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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2007 성탄1강(눅 1:1-25) 직무에 충성한 사가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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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요한
댓글 0건 조회 2,899회 작성일 07-12-02 18:58

본문

2007년 성탄1강
            직무에 충성한 사가랴
말씀 누가복음 1:1-25
요절 누가복음 1:8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

 오늘 본문 말씀은 제사장 사가랴 가정 이야기입니다. 제사장 노부부! 인간적으로 별 볼일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가정을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세례요한을 낳는 가정으로 축복하셨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첫째 사가랴 부부는 어떤 삶을 살았는가? 둘째 믿음의 한 가정이 어두운 시대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어두운 이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그 비결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시대적 환경(1-5)
 1~5절은 본서의 서론입니다. 저자 누가는 역사가요 의사였습니다. 이런 그가 누가복음을 쓰게 된 배경을 1~4절 까지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아름다운 일대기를 기록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사도 바울의 좋은 동역자로서 자신도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하고자하는 열망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서 이루신 모든 일들은 종합적으로 자세하게 조사 연구하여 누가복음을 썼습니다. 3절에서 그 대상이 데오빌로 각하라고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이를 볼 때 데오빌로는 평범한 사람이 아닌 개종한 로마의 상당한 지위가 있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누가는 데오빌로가 복음에 대해서 더 확실하게 하고자 누가복음을 썼습니다. 더 나아가 로마제국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을 대상으로 썼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유대왕 헤롯 때에” 이 간단한 말은 그 시대가 얼마나 어두운 시대였나를 잘 말해주는 말씀입니다. 헤롯은 폭군이었습니다. 권모술수에 뛰어났으며, 자신의 권좌를 지키기 위해 아내와 아들까지도 서슴치 않고 죽였고 마2:16절을 보면 어린아이 2만명을 죽인 살인자였습니다. 백성들에게는 건축과 토목공사에 노예와 같이 중노동을 시켰습니다. 백성들은 가난과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백성들의 편이 되어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말씀을 증거해야 할 종교지도자들은 헤롯과 야합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희망을 잃었습니다. 매일 자고 일어나면 오늘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걱정과 근심으로 하루하루 살아갔습니다. 살기 힘들어 자살하는 사람이 늘어갔습니다. 정체, 경제, 사회, 종교적으로 그 어느 분야 하나 소망을 둘 것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시대를 잘못 만났다는 운명주의에 빠졌습니다. 무엇보다 선민으로 선택을 받았음에도 지난 400년동안 이스라엘에 말씀을 증거하는 선지자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즉 영적인 암흑기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은 어떤 가정을 쓰고 계십니까?

2.충성스런 사가랴 가정(6-14)
소망도 없고 말씀도 없는 어려운 시대에 하나님은 한 가정을 주목하셨습니다. 바로 제사장 사가랴가정이었습니다. 5b절을 보십시오.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5b)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모두 뼈대있는 제사장 가문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가정은 어떤 가정이었습니까?
첫째, 하나님 앞에 사는 가정이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사가랴 부부는 오직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중심을 굳게 지켰습니다. 하나님 앞에 의인이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살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자 몸부림치며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다른 제사장 가정과 달랐습니다. 다른 제사장들은 헤롯에게 잘 보이려고 돈 봉투를 몰래 갖다 주었습니다. 잘못보이면 파면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상과 타협하며 시대의 대세에 합류하며 편하게 살았습니다.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외식하는 삶, 위선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사가랴 가정만 만큼은 하나님 앞에 살았습니다. 그는 세상과 전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헤롯을 기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가랴란 말의 의미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는 이름 그대로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만한 믿음생활을 철저히 했습니다. 사가랴 부부는 다른 사람들이 볼 때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 같았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센타와 양들밖에 모르는 삶을 사는 목자님들의 삶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새벽6시면 꼭 성전에 새벽기도 모임에 참석하고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먹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철저히 주1회 소감을 쓰면서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사가랴 부부는 주 7팀씩 1:1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세상모임보다 하나님의 모임을 우선적으로 참석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꼭 막힌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받든지. 천연기념물이란 별명을 듣든지, 자식이 없는 사람이라고 정죄 받든지 개의치 아니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본문 6절을 다시 보십시오. 본문은 “이 두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사가랴만 의인이 아니라 사모님인 엘리사벳도 의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만일 사가랴만 열심히 하나님을 잘 믿고 엘리사벳 사모님은 믿음이 부족하였다면 어떠했을까요? 사가랴는 아마도 늘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살았을 것입니다. 아내가 인간적인 말을 많이 하고 다른 제사장 가정과 같이 적당히 타협도하고, 장래대책도 마련하고 좀 그렇게 살라고 압력을 넣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가정은 둘 다 스피릿이 충만했습니다. 엘리사벳 사모님도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를 해도 꼭 부부가 함께 참석했습니다. 사가랴가 좀 지쳐 있으면 엘리사벳 사모님이 기도해주며 힘내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러할 때 사가랴는 감동을 받아 더욱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반대로 엘리사벳 사모님이 아파서 누워있으면 사가랴는 손수 밥을 지어 먹이고 집안 청소도 잘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 기도해 주었습니다. 비록 다른 제사장 가정과 같이 좋은 아파트에 살지는 않지만 행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부부를 기억하셨습니다. 주목하셨습니다.

성경은 이들 부부의 삶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6b을 보십시오.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이들 부부는 오직 말씀에 기초한 삶,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았습니다. 말만 하나님 아버지! 찾지 않고 실제 생활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열매 맺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면 세상에서는 손해보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적당히 세상과 타협을 해야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습니다. 사가랴 부부가 가장 어려웠던 점은 자신과 같은 제사장 대부분들이 세상과 타협하고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차라리 자신의 가정만 제사장 가정이라면 낫습니다. 이들은 다른 제사장들과 비교할 때 너무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너만 믿음이 있는 척하지 말라, 좋은게 좋은거지, 이런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들과 같은 삶을 살고 싶었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사가랴 부부는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제사장들과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우리 목자님 가정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교회 사람들과도 차원이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갑니다. 세속적인 인본적 신앙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이 시대의 대세입니다. 때론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회의가 올 때도 있습니다. 소감은 안 쓰면 안 되나, 새벽기도에 꼭 참석해야 하나, 투기를 해서 돈 좀 벌면 안 되나? 사단은 우리에게 이런 그릇된 인본적인 신앙을 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픔이 있을지라도 세상과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산다고 나도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사가랴 부부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요 축복의 비결입니다.
로마서 12:2절은 말씀합니다.“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은 우리 목자님 가정을 이시대의 사가랴와 엘리사벳 가정과 같이, 영적인 가정, 세상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오직 말씀대로 사는 믿음의 가정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시고 계십니다. 또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두운 시대를 본받지 말고 시대를 거스리며 말씀대로 살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시대에 하나님께 주목받는 그런 믿음의 영웅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둘째,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6절 말씀을 보면 당연히 사가랴 가정은 만사형통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만사형통은 커녕 나이 늙도록 자식하나 없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별로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년에는 주시겠지. 또 내년에는 주시겠지 그러기를 10년, 20년 30년이 흘렀습니다. 자식이 없는 것이 이 가정의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당시 애를 낳지 못하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아닌 제사장가정인데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겠습니까?사가랴 부부는 날마다 합심기도는 하지만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믿음이 점점 사라졌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흠 없이 산 이들 가정에 그 흔한 자식하나 주시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왜 심각한 문제를 주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자녀가 때로는 인간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할 때 우리는 영적인 분별력을 갖고 해석을 잘해야 합니다. 만일 사가랴 부부가 해석을 잘못했다면 그들은 운명주의, 허무주의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든 문제의 근원이 하나님께로 온 것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십니다.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징계하십니다.(롬12:6,10)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을 때 심각한 문제를 주신 하나님께 오히려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여러분에게 현재 있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까? 물질문제, 장래문제, 건강문제, 결혼문제, 자녀문제, 제자양성문제, 정욕문제, 부부사이의 문제, 직장문제, 장막문제 등  아무도 문제가 없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목자님 가정마다 한 가지 문제가 없는 가정이 없습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문제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 세상 떠날 때까지 우리는 수많은 문제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사가랴 부부는 이 심각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투쟁했습니까?
   
셋째 기도하는 가정이었습니다.
13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사가랴 부부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들의  삶 자체가 기도였습니다. 사가랴 부부는 가정문제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기도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사가랴 부부는 일방적으로 치우치는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자식만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시대문제만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사가랴 부부는 두 가지 모두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두 가지 기도 제목 중 이들 부부는 우선적으로 시대문제를 위해 더 많이 기도했습니다. 이들은 성숙한 하나님의 종들이었습니다.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를 보면 그 사람의 성숙도를 가름할 수 있습니다. 만일 사가랴와 엘리사벳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도 인간적인 생각을 했다거나, 인간적인 방법을 썼다면 자식문제로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부부싸움을 했을 것입니다. 심지어 다른 제사장 가정같이 이혼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문제를 감정적으로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들고 나아가 합심하여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상달되기까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기도의 종들이 되도록 훈련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간구하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은 기도를 매우 중요시 다루고 있습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33:3) 아무리 심각한 문제가 있을지라도 우리가 간구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문제를 푸는 방법은 오직 기도 외에는 아무방법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새벽기도와 금요기도 모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도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새벽기도와 금요기도모임을 통하여 자신의 문제와 이 시대의 문제, 양들의 문제, 동역자들의 문제, 센타의 문제들을 놓고 기도에 동참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결단합시다. 문제가 있음에도 기도하지 못하는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문제 자체에 얽매여 불만을 품고, 회의하며 기도의 끈을 놓았던 죄악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애통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 다면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멀어지고 세상 사람과 같은 무기력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요회 목자 가정부터 모범적으로 기도하는 가정으로 변화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문제를 해결 받는 놀라운 축복을 모두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넷째, 제사장 직무를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가정이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제사상은 오늘날로 말하면 목회자를 말합니다. 우리로 말하면 요회목자입니다. 당시 제사장들은 제사장의 직무를 형식적으로 섬겼습니다. 제사장 직분을 축복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가랴는 달랐습니다. 사가랴는 충성된 종의 자세가 있었습니다. 제사장직분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그는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는 사가랴로서는 충성스럽게 직무를 행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가랴는 신실하게 자신이 맡은 직무를 행했습니다. 하나님은 시대를 거스리며 흠없이 살 뿐만 아니라 열심히 기도한 사가랴의 믿음을 축복하셨습니다. 당시 제사장만 2만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제비에 뽑혀서 제사장 직무를 감당한 다는 것은 복권당첨되는 것 만큼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가랴가 뽑히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이때 사가랴의 기분이 어떠했을까요? 사가랴는 너무 기뻐서 감격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그는 감격하고 또 감격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요 경외심이 있는 종이었기에 제사장 직무를 수행한다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자신이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하나님께 충성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가랴는 자신에 봉착한 문제에 얽매이지 않고 충성스럽게 직무를 감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종의 특징 중의 하나는 충성심입니다. 충성은 처음과 끝이 똑같음을 말합니다. 신실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어려울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나님께서 맡기신 목자의 직분을 충성스럽게 섬겨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만일 사가랴가 믿음이 딸려서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하지 못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하나님이  슬퍼하시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사가랴는 하나님 역사에 기록조차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각한 문제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역사를 충성스럽게 섬길 수 있는 믿음을 주시도록 기도해야합니다. 우리 가운데 몇 분의 목자님들이 충성스럽게 역사를 섬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매우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자기 믿음대로 직분을 다 받았습니다. 공통적으로 목자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많은 선교사님들이 선교사 파송예배를 드릴 때 나오는 한마디 중의 하나가 ‘천사도 흠모하는 선교사’란 용어를 씁니다. 그리고 ‘천사도 흠모하는 목자라는 말’도 씁니다. 그만큼 목자의 직분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요회목자, 사모, 팀목자, 기도의 종, 양식인도자, 사회, 찬양과 특송, 각부 부장등 각자 맡은 직분이 있습니다. 이 직분은 내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일방적인 은혜의 직분입니다.

그러므로 이 직분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귀하게 여기고, 이 직분을 목숨을 걸고 감당해야 합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중간에 사표를 쓴다거나 힘들다거나 , 못해먹겠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 사가랴와 엘리사벳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이 시대의 등불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인정받는 충성된 종들이 됩시다.

다섯째 하나님의 구속역사에 귀히 쓰임 받는 가정이었습니다.
13절 하반절과 14절을 보십시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하나님은 기도의 응답으로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름까지 지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을 주사, 가정을 넘어 이스라엘의 큰 기쁨이 되게하셨습니다.(14)  하나님은 가정문제를 해결해 주실 뿐만 아니라, 시대의 문제도 해결하시는 축복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두운 시대에 세상의 조류대로 살지 않고 흠없이 사는 사가랴 가정을 통하여 구속역사의 큰 물줄기를 이어가고 계십니다.
어두운 시대에 믿음있는 한 가정의 영향력은 그 시대를 변화시키고 하나님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습니다. 믿음의 가정을 통하여 시대를 변화시키는 자녀가 탄생되는 것을 우리가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목자님들의 가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목자님 가정들이 시대를 거스려 살고자 결단하고 기도한다면 이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2세들을 세례요한과 같은 위대한 자녀들로 키울 수 있습니다. 또한 영적인 자녀들을 낳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사가랴와 같이 위대한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감당하는 사명인으로 부르셨습니다. 이 시대의 제사장으로 부르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축복입니다. 사명은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놀라운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이 축복을 감당하는 비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사가랴와 같이 충성스럽게 감당하므로 하나님 구속역사에 영원히 남을 위대한 삶을 모두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3. 세례요한의 탄생의 의미(15-20)
15~20절은 사가랴 부부의 기도의 열매로 주신 세례요한의 탄생과 세례요한의 사명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세례요한은 주 앞에 큰자가 됩니다.(15a)
15절 상반절을 보십시오“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여기서 큰 자는 위대한 사람을 말합니다. 세례요한은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은 전세계 술소비량 1위 국가가 되었습니다. 아이들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술에 취해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요즈음 자매들이 더 술을 잘 마십니다. 그래서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비틀거리는 자매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 역시 술에 취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성결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의 죄악된 삶을 본받지 않고 구별된 삶을 살므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위대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둘째 세례요한은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15b)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세례요한은 육체의 소욕을 절제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은 쉽지 않습니다. 늘 자신을 말씀에 기초하여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날마다 죄와 싸웠습니다. 그리하여 늘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할 때 그는 그 시대의 죄악에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죄악된 홍대 캠퍼스를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살 때만이 영적인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홍대주변, 신촌골을 영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고 복음을 담대히 증거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세례요한은 시대를 변화시키는 삶을 살았습니다.(16,17)
“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17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
이 말씀을 볼 때 그 시대가 매우 심각한 가정문제를 안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제멋대로 세상풍조대로 살았습니다. 세례요한은 이들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하는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파괴된 가정을 회복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가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가정이 파괴되면 사회가 문제가 생기고 더 나아가 국가의 기장마져 흔들려 국가의 존폐에 영향을 미치기 됩니다.
당시 아버지들은 가정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시대를 탓하며 매일 술독에 빠져 가장의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자녀들을 돌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가 많았습니다. 이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었습니다. 자녀들은 아버지에 대한 미운 감정으로 상처를 안고 살았습니다. 세례요한은 아버지들이 본래의 아버지, 즉 자녀들을 돌보는 아버지로 돌이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반발심과 증오심으로 가득한 자녀들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의 품으로 안기는 기쁨을 맛보도록 인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역시 가정이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아버지들이 자식에 대한 책임감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대신 어머니가 돈을 버는 가정이 늘면서 자녀들은 방치되고 있습니다. 이로인해 이혼가정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 휴유증으로 자녀를 죽이는 아버지가 늘고 있으며, 부모를 죽이는 자식들이 늘고 있습니다.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위아래가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질서가 파괴되었습니다. 권위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청소년들은 비전을 잃어버리고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죽어가고  있습니다. 모두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17절 상반절이 그 해답입니다. “그가 또 엘리야의 심정과 능력으로.”
엘리야의 심정과 능력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엘리야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 우상을 섬기는 것을 바라볼 때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그리고 바알 선지자 450명과 갈멜산에서 대결하여 싸워서 이겼습니다. 엘리야의 심정과 능력을 덧입을 때만이 이 시대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양들이 회개하는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엘리야의 심정과 능력을 덧입고 방황하는 홍대 지성인들을 주님의 품으로 돌이키는 역사가 일어 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또한 이 시대의 죄악과 싸워 승리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8~25절은 사가랴의 불신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가랴가 기도는 했지만 막상 기도의 응답이 왔을 때 그는 불신의 말을 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의 벙어리 훈련을 받게 됩니다.(20-23) 한편 엘리사벳은 잉태하여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면서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25) 하나님은 자식이 없어 부끄러운 삶을 살아온 사가랴 가정을 축복하셨습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은 우리 각 개인이 갖고 있는 부끄러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 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심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상을 통해 우리는 사가랴 부부의 삶을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가 있었음에도 문제에 얽매이지 않고 충성스럽게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한 사가랴의 믿음생활을 배웠습니다. 우리 모두 사가랴 부부와 같은 충성된 종의 자세를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이들의 믿음생활을 배워서 이 시대를 변화시키는 세례요한과 같은 믿음의 자녀들을 많이 낳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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