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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08년 마태복음 24강(12:22-50) 악한 세대 속에서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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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2,404회 작성일 08-09-1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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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마태복음 제 24강                                               
말씀 마태복음 12:22-50
요절 마태복음 12:50

악한 세대 속에서의 소망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우리는 지금 악한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특징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교만하고 비방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영적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죄와 사탄의 포로된 자들을 구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사탄은 교만하고 인본적인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훼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훼방 속에서 구원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이런 악한 세대 가운데서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배우기를 원합니다.

첫째, 성령을 힘입어 일하시는 예수님(22-37) : 22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예수님께 데리고 온 사람은 귀신들려서 눈이 멀고 말을 못했습니다. 귀신이 쫓겨나서 눈을 뜨게 되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볼 수 있고 자신의 실제 상태를 볼 수 있습니다. 귀신에 억눌려서 말을 못하던 사람이 귀신이 쫓겨나감으로 담대하게 진리를 말합니다. 말을 못함으로 의사소통이 안 되던 사람이 내면의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큰 즐거움입니다. 말이 통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그가 말을 하며 보게 되었습니다. 무리들은 이를 보고 “와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며 놀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니고는 이런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 소식을 듣고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리라”고 고춧가루를 뿌리는 말을 했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인해서 은혜가 충만한 양들 앞에서 종교 지도자들이 저것은 사탄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으니 예수님은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다혈질인 베드로가 이때 성질을 부리며 나오지 않은 것이 좀 이상합니다. 예수님은 차분하게 반박하셨습니다. 25,2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사탄이 얼마나 간교한데 자기에게 손해가 날 일을 하겠습니까? 어느 나라나 공동체도 서로 싸우고 다투면 힘 있게 일할 수 없습니다. 사탄은 결코 서로 다투고 싸워서 손해날 일은 하지 않습니다. 또한 당시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귀신을 쫓아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겠습니까? 그러므로 그 제자들이 바리새인들을 재판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28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병든 자를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고 말씀을 권세 있게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셔서 성령의 능력을 의지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의 마음에 임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는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예수님을 통한 성령의 역사를 보고서도 이를 부정하는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서 그 세간을 강탈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강한 자를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할 수 있습니다. 사탄은 강한 자입니다. 이 사탄을 결박하지 않고는 그에게 붙잡혀 있는 포로들을 구출할 수 없습니다. 성령은 사탄보다 훨씬 강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권능을 덧입고 캠퍼스에 복음을 전하고 세계 선교를 감당합니다. 우리는 교양강좌나 철학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문화 프로그램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생명을 걸고 하는 것입니다. 한 번 해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자세로는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 걸린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역사를 훼방하고 믿는 자들을 실족시키고자 합니다. 반대로 우리는 사탄의 포로된 자들을 구출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싸우고 있습니다. 이 싸움은 혈과 육에 속한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권능을 덧입기 위해서 회개하고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캠퍼스에 올라가서 복음을 전하고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양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또한 일대일 말씀을 공부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순종하고자 할 때 내 속에 역사하는 죄의 세력이 얼마나 강한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나의 이기심이 이를 막습니다. 그 이기심이 만족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욕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사탄은 내 속에 있는 이기심을 써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상하게 합니다. 내 속에 있는 이기심, 교만, 불신, 염려, 두려움의 죄를 사탄이 씀으로 나를 영적인 싸움에서 패배자가 되도록 만듭니다. 그러므로 내 속에 있는 죄악들을 발견하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영적인 전쟁입니다. 피 흘리기까지 싸우지 않으면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이 싸움에 중립 지대는 없습니다. 30절을 보십시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에 대해서 반대하던지 동참하던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은 하나님의 원수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바리새인들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31,32).” 예수님은 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이 예수님이 하시는 사역을 지원하고 힘 있게 하기 위해서 역사하십니다. 귀신도 쫓아내고 병든 자도 고치고 말씀을 권세 있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 이런 일들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사역을 사탄의 사역으로 비난하는 것은 바로 성령을 모독하고, 거역하는 죄악입니다. 성령을 거역하면 회개할 수도 없습니다. 성령을 거역하면 그 사람은 사탄에게 이용당할 뿐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사탄의 도구로 쓰임 받을 뿐만 아니라 저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합니다. 정말 비참한 인생이 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강하게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33절을 보십시오.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그 나무가 좋은지 나쁜지는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사람도 그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 그 행동이 낳은 결과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사는 방식으로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것이지 그 사람이 가르치고 말하는 것으로는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진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개인의 유익을 위해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양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비로운 분이시지만 또한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셨습니다. 말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나타냅니다. 말은 그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즉 악한 말의 뿌리는 그 마음에 있습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그 입으로 말합니다.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은 냅니다(35). 사람이 평소에 생각하는 그것이 쌓여서 입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 말이 나오기까지는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오고갑니다. 그 생각을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정리된 말로 나오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사람의 말로 그를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36,37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결국 말은 그 사람의 어떠함을 나타내고 심판 날에 그 사람의 말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성령을 거역하는 말뿐 아니라 무슨 무익한 말도 포함됩니다.

이 시간 나의 말을 돌아보아야겠습니다. 나의 말은 내 속에 무엇이 쌓여 있는가를 말해줍니다. 부드럽고 온유한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겸손한 사람입니다. 감사하는 말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좋은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충성스러운 사람은 말이 변하지 않습니다. 생각이 깊은 사람은 남에 대한 배려가 배어 있는 말을 합니다. 원망과 불평이 많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옵니다. 마음에 불만족이 쌓여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이 튀어나옵니다.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사람은 속이 항상 시끄럽습니다. 교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을 다스려야 합니다.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빌립보서 4:8절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우리가 사랑의 말, 감사의 말, 칭찬하는 말을 함으로 서로 덕을 세우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높이는 말을 하기를 원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각자의 마음을 다스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악하고 음란한 세대의 특징(38-45) :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에 몇 사람이 예수님께 표적 보여주시기를 청했습니다. 그들은 이제까지 많은 표적을 보았지만 하늘에서 불이 내리는 엘리야의 표적과 같은 좀 더 짜릿한 것들을 원했습니다. 그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은 마치 나를 성공하게 해 주시면 믿겠다고 말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 자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자기중심적인 것입니다. 자기만족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표적을 보여주면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강력한 표적을 구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표적을 보고도 믿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표적을 보여주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리고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39).”고 대답하셨습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40).”고 하십니다. 요나 사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할 것을 예표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언하시고 그대로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지고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삼일 후에 부활하셨습니다. 이는 세상의 어떤 표적보다 큰 것입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간혹 있지만 예수님과 같이 예언된 죽음과 부활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 죄 때문에 죽었지만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이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깨닫고 믿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표적을 보여 주어도 믿지 못합니다. 바리새인과 제자들은 이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무덤에 묻히시고 부활하신 후에야 깨달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 표적을 단순하게 믿고 영접한 사람들은 구원을 얻습니다. 물론 이 표적의 의미는 매우 깊습니다. 또 엄청난 진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 이 표적은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었습니다(고전1:23). 자존심이 강한 유대인들에게는 자신들의 메시아가 로마인의 사형수였다는 것이 거리꼈습니다. 그러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고전 1:24).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합니다(고전1:25).

예수님은 교만하고 완악한 바리새인들에 대해서 더욱 엄중하게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들을 정죄할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예수님은 요나보다 더 큰 분이십니다. 요나는 원수같은 니느웨 사람들에게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바다에 빠져 죽어도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훈련으로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나와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열정적으로 전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 성의 없이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고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멸망시키실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니느웨 사람들은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짐승까지 금식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할 것입니다.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솔로몬보다 더 크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으로서 구원 역사를 이루십니다. 남방의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소문으로 듣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많은 보물과 향품을 가지고 땅 끝에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지혜로운 말을 듣고 감탄하였습니다.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하들이여 항상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왕상 10:8).” 예수님의 산상수훈과 가르침은 권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교만하여 마음을 열고 듣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한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의 메시지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회개하였습니다. 또 바리새인의 제자들에 의해서 귀신이 나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방향을 바꾸어 진정으로 회개하고 그들의 메시아이신 예수님께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들은 청소는 되었지만 비어 있는 집과 같습니다. 그러자 그에게서 나갔던 귀신이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었습니다.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볼 때 사람에게 중립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귀신에게 속박을 당하든지, 메시아를 영접하고 그 통치를 받던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는 사람은 그를 심판자로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적인 중립을 유지하려는 자는 다시 사탄에게 속박됩니다. 그리고 그 속박은 일곱 배나 더 심각해 질 것입니다.

불교는 마음을 비우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마음을 비우되 그 비움이 목적이 아니라 성령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찬양과 기도로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5:17-21).” 성령으로 충만하라는 것은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선한 열매로 가득하게 됩니다. 악한 세대의 특징은 돈을 사랑하고,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무정하고 무자비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사랑의 사람이 되고, 희생적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고, 겸손하며, 긍휼이 풍성한 사람이 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오래 참고 온유한 사람이 됩니다. 어두움이 짙어갈수록 작은 빛이 더욱 밝게 빛나듯이 이 시대가 악할수록 성령으로 충만한 여러분의 삶은 더욱 빛나게 될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가족(46-50) :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님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었습니다. 이때 한 사람이 예수님께 알렸습니다.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막 3:21절 말씀을 근거해 볼 때 그들은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하여 붙들어 집으로 데려가려고 왔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제자들을 그의 가족으로 인정하셨습니다. 이는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혈통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진정한 유대인이요 바리새인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가족 관계를 무시하거나 책임을 회피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도 사랑하는 어머니를 제자 요한에게 부탁했습니다( 15:3-6, 요19:26-27). 그는 메시아로서 혈육의 문제보다 하나님 나라 사역에 우선권을 두고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족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일하셨습니다. 그리했을 때 결국 온 가족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가족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주님을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님을 버리고 타락하여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잠재력도 피워보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하나님 앞에 분명하지 못한 태도가 사랑하는 가족이 구원받는 것을 방해하는 원인이 될까봐 염려가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는데 지금까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불신자들에게 거부를 당하시고 조롱을 받으시고 훼방을 당하셨습니다. 심지어 가족들과 친지들에게까지도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시며 거부를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그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으로 인해 큰 위로와 소망을 발견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고 말씀대로 살고자 할 때 함께 말씀에 순종하는 동역자들을 볼 때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가 영적인 가족관을 가지고 형제자매님들을 돌아보고 사랑하는 일에 힘써야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분들이 내 곁에서 함께 복음 역사를 섬기는 형제자매님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예수님의 가족이 됩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공동체를 위한 길을 닦고 계셨습니다. 이 가족의 특징은 사랑과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예수님의 가족은 즉 교회는 이 세대의 진정한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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