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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08년 마태복음 20강(10:1-15) 열두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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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2,109회 작성일 08-08-10 10:58

본문

2008년 마태복음 20강
말씀 마태복음 10:1-15
요절 마태복음 10:5a
열두 사도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기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자들을 이스라엘 각 마을로 내보내셨습니다. 보냄을 받은 자를 사도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이 사도로서 이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전하고 제자들을 키워 또 파송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열 두 사도를 보내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제자 양성 사역에 동참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어떤 대비를 하셨습니까?

첫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권능을 주심(1-4) : 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예수님은 열 두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그들의 믿음 때문에 열둘을 제자로 선택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재능과 능력 때문에 선택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두드러지게 비상한 능력은 지닌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예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자발성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부르십니다. 저희가 이 부르심에 순종하여 온 마음을 다해 예수님을 따르고 제자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시던 일을 제자들이 할 수 있도록 권능을 부여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본래 권능이 전혀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또 제자들은 어린 양과 같이 순수하고 연약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권능을 주셨습니다. 권능은 주님께 속해 있습니다. 추수할 일꾼들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 전쟁을 감당할 권능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라 사단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이런 권능이 필요합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권능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이런 이적들은 제자들이 전하는 말씀 사역을 더욱 힘 있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양들을 돕고 치료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가운데 권능을 덧입어야겠습니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 열심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에 성령의 능력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악한 영을 몰아낼 수 없습니다. 나 혼자서 안 되면 합심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밤낮 부르짖는 자들의 기도를 주님은 멸시치 않고 속히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양들의 연약함과 병든 모습, 기진한 상태를 직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겠습니다. 약속하신 성령의 권능을 주시도록 밤낮 기도합시다. 

2-4절을 보십시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1절에서는 제자라고 불렀는데 여기에서는 사도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자는 부르심을 받고 배우는 자라면 사도는 제자 중에 권능을 받고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주님을 배워서 세상에 나아가 일을 하는 사람이 사도입니다. 우리는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고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사도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전권대사들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먼저 그를 잘 배우고 세상에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비록 어리지만 사도로 소망을 두시고 목자의 일을 하도록 격려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을 키우는 일에 집중하셨습니다. 사도들의 공동체를 이루는 일에 힘쓰셨습니다. 사도들은 영적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대신하여 그 시대를 이끌어나가야 할 리더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도로 부르신 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사도들은 당시 평범한 남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직업을 보면 갈릴리 어부 출신, 세리 출신, 열심당원, 사제 출신 등 다양했습니다. 그들은 형제지간, 친구지간인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세리 마태와 열심당원 시몬은 세상에서 서로 원수지간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그들은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바돌로매 같은 사람은 예수님이 나사렛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를 거부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지만 의심이 많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부르시고 주와 복음을 위해서 순교할 수 있는 사도들로 만드셨습니다. 제자들의 명단 중에서 특이한 것은 세리 마태입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그냥 마태라고 되어 있는데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는 자신의 이전 직업을 표기하여 자신을 설명했습니다. 세리는 당시 내놓고 자랑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가 이를 덧붙인 것은 예수님이 자신의 삶에 일으킨 변화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잊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은혜를 붙잡은 그는 제자 공동체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특정한 사람만이 예수님을 좇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주님의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얼마나 하찮게 보이는지에 상관없이 어느 누구라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하찮고 무익하다고 느낄 때 하나님께서는 평범한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비범한 사역을 행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열 두 제자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와 연관된 기능을 할 것입니다.  19:28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들은 초대 교회의 반석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성격과 기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자 공동체는 이런 다양함으로 인해서 풍성했고 하나가 되어 사랑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민족에게 소망을 두시고 하나님 안에서 한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번 퍼듀 국제 수양회에서 이런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인종과 피부, 나라가 달랐지만 주 안에서 하나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 자체가 큰 은혜요 특권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들에게 능력을 주신 것은 열 두 사도뿐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 세계에 내보내시면서 성령의 권능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권능은 예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갈 때, 믿음으로 제자들을 돕고자 할 때, 그리고 필요할 때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능력은 믿음으로 쓸 때 나타납니다. 이번 청천 여름 수양회를 섬기는 동안 말씀의 역사를 통해서 변화되는 권능의 역사가 많이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복음은 놀라운 권능과 함께 증거됩니다. 강사님들에게 영적 권세를 더하여 주시고 우리 가운데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 함께 하여 거듭남과 변화의 역사들이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먼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5-8) : 5,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면서 선교지역을 이스라엘로 제한하심으로 그들이 이곳에 집중하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세상 만민을 구원하기 위한 예수님의 전략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로 세우고 그들을 통해서 세계 만민을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먼저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는 대안 공동체를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제자 공동체를 이루는 기초가 되어서 세상의 빛으로 드러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배우러 몰려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이사야 2장에 나오는 비전입니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 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사 2:1-3).” 예수님은 유대인들만을 위해서 오시지 않았지만 유대인들에게 먼저 오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전략대로 먼저 홍익대 학생들 가운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집중해야 합니다. 특히 형제 학생 제자들이 세움을 받도록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센터가 파워 스테이션이 될 수 있는 환경을 이루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와도 은혜와 힘을 얻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자신들이 먼저 회개하고 말씀을 배우고 성장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어야 합니다. 가장 먼저 변화되어야 할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를 쓰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체험한 말씀을 가지고 캠퍼스에 나아가서 전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제자들을 키워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시도록 기도합시다. 

그러면 열 두 사도는 무엇을 전파하며 어떤 일을 해야 합니까? 7,8절을 보십시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이 하신 것과 동일합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파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셔서 로마로부터 자신들을 해방시키고, 다윗과 솔로몬 치하의 영광을 회복시킬 정치, 군사적인 나라를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통치하시는 천국에 대해서 전파해야 합니다.  인간 불행의 원인은 천국을 상실한데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류는 낙원을 잃었고 죄와 죽음과 사단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인생들은 뿌리가 잘린 나무처럼 시들고 메마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경제만 회복되면 행복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넓은 아파트와 고급 중형차와 고상한 가구, 예금 통장에 두둑한 돈을 소유하고 있을지라도 마음에 천국이 없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비록 최소한의 수입으로 살지라도 마음에 천국이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천국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천국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얻을 수 있습니다.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천국이 임합니다.

열두 제자들은 천국 복음 전파와 더불어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해야 합니다.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일,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는 일은 예수님이 하신 일입니다.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영적 권세를 부여받았기에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신유와 축사는 복음전파와 함께 이루어집니다. 복음전파가 핵심적인 일이고 신유와 축사는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한 보조적인 것입니다. 열두 제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믿고 병을 고쳤고 귀신을 쫓아냈고 죽은 자도 살렸습니다. 나중에 베드로는 욥바에서 도르가를 살립니다(행9:36-41). 사도 바울도 드로아에서 유두고라는 청년을 살립니다. 그렇지만 이 말씀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말씀을 통해서 살리는 역사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병든 영혼들에게 지식적으로 말씀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병든 자의 아픔과 내면 문제를 들어주고 거기에 대해서 합당한 말씀으로 카운슬링해주고 실제적으로 섬겨야 합니다. 또 여러 훈련을 통해서 자기 발견을 하고 내면의 병들이 치료받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겉으로는 건강해 보이지만 다 치료받아야 할 내면의 병들이 있습니다. 죄로 인해서 내면이 깊이 병들어 있습니다. 이기심, 정욕, 교만, 안일, 시기, 미움, 질투, 무정, 무자비, 열등감, 사랑을 받지 못한 마음, 외로움, 우울함 등등. 병든 자를 고치는 일을 하려면 예리한 말씀과 깊이 있는 소감 투쟁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솔직한 소감을 나누는 가운데 치료를 체험하게 됩니다. 저희 각자가 한 사람의 병든 문제를 품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고 말씀으로 섬기며 살리는 목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돕는 이런 일들을 하되 아무 대가없이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목자님들의 사랑의 수고를 통해서 구원을 받고 목자로 자라난 것처럼 우리도 나의 시간과 소유를 양들을 섬기기 위해서 너그럽게 주어야 합니다. 스피릿과 사랑이 있을 때 지속적으로 아낌없이 주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으라(9-15) : 9,10절을 보십시오.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여행 경비나 필수품을 미리 준비해서 가지고 떠나지 말라고 하십니다. 돈이나 배낭이나 두벌 옷, 신발, 지팡이 등은 여행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이런 것들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복음 선포가 긴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선포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사역의 대가로 그 필요를 공급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고전 9:14, 딤전 5:17-18). 사람들은 감사의 표현으로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제자들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일반적으로 각 사람은 여행을 할 때 여행 경비와 물품을 지참하기 위해서 큰 가방을 준비합니다. 또 여행 중에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 여벌의 옷을 준비합니다. 발을 보호하기 위해 두 켤레 이상의 신발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것들 중에서 어떤 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가지고 있던 것을 그대로 사용하도록 하셨습니다. 만약 그런 것들이 다 헤어져 쓸모가 없게 되면 하나님께서 공급하실 것을 믿고 가라는 것입니다. 복음의 일꾼들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실제적으로 일꾼들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십니다. 퍼듀 선교사 수양회에서 선교사님들의 간증을 들었는데, 어디서도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너무나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수없이 놀랐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지만 양을 얻어서 제자로 키우는 것은 예외라고 하시면서 아쉬워했습니다. 이런 것은 우리도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먹고 사는 문제에 매이기보다 홍대 양들을 얻어 어찌하든지 일대일 말씀 공부를 섬기고자 투쟁해야겠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은 진리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들은 가는 곳마다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떠나기까지 그 집에 머물러야 합니다(11). 제자는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그 집의 능력과 태도, 형편을 잘 살핀 후에 들어가야 합니다.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들어가겠다고 하면 동역자에게 큰 부담을 지우는 것이기에 피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 성을 떠나기까지 처음 머문 집에 머물러야 합니다. 보다 안락하거나 사회적으로 두드러진 사람의 집에 머물고자 더 나은 거처를 찾아다님으로써 집 주인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제자들이 머무는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한 집에 머무는 것이 집 주인에게 부담이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진 것이 없는 제자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집에 평안을 빌어 주는 것으로 보답하라고 하십니다.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제자들이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제자들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이를 볼 때 복을 빌어도 준비가 되어야 받을 수 있음을 보게 됩니다. 복 받을 사람들은 복을 받을 행동을 합니다. 복 받을 행동은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이요 하나님과 주의 종들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수고가 필요할 때 힘에 지나도록 희생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평안을 빌어주고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복과 그 나라가 그 가정에 임하게 해야 합니다. 또한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은 어떤 고난이라도 무릅쓸 각오를 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샌들의 먼지를 떨어버리는 것은 더 이상 그들과 상관하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을 거부한 사람들과 구별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행동은 사람들에게 제자들이 자기들의 의무를 다 했으며, 더 이상 할 말이 없고, 그 사람들이 하나님께 책임을 지도록 내버려둔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듣는 자들에게 그 복음에 어떻게 반응하는 지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신실하고 세심하게 그 메시지를 제시하는 한, 마을 사람들이 그것을 거부한다 해도 그들은 책망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피를 우리 머리에 돌리지 않을까 염려하고 내 주위에 힘써 복음을 전해야겠습니다.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해야 합니다. 전도는 복음을 가진 우리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 악함을 인하여 하늘로서 내린 불로 그 성들을 멸하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이 성들에 대한 심판은 커다란 악에 대한 형벌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이 최종적이라는 교훈을 주었습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복음을 전혀 듣지 못했던 이 멸망 받을 성의 악인들보다도 심판 날에 더 비참할 것입니다.

당시 사도들은 어렸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권능을 부어 주시고 추수할 일꾼들로 쓰셨습니다. 저는 지난 학기를 돌아볼 때 도움이 필요한 양들은 많은데 자질을 갖춘 추수할 일꾼들이 부족한 것이 문제임을 보게 되었습니다. 준비된 일꾼들이 있을 때 양들은 죄의 병에서 나음을 얻고 변화가 됩니다. 죽어가던 사람들이 살아납니다. 그들이 또 다른 추수할 일꾼들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목자로 부르시고 세상에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고 하십니다. 저희들이 이번 주부터 시작되는 청천 여름 수양회를 위해서 끝까지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양들을 초청하여 보내심을 받은 사도들이 다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생명을 얻는 기쁨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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