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08 사도행전 제15장(행18,19장)"내 백성이 많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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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사도행전 제15장
말씀 사도행전 18,19장
요절 사도행전 18:10
내 백성이 많음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오늘 말씀은 고린도와 에베소에 있었던 말씀역사입니다. 이 두 역사는 08학년을 섬기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개척역사에 있어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에베소 사역에 있어서는 제자를 집중해서 양성합니다. 이 두 역사는 결국 성공적인 말씀 역사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에 자신감을 얻은 바울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큰 비전과 앞으로 복음 역사를 섬길 새 힘을 얻었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저희의 지친 심정을 위로하시고 말씀 역사에 대한 새로운 비전과 힘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첫째, 고린도(18:1-17)에서: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에 이른 바울은 아굴라와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브리스가; Prisca)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흑해 근방의 본도 출신으로서 황제령에 의해 로마에서 추방당한 유대인이었습니다. 이들은 장차 바울의 좋은 동역자여 영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가정 교회를 이룹니다. 바울은 로마서 16:4에서 그들에 대해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그들은 바울을 위해서 자기들의 목숨까지도 내어 놓을 만큼 물심양면으로 동역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고린도로 흘러 들어와 천막을 만드는 가게를 내었는데, 바울은 이 가게에 천막수리공으로 취업했습니다. 이를 통해 생활비와 선교비를 벌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평소에는 직장일을 하고 쉬는 날에는 회당에서 성경을 강론하고 권면했습니다. 그가 ‘강론했다(reason)’는 것은 ‘논리적으로 가르쳤다’는 것이고 ‘권면(persuade)했다’는 것은 ‘말씀에 기초해서 회개하고 결단하도록 설득했다’는 뜻입니다. 그는 이처럼 일하면서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을 가르치면서 일하는 평신도 사명인이었습니다.
5절을 봅시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그런데 어느 날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로 건너와서 바울과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5). 바울은 그동안 외롭게 투쟁하다가 믿음의 동역자들이 온 것입니다. 그들은 빌립도 교회 성도들이 보낸 선교 후원금을 전달하고 여러 영적 환경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표준새번역에 보면 이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냐에서 내려온 뒤로, 바울은 오직 말씀을 전하는 일에만 힘을 쓰고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유대 사람들에게 밝히 증언하였다.” 그 동안 생활비 때문에 ‘part time job’을 가져야 했지만, 이제는 동역자들이 물질을 감당해 주므로 ‘full time’ 성경선생으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주어진 여건에 따라 생활비를 스스로 벌기도 했지만, 여건이 허락하면 말씀 연구와 복음 전파에 전념했습니다.
바울이 말씀에 붙잡히게 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고전 2:2~5을 보면 고린도 역사에 대한 그의 소감이 나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그곳에서 바울은 두려워하며 떨었습니다. 두려움이 그를 심하게 위축시켰습니다. 유럽의 첫 도시 빌립보로부터 시작하여 고린도에 이르기 까지 바울은 너무나 고생했습니다.
그는 빌립보의 귀신 문화와 돈 중심 문화와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데살로니가와 아덴의 우상숭배에 부딪혔고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의 반대와 비방에 부딪쳤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제 유럽 사회의 대표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는 고린도에 서 있었습니다. 그 도시는 철학의 도시요, 우상숭배의 도시요, 물질적 번영으로 인한 쾌락의 도시였습니다. 특히 고린도는 정욕문제가 심각했습니다. 당시 ‘고린도 사람처럼 행동하다.’ 혹은 ‘고린도화되다.’라는 말은 ‘간음하다’라는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창녀’를 ‘고린도 소녀’라고 불렀습니다.
고린도서를 보면 사회적으로 유행하던 여러 죄악들이 고린도 교회 안에도 들어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성도 중 한 형제는 근친상간의 죄를 범했습니다. 아버지의 아내 즉 어머니와 동침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것을 ‘크리스천의 자유함’이라고 자랑까지 했습니다. 어떤 이는 그리스 철학의 이원론에 심취하여 ‘육체로 행하는 일은 영혼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창녀촌으로 돌아다니기도 하고 또 폭식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모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모든 일이 내게 합법하다.” “음식은 내 배를 위해 존재하고 내 배는 음식을 위해 존재한다.”
또한 성도들 안에는 사랑이 없었습니다. 노예들은 늦은 밤까지 일을 해야 했기에 제 시간에 예배 장소에 도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부유한 신자들은 가난하고 배고픈 노예들을 기다려 주지 않고 자기들끼리 만찬파티하며 포도주에 취해 있곤 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 간에 법정싸움하며 소송을 거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일반 사회에서나 벌어지는 무정함, 음란함, 욕심과 쾌락, 죄의 합리화가 믿는 자들을 병들였습니다. 고린도는 그야말로 소돔 고모라를 방불케 했습니다. 바울은 그런 곳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가르쳤지만 먹혀들어가지 않는 것 같을 때마다 심히 두려워하고 떨었습니다. 그의 두려움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과연 고린도 사람들이나 앞으로 유럽 사람들에게도 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두려움이요 고린도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가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목자로서의 그의 부르심이 흔들렸고 수도 없이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가 이처럼 약해져 있을 때 복음의 동역자들을 보내시고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힐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알고자 말씀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 부활을 새롭게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끝임 없이 질문하며 예수님을 알고자 했습니다. 급기야 그는 자기가 믿는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의 내면에 복음을 부끄러워하던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그는 말씀을 전할 때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전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전하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자기의 지혜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밝히 증거했습니다. 그는 고린도에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전하는 그것에 전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고린도 사람들에게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자요, 그리스도임을 밝히 전했습니다.
사람이 무엇에 사로잡히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과거 김우중 회장은 자신의 책에서 길을 가다가도 돈뭉치가 눈에 보인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끊임없이 생각하기 때문에 돈 되는 일, 돈 되는 아이디어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오르고, 돈이 몰리는 구멍이 보였다고 합니다. 돈에 사로잡힌 사람은 정말 돈밖에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The Passion of the Christ"라는 영화를 만든 멜 깁슨이라는 유명한 배우 겸 감독이 있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종군으로 성직을 포기한 독실한 아버지의 11남매 가운데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깁슨은 아버지처럼 성직자가 되고자 했지만 1979년 영화 ‘매드맥스’가 대박이 터지면서 할리우드로 뛰어들었습니다. ‘매드맥스’ 시리즈에 이어 ‘리설웨픈’도 대박이 터짐으로 그는 돈방석에 앉았습니다. 많은 돈으로 인해 그의 삶은 안으로 곪아갔습니다. 그는 술과 마약과 정욕 등 중독 가능한 모든 것에 탐닉함으로서 ‘정신적 파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수없이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자살 충동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다가 1991년 그는 성경공부를 통해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죄로 인한 모든 상처를 치유함 받고 거듭나 새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그리스도의 수난’이란 영화를 만들기로 작정했고 유대인들의 많은 핍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세상 지식이나 철학이나 자기 열심과 성실이 아니라 ‘그리스도 복음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해 보이지만 우리들에게는 모든 죄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복음에 사로잡힐 때 우리의 연약해진 심령이 강해지고 능력이 생깁니다.
이제 바울은 여러 대적과 비방에도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6절입니다.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피가 머리로 돌아간다.’는 것은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고, “나는 깨끗하다.”는 것은 “내 책임은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안 받아들이면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되는데, 그 책임은 목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안 받아들인 본인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방인 선교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이방인 선교라고 해서 멀린 간 것이 아니라 바로 옆집으로 갔습니다. 8절입니다. 그 집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의 집이었습니다. 바울은 더 이상 회당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홈 센터를 마련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고, 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았습니다. 회당장의 회심은 유대인들의 반감을 폭발시키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계속되는 유대인들의 핍박은 바울의 마음을 시시때때로 두려움에 떨어뜨렸습니다. 이때도 주께서 바울을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9절입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적대자들이 일어나고 유대주의 강경파들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대적하면 정말 힘들고 두렵습니다. 침묵하고 싶어집니다. 사람들과 더 이상 부딪치지 않고 조용히 있고 싶습니다.
과거 바울은 두려움이나 침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몸은 연약해지고 나이는 들어가는데 독신의 몸으로 선교를 이루어 가다보니 힘들었습니다.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맞은 채찍 자국도 자꾸만 욱신거리고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은 자리도 자꾸만 쑤셔서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배척 받고 상처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 순간 그는 조용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꾸 숨고 싶고, 핸드폰도 꺼놓고, 찬송가도 부르기 싫고 성경공부를 해도 한마디 말도 안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위기의 상황에서 주님은 그를 격려하시기 위해 음성을 들려 주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그가 두려워하거나 침묵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10절을 봅시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바울은 늘 혼자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동족들은 그를 비방했고 어디에도 친구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그는 결코 그 순간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고린도 성중에도 혼자가 아닙니다.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내 백성’이란 ‘이미 구원받은 양들을 말하기도 하지만 장차 말씀을 듣고 구원받아야 할 생명들’을 말합니다. 바울이 볼 때 순한 양들보다 대적자들이 더 많아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보다도 사람들의 비방과 저주의 말이 크게 들렸습니다. 그때 그는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그와 함께 계셨고 또 많은 양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침묵해버리면 그들이 말씀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면 믿지 못하고 믿지 못하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결국 심판을 받아 죽게 됩니다. 바울은 자신의 손에 수많은 생명이 달려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는 두려워해서도 안 되고 침묵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우리는 처음 예수님을 만나고 목자가 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교지로 나아가기 전에 큰 소리를 칩니다. “세계는 나의 밥이다. 나는 시베리아의 아버지다. 중국의 12억 영혼이 나를 부른다.” 그리고 신발 밑창이 다 닳도록 전도도 하고 심방도 갑니다. 장막에서 김치 하나에 밥을 먹어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명감을 반찬삼아 맛있게 먹습니다. 그러나 돕던 양들이 자꾸만 힘들어지고, 가정에서는 핍박을 받고, 학점은 시원치 않고, 게다가 몸도 아프고, 센터 목자님들은 다 자기 생활에 바쁜 것 같고,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고 이제 교수님들까지 너무 독실하다고 냉대까지 하면 장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회의적인 생각이 파고들어 옵니다. 주변 환경은 다 큰 성벽처럼 보이고 자기 자신은 메뚜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 사명은 집어 치우고 지방에 내려가 농사나 짓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생각이 영적 침체요 영적 위기입니다.
사단이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두려움입니다. 믿음의 반대는 불신이 아니라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예수님이 은혜주실 것을 믿을 때에만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딸로 인해 어찌 할지 몰라 주님의 옷깃을 잡고 떨고 있는 야이로에게 뭐라 하셨습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막 5:36). 바울에게는 “두려워하지 말고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시간 주님의 말씀에 기초해서 나와 세상과 양들을 보는 나의 시각을 바꿀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바울은 1년 6개월간이나 이곳에 머물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일에 전념하기로 결심했고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했을 때 위기가 축복으로 바뀌었습니다. 소비도시 고린도, 성도덕이 너무 열려 있어 거룩한 소원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고린도 소녀들’이 거룩한 자매 목자님으로 변화되었습니다.
12-17절은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또 핍박을 받습니다.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들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재판 자리로 끌고 가서 고소했습니다. 갈리오는 고소 내용을 듣고 그들의 종교에 관한 것인 줄 알고 기각시켜 버렸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무관심한 갈리오를 끌어들이고자 재판 자리 앞에서 예수 믿기 시작한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때렸습니다. 그러나 갈리오는 이 일을 상관치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정치적인 문제로 바울을 제거하려했지만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바울은 안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미 약속하신 것을 이루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제 바울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타고 수리아로 떠나려고 했는데, 브르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했습니다. 이들은 이후 평생을 바울과 함께 동역합니다. 바울은 떠나기에 앞서 겐그레아 항구에서 머리를 깎았는데, 그는 그동안 나실인처럼 머리를 깎지 않고 하나님께 간절히 매어 달리는 기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서원한 날짜가 다 차자 머리를 깎고, 그 깎은 머리카락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감사제로 태워드리려고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둘째, 성경 선생 아볼로(24-28): 알렉산드리아 출신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왔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에 있는 학문의 도시인데, B.C.200년 경 최초로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곳입니다. 아볼로는 이런 교육도시 출신답게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숙했습니다. 그는 일찍 주의 도를 배우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예수님에 관한 것을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의 신앙에는 한계가 있었으니, 그는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의 세례만 안다’는 것은 구약만 알고 신약은 모른다는 뜻입니다. 그는 구약에 약속된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그 약속이 이미 성취된 것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의 메시지는 늘 미래형이었습니다. “장차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 죄를 구원하실 것이니, 그분을 믿으세요.”
그런데 마침 그곳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있었는데 그 메시지가 끝나자 그를 집으로 초청하여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가르쳐 주었습니다. ‘더 자세히 풀어 가르쳤다.’는 것은 ‘신약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즉 약속된 그리스도가 이미 오셨다고 가르쳤습니다. 아볼로의 몸은 신약시대에 살고 있었지만 그의 신앙은 구약시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는 새벽기도와 일용할 양식을 하루만 빼먹어도 나는 쓸모없는 놈이라고 자학하고 정죄의식에 시달렸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은 알고 회개는 열심히 하지만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그의 얼굴은 늘 심각하고 웃을 줄을 몰랐습니다. 조그만 일에도 허파에 바람 든 사람들처럼 큰 소리로 웃는 기독교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그에게 아굴라 부부는 구약을 뛰어넘어 신약의 세계로 나아가도록 도왔습니다. 아볼로의 메시지는 이제 모두 과거형이 되었습니다. “메시야가 이미 오셨습니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변화된 아볼로는 목자가 없는 아가야로 갔고 그곳 형제들에게 큰 유익을 끼쳤는데,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했습니다. 아볼로는 빼어난 성경선생이요 바울의 좋은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복음의 씨를 뿌린 곳에서 성경을 제대로 가르침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런 아볼로를 보고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다.”(고전3:6)
셋째, 에베소(19:1-41)에서: 한편 바울은 어디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바울은 갈라디아 윗지방을 통해 육로로 소아시아의 에베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세례 요한의 열두 제자와 만났습니다. 그들은 과거 아볼로 처럼 웃음이 없고 인상을 쓰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 모두에게 그리스도를 전했고 또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 후, 이들에게 손을 얹고 안수했습니다. 그 즉시 성령이 임하여 이들의 입에선 방언과 예언의 말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3개월 동안, 바울은 늘 하던 식으로 에베소 회당에서 대중설교를 했습니다(8).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사람들 앞에서 이 도를 헐뜯고 거부했습니다. 바울의 회당 사역은 계속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이때 바울은 역사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9절입니다.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두란노 서원’은 본래 두란노라는 사람이 강연하던 장소로서 바울은 세를 주고 이곳을 빌렸을 것입니다. 그는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곳에서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동트기 전부터 텐트 수리하는 일을 시작했고 오후엔 성경을 가르치고 저녁엔 다시 텐트 수리하는 일을 이어갔습니다. 바울은 2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이 일을 줄기차게 감당했습니다. 그 결과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는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이때까지 복음 역사를 섬기던 방식과 전혀 다르게 섬겼는데 그것은 바로 제자양성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역사의 특징을 생각해봅시다.
첫째로, 바울은 이제 말씀을 듣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고자 했습니다. 9b절입니다. 바울은 처음에는 유대인 회당에서 대중설교로 할 수만 있으면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사람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고집이 세어 남의 말을 안 듣는 자들이 있었고 말씀을 의도적으로 우습게 여기고 좋지 못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들이 발생했습니다. 전부 눈을 아래로 깔고 자꾸만 시계를 쳐다보았습니다. 일부러 하품하고 성경책을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습니다. 바울은 하는 수 없이 안 듣고 안 배우는 자들은 그냥 두고, 잘 듣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공부할 때는 무엇보다도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배우는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이나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말씀이 역사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가르치다가 잘 안 받아들이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는데, 자칫 ‘오기 대행진’을 벌이기 쉽습니다. 반면 잘 듣고 잘 자라는 양들은 소홀하기 쉽습니다. 안 받아들이는 사람을 붙들고 늘어지기보다 잘 받아들이는 사람을 집중적으로 돕고 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이제 제자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말씀을 잘 듣는 몇 사람을 중심으로 날마다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둘째로, 이방인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지금까지 바울은 유대인 회당을 중심으로 성경을 가르쳤는데, 회당에는 아무래도 이방인이 오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유대인 중심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라고 하면서도 교회 경험도 있고 하나님도 좀 아는 사람들이 쉽다고 생각했을까요? 동족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 때문이었을까요? 결국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자 장소를 두란노 서원으로 옮겼는데, 그곳은 누구든지 부담 없이 올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셋째로, 바울은 날마다 성경을 강론했습니다. 여기서 ‘강론’은 대중설교가 아니라 토론 형식을 말합니다. 그는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고 일대일로 깊이 있게 성경을 공부하고 설득했습니다. 바울이 날마다 성경을 강론하되 2년이라는 시간과 정성을 쏟아 부었습니다. 바울은 이때의 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십시오. 내가 삼 년 동안을 밤낮으로,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쉬지 않고 교훈한 것을 기억하십시오.”(20:31 쉬운성경)
바울은 이때까지 여러 곳을 다니며 넓게 복음의 씨를 뿌렸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3년이란 오랜 기간 동안 머물면서 한 곳에서 말씀의 샘을 팠고 몇 사람을 제자 양성하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제자양성에 집중하면 말씀이 더 퍼져 나가지 못할 것 같은데,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날마다 성경을 배운 사람들이 자립적으로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에베소 교회 뿐 아니라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 교회(골4:13) 등 소아시아 일곱 교회가 개척되었습니다(계1:11).
제자양성에 집중했을 때 바울 자신도 희한한 능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바울의 땀으로 흥건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습니다. 그곳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두려워하며 예수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이는 그가 성경을 매일 가르치는 가운데 누구보다도 먼저 자신이 말씀의 능력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힘 있는 말씀이 에베소의 우상의 세력, 마귀의 세력을 압도하고 힘차게 뻗어나갔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각 사람 안에 죄의 세력을 이기고 크게 승리했습니다.
13-19절은 이 당시 바울의 영향력을 보여줍니다. 바울이 예수의 이름으로 기적 행하는 것을 보고 몇몇 유대인 퇴마사들이 예수의 이름을 이용하여 귀신을 쫓으려 했습니다. 악귀 들린 사람에게 다가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으려 하자, 악귀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15) 결국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은 악귀 들린 사람에게 몰매를 맞고 벗은 몸으로 도망쳤습니다. 이 소문이 도시 전역에 퍼졌고, 그 후 사람들은 예수의 이름을 절대로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되는 이름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마술사들이 자신들이 소중히 여기던 마술 비법서들을 한 데 모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불살랐습니다. 연기로 사라져 버린 책 중에 ‘에베소의 마법’이라는 밀리언셀러가 있었습니다. 이 주문에 걸린 몸종은 주인에게 저항할 수 없게 된다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포함한 자그마치 5만 드라크마, 오늘날로 환산하면 약 25억 원어치에 책이 불탔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모습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0절을 봅시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에베소에는 이때까지 마술이 세력을 얻고 있었습니다. 마술은 그들의 생각과 마음과 생활을 지배해 왔습니다. 이 마술 문화는 너무나 거대하여 난공불락의 성과도 같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를 지배하는 세력이 무엇입니까? 정욕의 세력입니다. 불안의 세력입니다. 사람의 인정을 바라는 세력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전파되었을 때 말씀이 힘이 있어 그 모든 세력을 파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세력도 파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의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합니다(히4:12).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면 모든 것이 드러나고 맥을 못 추게 됩니다.
이처럼 승리한 바울은 어떤 비전을 보았습니까? 21절을 봅시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그는 당시 50대 중반에서 60세 사이였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로마도 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그는 복음이 로마도 정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사역, 에베소 사역을 하면서 복음의 능력이 로마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담대하게 로마로 가고자 했습니다. 로마서 1:15,16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결론적으로 바울은 에베소를 개척하면서 제자양성역사에 힘을 썼습니다. 오늘과 같은 대량화시대에 작은 것에 대한 가치를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역사는 나에게 보내신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그에게 소망을 끊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한 사람을 통해서 한 나라를 바라보고 한 대륙을 바라보는 역사입니다. 저희들이 오늘 말씀의 바울과 같이 한 양을 귀하게 여기고 집중적인 말씀공부에 힘쓰는 08년도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사도행전 18,19장
요절 사도행전 18:10
내 백성이 많음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오늘 말씀은 고린도와 에베소에 있었던 말씀역사입니다. 이 두 역사는 08학년을 섬기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개척역사에 있어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에베소 사역에 있어서는 제자를 집중해서 양성합니다. 이 두 역사는 결국 성공적인 말씀 역사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에 자신감을 얻은 바울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큰 비전과 앞으로 복음 역사를 섬길 새 힘을 얻었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저희의 지친 심정을 위로하시고 말씀 역사에 대한 새로운 비전과 힘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첫째, 고린도(18:1-17)에서: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에 이른 바울은 아굴라와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브리스가; Prisca)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흑해 근방의 본도 출신으로서 황제령에 의해 로마에서 추방당한 유대인이었습니다. 이들은 장차 바울의 좋은 동역자여 영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가정 교회를 이룹니다. 바울은 로마서 16:4에서 그들에 대해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그들은 바울을 위해서 자기들의 목숨까지도 내어 놓을 만큼 물심양면으로 동역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고린도로 흘러 들어와 천막을 만드는 가게를 내었는데, 바울은 이 가게에 천막수리공으로 취업했습니다. 이를 통해 생활비와 선교비를 벌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평소에는 직장일을 하고 쉬는 날에는 회당에서 성경을 강론하고 권면했습니다. 그가 ‘강론했다(reason)’는 것은 ‘논리적으로 가르쳤다’는 것이고 ‘권면(persuade)했다’는 것은 ‘말씀에 기초해서 회개하고 결단하도록 설득했다’는 뜻입니다. 그는 이처럼 일하면서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을 가르치면서 일하는 평신도 사명인이었습니다.
5절을 봅시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그런데 어느 날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로 건너와서 바울과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5). 바울은 그동안 외롭게 투쟁하다가 믿음의 동역자들이 온 것입니다. 그들은 빌립도 교회 성도들이 보낸 선교 후원금을 전달하고 여러 영적 환경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표준새번역에 보면 이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냐에서 내려온 뒤로, 바울은 오직 말씀을 전하는 일에만 힘을 쓰고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유대 사람들에게 밝히 증언하였다.” 그 동안 생활비 때문에 ‘part time job’을 가져야 했지만, 이제는 동역자들이 물질을 감당해 주므로 ‘full time’ 성경선생으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주어진 여건에 따라 생활비를 스스로 벌기도 했지만, 여건이 허락하면 말씀 연구와 복음 전파에 전념했습니다.
바울이 말씀에 붙잡히게 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고전 2:2~5을 보면 고린도 역사에 대한 그의 소감이 나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그곳에서 바울은 두려워하며 떨었습니다. 두려움이 그를 심하게 위축시켰습니다. 유럽의 첫 도시 빌립보로부터 시작하여 고린도에 이르기 까지 바울은 너무나 고생했습니다.
그는 빌립보의 귀신 문화와 돈 중심 문화와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데살로니가와 아덴의 우상숭배에 부딪혔고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의 반대와 비방에 부딪쳤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제 유럽 사회의 대표적인 도시라고 할 수 있는 고린도에 서 있었습니다. 그 도시는 철학의 도시요, 우상숭배의 도시요, 물질적 번영으로 인한 쾌락의 도시였습니다. 특히 고린도는 정욕문제가 심각했습니다. 당시 ‘고린도 사람처럼 행동하다.’ 혹은 ‘고린도화되다.’라는 말은 ‘간음하다’라는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창녀’를 ‘고린도 소녀’라고 불렀습니다.
고린도서를 보면 사회적으로 유행하던 여러 죄악들이 고린도 교회 안에도 들어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성도 중 한 형제는 근친상간의 죄를 범했습니다. 아버지의 아내 즉 어머니와 동침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것을 ‘크리스천의 자유함’이라고 자랑까지 했습니다. 어떤 이는 그리스 철학의 이원론에 심취하여 ‘육체로 행하는 일은 영혼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창녀촌으로 돌아다니기도 하고 또 폭식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모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모든 일이 내게 합법하다.” “음식은 내 배를 위해 존재하고 내 배는 음식을 위해 존재한다.”
또한 성도들 안에는 사랑이 없었습니다. 노예들은 늦은 밤까지 일을 해야 했기에 제 시간에 예배 장소에 도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부유한 신자들은 가난하고 배고픈 노예들을 기다려 주지 않고 자기들끼리 만찬파티하며 포도주에 취해 있곤 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 간에 법정싸움하며 소송을 거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일반 사회에서나 벌어지는 무정함, 음란함, 욕심과 쾌락, 죄의 합리화가 믿는 자들을 병들였습니다. 고린도는 그야말로 소돔 고모라를 방불케 했습니다. 바울은 그런 곳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가르쳤지만 먹혀들어가지 않는 것 같을 때마다 심히 두려워하고 떨었습니다. 그의 두려움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과연 고린도 사람들이나 앞으로 유럽 사람들에게도 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두려움이요 고린도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가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목자로서의 그의 부르심이 흔들렸고 수도 없이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가 이처럼 약해져 있을 때 복음의 동역자들을 보내시고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힐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알고자 말씀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죽음, 부활을 새롭게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끝임 없이 질문하며 예수님을 알고자 했습니다. 급기야 그는 자기가 믿는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의 내면에 복음을 부끄러워하던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그는 말씀을 전할 때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전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전하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자기의 지혜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밝히 증거했습니다. 그는 고린도에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전하는 그것에 전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고린도 사람들에게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자요, 그리스도임을 밝히 전했습니다.
사람이 무엇에 사로잡히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과거 김우중 회장은 자신의 책에서 길을 가다가도 돈뭉치가 눈에 보인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끊임없이 생각하기 때문에 돈 되는 일, 돈 되는 아이디어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오르고, 돈이 몰리는 구멍이 보였다고 합니다. 돈에 사로잡힌 사람은 정말 돈밖에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The Passion of the Christ"라는 영화를 만든 멜 깁슨이라는 유명한 배우 겸 감독이 있습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종군으로 성직을 포기한 독실한 아버지의 11남매 가운데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깁슨은 아버지처럼 성직자가 되고자 했지만 1979년 영화 ‘매드맥스’가 대박이 터지면서 할리우드로 뛰어들었습니다. ‘매드맥스’ 시리즈에 이어 ‘리설웨픈’도 대박이 터짐으로 그는 돈방석에 앉았습니다. 많은 돈으로 인해 그의 삶은 안으로 곪아갔습니다. 그는 술과 마약과 정욕 등 중독 가능한 모든 것에 탐닉함으로서 ‘정신적 파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수없이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자살 충동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다가 1991년 그는 성경공부를 통해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죄로 인한 모든 상처를 치유함 받고 거듭나 새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그리스도의 수난’이란 영화를 만들기로 작정했고 유대인들의 많은 핍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세상 지식이나 철학이나 자기 열심과 성실이 아니라 ‘그리스도 복음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해 보이지만 우리들에게는 모든 죄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복음에 사로잡힐 때 우리의 연약해진 심령이 강해지고 능력이 생깁니다.
이제 바울은 여러 대적과 비방에도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6절입니다.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피가 머리로 돌아간다.’는 것은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고, “나는 깨끗하다.”는 것은 “내 책임은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안 받아들이면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되는데, 그 책임은 목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안 받아들인 본인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방인 선교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이방인 선교라고 해서 멀린 간 것이 아니라 바로 옆집으로 갔습니다. 8절입니다. 그 집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의 집이었습니다. 바울은 더 이상 회당을 중심으로 하지 않고 홈 센터를 마련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고, 많은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았습니다. 회당장의 회심은 유대인들의 반감을 폭발시키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계속되는 유대인들의 핍박은 바울의 마음을 시시때때로 두려움에 떨어뜨렸습니다. 이때도 주께서 바울을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9절입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적대자들이 일어나고 유대주의 강경파들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대적하면 정말 힘들고 두렵습니다. 침묵하고 싶어집니다. 사람들과 더 이상 부딪치지 않고 조용히 있고 싶습니다.
과거 바울은 두려움이나 침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몸은 연약해지고 나이는 들어가는데 독신의 몸으로 선교를 이루어 가다보니 힘들었습니다.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맞은 채찍 자국도 자꾸만 욱신거리고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은 자리도 자꾸만 쑤셔서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배척 받고 상처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 순간 그는 조용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꾸 숨고 싶고, 핸드폰도 꺼놓고, 찬송가도 부르기 싫고 성경공부를 해도 한마디 말도 안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위기의 상황에서 주님은 그를 격려하시기 위해 음성을 들려 주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그가 두려워하거나 침묵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10절을 봅시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바울은 늘 혼자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동족들은 그를 비방했고 어디에도 친구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그는 결코 그 순간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고린도 성중에도 혼자가 아닙니다.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내 백성’이란 ‘이미 구원받은 양들을 말하기도 하지만 장차 말씀을 듣고 구원받아야 할 생명들’을 말합니다. 바울이 볼 때 순한 양들보다 대적자들이 더 많아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보다도 사람들의 비방과 저주의 말이 크게 들렸습니다. 그때 그는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그와 함께 계셨고 또 많은 양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침묵해버리면 그들이 말씀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면 믿지 못하고 믿지 못하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결국 심판을 받아 죽게 됩니다. 바울은 자신의 손에 수많은 생명이 달려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는 두려워해서도 안 되고 침묵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우리는 처음 예수님을 만나고 목자가 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교지로 나아가기 전에 큰 소리를 칩니다. “세계는 나의 밥이다. 나는 시베리아의 아버지다. 중국의 12억 영혼이 나를 부른다.” 그리고 신발 밑창이 다 닳도록 전도도 하고 심방도 갑니다. 장막에서 김치 하나에 밥을 먹어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명감을 반찬삼아 맛있게 먹습니다. 그러나 돕던 양들이 자꾸만 힘들어지고, 가정에서는 핍박을 받고, 학점은 시원치 않고, 게다가 몸도 아프고, 센터 목자님들은 다 자기 생활에 바쁜 것 같고,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고 이제 교수님들까지 너무 독실하다고 냉대까지 하면 장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회의적인 생각이 파고들어 옵니다. 주변 환경은 다 큰 성벽처럼 보이고 자기 자신은 메뚜기와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 사명은 집어 치우고 지방에 내려가 농사나 짓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생각이 영적 침체요 영적 위기입니다.
사단이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두려움입니다. 믿음의 반대는 불신이 아니라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예수님이 은혜주실 것을 믿을 때에만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딸로 인해 어찌 할지 몰라 주님의 옷깃을 잡고 떨고 있는 야이로에게 뭐라 하셨습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막 5:36). 바울에게는 “두려워하지 말고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시간 주님의 말씀에 기초해서 나와 세상과 양들을 보는 나의 시각을 바꿀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바울은 1년 6개월간이나 이곳에 머물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일에 전념하기로 결심했고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했을 때 위기가 축복으로 바뀌었습니다. 소비도시 고린도, 성도덕이 너무 열려 있어 거룩한 소원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고린도 소녀들’이 거룩한 자매 목자님으로 변화되었습니다.
12-17절은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또 핍박을 받습니다.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들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재판 자리로 끌고 가서 고소했습니다. 갈리오는 고소 내용을 듣고 그들의 종교에 관한 것인 줄 알고 기각시켜 버렸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무관심한 갈리오를 끌어들이고자 재판 자리 앞에서 예수 믿기 시작한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때렸습니다. 그러나 갈리오는 이 일을 상관치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정치적인 문제로 바울을 제거하려했지만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바울은 안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미 약속하신 것을 이루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제 바울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타고 수리아로 떠나려고 했는데, 브르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했습니다. 이들은 이후 평생을 바울과 함께 동역합니다. 바울은 떠나기에 앞서 겐그레아 항구에서 머리를 깎았는데, 그는 그동안 나실인처럼 머리를 깎지 않고 하나님께 간절히 매어 달리는 기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서원한 날짜가 다 차자 머리를 깎고, 그 깎은 머리카락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감사제로 태워드리려고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둘째, 성경 선생 아볼로(24-28): 알렉산드리아 출신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왔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에 있는 학문의 도시인데, B.C.200년 경 최초로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곳입니다. 아볼로는 이런 교육도시 출신답게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숙했습니다. 그는 일찍 주의 도를 배우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예수님에 관한 것을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의 신앙에는 한계가 있었으니, 그는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의 세례만 안다’는 것은 구약만 알고 신약은 모른다는 뜻입니다. 그는 구약에 약속된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그 약속이 이미 성취된 것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의 메시지는 늘 미래형이었습니다. “장차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 죄를 구원하실 것이니, 그분을 믿으세요.”
그런데 마침 그곳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있었는데 그 메시지가 끝나자 그를 집으로 초청하여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가르쳐 주었습니다. ‘더 자세히 풀어 가르쳤다.’는 것은 ‘신약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즉 약속된 그리스도가 이미 오셨다고 가르쳤습니다. 아볼로의 몸은 신약시대에 살고 있었지만 그의 신앙은 구약시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는 새벽기도와 일용할 양식을 하루만 빼먹어도 나는 쓸모없는 놈이라고 자학하고 정죄의식에 시달렸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은 알고 회개는 열심히 하지만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그의 얼굴은 늘 심각하고 웃을 줄을 몰랐습니다. 조그만 일에도 허파에 바람 든 사람들처럼 큰 소리로 웃는 기독교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그에게 아굴라 부부는 구약을 뛰어넘어 신약의 세계로 나아가도록 도왔습니다. 아볼로의 메시지는 이제 모두 과거형이 되었습니다. “메시야가 이미 오셨습니다.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변화된 아볼로는 목자가 없는 아가야로 갔고 그곳 형제들에게 큰 유익을 끼쳤는데,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했습니다. 아볼로는 빼어난 성경선생이요 바울의 좋은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복음의 씨를 뿌린 곳에서 성경을 제대로 가르침으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런 아볼로를 보고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다.”(고전3:6)
셋째, 에베소(19:1-41)에서: 한편 바울은 어디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바울은 갈라디아 윗지방을 통해 육로로 소아시아의 에베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세례 요한의 열두 제자와 만났습니다. 그들은 과거 아볼로 처럼 웃음이 없고 인상을 쓰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 모두에게 그리스도를 전했고 또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 후, 이들에게 손을 얹고 안수했습니다. 그 즉시 성령이 임하여 이들의 입에선 방언과 예언의 말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3개월 동안, 바울은 늘 하던 식으로 에베소 회당에서 대중설교를 했습니다(8).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사람들 앞에서 이 도를 헐뜯고 거부했습니다. 바울의 회당 사역은 계속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이때 바울은 역사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9절입니다.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두란노 서원’은 본래 두란노라는 사람이 강연하던 장소로서 바울은 세를 주고 이곳을 빌렸을 것입니다. 그는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곳에서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동트기 전부터 텐트 수리하는 일을 시작했고 오후엔 성경을 가르치고 저녁엔 다시 텐트 수리하는 일을 이어갔습니다. 바울은 2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이 일을 줄기차게 감당했습니다. 그 결과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는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이때까지 복음 역사를 섬기던 방식과 전혀 다르게 섬겼는데 그것은 바로 제자양성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역사의 특징을 생각해봅시다.
첫째로, 바울은 이제 말씀을 듣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고자 했습니다. 9b절입니다. 바울은 처음에는 유대인 회당에서 대중설교로 할 수만 있으면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사람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고집이 세어 남의 말을 안 듣는 자들이 있었고 말씀을 의도적으로 우습게 여기고 좋지 못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들이 발생했습니다. 전부 눈을 아래로 깔고 자꾸만 시계를 쳐다보았습니다. 일부러 하품하고 성경책을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습니다. 바울은 하는 수 없이 안 듣고 안 배우는 자들은 그냥 두고, 잘 듣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공부할 때는 무엇보다도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배우는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이나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말씀이 역사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가르치다가 잘 안 받아들이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는데, 자칫 ‘오기 대행진’을 벌이기 쉽습니다. 반면 잘 듣고 잘 자라는 양들은 소홀하기 쉽습니다. 안 받아들이는 사람을 붙들고 늘어지기보다 잘 받아들이는 사람을 집중적으로 돕고 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이제 제자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말씀을 잘 듣는 몇 사람을 중심으로 날마다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둘째로, 이방인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지금까지 바울은 유대인 회당을 중심으로 성경을 가르쳤는데, 회당에는 아무래도 이방인이 오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유대인 중심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라고 하면서도 교회 경험도 있고 하나님도 좀 아는 사람들이 쉽다고 생각했을까요? 동족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 때문이었을까요? 결국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자 장소를 두란노 서원으로 옮겼는데, 그곳은 누구든지 부담 없이 올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셋째로, 바울은 날마다 성경을 강론했습니다. 여기서 ‘강론’은 대중설교가 아니라 토론 형식을 말합니다. 그는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고 일대일로 깊이 있게 성경을 공부하고 설득했습니다. 바울이 날마다 성경을 강론하되 2년이라는 시간과 정성을 쏟아 부었습니다. 바울은 이때의 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십시오. 내가 삼 년 동안을 밤낮으로,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쉬지 않고 교훈한 것을 기억하십시오.”(20:31 쉬운성경)
바울은 이때까지 여러 곳을 다니며 넓게 복음의 씨를 뿌렸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3년이란 오랜 기간 동안 머물면서 한 곳에서 말씀의 샘을 팠고 몇 사람을 제자 양성하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제자양성에 집중하면 말씀이 더 퍼져 나가지 못할 것 같은데,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날마다 성경을 배운 사람들이 자립적으로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에베소 교회 뿐 아니라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 교회(골4:13) 등 소아시아 일곱 교회가 개척되었습니다(계1:11).
제자양성에 집중했을 때 바울 자신도 희한한 능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바울의 땀으로 흥건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습니다. 그곳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두려워하며 예수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이는 그가 성경을 매일 가르치는 가운데 누구보다도 먼저 자신이 말씀의 능력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힘 있는 말씀이 에베소의 우상의 세력, 마귀의 세력을 압도하고 힘차게 뻗어나갔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각 사람 안에 죄의 세력을 이기고 크게 승리했습니다.
13-19절은 이 당시 바울의 영향력을 보여줍니다. 바울이 예수의 이름으로 기적 행하는 것을 보고 몇몇 유대인 퇴마사들이 예수의 이름을 이용하여 귀신을 쫓으려 했습니다. 악귀 들린 사람에게 다가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으려 하자, 악귀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15) 결국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은 악귀 들린 사람에게 몰매를 맞고 벗은 몸으로 도망쳤습니다. 이 소문이 도시 전역에 퍼졌고, 그 후 사람들은 예수의 이름을 절대로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되는 이름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마술사들이 자신들이 소중히 여기던 마술 비법서들을 한 데 모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불살랐습니다. 연기로 사라져 버린 책 중에 ‘에베소의 마법’이라는 밀리언셀러가 있었습니다. 이 주문에 걸린 몸종은 주인에게 저항할 수 없게 된다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포함한 자그마치 5만 드라크마, 오늘날로 환산하면 약 25억 원어치에 책이 불탔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모습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0절을 봅시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에베소에는 이때까지 마술이 세력을 얻고 있었습니다. 마술은 그들의 생각과 마음과 생활을 지배해 왔습니다. 이 마술 문화는 너무나 거대하여 난공불락의 성과도 같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를 지배하는 세력이 무엇입니까? 정욕의 세력입니다. 불안의 세력입니다. 사람의 인정을 바라는 세력입니다. 그러나 말씀이 전파되었을 때 말씀이 힘이 있어 그 모든 세력을 파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세력도 파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의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합니다(히4:12).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면 모든 것이 드러나고 맥을 못 추게 됩니다.
이처럼 승리한 바울은 어떤 비전을 보았습니까? 21절을 봅시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그는 당시 50대 중반에서 60세 사이였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로마도 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까? 그는 복음이 로마도 정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사역, 에베소 사역을 하면서 복음의 능력이 로마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담대하게 로마로 가고자 했습니다. 로마서 1:15,16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결론적으로 바울은 에베소를 개척하면서 제자양성역사에 힘을 썼습니다. 오늘과 같은 대량화시대에 작은 것에 대한 가치를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역사는 나에게 보내신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그에게 소망을 끊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한 사람을 통해서 한 나라를 바라보고 한 대륙을 바라보는 역사입니다. 저희들이 오늘 말씀의 바울과 같이 한 양을 귀하게 여기고 집중적인 말씀공부에 힘쓰는 08년도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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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회 다운로드 | DATE : 2008-03-10 20: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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