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08년 마태복음 9강(6:1-6,16-18) 사람의 상, 하나님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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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마태복음 제 9 강
말씀 마태복음 6:1-6,16-18
요절 마태복음 6:1
사람의 상, 하나님의 상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우리는 모두 상 받기를 바랍니다. 상을 받는 것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시적인 사람의 상보다 영원한 하나님의 상을 받기 원합니다. 사람의 상은 시간이 지나면 바래버립니다. 메달이나 트로피도 녹슬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상은 영원하고 녹슬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무나 상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상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목표의식이 뚜렷합니다. 자기 절제가 뛰어나고 남다른 노력을 합니다. 우리가 사람의 상을 받고자 하는가, 하나님의 상을 받고자 하는가에 따라서 삶의 형태가 달라집니다. 구제, 기도, 금식은 종교 생활에서 핵심 되는 주제입니다. 우리가 경건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의 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구제를 은밀하게 하라(1-4) : 1절을 보십시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하나님과 관계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듭니다. 샌디애고에서 돌고래가 아니라 집채만 한 고래가 쇼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인정과 칭찬은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의를 행하는 것은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감사해서 빚을 갚는 심정으로 행합니다. 구제도 사람에 대한 긍휼에서 비롯되어야 순수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물질을 주시고 또 고난당하는 사람의 아픔에 참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은 없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게 되면 외식하게 됩니다. 우리가 의를 행하는 동기가 무엇입니까? 감추어진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겉만 번지르르하게 하기 쉽습니다.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재미로 산다면 조금 일을 해 놓고도 큰 일을 한 것처럼 과장하게 되고, 자화자찬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의를 행하고 사람의 인정과 하나님의 인정을 다 받고 싶어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던지 사람의 인정을 받던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고 하십니다. 사람의 상을 받으면 하나님의 상을 받지 못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신명기 15:7-10절에는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구제하도록 명령하시고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잠언 11:25에는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잠언 28:27에는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 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심지어 누가복음 11장 39-41절에 보면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마음 속에 있는 긍휼과 자비로 구제하면 모든 것이 우리에게 깨끗하리라고 하십니다.
고넬료는 가이사랴에 있는 로마의 백부장이었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그의 집에 보내사 축복하셨습니다.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행10:31)” 베드로는 이방인인 그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그와 그의 가족에게 충만히 부어주시고 죄사함과 이방 선교의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도움이 필요한 사건에 직면해 있습니다. 미얀마에서는 사이클론으로 인해 13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고 10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또한 중국에서는 지난주 발생한 쓰촨성 대지진으로 인해 8만 여 명이 사망하였고, 수많은 난민이 발생했으며, 여진과 그 피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 뉴스위크지에 의하면 북한도 현재 식량난이 심각하여 굶주림으로 인한 사망자가 미얀마의 사망자들에 필적하게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재난당한 이들을 위한 구제모금이 전 세계적으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저희도 재난 당한 이들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푸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다음 주에는 우리가 마음과 정성을 모아서 구제 헌금을 하고자 합니다.
주님께서는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주는 정신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지름길입니다. 누가복음 6:38절에 보면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아무도 자기의 앞길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재난 당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구제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제를 할 때에 피해야 할 자세는 무엇입니까? 2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나팔을 불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자기 자랑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제하고 나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자 한다면 그 인정을 받음과 동시에 하나님의 상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내 구제함이 은밀하게 해야 합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입니다(3,4). 하나님께서는 은밀하게 구제할 때 우리의 마음에 기쁨을 주시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은밀하게 구제할 때 하나님 나라에 상이 쌓게 됩니다. 은밀하게 구제할 때에 우리는 더욱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은 극한의 대조법입니다. 이것이 불가능한 일이지만 제자의 선행이 하나님만 아시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의식하지 않으면서 해야 합니다. 선행을 내가 했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른 손으로 하고 왼쪽 손으로 결과를 거두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구제하면 좋지만 보통 사람으로서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 속에서 주는 것을 열심히 함으로 습관이 되게 해야 합니다. 버스에서 어른에게 자리를 내어 준다든지, 기회가 올 때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형제들과 힘써 나누는 일도 중요합니다. 나에게 있는 지식을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도 좋은 구제입니다. 우리는 캠퍼스 복음 운동을 하면서 영적인 구제를 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여 신령한 양식인 말씀을 나누어 줍니다. 한 사람이 자립적인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나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합니다. 사랑이 필요한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발견을 못하는 사람들을 말씀을 통해서 자기 발견을 하도록 돕는 것도 좋은 구제입니다. 일대일 성경 선생으로서 제자를 키우는 삶은 많은 희생과 인내가 요구됩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할 때 이름도 나지 않고 빛도 나지 않지만 하나님이 알아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 일을 일생동안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골방에 들어가서 은밀하게 기도하라(5-6) : 5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바리새인들은 기도할 때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사람들은 기도하는 그를 보고 경건한 사람, 기도의 종,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칭찬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제가 본받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추켜세웁니다. 그러면 “나를 본받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인데 외식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귀에 대고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6절을 보십시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나와 하나님 사이의 은밀한 대화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낮이고 밤이고 대화를 합니다. 대화를 통해서 서로를 알고 이해하고 하나됨을 체험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통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기도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믿음으로 하되 열정적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줘도 좋고 안 들어 줘도 괜찮다는 식으로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를 했다는 것으로 자족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면 응답을 기대해야 합니다. 활을 쏘는 사람이 활을 쏜 다음에 돌아서지 않고 과녁에 정확하게 맞았는지 확인을 하는 것처럼 기도가 어떻게 응답되는지 확인을 해야 합니다. 공적인 기도를 해야 할 경우는 되도록 짧게 해야 합니다. 또 공적인 기도를 하기 전에 개인 기도를 깊이 해야 합니다. 기도 생활이야말로 경건한 생활, 신앙 생활의 척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 생활이 풍성한 사람은 믿음의 비밀을 많이 간직하게 됩니다. 또 내면도 풍성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할 때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하라고 하십니다. 골방은 작은 창고나 곳간입니다. 외부와 단절된 곳입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기도하면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혼자 자기 방에 들어가서 기도하기보다 무엇을 합니까? 은밀하게 컴퓨터 게임을 합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MP3를 들으면서 혼자 노래를 합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헛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골방에 들어가서 컴퓨터 게임을 끄고 기도해 보십시오. MP3를 끄고 기도해 보십시오. 처음에는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들어보십시오.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기도할 때 마음의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지혜가 떠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비전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하고자 하는 소원을 주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한나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많은 사랑을 해 주었지만 자식이 없는 것으로 인해 한이 맺혔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전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한나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을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했습니다. 이와 같이 엘리는 한나의 은밀한 기도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을 허락하셨습니다.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들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큰 소리로 기도하건, 작은 소리로 기도하건, 묵도를 하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어떤 목자님은 먼 거리를 통근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하철이 골방이 됩니다. 지하철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묵상합니다. 센터가 골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새벽 기도를 할 때 우리는 이곳에서 각자 조용하게 하나님과 자기만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러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내 아버지께서 갚으십니다. 아버지는 내가 생각하고 구하는 것 이상을 주십니다. 우리가 기도의 깊은 세계로 나아갑시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은밀한 중에 보시는 이 앞에서 금식하라(16-18) : 16-18절을 보십시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우리는 때로 금식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결딴 할 때 금식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죄를 깊이 회개해야 할 때 금식합니다.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 소식을 들었을 때 모든 국민이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대 속죄일과 유월절에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슬픈 기색을 하고 수염을 뜯고,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고 금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금식하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금요일에 정기적으로 금식했습니다. 그들의 금식기도는 매우 형식적이 되었습니다. 금식하면서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금식을 하면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금식 기도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고 하라고 하십니다. 평상시와 똑 같이 생활하면서 금식하라고 하십니다. 금식한다는 티를 내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보시고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58:6-12절에는 올바른 금식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죄와 사단의 결박에 매어 있습니다. 금식은 이런 결박을 풀어놓고 자유를 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내가 먹을 것을 절제하고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어 줍니다. 노숙자들을 돌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힙니다. 도움이 필요한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합니다. 그리하면 내 인생의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여호와의 영광이 내 뒤에 호위할 것입니다. 올바른 금식은 내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내가 부르짖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내가 여기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올바른 금식은 우리 가운데서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내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내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내 인생의 어두움이 낮과 같이 변화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내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내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나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입니다. 우리가 올바로 금식하면 나의 후배와 자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나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나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할 것입니다. 올바른 금식 기도는 어려움에 처한 형제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것이요 하나님 앞에서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자기 민족이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죽으면 죽으리라는 자세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캠퍼스 학생들의 구원을 위해서 금식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구원을 위해서 3개월 이상 점심을 금식하며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죄의 습관을 끊기 위해서 금식하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음식을 끊는 금식도 해야 하겠지만 오늘날은 세속의 물결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TV금식, 인터넷 금식, 게임 금식, 드라마 금식도 필요합니다.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 이런 금식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금식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은 속히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구제에 힘쓰고 은밀하게 기도하며 믿음의 향기를 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날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세속적인 크리스천들이 많아지면서 믿음의 향기를 맡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실 되게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은밀하면서도 내용이 있는 경건 생활을 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마태복음 6:1-6,16-18
요절 마태복음 6:1
사람의 상, 하나님의 상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우리는 모두 상 받기를 바랍니다. 상을 받는 것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시적인 사람의 상보다 영원한 하나님의 상을 받기 원합니다. 사람의 상은 시간이 지나면 바래버립니다. 메달이나 트로피도 녹슬어 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상은 영원하고 녹슬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무나 상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상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목표의식이 뚜렷합니다. 자기 절제가 뛰어나고 남다른 노력을 합니다. 우리가 사람의 상을 받고자 하는가, 하나님의 상을 받고자 하는가에 따라서 삶의 형태가 달라집니다. 구제, 기도, 금식은 종교 생활에서 핵심 되는 주제입니다. 우리가 경건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의 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구제를 은밀하게 하라(1-4) : 1절을 보십시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하나님과 관계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듭니다. 샌디애고에서 돌고래가 아니라 집채만 한 고래가 쇼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인정과 칭찬은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의를 행하는 것은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감사해서 빚을 갚는 심정으로 행합니다. 구제도 사람에 대한 긍휼에서 비롯되어야 순수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물질을 주시고 또 고난당하는 사람의 아픔에 참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은 없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게 되면 외식하게 됩니다. 우리가 의를 행하는 동기가 무엇입니까? 감추어진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타락한 인간의 마음은 겉만 번지르르하게 하기 쉽습니다.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재미로 산다면 조금 일을 해 놓고도 큰 일을 한 것처럼 과장하게 되고, 자화자찬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의를 행하고 사람의 인정과 하나님의 인정을 다 받고 싶어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던지 사람의 인정을 받던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고 하십니다. 사람의 상을 받으면 하나님의 상을 받지 못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신명기 15:7-10절에는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구제하도록 명령하시고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잠언 11:25에는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잠언 28:27에는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 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심지어 누가복음 11장 39-41절에 보면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마음 속에 있는 긍휼과 자비로 구제하면 모든 것이 우리에게 깨끗하리라고 하십니다.
고넬료는 가이사랴에 있는 로마의 백부장이었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베드로를 그의 집에 보내사 축복하셨습니다.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행10:31)” 베드로는 이방인인 그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그와 그의 가족에게 충만히 부어주시고 죄사함과 이방 선교의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도움이 필요한 사건에 직면해 있습니다. 미얀마에서는 사이클론으로 인해 13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고 10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또한 중국에서는 지난주 발생한 쓰촨성 대지진으로 인해 8만 여 명이 사망하였고, 수많은 난민이 발생했으며, 여진과 그 피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 뉴스위크지에 의하면 북한도 현재 식량난이 심각하여 굶주림으로 인한 사망자가 미얀마의 사망자들에 필적하게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재난당한 이들을 위한 구제모금이 전 세계적으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저희도 재난 당한 이들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푸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다음 주에는 우리가 마음과 정성을 모아서 구제 헌금을 하고자 합니다.
주님께서는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주는 정신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지름길입니다. 누가복음 6:38절에 보면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아무도 자기의 앞길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재난 당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구제할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제를 할 때에 피해야 할 자세는 무엇입니까? 2절을 다시 보십시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나팔을 불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자기 자랑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제하고 나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자 한다면 그 인정을 받음과 동시에 하나님의 상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내 구제함이 은밀하게 해야 합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입니다(3,4). 하나님께서는 은밀하게 구제할 때 우리의 마음에 기쁨을 주시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은밀하게 구제할 때 하나님 나라에 상이 쌓게 됩니다. 은밀하게 구제할 때에 우리는 더욱 풍성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은 극한의 대조법입니다. 이것이 불가능한 일이지만 제자의 선행이 하나님만 아시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의식하지 않으면서 해야 합니다. 선행을 내가 했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른 손으로 하고 왼쪽 손으로 결과를 거두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구제하면 좋지만 보통 사람으로서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삶 속에서 주는 것을 열심히 함으로 습관이 되게 해야 합니다. 버스에서 어른에게 자리를 내어 준다든지, 기회가 올 때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형제들과 힘써 나누는 일도 중요합니다. 나에게 있는 지식을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도 좋은 구제입니다. 우리는 캠퍼스 복음 운동을 하면서 영적인 구제를 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여 신령한 양식인 말씀을 나누어 줍니다. 한 사람이 자립적인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나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합니다. 사랑이 필요한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발견을 못하는 사람들을 말씀을 통해서 자기 발견을 하도록 돕는 것도 좋은 구제입니다. 일대일 성경 선생으로서 제자를 키우는 삶은 많은 희생과 인내가 요구됩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할 때 이름도 나지 않고 빛도 나지 않지만 하나님이 알아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 일을 일생동안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골방에 들어가서 은밀하게 기도하라(5-6) : 5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바리새인들은 기도할 때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사람들은 기도하는 그를 보고 경건한 사람, 기도의 종,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칭찬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제가 본받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추켜세웁니다. 그러면 “나를 본받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인데 외식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귀에 대고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6절을 보십시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나와 하나님 사이의 은밀한 대화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낮이고 밤이고 대화를 합니다. 대화를 통해서 서로를 알고 이해하고 하나됨을 체험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는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는 통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기도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믿음으로 하되 열정적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줘도 좋고 안 들어 줘도 괜찮다는 식으로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를 했다는 것으로 자족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면 응답을 기대해야 합니다. 활을 쏘는 사람이 활을 쏜 다음에 돌아서지 않고 과녁에 정확하게 맞았는지 확인을 하는 것처럼 기도가 어떻게 응답되는지 확인을 해야 합니다. 공적인 기도를 해야 할 경우는 되도록 짧게 해야 합니다. 또 공적인 기도를 하기 전에 개인 기도를 깊이 해야 합니다. 기도 생활이야말로 경건한 생활, 신앙 생활의 척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 생활이 풍성한 사람은 믿음의 비밀을 많이 간직하게 됩니다. 또 내면도 풍성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할 때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하라고 하십니다. 골방은 작은 창고나 곳간입니다. 외부와 단절된 곳입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기도하면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혼자 자기 방에 들어가서 기도하기보다 무엇을 합니까? 은밀하게 컴퓨터 게임을 합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MP3를 들으면서 혼자 노래를 합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헛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골방에 들어가서 컴퓨터 게임을 끄고 기도해 보십시오. MP3를 끄고 기도해 보십시오. 처음에는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들어보십시오.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기도할 때 마음의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지혜가 떠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비전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하고자 하는 소원을 주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한나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많은 사랑을 해 주었지만 자식이 없는 것으로 인해 한이 맺혔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전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한나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을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했습니다. 이와 같이 엘리는 한나의 은밀한 기도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을 허락하셨습니다.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들으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큰 소리로 기도하건, 작은 소리로 기도하건, 묵도를 하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어떤 목자님은 먼 거리를 통근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하철이 골방이 됩니다. 지하철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묵상합니다. 센터가 골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새벽 기도를 할 때 우리는 이곳에서 각자 조용하게 하나님과 자기만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러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내 아버지께서 갚으십니다. 아버지는 내가 생각하고 구하는 것 이상을 주십니다. 우리가 기도의 깊은 세계로 나아갑시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은밀한 중에 보시는 이 앞에서 금식하라(16-18) : 16-18절을 보십시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우리는 때로 금식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결딴 할 때 금식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죄를 깊이 회개해야 할 때 금식합니다.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 소식을 들었을 때 모든 국민이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대 속죄일과 유월절에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슬픈 기색을 하고 수염을 뜯고,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고 금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금식하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금요일에 정기적으로 금식했습니다. 그들의 금식기도는 매우 형식적이 되었습니다. 금식하면서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난했습니다. 그들은 금식을 하면서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금식 기도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고 하라고 하십니다. 평상시와 똑 같이 생활하면서 금식하라고 하십니다. 금식한다는 티를 내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보시고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58:6-12절에는 올바른 금식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죄와 사단의 결박에 매어 있습니다. 금식은 이런 결박을 풀어놓고 자유를 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내가 먹을 것을 절제하고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어 줍니다. 노숙자들을 돌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힙니다. 도움이 필요한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합니다. 그리하면 내 인생의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여호와의 영광이 내 뒤에 호위할 것입니다. 올바른 금식은 내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내가 부르짖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내가 여기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올바른 금식은 우리 가운데서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내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내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내 인생의 어두움이 낮과 같이 변화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내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내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나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입니다. 우리가 올바로 금식하면 나의 후배와 자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나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나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할 것입니다. 올바른 금식 기도는 어려움에 처한 형제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것이요 하나님 앞에서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자기 민족이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죽으면 죽으리라는 자세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캠퍼스 학생들의 구원을 위해서 금식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구원을 위해서 3개월 이상 점심을 금식하며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죄의 습관을 끊기 위해서 금식하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음식을 끊는 금식도 해야 하겠지만 오늘날은 세속의 물결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TV금식, 인터넷 금식, 게임 금식, 드라마 금식도 필요합니다.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 이런 금식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금식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은 속히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구제에 힘쓰고 은밀하게 기도하며 믿음의 향기를 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날 크리스천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세속적인 크리스천들이 많아지면서 믿음의 향기를 맡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실 되게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은밀하면서도 내용이 있는 경건 생활을 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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