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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08년 건축 특강(사43:14-28)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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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2,001회 작성일 08-11-30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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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선교센터 건축 특강                               
말씀 이사야 43:14-28
요절 이사야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이사야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이사야서는 구약 성경 전체를 집대성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1-39장은 하나님의 심판을, 40-66장은 하나님의 회복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공부할 43장은 회복 부분에 속해 있습니다. 43장 전반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구원자요, 그의 하나님으로서, 구원을 약속하는 내용입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1b).”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후반부는 이스라엘을 바벨론으로부터 구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비록 죄악 되지만 그들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비위가 좋으십니다. 그같이 죄악된 자를 끝까지 참으시고 축복을 약속하시다니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새로운 일을 하고자 하십니다. 이 시간 그가 친히 이루실 비전을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보고 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를 기도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구원하시며 행하실 새 일이 무엇인지 예언하고 있습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그들을 창조하셨고 그들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그는 왕으로서 주권자가 되십니다. 그가 하고자 하시면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 이 말씀이 43장에 1,3,14,15절에 네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을 찾고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그런데 그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습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손에서 해방시키겠다고 합니다. 그는 바벨론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즐기던 호화 유람선을 탄 채로 도망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메대 바사의 갑작스러운 습격을 받아서 그들은 도망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몰아내시되 얼마나 강하고 신속하게 하시는지 그들이 미처 준비할 겨를도 없이 배를 타고 줄행랑을 치게 될 것입니다. 바벨론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먼지 같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쫓아내시면 회리바람에 불려가는 초개같이 단숨에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애굽으로부터 그 백성을 불러내셨습니다. 그때는 어떠했습니까? 16,17절을 보십시오.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지름길을 내고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애굽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군대였습니다. 그들은 값싼 노동력을 하루 아침에 잃게 되자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보무도 당당하게 앞을 향하여 나아가는데 하필 홍해 앞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독안에 든 쥐와 같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앞에는 시퍼런 홍해요, 뒤에는 완전 무장한 바로의 군대가 따라 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도 소용없이 바다에 빠져 죽던가 바로의 군대에 잡혀 다시 노예가 되던가 절대 절명의 위기에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바다 가운데 길을, 큰 물 가운데 지름길을 내셨습니다. 바다 가운데 난데없는 큰길을 내셔서 이스라엘이 육지같이 건너게 하셨습니다. 반면에 애굽 군대는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들 모두를 일시에 수장시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두시자 원수들은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물고기 밥이 되었습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였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신다면 바벨론도 얼마든지 물리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는 창조주 하나님, 왕이신 하나님, 그들의 거룩한 이이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자신들의 장래를 온전히 맡기는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도 어느 날 느닷없이 되어 진 일입니다. 우리는 과거 정욕과 운명주의, 열등감과 교만, 세상욕심, 미움, 판단, 시기심, 이기심 등 온갖 죄 문제로 고통했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못했는데 선배님을 통해서, 목자님을 통해서 말씀을 공부하고 구원자 예수님에 대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새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죄 가운데 있던 나를 불쌍히 여기사 권능의 팔로 사단을 박살내시고 죄에서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홍해 사건을 체험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을 기억할 때 현재 나를 지배하는 세상 염려와 두려움의 세력에서도 능히 건져내실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역사를 기억할 때, 나를 부르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말씀을 묵상할 때 내 안에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행하신 일들을 기억해보십시오. 11개국에 75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화랑, 신수, 명지, 영남 등 4개 센터를 개척하였습니다. 우리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이런 역사에 쓰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 진 일입니다. 앞으로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하실 일들은 더 위대하고 많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옛적 일을 잊어버릴 만큼 얼마나 큰 새 일을 행하십니까? 18,19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은 ‘과거에 얽매어 살지 말라(do not dwell on the past)’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출애굽은 기리기리 잊지 못할 놀라운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들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노예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권능과 크신 사랑으로 구원을 받아 자유를 찾게 되었을 때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그들은 출애굽의 밤을 ‘여호와의 밤’으로 정하고, 그들을 구원한 유월절을 대대로 기억하며 가장 큰 명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으로부터의 귀환은 출애굽의 역사를 다 잊어버릴 만큼 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그들이 저지른 과거의 죄악을 다 씻어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용광로와 같은 바벨론에서 연단하심으로 그들을 비참하게 만들었던 우상숭배와 불순종, 교만의 죄를 완전히 없이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죄나 실패에 얽매이지 말고 하나님께서 하실 새 일을 바라보고 믿으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실 때 우리가 믿음으로 참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막상 우리 자신은 과거의 잘한 일 또는 잘 못한 일에 얽매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어떤 새 일을 하고 계신지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영적으로 깨어 있게 하시고 앞을 내다보고 비전에 불타게 합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환상을 보는 것이 특징입니다(행2:17). 비전과 꿈은 다릅니다. 비전은 꿈 더하기 대가입니다. 비전은 대가를 지불 할 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꿈은 대가를 지불하기 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대가를 치룹니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모험을 하고 도전을 합니다. 그러나 사단은 두려움을 심고 불신을 심습니다. 과거에 얽매이게 합니다. 과거에 잘한 일로 자족하고 더 이상 배우는 마음을 빼앗아 버립니다. 이런 사람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여 살아갑니다. 때로는 과거의 실수와 허물로 자학하게 하고, 절망에 빠뜨리고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과거의 일을 잊어버리고 새 마음, 새 믿음, 새 결단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에 참여해야 하겠습니다. 과거에 잘한 일은 모두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새롭게 배우는 마음과 무익한 종의 자세로,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실 것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오래 동안 기도해 오던 대로 5층짜리 선교 센터를 짓고자 합니다. 센터의 건물이 너무 낡았고 새 양들을 담기에는 부적당합니다. 지하에 비가 새고 수도관이 녹슬어서 삭고 있습니다. 지붕은 삭아서 교체를 해야 합니다. 부엌이 좁고 낡아서 사모님들과 자매님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지하에 오래 동안 거하기를 누구도 원하지 않습니다. 40명이나 되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공간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형편은 광야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경기 침체로 무슨 일을 시도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믿고 오병이어를 찾아서 드리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땅입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태산을 옮기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건축을 하려면 우리의 의지와 좋은 건축자와 물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충족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동교 화랑 목자님들이 합심해서 이 일을 하고자 결심을 했습니다. 북악 센터의 건축가인 양안드레 목자님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 주일에 드림팀인 건축 위원을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는 가운데 우리가 믿음을 체험하고 기도를 배우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활발한 캠퍼스 전도와 제자 양성, 세계 선교의 비전을 새롭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선하신 뜻을 우리에게 이루어 주옵소서!

  ‘새 일(new thing)’은 일의 목적, 일을 성취하는 방법, 일의 범위와 규모,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 등 모든 면에서 지금까지의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을 말합니다. 바벨론에서의 귀환은 출애굽의 역사와는 전혀 다른 ‘새 일’입니다. 출애굽의 역사는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으로 구원이 이루어졌지만 바벨론 역사는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유대인은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해서 이루어진 역사였습니다. 출애굽의 역사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며 전혀 기초가 없는 노예 백성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하기 위해 이룬 역사라면, 바벨론 역사는 이미 훈련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이들을 하나님의 역사에 쓰기 위해 행하신 역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출애굽 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사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역사는 어떠합니까? 하나님께서 광야에 길을 내시고 사막에 강을 내십니다(19b). 사막에 오아시스가 있지만 강을 이루려면 얼마나 많은 샘을 만들어야 합니까? 우리 하나님은 불가능하게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일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말구유 역사를 이루어왔습니다. 말구유는 하나님께서 인간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 자신을 낮추신 역사입니다. 그는 우리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 하늘 영광을 버리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양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 높아져야 할 때입니다. 홍대와 주변의 환경은 최첨단을 걷고 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 익숙한 학생들을 돕기 위해서 우리는 환경을 개선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건축 역사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역사가 성장하고 건축헌금을 모은 다음에 건축을 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일시적인 수익 사업을 통해서 먼저 건축을 하고 역사가 성장하면서 센터에 필요한 공간을 확보해 가는 방법을 쓰고자 합니다. 우리가 일대일과 각종 모임으로 5층 센터를 다 쓸 수 있는 때가 속히 오기를 기도합니다. 센터의 모든 방들이 일대일과 각종 모임으로 가득 차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캠퍼스 지성인들에게 구원의 파도, 변화의 물결을 일으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새 일에 쓰임 받기 위해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새 일에 쓰실 일군을 찾고 계십니다. 새 일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까지의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신앙 생활을 애통함으로 회개하고 심령을 새롭게 함으로 새 일군이 되어야 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새 일을 행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분별하고 참여하기 위해서는 새 부대가 되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명을 맡은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 권면하셨습니다(마24:42). 깨어 있다는 것은 날마다 세상 욕심과 육신의 소욕을 회개하고 성령의 역사하심에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을 뜻합니다. 게으름을 회개하고 깨어서 부지런하게 해야 할 일들을 준비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새 일에 쓰임 받기 위해서는 두려움과 불신을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새 일을 하실 것을 믿고 도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새 일에 준비된 자를 귀하게 쓰실 것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때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하나님을 존경하게 됩니다.  그들의 생명으로 풍성하게 하시기에, 자연만물들까지 회복되는 역사를 이루십니다. 이방인들까지도 하나님께 나아와 찬송하게 하십니다(21). 새 일을 통하여 죄악 가운데 행하던 인생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자로 변화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만민이 그에게 돌아와 경배하며 그의 영광을 위해 사는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우리를 구원하셨고, 훈련하시며, 복음을 맡기시고 전파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건축 역사를 하는 목적도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캠퍼스 지성인들을 더 잘 섬기기 위해서 좋은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믿음을 배우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어떻게 하나님을 괴롭게 했습니까? 22-24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이스라엘아 너는 나를 괴롭게 여겼으며 네 번제의 양을 내게로 가져오지 아니하였고 네 제물로 나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제물로 말미암아 너를 수고롭게 하지 아니하였고 유향으로 인하여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하였거늘 너는 나를 위하여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아니하며 희생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 아니하고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그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고 그를 괴로워하고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하나님을 재물로 공경하지 아니하고 돈으로 향품을 사지 않고 희생의 기름을 드리지 않고 죄 짐으로 하나님을 수고롭게 하며 그를 괴롭혔습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간다고 합니다. 우리가 물질을 하나님께 드릴 때 마음이 하나님과 그 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이 아무 것도 드리지 않는 것을 책망하십니다. 무엇보다 그들이 하나님께 의식상 제물을 가져왔으나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이 함께 하지 않는 제물은 공허한 것입니다. 제물의 진수는 믿음입니다. 믿음 없이 제물만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니 고생만 하는 것입니다. 믿음 없이 종교의식만 가지는 신앙 생활이라는 것은 당사자에게 수고롭기만 합니다. 괴롭기만 합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희생하는 자세로 주님을 섬기는 자는 그의 수고로움과 괴로움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도리어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센터 건축을 위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일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하는 사람들을 믿지 못함으로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향품과 희생의 기름은 무엇입니까? 기름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향품은 감사하는 마음, 찬송하는 마음, 기도를 의미합니다. 건축 역사를 위해서 기도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무관심하고 방관적인 자세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우리가 심령을 다하여 그를 섬겨야 섬겨집니다. 심령을 다한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부모 된 자가 잃어버린 자식을 찾으려 할 때 아이를 찾는 일에 온 마음을 기우림과 같은 것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각자 받은 축복과 은사를 드려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것이 은혜요 특권입니다. 동시에 건축 역사를 섬기면서 우리의 희생과 헌신이 자기 의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새 일에 쓰기를 기뻐하십니다. 25절을 보십시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다시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여기에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도리가 나타나 있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공로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에 있는 것입니다. 26절을 보십시오. “너는 나에게 기억이 나게 하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는 말하여 네가 의로움을 나타내라.” 그들의 구원이 하나님의 은총에 있지 않다면 너희 의로운 길을 나타내어 나로 기억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일은 없었고 그들이 나타낼 의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의지하여야 합니다. 만일 그들에게 의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잊으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들의 의를 드러내라고 하십니다. 열심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갚아주십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15:58).”

  하나님은 그들의 허물을 도말하사 그들을 통해 새 일을 행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이 바다같이 깊고 넓고 풍성하십니다. 또한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새 일을 감당할 자로 변화되기 위해서 회개하고 죄사함 받으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센터 건축의 비전을 주시고 일을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이들을 제자로 양육하며, 요회 모임을 활성화해서 각자가 존중히 여김을 받고, 우리를 통해서 233개국에 십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 목자님들이 이러한 비전을 가지고 자신의 일생을 드려 충성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하고 양들을 섬기고자 하는 진심이 있습니다. 주님께 대한 첫 사랑과 은사를 불일듯이 하여 건축 역사를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All Things are Possible with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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