을 봅시다. 때가 되어 에스더도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녀는 의복과 향품을 직접 고르지 않고 내시 헤개가 주는 것만으로 꾸몄는데도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15). 왕도 에스더를 보자마자 모든 처녀보다 에스더를 더 사랑하므로 모든 처녀보다 왕에게 더 은총을 얻었습니다. 결국 왕이 에스더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후로 삼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에스더를 위해 크게 잔치를 베풀었는데,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또 각 지방의 세금을 면제하고 왕의 이름으로 큰 상을 주었습니다.
  그러면 에스더의 아름다움이 다른 처녀들과 어떤 점에서 달랐을까요? 왜 그녀는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았을까요? 제국의 매우 아리따운 처녀들 속에서도 에스더가 빛을 발하고 간택된 이유는 외모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왕 앞에 나아가기 전 열두 달 동안 다른 처녀들과 공동생활했습니다. 그런데 경쟁자들 틈에서 모든 보는 자에게 사랑을 받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에스더는 모르드개 아래에서 자라면서 율법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율법에서 가르치는 대로 하나님을 경외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또한 권위에 순종하고 남을 잘 세우며 따르는 법도 배웠을 것입니다. 나서지 않고 섬기는 법이 몸에 익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녀는 헤개가 정해주는 것 이상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허영심이 없었습니다. 나이 어린 소녀로서 얼마나 가지고 싶은 것이 많았겠습니까? 샤넬, 알마니, 구찌, 디오르 등 전 세계 브랜드 가운데 원하는 데로 액세서리를 갖추고 미를 뽐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상으로 자신을 치장하지 않는 절제된 미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순종에서 풍기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그녀는 모르드개의 방향대로 자기가 유다인임을 왕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2:10). 왕후가 된 후에도 교만해지지 않고 모르드개의 방향을 따랐습니다(2:20). “저가 모르드개의 명을 양육 받을 때와 같이 따름이더라.” 최고의 지위에 오른 후에도 옛 은인을 잊어버리지 않고, 유순하게 대했습니다. 결국 왕의 명을 따르기를 싫어했던 와스디 대신에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자기주장이 강한 여자가 민족을 구원하고 큰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아름다움과 순종의 덕을 갖춘 여인들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더 나아가 자기 민족을 구원하는 일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아름다움과 순종을 갖춘 여인이 민족을 구원할 수 있습니까? 물론 민족 구원의 힘이 에스더에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구원의 힘이 왕에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름다움과 순종을 갖춘 에스더가 왕의 마음을 움직였고 민족을 구원했습니다. 그런 에스더가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왕 앞에서도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 그 사랑스러움 때문에 왕은 에스더의 요청을 들어주었고, 결국 민족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우리 모임 안에 자매목자님들이나 사모님들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외적인 미 이상의 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주장이 없고 순종하며 허영심이 없는 신앙적 아름다움에서 풍겨 나오는 미가 있습니다. 이 분들을 통해서 캠퍼스 생명들이 구원을 얻고 선교사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서 새로운 미의 세계를 창조해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인해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저희 가운데 계속해서 세상의 ‘와스디’를 부끄럽게 할 ‘에스더들’을 세워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2장 민족의 원수에게 절하지 않는 모르드개(3장)
  3장에서 드디어 하나님의 원수 하만이 등장합니다. 1절을 봅시다.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하만을 제국의 2인자로 삼았습니다. 이에 왕의 모든 신복들은 왕의 명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했습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않았습니다. 왜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을까요? 하만은 아각 사람이라 했습니다. 아각 사람이란 이스라엘의 철천지원수인 아말렉의 후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 족속이 출애굽 직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적한 것으로 인해(출17:8), 그들을 영원한 진멸의 대상으로 삼으셨습니다(출17:14~16), 이스라엘을 당신의 도구로 삼아 계속 아말렉을 멸절시켜 오셨습니다(삼상15:2,3;삼하8:11,12;대상4:43). 아말렉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요, 유다의 원수였습니다. 그런 하만에게 모르드개는 경의를 표할 수 없었습니다. 모르드개는 하만의 문제에 있어서는 자신이 유다인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5절을 봅시다. 이 일로 인해 하만은 심히 노했습니다. 그는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을 다 멸하고자 결심했습니다. 결국 일개 문지기가 무릎을 꿇지 않았다는 이 한 가지 사건 때문에 유다 민족 가운데 큰 위기가 닥쳤습니다.
  에스더서에서 하만은 유다인을 대적하고 죽이고자 하는 자로 등장합니다. 모르드개가 융통성 없이 너무 뻣뻣하여 재앙을 자초했을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늘 대적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도 구속역사를 섬기면서도 얼마나 대적자들이 많습니까? 세상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에 대적자들과의 싸움은 필연적입니다.
  7절을 봅시다. 무리와 하만은 부르, 곧 제비를 뽑아 12월 13일을 유다인 멸절의 날로 잡았습니다. 또한 하만은 유다인들을 왕에게 참소했습니다. 8,9절을 봅시다.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아뢰되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지방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그 법률이 만민의 것과 달라서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아니하오니 용납하는 것이 왕에게 무익하니이다. 왕이 옳게 여기시거든 조서를 내려 그들을 진멸하소서. 내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일을 맡은 자의 손에 맡겨 왕의 금고에 드리리이다.” 이는 하만의 핍박이 유다인들이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고자 하는데서 오는 신앙적인 것이었음을 반증합니다. 하만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창고에 입금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유다인을 진멸할 때 드는 비용과 그들을 죽임으로서 오는 손실을 유다인의 재산을 빼앗아 보충하겠다는 속셈이었습니다. 이에 왕은 귀가 솔깃하여 반지를 빼어 하만에게 주었습니다. 하만은 왕의 이름으로 조서를 내려 아달월 13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다인 가운데 젊은이, 늙은이, 어린이, 여인들을 막론하고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하도록 했습니다. 이에 역졸들이 왕의 명을 받들어 급히 나가고 그 조서가 도성 수산에 반포되어 성이 어지럽고 술렁거렸습니다.
 
  제3장 죽으면 죽으리라(4장)
  이 모든 일을 알고 모르드개는 무엇을 했습니까? 4:1을 봅시다. 그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으며 재를 무릅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했습니다. 무수한 유다인들도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고 슬프게 부르짖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누웠습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습니다. 이에 모르드개는 유다인을 진멸하라는 왕의 조서 초본을 에스더에게 보내며 왕에게 나아가서 자기 민족을 위해 간절히 구하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에스더는 자신의 난처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4:11절을 봅시다.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당시 왕의 부름을 받지 않고 왕에게 나아가면 죽게 되는 법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에스더가 왕에게 나아가지 못한 지가 이미 30일이나 되었습니다. 에스더는 참으로 난처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을 전해들은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어떻게 회답했습니까? 13,14절을 봅시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에스더는 왕궁에 있으면서 홀로 목숨을 건지고자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왕에게 나아가면 죽을 수 있지만 왕에게 나아가지 않고 안전을 보장받으며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왕궁에 있으며 홀로 살 궁리를 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 홀로 목숨을 건지고자 하면 건질 수 있는 것입니까? 모르드개는 말합니다.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이와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은 멸망하리라.” 여기서 ‘다른 데’란 곧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모르드개는 필요하다면 하나님이 에스더가 아니 고서라도 유다인에게 능히 놓임과 구원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한편 민족을 버리고 왕궁에서 홀로 멸망을 면해보고자 했던 에스더와 그 집안은 오히려 멸망을 면치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에스더는 이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해야 마땅합니까? 14절을 봅시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여기서 ‘왕후의 자리’란 어떤 자리입니까? 왕후의 자리는 더 이상 개인의 자리가 아니라 한 나라를 대표하는 자리요, 영광의 자리요, 축복의 자리입니다. 더 이상 개인만을 생각해서는 안 되는 자리요 자기 민족을 생각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는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움을 통해서 얻은 자리입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왕궁에서 특권을 누리면서 고난과 위기를 면하고자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일이요 멸망을 자초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면 에스더의 아름다움과 영광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그녀의 아름다움, 왕후의 위를 바로 이때, 즉 민족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모르드개는 영광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영광은 자기 광이나 내라고 주신 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데 써야 함을 가르쳤습니다. 이때 그 아름다움과 영광은 진정한 빛을 내고 지속적인 가치를 가지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극심한 개인주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요즘은 남이야 어떻게 되든 홀로 목숨을 건지고자 하는 생각이 팽배한 세대입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개인 중심, 가족 중심의 신앙생활이 묵인되고 있습니다. 우리 모임 안에서도 어느 순간부터 ‘홀로 면해보고자’하는 생각이 많이 생겼습니다. 어떤 분은 장막생활은 면해보고자 합니다. 어떤 분은 아프리카 선교사는 면해보고자 합니다. 어떤 분은 소감모임을 면해보고자 합니다. 자신에게 유익이 없을 것 같으면 당장 면해보고자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의 결말이 무엇일까요? 그 개인과 그 가족의 멸망이라고 모르드개는 말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러한 개개인 모두가 파멸하고 나면 공동체의 멸망도 올 것입니다. 민족과 공동체가 사라지면 개인이 설 수 없습니다. 성경은 결코 개개인의 이기심을 권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개인보다 공동체를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 자기도 사는 길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약 에스더가 자기 혼자 살고자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마가8:35) 개인의 아름다움이 남을 위해 희생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입니까? 오히려 남을 섬기고 희생할수록 그 아름다움은 더욱 빛나게 되지 않을까요? 에스더가 자기 목숨을 아꼈다면 에스더서는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고 페르시아에 살던 유다 민족은 멸절되었을 것입니다. 그녀도 덧없는 세상 영광을 잠시 누리다가 들풀처럼 시들어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자기를 희생했을 때, 민족을 구원하고 그 이름이 성경과 구속역사 속에서 찬란히 빛나게 되었습니다. 왕후 에스더로서가 아니라 믿음의 여인 에스더로서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아름다움과 영광의 자리가 있습니다. 외모의 아름다움, 재능, 학벌, 성격, 재물, 성공과 같은 아름다움과 영광의 자리들을 주셨습니다. 왜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가, 왜 교수목자가 되고자 하는가, 왜 선교사로 가고자 하는가, 왜 결혼하고자 하는가, 왜 각종 고시를 준비하는가, 왜 돈을 벌고자 하는가, 왜 성공하고자 하는가. 에스더서는 그것이 자기만족과 자기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뭔가가 되고자 하는 데만 신경을 쓰기 쉬운데, 뭔가가 된 후에 그것을 무엇을 위해서 써야 하는지 더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주위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나라들이 즐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임을 지난 40년 동안 국내 캠퍼스 개척과 세계선교를 위해 귀하게 사용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울 밑에 선 봉선화와 같은 우리나라를 이 시대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고, 세계선교를 열심히 하도록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대학교육을 받고 성경 말씀을 배우고 목자가 된 것은 큰 영광이요 아름다운 일입니다. 저희가 이 시대 도움이 필요한 나라 가운데 선교사로 많이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모르드개의 충고에 대한 에스더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16절을 봅시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서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에스더는 자신이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인 것을 영접했습니다. 그래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에게 나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에스더는 자신에게 주어진 아름다움을 자기만 사는데 사용하지 않고, 민족 구원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드리고자 결단했습니다.
  그러면 에스더의 생각했던 것처럼 죽었을까요?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민족을 위해서 자기 한 목숨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5:2절을 봅시다.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왕이 보았을 때 매우 사랑스러워 보였고 손에 잡았던 금 규를 그녀에게 내밀었습니다. 에스더는 가까이 가서 금 규 끝을 만지므로 죽음을 면했습니다. 그녀 한 사람 뿐 아니라 민족이 죽음을 면했습니다. 물론 그녀는 사전에 왕에게 부름을 받지 못했습니다. 30일 동안 왕에서 별로 사랑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나아갔을 때 그녀는 왕의 보기에 좋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런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바로 이때를 위해 준비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외모가 아무리 아름답고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다 해도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여자는 보기에 매우 추합니다. 사랑스럽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기를 뛰어넘어 민족을 생각하고 공동체를 생각하는 여인은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특별한 말을 하지 않고 치장을 짙게 하지 않아도 아름답습니다. 요즘 외모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머리도 좋고 실력 있는 캠퍼스 지성인들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개인의 이익 추구보다 민족과 세계와 같은 큰 것을 생각하도록 돕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성경적 아름다움을 고수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서양이든, 동양이든, 구세대든, 신세대든 변함없는 아름다움의 기준이 있습니다. 저희가 한 주 동안 에스더가 아름다운 이유를 발견하고 기뻐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개인주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무엇을 위한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할까요? 아하수에로나 와스디나 하만처럼 자기 영광과 허영과 자존심을 위해서 사는 것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일입니까? 아니면 모르드개나 에스더처럼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지키고 하나님 백성과 민족을 위해서 살 것입니까? UBF 초기에 “민족의 누나가 되자”는 모토가 있었습니다. 이는 한 남자의 여자로만 있기에는 청춘이 아까우니 민족복음화를 위한 믿음의 여인, 세계복음화를 위한 열국의 어미가 되자는 정신에서 나온 구호였습니다. 한 남자의 사랑과 인정만 받으려는 아리따운 여자가 아니라, 한 생명을 위해 금식기도하며 매달리고 민족과 세계를 위해 기도하는 믿음의 누나, 오빠들이 되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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