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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07년 성탄말씀 제2강(눅1:26-56) 주님의 여종이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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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마가
댓글 0건 조회 3,279회 작성일 07-12-09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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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성탄말씀 제 2 강

주님의 여종이오니

말씀 / 누가복음 1:26-56
요절 / 누가복음 1: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오늘 말씀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될 처녀 마리아에게 임한 성탄메시지입니다. 마리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어떤 존재로 여겨야 하는가 귀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저희가 비천한 우리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겨보고 그 은혜를 감당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가랴에게 아들 소식을 전했던 천사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의 작은 동네 나사렛으로 향했습니다. 나사렛은 갈릴리 호수 남서쪽에 위치한 조그만 촌마을이었습니다. 당시 종교와 행정과 문화의 중심지였던 예루살렘에 비해 갈릴리는 ‘이방의 갈릴리’라 불리며 이스라엘에서 천대받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후에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내가 메시야를 만났는데 나사렛에서 온 예수란 분이야!”라고 하자 나다나엘의 대답이 무엇이었습니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며 그는 나사렛 출신을 완전 무시했습니다. 이곳에 사는 마리아도 도시의 화려함을 찾아볼 수 없는 순박한 처녀요, 세속적인 것과 거리가 먼 생얼 자연미인이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요셉이라는 청년과 약혼한 상태였습니다(27). 요셉은 비록 몰락했지만 다윗 왕가의 후손이었습니다. 목수였던 요셉은 마리아에게 줄 화장대를 만들며 그녀만 생각하면 가슴이 콩콩 뛰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요셉에게 줄 목도리를 짜며 그와 단란한 가정을 이룰 꿈에 부풀었을 것입니다. 이런 마리아에게 천사가 전한 메시지가 무엇이었습니까?

28절을 보십시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은혜를 받은 자란 영어로 you who are highly favored 즉 하나님의 호의를 입고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마리아는 천사가 자신에게 나타나서 한번 놀라고 또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는 천사의 말에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그럼 마리아가 받은 은혜는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31-33절을 보십시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첫째로, 마리아가 받은 은혜는 구원자 예수를 잉태하여 낳는 것입니다.(31) 천사는 마리아가 잉태하여 낫게 될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지으라고 했습니다. 이는 장차 마리아를 통해 태어날 분이 구원자 즉 그리스도가 될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간은 죄성을 갖고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구원자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둘째 아담으로 태어나야만 인류의 구원자가 될 수 있습니다(롬 5:14, 고전 15:22). 처녀가 잉태하여 구원자를 낫게 되리라는 것은 천사가 마리아에게 이 말을 이르기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계시하신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임마누엘’을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즉 처녀에게 잉태되어 태어날 분은 바로 하나님 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 성육신의 신비입니다. 마리아가 바로 이 그리스도를 잉태하여 낫는 구원역사에 어머니로 택함을 받은 것이니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둘째로, 마리아가 받은 은혜는 영원한 나라의 왕을 잉태하여 낫는 것입니다. 32,33절을 보십시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여기에 언급된 나라는 주님께서 영적인 왕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나라를 말합니다. 이 세상의 나라는 흥망성쇠를 거듭하지만 주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영원합니다. 마리아는 바로 이 영원한 나라의 왕을 잉태하여 낫는 하해 같은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이 세상의 모든 나라의 역사는 끝날 것이지만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택함을 입은 우리는 그 무궁한 나라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왕으로 다스리실 것입니다.

여러분, 비천한 시골처녀 마리아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십시오. 마리아는 요셉의 아내로 평범하게 아이들이나 기르며 그냥 그렇게 살다가 생을 마칠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낫고 기르는 구속역사에 그녀를 쓰시고자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택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평범한 한 여인의 인생이 아니라 성모의 인생을 살도록 축복하셨습니다. 내가 낳은 자녀가 학교에서 반장만 되도 영광이요 기쁨인데 마리아는 인류의 구원자요 영원한 나라의 왕을 잉태하여 낫게 되니 이 얼마나 큰 은혜며 영광입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무의미하게 살다 죽을 저희들을 택하시고 부르사 캠퍼스 목자의 인생을 사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피곤한 샐러리맨이나 깍두기 아줌마로 살다 죽게 놔두시지 않으시고 전세계 캠퍼스를 품고 기도하며 섬기는 구속역사의 한 가운데로 저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천사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자신은 현재 요셉과 약혼만 한 상태이고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아기를 가진다는 말인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천사는 이런 마리아에게 무엇이라고 합니까?

35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천사는 마리아에게 성령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심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마리아에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이 그녀를 덮으실 때 이 일이 가능하다고 하십니다.
천사는 친족 엘리사벳의 예를 들어가며 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도왔습니다.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도 친족 엘리사벳이 임신하지 못해 자녀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적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임신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엘리사벳을 잘 알던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대한 아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예가 되었습니다. 37절을 보십시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은 과학적 합리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적 신비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한 것은 우리 창조주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믿음을 심자 마리아가 어떻게 응답하였습니까? 38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여기서 우리가 마리아에게 배울 수 있는 바가 무엇입니까?

첫째, 마리아는 자신의 영적 신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마리아는 천사에게 자신이 “주의 여종”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자신의 존재가 요셉의 약혼녀나 부모의 딸이기 이전에 주님의 여종이라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참으로 특별하고 영광스러운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마리아에게 부담스러운 것이기도 합니다. 마리아가 평소 꿈꾸고 원했던 것은 이처럼 대단한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냥 요셉과 결혼하여 단란하게 가정을 꾸려 아들 딸 낳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이런 소시민적이고 안락한 삶을 원하듯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 앞에서 마리아는 요셉의 아내로 평범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택하심 대로 주의 어머니로 살 것인가 결단해야 했습니다. 이 때 마리아는 자신을 요셉의 아내로서 생각하지 않고 주의 여종으로서 인식했습니다. 마리아가 자신을 주의 여종이라고 고백했을 때 그것은 자신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 자신을 종과 같이 온전히 맡겨드린 다는 의미였습니다. 만약 마리아가 자신을 요셉의 약혼녀로만 생각했다면 천사에게 이렇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좋은 말씀 참 감사한데요. 제가 요셉과 약혼한 사이라 그이하고 먼저 상의해보고 결정할게요.” 그러나 마리아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신분은 주의 여종의 신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러할 때 그녀가 감수해야 하는 오해와 위험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신 은혜를 감당하고자 결단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 우리는 자신의 신분을 어떻게 인식하며 살고 있는가 생각해 봅시다.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 인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아내의 남편, 남편의 아내, 자녀들의 부모 혹은 부모님의 자녀로만 살아가고 있는가? 돌아보길 원합니다. 우리가 자신을 누구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다르게 수놓아집니다. 우리가 자신을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기초해서 인식하여 올바로 처신하고 의무를 다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관계성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주의 종으로 인식하고 종 된 자세로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복음을 위하여 살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참으로 귀한 본이 됩니다. 그는 늘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으로 여기고 그 신분에 합당하게 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소개할 때마다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밝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롬1:1). 저희가 그 동안 하나님의 종 된 신분으로 살지 못했다면 오늘 말씀에 기초해서 새롭게 자신의 신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종으로 살고자 결단하고 고백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마리아는 말씀대로 자신에게 이루어질 것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렇게 대답할 때 마리아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설마 어떻게 되기야 하겠어’ 이런 심정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사실 마리아는 자기 목숨을 담보로 해서 위험한 선택을 한 것입니다. 약혼한 여인이 아버지가 확실치 않은 아기를 낫는다는 것은 유대 사회에서 돌려 쳐죽임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어떻게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며 믿음의 결단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은 주의 말씀대로 자신에게 이루어질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주의 말씀 그대로 자신이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하게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자신이 돌로 쳐죽임을 당하지 않고 보호받아 천사의 말대로 아들을 낳을 것을 믿었습니다. 이렇게 주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 질 것에 대한 믿음이 있었을 때 마리아는 자신의 장래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각 인격적으로 연요절 말씀과 인생요절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자신에게 이루어질 것을 저희가 믿어야 하겠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현재 상황이 좋거나 나쁘거나 상관없이 자신의 장래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천사가 떠나자 마리아는 빨리 일어나 엘리사벳을 찾아갔습니다. 그곳은 나사렛에서 150Km나 떨어진 먼 산골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간 것은 천사가 언급한 엘리사벳을 직접 만나 하나님의 역사를 확인하고 싶어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성령의 역사를 먼저 체험한 엘리사벳에게 영적인 도움을 얻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를 받을 때 뱃속에 있던 6개월된 요한이 마리아의 목소리를 듣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뛰놀았습니다. 엘리사벳도 덩달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마리아에게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마리아가 믿음의 결단을 하긴 했지만 마음에 걱정과 두려움이 없진 않았을 것입니다. ‘요셉이 이 일을 알게 될 텐데 어떻게 나올까?’ 걱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은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다고 하며 마리아가 복 받은 자임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또 한참이나 어린 마리아를 “내 주의 어머니”라며 경외하였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 영적 교훈을 얻게 됩니다. 첫째는, 영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구에게 가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천사가 떠난 후 마리아의 마음에 가장 걸리는 사람은 요셉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찾아가 이해시키고자 여차여차해서 임신하게 되었으니 오해하지 말라고 설득하려 애쓸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부모님께 가거나 가장 친한 친구를 찾아가서 이 사실을 알리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의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 누구보다 천사가 예로 든 엘리사벳을 먼저 찾아갔습니다. 가까운 거리도 아닌데 말입니다. 즉 마리아가 인간적인 이해보다 영적인 도움과 교제를 사모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려울 때나 영적으로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구를 찾느냐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사람이라면 자기 귀에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을 찾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서도록 도와주는 사람을 찾습니다. 이에 따라 그 사람이 영적으로 살 수도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적인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그 때 당시는 내 귀에 듣기 좋은 말을 해주거나 불신을 그럴듯하게 합리화시켜 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인 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중심적으로 생각해야만 합니다.
 
둘째는, 영적인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엘리사벳이 믿음 없는 인본적인 여인이었다면 아마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아이구 이것아 어쩌자고 그런 결단을 했어? 요셉은 어쩌려고?” 그랬다면 마리아는 자신의 믿음의 결단을 후회하고 천사에게 못하겠다고 물려달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반복해서 네가 복이 있다고 하며 그녀의 믿음을 축복하여 주었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그렇습니다. 마리아가 얼마나 복된 여인입니까? 비천한 시골처녀로, 요셉의 마누라로 그냥 그렇게 살다가 죽을 마리아가 성모로서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을 받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엘리사벳의 이러한 영적인 코멘트를 듣고 마리아의 심령에 믿음과 감사가 충만하여 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훌륭한 목자의 본을 볼 수 있습니다. 목자는 믿음을 축복해주고 믿음을 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얼마나 복된 것인가 깨닫게 해주는 것이 목자의 일입니다. 목자는 양들이 인간적인 생각을 극복하고 하나님 편에서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해주어야 합니다.

엘리사벳의 믿음의 말을 듣자 마리아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있던 염려와 두려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이제는 감사와 찬양이 충만하여 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심령에 다가와 갑자기 시상이 떠올랐습니다. 46-48절을 보십시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나 같은 나사렛 촌 처녀에게, 비천한 이 여종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를 주시다니, 나는 얼마나 큰 복을 받았는지요.’ 마리아의 찬송시를 시를 읊듯 읊어보십시오. 그 안에 비천한 자신을 돌아보시고 큰 일을 행하신 하나님, 자신을 긍휼히 여기시고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사 기억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다가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내세울 것도 없고 비천한 자임을 고백했습니다. 이런 그녀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심령에 차고 넘쳤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거나 조건이 되어서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감사할 것이 없습니다. 당연한데 뭐가 감사하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정말 비천한 존재인데 이러한 자신을 찾아오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그 은혜가 너무나 감사합니다. 우리 마음에 감사와 찬송이 부족하고 은혜가 부족하다면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의 마음이 너무 높아져 있기 때문입니다. 받은 은혜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주신 은혜를 감사하기보다 주시지 않은 것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마리아와 같이 자신의 비천함을 아는 자, 겸손한 자에게 임합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심령이 낮은 자, 자신을 낮추는 자에게 그 은혜가 임합니다. 저희가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이 깨닫기 위해서는 더 겸손해져야 하겠습니다. 이 성탄에 저희도 마리아와 같이 비천한 저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주님께서 주신 축복을 돌아보고 감사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마리아를 통해서 저 자신에 대한 영적 신분을 분명히 붙들지 않았음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돌아볼 때 제가 주의 종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순종하는 자세를 갖기보다 먼저 아내의 남편이요 세 딸아이의 아버지로 자신을 인식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쉽게 세상 염려와 가장의 책임감에 눌리길 잘했습니다. 내년에는 부모님께서 키워주고 계신 셋째 아이를 데려와서 함께 키우고자 하는데 그러려면 좀더 넓은 집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젓세 집은 자꾸 줄어들고 값은 올라가고 있어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2년 동안 생활비를 아끼고 허리띠를 졸라매어 모은다고 했지만 결국 얼마 되지 않는 물질을 생각할 때 이사할 집을 구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이런 현실적인 생각들은 쉽게 제 마음을 소시민적으로 만들고 물질에 매이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으로 살기보다 남편으로 또 부모로만 살게 했습니다. 제가 이 시간 마리아의 주의 종으로서의 자세를 배우기 원합니다. 목자는 생활인으로 살기 이전에 먼저 사명인으로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제가 저에게 약속의 말씀으로 주신 창세기 12:1,2절 말씀을 붙들고 저 자신 뿐 아니라 가족도 하나님께 맡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주의 종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 점에서 하나님께 복 받은 자들입니까? 죄로 비천하고 비참한 인생을 살다 죽을 저희들을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하여 주신 구원의 복을 받았습니다. 또한 전세계 캠퍼스를 우리에게 맡겨주시고 구속역사에 쓰임 받는 사명 복을 받았습니다. 무의미하게 살다 죽을 자들이 사명인으로 산다는 것,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은혜이며 복 받은 것입니까? 그러므로 저희가 이 복을 감사하고 또 이를 잘 감당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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