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주일말씀 성경별메시지 심포지엄 성경 검색
문제지 성경별문제지

마태복음 08년 마태복음 5강(4:12-25) 우리에게 임한 천국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2,393회 작성일 08-04-27 14:19

본문

2008년 마태복음 제 5 강                                                       
말씀 마태복음 4:12-25
요절 마태복음 4:17

우리에게 임한 천국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천국은 마태복음의 주제입니다.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든 자들을 치료하시며 천국 건설을 위해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약속의 말씀, 비전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제자의 삶을 사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깊이 영접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첫째, 비로소 천국을 전파하시다(12-17) :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왕의 죄까지도 책망하다가 감옥에 갇혔음을 들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를 구명하기 위해 붉은 띠를 두르고 데모를 하지 않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물러가고 자신이 메시야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는 하나님의 때가 이른 줄 아셨습니다. 이에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다시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으로 가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거기 살면서 조용히 하나님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가서 사신 것에 대해서 저자는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의미를 덧붙였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잡힐 때에 인간적인 정에 매여서 일하거나, 정치적으로 나아가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으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루고자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15,16절을 보십시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이방의 갈릴리, 흑암에 앉은 백성,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가셨습니다. 갈릴리 지방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 의해서 점령을 당한 후 이방인들과 피가 섞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갈릴리 사람들을 이방인과 같이 취급했습니다. 우상으로 가득했던 그곳에는 각종 병에 걸려 고통 당하고, 귀신 들리고, 약한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인간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죄악된 이방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동족들에게 무시와 멸시를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갈릴리에서는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큰 빛으로 흑암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흑암이 있고 사망의 그늘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깊은 열등감으로 남몰래 고통 합니다. 어떤 분은 불신의 동굴 속에 있습니다. 어떤 분은 교만한 자아의 어두움 속에, 어떤 분은 이기적인 자아의 그늘 아래 있습니다. 가난으로 인한 어두움이 있습니다. 장래불안으로  심령이 어두운 분들도 있습니다. 반복되는 실패로 인해서 마음이 검게 타버린 사람들,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불신하고 무기력해진 사람들,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없는 정욕과 음란의 세력 가운데서 헤매는 인생들, 부모님의 불화로 늘 불안하고 정서가 불안정하고 소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눈이 멀고 귀 먹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어두움과 사망의 그늘을 누가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16절을 보십시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어떤 죄와 어두움 가운데 있는 사람도 빛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될 때 모든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이 물러가고 빛과 같이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의 말씀은 생명의 빛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빛의 세계입니다. 회개하라는 말씀은 하나님께로 돌이키라는 뜻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이 어디로부터 돌이켜야 하는지, 어디로 돌이켜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성경을 깊이 공부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회개가 필요합니다. 회개해야 예수님의 큰 빛이 마음에 임합니다. 회개할 때 속이 시원하고 하늘로부터 평강이 임하고 기쁨이 생기고 생명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천국을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주기 위해서 천국의 일군들을 세우고자 하십니다.   

둘째,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18-22) :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셨습니다. 조금 더 가시다가 야고보와 요한이 그의 아버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물을 던지는 것은 열심히 일하는 모습입니다. 그물을 깁고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부지런하고 규모 있는 살림살이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열심히 일하는 그들에게 전도하시고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어부였습니다. 그들은 갈릴리 호수에서 바람과 싸우며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날 고기를 얼마나 많이 잡았느냐에 따라서 울고 웃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젊은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장할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당시 어부는 무식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배우고자 하는 소원이 충만했습니다. 그들은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젊은이들은 그 나라와 시대의 희망입니다. 예수님은 천국 건설의 비전을 품고 일할 청년들을 부르셨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비결을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려면 먼저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유능한 사람 낚는 어부가 될 수 있습니까? 열심히 전도 세미나를 찾아 다녀야 합니까? 신학 교육을 많이 받아야 합니까? 그런 일들이 필요하겠지만 가장 확실한 대답은 예수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나를 따라오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어디를 가시든지 항상 함께 하며 예수님을 배우는 제자가 되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삶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서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배웁니다. 길을 갈 때도, 식사를 할 때도, 공부를 할 때도, 놀 때도, 여행을 할 때도 함께 하면서 배웁니다. 목자는 먹든지 마시든지 공부를 하든지 쉬든지 항상 양들과 함께 하면서 가르쳐야 합니다.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양들의 필요를 채우고 섬겨야 할 일이 많습니다. 이기적인 마태를 감당해 주어야 하고 서로 다투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줌으로 섬김을 가르쳐야 합니다. 거룩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의 죄를 보면서 화가 날 때가 많았지만 끊임없이 용서하면서 진리의 말씀으로 양육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하나님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역사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우리가 사람과 관계성을 잘 맺어야 하지만 먼저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성을 깊이 맺어야 합니다. 최고의 사람 낚는 어부였던 사도 바울의 인생 목적은 성공적인 목자나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알고 본받는 것을 인생의 최고 목표로 잡았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했고 그 부활의 권능을 체험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했습니다(빌3:10,11). 예수님을 본받고자 힘썼을 때 그는 최고로 유능한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나를 따라 오라” 이 말씀은 예수님을 본받아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을 따라서 사는 이 시대에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해 집니다. 성령은 거룩한 영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면 능력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말씀 앞에 끊임없이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을 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거룩한 삶을 살 때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덧입고 사람 낚는 어부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나를 따라 오라” 이 말씀은 이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 조류를 따라 살지 말고 하나님 중심적인 가치관, 영적 가치관을 따라 살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생각을 좇지 말고 자기감정을 따라 자기 나름대로 행하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나를 따라 오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거룩한 성품, 예수님의 겸손하심과 온유하심,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자기를 비우심, 예수님의 사랑과 섬김의 도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 빌립, 나다나엘 등 제자들을 개인적으로 전도하시고, 관계를 맺어 전도하셨습니다.

  둘째로, 우리가 예수님을 따를 때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내가”라는 말씀을 볼 때 여기에 예수님의 의지가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삼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면, 심령이 시들어 침체되어 있는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과 끊임없이 은밀한 교제를 나눌 때에 영적으로 민감하게 되고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직접 듣거나 어떤 소리를 듣는 것은 아니지만 주님의 뜻을 확실히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럴 때 그가 전하는 말씀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서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함께 하실 때 열매를 맺게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성령을 충만히 받고 말씀을 전하여 한 번에 삼천 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마른 지팡이와 같은 우리가 예수님을 따를 때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게 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사람 낚는 어부의 삶에 대한 비전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들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천국이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세계적인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역사적인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사회를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고 예수님은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삼아 주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미련하고 약한 자들을 택하여 이 일을 하고자 하십니다. 약한 자들을 쓰시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이 일을 감당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주님을 의지할 것 밖에 없습니다. 신령한 어부들은 하나님의 뜻하신 바대로 세상이라는 바다에 나아가 수많은 영혼들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데 열정과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 말씀은 우리를 천국 복음을 전하는 이 시대의 성경 선생이요, 제자 양성가요, 영적 지도자로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20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야고보와 요한은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의 결단력은 매우 놀랍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 도구인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자신들의 장래를 예수님께 걸었습니다. 이전의 삶의 방식을 버리고 예수님 중심적인 삶의 방식을 따랐습니다. 세상과 예전처럼 관계성을 맺으면서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버리고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좇기 위해서 그들은 배와 그물과 부모조차도 버리고 따랐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예수님께 “올인”했습니다. 그들이 곧 따르는 것을 볼 때 그들은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충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삶에서 빈 그물을 느꼈습니다. 무언가 비어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압도되어 모든 것을 버려 두고 곧 따랐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면 버리는 아픔이 있습니다. 죄 된 옛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의 잔재미를 버려야 합니다. 할 일 없이 바쁜 생활 습관도 버려야 합니다. 인간적인 정을 끊는 아픔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아픔은 예수님이 주신 거룩한 비전으로 인해 감당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 천국을 건설하는 방법(23-25) : 예수님은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열심히 전도하신 분도 없습니다. 예수님도 배척을 받으면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셨고, 기분이 좋을 때에든지 나쁠 때에든지, 날씨가 좋든지 나쁘든지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면서 전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힘을 쓰셨습니다. 예수님은 접근하기 쉬운 곳에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며, 완악한 사람들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집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가르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습니다(8:17). 예수님은 가르침과 치유를 통해서 천국을 건설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이야말로 예수님께서 힘쓰신 일 중의 으뜸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 치료가 일어났습니다. 사탄의 통치로 생긴 모든 파괴적인 요소들이 치유를 통해서 회복되었습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사탄의 통치로 파괴되어 인격 장애, 질병, 무의미, 무정 등으로 시달렸는데 예수님의 통치로 인해서 치유되고 회복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졌습니다. 소문은 다리 없이 천리 길을 간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예수님이 고치셨습니다.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그를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놀랍게 확장되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병원 시설이 열악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치유 사역은 말씀 전파를 더욱 힘차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사역을 하셨지만 주변 지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어두움 가운데서 빛을 본 사람들이 구름 같이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일일이 고쳐주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흑암 가운데 있는 백성들에게 빛이 되심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천국 건설을 위해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 평범한 우리들을 부르셔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힘써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우리를 사람들을 구원하는 천국의 일군들로 쓰십니다. 저희가 예수님을 통해 천국을 맛보고 천국을 전파하는 삶을 힘 있게 살기를 기도합니다.

첨부파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323건 63 페이지
주일메시지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393 마태복음 이엘리야 2567 06-08
392 마태복음 이엘리야 2460 06-01
391 마태복음 이엘리야 2409 05-25
390 마태복음 이엘리야 2322 05-18
389 마태복음 이엘리야 2432 05-11
388 마태복음 이엘리야 2411 05-04
열람중 마태복음 이엘리야 2394 04-27
386 마태복음 이엘리야 2431 04-20
385 마태복음 이엘리야 2365 04-13
384 마태복음 이엘리야 2476 04-06
383 마태복음 이엘리야 2532 03-30
382 요한복음 이엘리야 2771 03-23
381 사도행전 문바울 3222 03-16
380 사도행전 문바울 3222 03-10
379 사도행전 문바울 3184 03-03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