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08년 마태복음 4강(4:1-11) 사탄아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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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마태복음 제 4 강
말씀 마태복음 4:1-11
요절 마태복음 4:10
사탄아 물러가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우리나라에서 한참 ‘주적’이 누구인지 논란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의 적이 누구인지 모르면 전쟁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영적인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적’은 사탄입니다. 사탄은 비방자요 고소자요 참소자요 거짓의 아비요 살인자입니다. 이런 사탄의 존재를 모르면 영적인 싸움을 싸울 수 없습니다. 사탄의 존재를 알지 못하면 문제의 원인을 사람이나 환경에 돌리거나 자학하게 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사탄의 존재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탄의 모든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우리가 이 시간 이 예수님을 배워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탄의 시험들을 잘 이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1-4) :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로 가셨습니다. 성령께서 그를 인도하신 것을 보면 개인이 아니라 인류의 대표로서 시험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처음 광야에 왔을 때 시험을 받은 것이 아니라 사십 일을 굶주리신 이후에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배가 고픈 상태를 넘어서 이제 더 굶주리게 되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지경에 까지 이른 것입니다. 먹느냐 죽느냐의 문제에 다다르게 된 것입니다. 이런 절대 절명의 순간에 사탄이 시험을 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사탄은 식욕을 가진 인간의 약점을 노렸습니다. 우리는 한 두 끼만 안 먹어도 갑자기 인생의 비애가 느껴지고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신경이 날카로워집니다. 빵 비슷한 것만 보여도 빵 생각이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께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탄은 매우 교묘해서 그 말씀을 꼬투리로 잡고 시험을 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굶주리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구나 쯧쯧.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능력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먹는 문제를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메시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귀는 메시아의 능력을 먼저 너 자신을 위해서 쓰라는 것입니다. 돌로 빵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왜 그것을 쓰지 않고 그 고생을 하느냐고 말합니다. 자기의 먹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마귀는 오늘날도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절실한 문제이니 모든 힘을 거기에 쏟아 부어야 한다고 속삭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투쟁이나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뒷전으로 하게 만듭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떡을 위해 살도록 유혹합니다. 떡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아 온 마음과 시간과 생명을 드려 떡을 섬기도록 유혹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떡을 더 앞세우는 존재로 전락시키고자 끊임없이 공격하고 끌어내립니다.
예수님은 먹느냐 죽느냐 하는 시점에서 어떤 선택을 하셨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덧붙이거나 더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절대적으로 믿었음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의 말씀도 살아서 역사함을 믿었습니다. 그는 생명을 걸고 말씀을 붙잡았고 그대로 살았습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 먹어야 되지만 먹는 것이 인생의 전부는 아닙니다. 인생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육체와 함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사람은 떡 만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고귀한 영혼의 소유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먹고 사는 문제로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러한 것들을 얻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지 않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덤으로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지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십일을 굶은 극한 상황에서 마귀의 말을 듣고 자기 육신의 소욕을 채우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떡을 위해 살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셨습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배워서 어떤 육신의 한계 상황 앞에서도 말씀을 기억하고 말씀을 앞세우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캠퍼스 복음화와 제자 양성, 세계 선교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캠퍼스 제자 양성이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는 이 일을 일생 감당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계 선교를 섬겨야 합니다.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 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그 일을 이루면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인생이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살 만큼 길지 않습니다. 인생은 참으로 짧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맡기신 그 일을 일생토록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하다가 가면 성공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5-7) : 일차 시험에 실패한 마귀는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웠습니다. 성전 꼭대기의 높이는 약 135m라고 합니다. 당시에 가장 높은 곳이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교회 건물이 가장 높았습니다. 그 이상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캐나다 토론토의 CN 타워는 553m입니다. 그 바닥은 밑이 보이도록 유리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떨어질 염려가 없는데도 그 위를 덜덜 떨리는 마음으로 올라갑니다. 마귀는 이렇게 높은 꼭대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그런지 시험을 해서 증명해 보라고 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으니라.” 이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는데 예수님이 조금도 상하지 않고 멀쩡하다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쉽게 메시아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영광의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열렬히 환영을 받으실 것입니다. 인기 짱일 것입니다. 이 시험은 쉬운 방법으로 메시아가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인간들의 죄를 해결하시는 메시아가 되기 위해서는 수치와 저주의 십자가, 참혹한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하셨습니다. 나사렛 사람이 되셔서 온갖 무시와 고난과 낮아지는 삶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그 십자가의 길을 가지 말고 간편하게 메시아의 삶을 살라고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 마귀는 우리에게도 다가와서 쉬운 신앙 생활,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 없는 신앙 생활을 하도록 유혹합니다. 우리가 자기부인의 투쟁, 자기 십자가를 지는 투쟁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미 사단의 간교한 시험에 걸려든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은 결코 없습니다. 우리가 나의 고질병, 끈질기게 나를 괴롭히는 한 가지 죄 문제를 깊이 회개하는 자기 부인의 투쟁을 감당해야겠습니다. 또한 목자로서 어찌하든지 양을 섬기며 일대일 성경선생의 십자가를 감당하고자 투쟁해야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영광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마귀는 시편 91:11,12절 말씀을 자기 나름대로 인용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시험해보도록 유혹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금이 가도록 유혹했습니다.
사단은 여러 어려움을 통해 우리를 넘어뜨리고자 안간힘을 씁니다. 사단은 온갖 부정적인 생각과 회의적인 말들을 우리의 마음과 머리 속에 집어넣습니다. “너는 형편없는 놈이야, 너는 너무 열등한 존재야, 너의 모습은 너무나 추해,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겠니, 하나님도 너를 별로 귀하게 여기시지 않아” 하면서 우리를 하나님과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게 만들고자 발악을 합니다. 사단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사명을 감당할 의욕을 잃게 하고 양들을 섬길 소원을 앗아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때 이런 모든 것들이 사단의 시험임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5:8,10a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온갖 추하고 악독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하나님의 원수 되었을 때에, 그래도 그런 나를 사랑하시고 십자가에서 가장 귀한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주신 그 사랑을 절대적으로 붙들어야 합니다. 나를 섬기시되 자기 목숨을 참혹한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섬겨주신 그 사랑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사탄의 그 어떤 유혹도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로마서 8:35, 37-39절은 말씀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사단의 시험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잘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나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거나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의심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시험할 대상이 아니라 신뢰의 대상이십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사랑하고 감사하며 순종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어려울 때 하나님을 시험하기보다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구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고 잠잠히 있어야 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다 이루십니다.
셋째,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8-10) : 마귀는 두 번째 시험도 실패하자 이제는 예수님을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었습니다.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은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여기서 천하 만국은 로마 황제의 위력, 궁전의 화려함, 왕실의 진수성찬, 세상 권력의 영광스러운 모습들일 것입니다. 여행을 하는 분들은 로마를 보면 다 본 것이라고 합니다. 죽기 전에 보아야 할 곳이라고도 말합니다. 지금 무너지고 파괴된 것이 그 정도인데 온전할 때의 모습은 얼마나 더 영광스럽겠습니까? 사람들이 그 많은 돈을 들여서 여행을 하는 것은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보는 것만도 즐거운데 그 주인이 된다면 얼마나 더 좋겠습니까? 그런데 사탄은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제안했습니다. 마귀는 자기에게 경배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줄 수 있는 것처럼 속이고 거짓말하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이 아비입니다. 경배는 단순히 절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하고 섬기는 것을 뜻합니다. 사탄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가 사탄의 종이 되고 사탄을 경배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이는 파멸입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돈도 사람들의 인정도 세상의 권세도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들을 경배하는 것은 결국 그 배후에 있는 마귀를 경배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우리의 경배의 대상입니다.
예수님은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사탄을 대적했습니다. 그의 제안에 대해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으시고 단호하게 대처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는데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섬기고자 하십니다.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주겠다고 하고 또 줄지라도, 나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떠나게 하는 것은 사탄입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의 좋은 제안이라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한다면 ‘사탄아, 물러가라’고 외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말씀으로 대적하시자 사탄은 패배하고 떠나갔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사탄도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들었습니다. “수종든다”는 말씀은 먹을 것을 공급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시험에서 예수님은 굶어 죽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그 굶주림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두 번째 시험에서 예수님은 천사들의 도움에 대해 하나님을 시험하기를 거절하셨는데 이제 천사들이 나와서 그를 돕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의 승리를 말해줍니다. 동시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진정한 아들이심을 확증해 줍니다. 또한 한 사람 아담이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예수님 한분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의 모든 시험을 이기셨기에 우리로 하여금 사탄의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귀의 시험을 받을 때에 이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누구나 승리의 인생을 살기 원하지만 패배의 인생을 사는 이유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승리의 인생을 살려면 사탄의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사탄의 시험에 패배하면 마음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무기력하고 자포자기 하게 됩니다. 사단의 종이 되어 신음하며 비참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구슬픈 노래를 부르며 애처롭게 눈물을 줄줄 흘립니다. “그래 난 못난 놈이야, 난 원래 이렇게 생겨 먹었어”하며 자학하고 얼굴을 구기고 다닙니다.
우리가 마귀와의 싸움에서 지면 우리는 사명인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6:11,17절은 말씀합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으로서 능히 마귀의 모든 간계를 파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주 성경 공부를 절대적인 자세로 감당하고 매일 일용할 양식을 잘 먹음으로 말씀으로 무장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넘어뜨리고자 하는 마귀의 모든 간계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능히 물리치고 믿음의 전진을 해야겠습니다.
말씀 마태복음 4:1-11
요절 마태복음 4:10
사탄아 물러가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우리나라에서 한참 ‘주적’이 누구인지 논란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의 적이 누구인지 모르면 전쟁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영적인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적’은 사탄입니다. 사탄은 비방자요 고소자요 참소자요 거짓의 아비요 살인자입니다. 이런 사탄의 존재를 모르면 영적인 싸움을 싸울 수 없습니다. 사탄의 존재를 알지 못하면 문제의 원인을 사람이나 환경에 돌리거나 자학하게 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사탄의 존재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탄의 모든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우리가 이 시간 이 예수님을 배워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탄의 시험들을 잘 이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1-4) :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로 가셨습니다. 성령께서 그를 인도하신 것을 보면 개인이 아니라 인류의 대표로서 시험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처음 광야에 왔을 때 시험을 받은 것이 아니라 사십 일을 굶주리신 이후에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배가 고픈 상태를 넘어서 이제 더 굶주리게 되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지경에 까지 이른 것입니다. 먹느냐 죽느냐의 문제에 다다르게 된 것입니다. 이런 절대 절명의 순간에 사탄이 시험을 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사탄은 식욕을 가진 인간의 약점을 노렸습니다. 우리는 한 두 끼만 안 먹어도 갑자기 인생의 비애가 느껴지고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신경이 날카로워집니다. 빵 비슷한 것만 보여도 빵 생각이 나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께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탄은 매우 교묘해서 그 말씀을 꼬투리로 잡고 시험을 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굶주리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구나 쯧쯧.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능력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먹는 문제를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메시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귀는 메시아의 능력을 먼저 너 자신을 위해서 쓰라는 것입니다. 돌로 빵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왜 그것을 쓰지 않고 그 고생을 하느냐고 말합니다. 자기의 먹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마귀는 오늘날도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절실한 문제이니 모든 힘을 거기에 쏟아 부어야 한다고 속삭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투쟁이나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뒷전으로 하게 만듭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떡을 위해 살도록 유혹합니다. 떡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아 온 마음과 시간과 생명을 드려 떡을 섬기도록 유혹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떡을 더 앞세우는 존재로 전락시키고자 끊임없이 공격하고 끌어내립니다.
예수님은 먹느냐 죽느냐 하는 시점에서 어떤 선택을 하셨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덧붙이거나 더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절대적으로 믿었음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의 말씀도 살아서 역사함을 믿었습니다. 그는 생명을 걸고 말씀을 붙잡았고 그대로 살았습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 먹어야 되지만 먹는 것이 인생의 전부는 아닙니다. 인생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육체와 함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사람은 떡 만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고귀한 영혼의 소유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는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먹고 사는 문제로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러한 것들을 얻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지 않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덤으로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지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십일을 굶은 극한 상황에서 마귀의 말을 듣고 자기 육신의 소욕을 채우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떡을 위해 살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셨습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배워서 어떤 육신의 한계 상황 앞에서도 말씀을 기억하고 말씀을 앞세우며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캠퍼스 복음화와 제자 양성, 세계 선교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캠퍼스 제자 양성이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는 이 일을 일생 감당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계 선교를 섬겨야 합니다.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 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그 일을 이루면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인생이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살 만큼 길지 않습니다. 인생은 참으로 짧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맡기신 그 일을 일생토록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하다가 가면 성공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5-7) : 일차 시험에 실패한 마귀는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웠습니다. 성전 꼭대기의 높이는 약 135m라고 합니다. 당시에 가장 높은 곳이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교회 건물이 가장 높았습니다. 그 이상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캐나다 토론토의 CN 타워는 553m입니다. 그 바닥은 밑이 보이도록 유리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떨어질 염려가 없는데도 그 위를 덜덜 떨리는 마음으로 올라갑니다. 마귀는 이렇게 높은 꼭대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그런지 시험을 해서 증명해 보라고 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으니라.” 이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는데 예수님이 조금도 상하지 않고 멀쩡하다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쉽게 메시아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특히 영광의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열렬히 환영을 받으실 것입니다. 인기 짱일 것입니다. 이 시험은 쉬운 방법으로 메시아가 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인간들의 죄를 해결하시는 메시아가 되기 위해서는 수치와 저주의 십자가, 참혹한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하셨습니다. 나사렛 사람이 되셔서 온갖 무시와 고난과 낮아지는 삶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그 십자가의 길을 가지 말고 간편하게 메시아의 삶을 살라고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 마귀는 우리에게도 다가와서 쉬운 신앙 생활,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 없는 신앙 생활을 하도록 유혹합니다. 우리가 자기부인의 투쟁, 자기 십자가를 지는 투쟁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미 사단의 간교한 시험에 걸려든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은 결코 없습니다. 우리가 나의 고질병, 끈질기게 나를 괴롭히는 한 가지 죄 문제를 깊이 회개하는 자기 부인의 투쟁을 감당해야겠습니다. 또한 목자로서 어찌하든지 양을 섬기며 일대일 성경선생의 십자가를 감당하고자 투쟁해야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영광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마귀는 시편 91:11,12절 말씀을 자기 나름대로 인용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시험해보도록 유혹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금이 가도록 유혹했습니다.
사단은 여러 어려움을 통해 우리를 넘어뜨리고자 안간힘을 씁니다. 사단은 온갖 부정적인 생각과 회의적인 말들을 우리의 마음과 머리 속에 집어넣습니다. “너는 형편없는 놈이야, 너는 너무 열등한 존재야, 너의 모습은 너무나 추해,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겠니, 하나님도 너를 별로 귀하게 여기시지 않아” 하면서 우리를 하나님과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게 만들고자 발악을 합니다. 사단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사명을 감당할 의욕을 잃게 하고 양들을 섬길 소원을 앗아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때 이런 모든 것들이 사단의 시험임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5:8,10a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온갖 추하고 악독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하나님의 원수 되었을 때에, 그래도 그런 나를 사랑하시고 십자가에서 가장 귀한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주신 그 사랑을 절대적으로 붙들어야 합니다. 나를 섬기시되 자기 목숨을 참혹한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섬겨주신 그 사랑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사탄의 그 어떤 유혹도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로마서 8:35, 37-39절은 말씀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사단의 시험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잘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나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거나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의심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시험할 대상이 아니라 신뢰의 대상이십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사랑하고 감사하며 순종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어려울 때 하나님을 시험하기보다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구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고 잠잠히 있어야 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다 이루십니다.
셋째,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8-10) : 마귀는 두 번째 시험도 실패하자 이제는 예수님을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었습니다.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은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여기서 천하 만국은 로마 황제의 위력, 궁전의 화려함, 왕실의 진수성찬, 세상 권력의 영광스러운 모습들일 것입니다. 여행을 하는 분들은 로마를 보면 다 본 것이라고 합니다. 죽기 전에 보아야 할 곳이라고도 말합니다. 지금 무너지고 파괴된 것이 그 정도인데 온전할 때의 모습은 얼마나 더 영광스럽겠습니까? 사람들이 그 많은 돈을 들여서 여행을 하는 것은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보는 것만도 즐거운데 그 주인이 된다면 얼마나 더 좋겠습니까? 그런데 사탄은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제안했습니다. 마귀는 자기에게 경배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줄 수 있는 것처럼 속이고 거짓말하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이 아비입니다. 경배는 단순히 절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하고 섬기는 것을 뜻합니다. 사탄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가 사탄의 종이 되고 사탄을 경배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이는 파멸입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돈도 사람들의 인정도 세상의 권세도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들을 경배하는 것은 결국 그 배후에 있는 마귀를 경배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우리의 경배의 대상입니다.
예수님은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사탄을 대적했습니다. 그의 제안에 대해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으시고 단호하게 대처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는데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섬기고자 하십니다.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주겠다고 하고 또 줄지라도, 나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떠나게 하는 것은 사탄입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의 좋은 제안이라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한다면 ‘사탄아, 물러가라’고 외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말씀으로 대적하시자 사탄은 패배하고 떠나갔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사탄도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들었습니다. “수종든다”는 말씀은 먹을 것을 공급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시험에서 예수님은 굶어 죽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그 굶주림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두 번째 시험에서 예수님은 천사들의 도움에 대해 하나님을 시험하기를 거절하셨는데 이제 천사들이 나와서 그를 돕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의 승리를 말해줍니다. 동시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진정한 아들이심을 확증해 줍니다. 또한 한 사람 아담이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예수님 한분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의 모든 시험을 이기셨기에 우리로 하여금 사탄의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귀의 시험을 받을 때에 이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누구나 승리의 인생을 살기 원하지만 패배의 인생을 사는 이유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승리의 인생을 살려면 사탄의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사탄의 시험에 패배하면 마음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무기력하고 자포자기 하게 됩니다. 사단의 종이 되어 신음하며 비참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구슬픈 노래를 부르며 애처롭게 눈물을 줄줄 흘립니다. “그래 난 못난 놈이야, 난 원래 이렇게 생겨 먹었어”하며 자학하고 얼굴을 구기고 다닙니다.
우리가 마귀와의 싸움에서 지면 우리는 사명인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6:11,17절은 말씀합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으로서 능히 마귀의 모든 간계를 파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주 성경 공부를 절대적인 자세로 감당하고 매일 일용할 양식을 잘 먹음으로 말씀으로 무장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넘어뜨리고자 하는 마귀의 모든 간계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능히 물리치고 믿음의 전진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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