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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08 가을수양회 주제2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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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바울
댓글 0건 조회 2,305회 작성일 08-11-1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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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가을수양회 주제2강
말씀 신명기 6:1-23
요절 신명기 6:4,5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가 그들에게 전한 고별 메시지입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써진 책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2세대들에게 앞으로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계속해서 번영할 수 있는 길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사랑할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하나님만 사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 나름대로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까요? 그리고 우리 각자가 들어가 차지하게 될 땅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첫째, 건너가서 차지할 땅(1-3): 여호와 하나님은 먼저 모세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절을 봅시다.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여기서 ‘차지할 땅’이란 그들이 소유할 땅을 의미합니다. 그 땅은 현재 남의 땅이요 그 땅에는 이미 다른 민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얼마 후면 그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이 되고 그들이 차지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자기 땅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다만 광야를 떠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이제 얼마 후면 자기 소유의 땅을 갖게 되는데, 그 땅은 광야처럼 척박한 땅이나 아무도 살지 않는 버려진 땅이 아닙니다. 10,11절을 보면 그 땅은 아름다운 성읍이 있고, 성읍들에는 그들이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하며 그들이 파지 아니한 우물이 있으며 그들이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가 있고, 그 땅에서 그들은 배불리 먹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18,19절을 보면 그 땅에는 이미 강하고 큰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그 사람들을 다 내 쫓고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일한 소망이 있었다면 그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광포한 바로를 위해서 모래 먼지를 마시며 혹독한 노동을 하고 우상의 신전을 지으며 인생을 허비하던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꿈에 부풀었습니다. 지금까지 아무 땅도 갖지 못하고 자기들 소유의 우물이나 밭을 가지지 못했던 그들이 아름다운 땅과 밭을 가지게 될 때 그들이 얼마나 흥분되었겠습니까?
  저는 이번에 센터 역사와 동역자를 위해 사용할 차를 구입했습니다. 다리가 불편한 동역자가 지방에서 이것저것 일을 제대로 하려면 차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좋은 차를 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동역자님들의 도움으로 ‘중고카렌스투’를 구입하여 대구까지 운전했습니다. 비록 담배 냄새가 진동하고 차 여기저기 깨진 곳이 있었지만 개인 소유의 차가 생기니 감사가 충만했습니다.
  이처럼 아무 것도 차지하지 못했던 사람이 좋은 것을 차지하게 될 때 그 마음이 어떠합니까? 땅 한 평 없던 농부가 자기 땅을 갖게 될 때 어떠하겠습니까? 자기 집이 없이 이리저리 이사 다니던 사람이 멋진 집을 가지게 되면 어떠하겠습니까? 자녀가 없던 사람에게 자녀가 생기면 어떠할까요? 그들은 자기가 가지게 될 것들이 너무나 좋게 보일 것입니다. 그것이 심하면 그것에 빠져들 수도 있습니다. 자동차가 없다가 자동차를 가지게 된 사람은 자동차에 조금이라고 흠집이 날까 봐 전전긍긍해 할 것입니다. 또 조금이라도 흠집이 나면 마치 나의 얼굴에 흠집이 난 것처럼 슬프고 속이 상하여 흠집을 해결하고자 애를 쓸 것입니다. 자기 집을 가지게 된 사람은 밤낮 그 집을 쓸고 닦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이스라엘도 그들이 대대로 정착할 땅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됩니다. 그곳에서 세계에 대하여 제사장이 되고 거룩한 신민으로서 영광스럽게 살게 됩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우며 또 자랑스럽겠습니까?
  그런데 사람은 가지지 못했던 것을 가지고 싶어 하고 원하던 것을 가지기만 하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바라던 것을 가지면 그 마음이 달라집니다. 바라던 것을 가지면 또 다른 것을 바라거나 혹은 가지게 된 것에 빠져버리기도 합니다.
  한 목자님은 직장 얻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좋은 직장에만 들어가면 캠퍼스 목자로 한번 잘 해보겠다고 기도도하고 다짐도 했습니다. 직장 얻기 힘든 시대에 얼마나 직장을 가지고 싶었겠습니까? 그런데 정말 좋은 직장을 얻었을 때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장막 생활할 때는 호주머니에 만원 한 장만 있어도 가슴이 뿌듯했는데, 이제 혼자 넉넉하게 지낼 수 있는 월급과 때마다 보너스가 주머니에 들어오자 생각이 아주 다양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차지할 땅을 주셨듯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들어가 차지할 수 있는 땅을 주십니다. 어떤 분에게는 가정이라는 땅을 주시고, 어떤 분에게는 직장이라는 땅을 주시고 어떤 분에게는 대학이라는 땅을 주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차지하게 되고 누구나 이 땅에서 뭔가를 소유하게 됩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태어난 이후로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차지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축복해 주셨습니다. ‘나는 지금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았어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뭘 주셨다고 그래요.’ 라고 말하는 사람은 생각을 새롭게 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태어나는 그 순간 인생이라는 것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그 인생에서 소중한 시간을 주셨고, 공부할 수 있는 학교를 주셨고, 어떤 모양이든 물질을 주셨습니다. 사람은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삼고 그것을 활용하여 자기 개발을 하고 성장합니다. 이처럼 사람은 그러한 소중한 기회들과 시간들과 젊음의 에너지들을 자기 것으로 삼고 그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땅을 차지하는 것은 그 땅을 즐기거나 그 땅에 빠져서 하나님과의 관계성도 잊어버리고 사명도 잊어버리고 그 땅에 함몰되어 살라고 주신 것입니까? 1절을 봅시다. “이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하나님께서 땅을 주시는 이유는 그곳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행하는 삶을 살도록 하심입니다. 그렇게 할 때 그 땅에서 축복을 받습니다. 2,3절입니다.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땅에서 크게 번성하리라.” 그들이 앞으로 차지하게 될 땅에서 여호와를 경외하고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며 살면 그 땅에서 오래도록 복을 받고 크게 번성합니다.
  40년 전 그들은, 애굽을 떠난 지 40일 만에 젖과 꿀이 흐르는 그 약속의 땅, 바로 경계선 앞에 까지 왔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손만 내밀면 가나안 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탐꾼 중 열 명은 그 땅에 대해서 심한 두려움을 가졌습니다. 그 땅에는 장대한 아낙 자손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결코 그 땅을 차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은 엉엉 울었습니다. 모세를 원망하며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대적들을 하나님보다 더 크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그 능력을 믿지 못했습니다. 여호와는 당연히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도록 도우실텐데도 그 앞에서 그런 여호와를 믿지 못하니 여호와의 마음이 어떠하셨습니까? 저들이 여호와를 멸시한다고 분노하셨습니다. 
  사실 이들의 삶속에 하나님을 멸시한 것은 이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일이 터질 때마다 원망했습니다. 마실 물이 없고 길이 험할 때 항상 불평했습니다. 왜 물을 안주는가? 왜 우리를 이끌어 내셨는가? 그들은 여전히 현실과 하나님을 비교했고 현실을 하나님보다 크게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싶으면 하나님을 멸시하고 심하면 대적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그 결정적인 순간에도 똑같이 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로 인해 분노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서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의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민14:32~34)
  하나님께서 그들을 싫어하시자 그들은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1세대 마지막 사람이 죽을 때까지 광야를 돌게 하셨습니다. 1세대 60만 명이 죽고 단 2사람만 남았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의 헛된 우상과 사상을 파하고 여호와 신앙을 올바르게 세워야할 중요한 임무가 있었습니다. 여호와는 광야 생활 내내 맛나를 먹이시며 여호와 하나님을 가르치시고 그 분만을 생각하도록 훈련시키셨습니다. 모세는 창세기를 비롯한 모세오경을 가르치며 여호와가 참신이고 모든 신보다 강하고 높으며 유일한 구원이심을 귀에 못이 박히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믿지 못하고 여호와를 멸시했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노예 시절부터 줄곧 이방인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사람의 지배 속에서 눌려 지내면서 살아 온 탓에 늘 주인의 눈치를 보며 기회주의적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평과 원망이 뼈에 사무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로 내모시고 광야를 떠돌게 하셨고, 그 동안 이십 세 이상 된 사람들은 다 죽이셨습니다. 모세 자신도 그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죽어야 했습니다(3:26). 결국 그들과 그들의 잘못된 생각들은 모두 광야의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모세는 2세대들이 이제 그런 일을 반복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들이 차지할 땅에 들어가 이제부터는 열매 맺는 삶을 살기를 바랐습니다. 그들이 차지할 땅에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가득하고 여호와가 주시는 젖과 꿀같은 말씀이 풍성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흘러넘치는 기쁨과 소망의 나라를 이루어 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차지할 땅에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2)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것은 현실속에서 여호와를 멸시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땅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그 차지할 땅에서 지켜야 할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가장 대표적인 한 가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둘째,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4,5): 4절을 봅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이는 무슨 뜻입니까? “여호와는 우리 하나님이시고, 여호와는 한 분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우선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각별하신 분이십니다. 그들이 애굽 땅에서 노예로서 종살이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일방적인 은혜로 그들을 바로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홍해바다를 일순간에 가르시고 마른땅같이 건너게 하셨습니다. 허허벌판 광야를 지나는 동안 하늘에서 만나를 비같이 내리사 배불리 먹게 하셨습니다. 반석에서 샘물이 나서 목을 축여 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완벽하게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런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 여호와는 세상에 유일한 여호와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빌어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있겠느냐’(사44:6-8),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사46:9) 태초에 이 세상을 창조한 분도, 마지막 날에 이 세상을 심판하실 분도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 각자를 슬픔과 운명으로부터 구원하시고, 추하고 더러운 죄로부터 출애굽 시키신 것도 이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나의 진홍같이 붉은 죄를 눈같이 희게 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분이 그들이 차지할 땅을 주셨습니다. 이 여호와는 여러 신들 중 하나입니까? 여호와는 오직 한 분이십니다.
  모세가 살던 시대의 사람들은 수많은 신들을 섬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 들어가게 될 가나안 땅에는 농사의 신 바알을 비롯해서 폭풍의 신 하닷, 별의 신 살무, 죽음의 신 레셉, 쾌락의 신 아세라 등이 있었습니다. 그 신들 중 ‘바알’은 풍요의 신인데, 포도와 밀과 같은 농사를 풍성하게 한다고 알려졌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농사를 짓게 되고, 그러면 바알을 섬기게 됩니다. 결국 그들은 여호와도 섬기고 바알도 섬깁니다. 본래 그들은 그곳의 신들을 전부 파괴하고 신들에게 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땅의 종교와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두 부수어야 합니다.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도록 이방인들을 각성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 땅에서 그들은 번성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에서 적응하려다 보니 실용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진리를 버리고 유익을 취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이든 바알이든 경제만 나아지게 하면 좋은 신이지.” 잘 먹고 잘 살수만 있다면, 취직만 잘 된다면, 집값만 오른다면, 언제든지 신앙을 멸시합니다. 현실에 적응하려다 보니 본래 그들이 부수어야 하는 우상을 인정하고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살게 됩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2세대들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여호와는 만물의 창조자시요 스스로 계신 분이요 영존하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창조주시요, 생명의 주인이시요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여호와는 참된 주인이시요 인생의 목적이십니다. 그러면 이 유일하신 여호와가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4,5절을 봅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것이 그들이 차지하게 될 땅에 들어가 행할 가장 큰 계명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히브리어로 ‘아하브’인데, ‘좋아한다, 가까이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가리키며 ‘네 사랑하는 외아들’이라고 할 때 그 ‘사랑한다’는 동사가 ‘아하브’입니다. 아브라함은 늙어서 외아들을 얻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그냥 사랑스러운 존재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사랑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냥 사랑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고 기쁜 존재였습니다. 그 사랑은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십니다.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정말 가까이 하고 싶은 분이요, 가장 가깝게 여겨지는 분입니다. 억지로 의무감으로 섬겨야 할 분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점에서 하나님은 그러신 분이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여호와는 오직 한분뿐임을 강조합니다. 다른 모양을 가진 신들은 결코 너희를 도와줄 수 없고 여호와만이 너희를 도울 수 있으니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좋아하고 가까이 하고 여호와께 모든 필요한 것을 다 구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신들을 좋아하지 말고, 다른 신들에게 기대하지 말고 나 여호와를 좋아하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와서 도움을 구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오라는 것입니다. 모든 좋은 것, 필요한 것들이 누구로부터 오는가, 여호와께서 먹여 살리시는가, 아니면 바알이 먹여 살리는가에서 이스라엘은 확신을 잃어버리고 결국 현실 앞에서 흔들려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하나님, 다른 구원자는 없었습니다. 다른 인도자도 없었습니다. 다른 공급자도 없었습니다. 오직 여호와만이 그들의 구원이시며 인도자이시며 공급자이십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요즘에는 많은 부부들은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으로 부족하여 다들 애인을 둔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 영화 포스터에서 “당신 자신 있어 평생 나 한 사람을 사랑할 자신” 이라는 문구가 젊은이들의 마음을 묘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조강지처를 버리고 다른 여자를 사귈 수 있어.” 라고 따지는 부인에게 요즘 남편들은 “당신도 억울하면 애인을 사귀면 되잖아!” 하고 말한다고 합니다. 하나님만 사랑하면 삶이 너무 따분하고 재미가 없고 지루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사랑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우상숭배자가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태 6:24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그래서 당신이 유일한 여호와이심을 강조하시고 당신만을 사랑하도록 간절하게 권유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을 전폭적으로 받으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먼저 전폭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요한1서 4:9,10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어떠한 현실앞에서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하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셋째, 네가 차지할 땅에서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라(6-9): 그러면 삶의 현장에서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6,7절을 봅시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말씀을 얼마나 열심히 가르칩니까?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갈 때에든지 누워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말씀을 강론합니다. 모든 대화의 주제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사람은 말씀을 모든 행동의 기준으로 삼고 모든 생각과 사고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어려운 문제나 주변 사람을 여호와보다 크게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는 것입니다. 1세대들은 끊임없이 이를 반복했습니다. 모세는 비록 간곡히 가르쳐도 결국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자가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을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당대뿐만 아니라, 후대를 바라보면서 이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사람을 바라보기보다 말씀 자체를 믿었습니다. 말씀이 남아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믿었습니다. 그 만큼 모세는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분의 말씀을 믿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여호와를 사랑하여 소망을 버리지 아니하고 끝까지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차지할 땅에서 주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고자 하는 모세와 같은 열정을 부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넷째, 여호와는 과거의 도움이실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도움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10-23). 12을 봅시다.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이스라엘에게 과거의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래의 일도 있습니다. 앞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하며, 그 땅에서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또한 그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 일에 대해서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앞날을 돌봐 주십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배불리 먹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미래가 다른 신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학생 때에는 믿음을 지키던 사람이 군대에 가거나 혹은 직장에 가면 믿음을 잃어버리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학생 때에는 순수하던 분이 직장에 들어가면 재테크를 하고 펀드를 하고 통장을 불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려다 보니 두려움에 빠져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시며, 항상 동일하신, 변함이 없으신 여호와이십니다. 여호와께서 어떤 새로운 땅, 낮선 땅에서도 우리의 도움이 되십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광야 시절의 방황과 열매 없는 인생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복을 받고 크게 번성하기를 바라며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핵심은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유일하신 여호와 그 분께 모든 것을 의지하고 구하고 그 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 가운데 하나님의 복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각자 어떤 모양의 차지할 땅이든, 어떤 낯선 땅이든 그곳에서도 유일하시며 동일하신 여호와를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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