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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09년 출애굽기1강(1장)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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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2,224회 작성일 09-02-09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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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출애굽기 공부 1강                                                        말씀 출애굽기 1장요절 출애굽기 1:12

학대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니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출애굽기는 모세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했는데 1-18장은 출애굽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주고, 19-40장은 그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를 섬기던 데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려면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는 가운데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이스라엘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천하 만민이 알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하고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에 하나님은 그의 능력과 성품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세계에 대하여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고자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출애굽기 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깊이 알고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두신 거룩한 제사장으로서의 비전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1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학대를 받는 장면입니다. 중노동을 통한 인구 억제 정책, 산파를 통한 간접 통제, 바로의 직접 통제가 나옵니다.

  야곱과 함께 각각 자기 가족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사람들은 모두 칠십 명이었습니다. 요셉과 그 자손들은 애굽에 있었습니다.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생육한다는 말은 열매를 맺는다는 뜻이고 번성한다는 말은 ‘우글거리다’는 뜻입니다. 이는 마치 개구리가 알을 낳으면 엄청난 숫자의 올챙이가 되어 개구리로 성장하는 것을 연상시킵니다. 그들은 무수한 숫자로 늘어났습니다. 그들은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매우 강했습니다. 그들은 한 가정에서 한 축구팀을 이룰 정도로 많이 낳아서 길렀습니다. 역사상 70명에서 시작하여 400년 만에 200만 명이 넘는 경우는 없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폭발적인 인구증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창12:2). 하나님께서는 그와 그 후손에게 주신 약속을 어김없이 성취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9절에서는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지금 우리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는” 복이 임하였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을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셨습니다. 우리 모임이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마더 배리 선교사님으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 90개국에 흩어져서 번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반드시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강하게 되는 역사가 계속 될 줄 믿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살아야 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살아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올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번성하고 강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투트모스 1세라고 합니다. 최근의 학자들은 람세스 2세라고 말합니다. 11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한 것에 근거하여 그렇게 말합니다. 요셉이 살아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접을 잘 받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류층으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새 왕은 애굽 사람들에게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새 왕은 이스라엘 자손이 번성하는 것에 대해서 시기심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백성들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학대하는 일에 앞장서도록 합니다.  국경 근처에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이 날 때에 방파제 역할을 하고 완충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새 왕은 의심이 들자 거꾸로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셈족으로서 애굽 왕이 몰아낸 족속과 같으니 전쟁이 날 때에 그들과 연합하여 나갈 것이라고 지레 짐작을 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의 인구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먼저는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했습니다. 국고성은 전쟁에 나가기 위해서 식량과 각종 무기를 저장해 두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나가는 이스라엘을 볼 때 애굽 사람들은 근심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판에서 양을 칠 때는 양들을 풀어놓고 자기들은 잠을 자기도 하고 쉬기도 하면서 여유있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애굽 왕이 어려운 노동으로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을 시키자 그들의 몸은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이두박근, 삼두박근이 나오고 배에는 왕(王)자가 새겨졌습니다. 남자들은 보디빌딩을 하는 사람들같이 근육이 강해지고 더욱 건강해졌습니다.

  우리는 축복과 고난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축복은 좋고 학대는 나쁘다든지, 고난은 좋고 축복은 나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축복의 상태건 고난의 상태건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복이 되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고난도 화로 바뀌고 축복도 저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고센 땅에서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보호된 환경 속에서 생활했습니다. 애굽은 지리적으로 홍해와 사막으로 막혀서 외부의 침입이 거의 없었습니다. 또 애굽이 강대국이었기 때문에 침입할 세력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어머니의 자궁과 같이 사용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번성하도록 안전하게 키우셨습니다. 가나안 땅은 수많은 민족이 어울려 살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견제를 하여 한쪽이 크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커지면 연합해서 침공을 해왔습니다. 또 고센 땅은 풍요의 땅입니다. 고센 땅은 나일강 하류 삼각주 지역에 위치해서 매우 비옥했습니다. 나일강으로 인해 풍부한 물이 공급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이집트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 자급자족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출을 합니다.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유목민들은 자식을 많이 낳지 못합니다. 유목민은 큰 민족을 이루기 어렵고 군소 민족이 됩니다. 그러나 한 곳에 정착하게 되면 삶이 안정이 되어 자식을 많이 낳고 기를 수 있습니다. 또 농경 생활은 노동력을 많이 요구하기 때문에 자식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이런 좋은 환경에서 번성하게 하셨습니다.

  반대로 새 왕조가 들어서면서 이스라엘을 학대했지만 학대를 받을수록 그들은 더욱 번성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학대를 받으면 번성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로가 이런 정책을 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어떤 특별한 변수가 개입되어 있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신 것입니다. 그때 바로의 계획과 정책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바로가 이스라엘의 번성을 막을 수 없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학대를 받을수록 번성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뜻을 두시고 그들을 복의 근원으로 쓰고자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니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꺾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하고자 뜻을 두시면 반드시 이루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분별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고자 하는 캠퍼스 복음화와 제자 양성, 세계 선교는 하나님의 뜻입니까? 공동체 생활을 통한 제자 양성을 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건축 역사를 이루는 동안 내적인 공동체를 견고하게 세우기를 기도합니다. 

  애굽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자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였습니다.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헬스장을 다니는 사람들같이 근육이 울퉁불퉁해지고 더욱 강건해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더욱 깨어 있게 되었고 민첩해졌습니다. 육신의 게으름을 몰아내고 머리를 써서 더욱 창조적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전쟁 중에 과학은 최고도로 발전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군사들로 연단되어 갔습니다.

  학대 프로젝트로 이스라엘의 인구를 감소시킬 수 없자 애굽 왕은 어떤 잔인한 명령을 내렸습니까? 15,16절을 보십시오.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애굽 왕은 산파 프로젝트를 세웠습니다. 산파들은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죽이라는 살인 명령을 절대군주에게 비밀리에 받았습니다. 십브라와 부아는 매우 갈등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생명을 낳는 일을 돕도록 소명을 받았는데 생명을 죽이라니 이 얼마나 순종하기  힘든 명령입니까? 그러나 절대 군주의 명령인지라 이를 어길 경우에는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생명, 동료들의 생명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갈등과 고통 속에서 이 문제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밤새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였습니까? 17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그녀들은 자기의 목숨을 걸고 갓난아기들을 살렸습니다. 그들이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길 수 있었던 힘은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애굽 왕보다 더 높으신 왕 중의 왕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애굽 왕은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자신들의 몸은 죽일 수 있지만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은 몸과 함께 영혼도 죽이실 수 있는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을 경외했을 때 왕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명령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남자 아기들을 살렸습니다.

  우리도 사명인으로서 영적인 생명을 탄생하도록 돕는 산파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사명을 감당하다보면 원치 않게 허물이 드러납니다. 그로 인해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사명인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한 사람 한 사람 다 내면에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아픔을 감당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드리는 사명인의 수고를 기뻐하십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이 생명을 살리는 일을 계속하자 이 일이 탄로가 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산파의 집에 왕으로부터 소환장이 날라들었습니다. 왕의 소환장을 집어 든 산파 십브라와 브아는 온 몸이 떨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더욱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은 다음날 군사들에게 둘러싸여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애굽 왕이 심문을 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 이때 그들은 담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그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해 버렸습니다.” 히브리 여인들은 엄한 노동 속에 분만이 쉽게 되도록 하는 케겔 운동이 자연스럽게 되었습니다. 산파가 한 말은 단순했습니다. 해산을 돕기 위해서 달려가 보면 여인들이 힘이 좋아서 벌써 애를 낳아 놓고 있더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이 엄청 대단한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왕의 마음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격노를 몰아내시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셨습니다. “오, 그래. 그렇더냐.” 하고 끝이 났습니다. 그들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감사와 찬송을 드렸습니다.

  20,2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산파들의 행동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셨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진심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수고와 고뇌를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졌습니다. 이 말은 산파들의 조산원이 더욱 번성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 그들의 집안을 하나님께서 흥왕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마다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흥왕하게 되었습니다. 자녀들이 변화되고 훌륭하게 성장하고 원수들이 친구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흥하고 망하게 하는 권세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의뢰하는 자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들은 위기를 통해서 믿음을 배우고 한 마음이 되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보호하십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께 적대적인 가치관과 문화와 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핍박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또 다시 문제가 터져 나옵니다. 그들에게 어떤 문제가 터졌습니까? 바로 왕이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22).” 나일 강은 애굽 사람들이 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을 나일 강에 던지는 것은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우월감을 가지고 이런 일을 행했습니다. 왕이 모든 백성들에게 유아 살해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전체 인구가 200만 명이고 매일 출생하는 남아의 수는 100명을 넘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이 박해명령은 잠정적으로 시행되다가 폐지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의 고난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계시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그의 자녀들에게 이러한 고통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은 430년 이상 애굽에 살면서 약속의 땅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렸습니다. 현실에 안주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식어져갔습니다. 그들에게는 애굽에 안주하지 않고 출애굽 하여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 새 역사를 창조하고자 하는 영적 소원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출애굽 하고자 하는 강한 영적 소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기억해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야 할 때가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험한 광야를 지나려면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강인해져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당하는 고통은 다 뜻이 있습니다. 의미 없는 고난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현재 당하는 고난과 시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크고 놀라운 뜻과 섭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크고 놀라운 역사를 기대해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가장 절망적인 때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우리나라도 과거 5000년 역사에서 외침을 900번 이상 받았습니다. 거대한 중국 옆에서 민족성을 지키며 살아남은 나라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민족들이 그들에게 동화되었는데 우리나라와 베트남 정도가 동화되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제 36년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 이후에 동족 간에 이념이 달라서 6.25 동란을 겪었습니다. 5.16 혁명과 4.19 학생 의거가 있었습니다. IMF를 겪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경제규모가 12위에 이르는 나라로 발전했습니다. 이는 경제학자들이 해석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이 있었습니다. 인구대비로 미국 유학생 1위인 나라입니다. 군사력도 10위 안에 드는 나라입니다. 얼마 전에 프랑스에서 각국 나라별로 영향력과 규모에 대한 지도를 그렸는데 우리나라는 아프리카 전체보다 컸고 남미 대륙보다 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을 받을수록 더욱 왕성하게 하셨습니다. 세계사에 우뚝 선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사명인으로 살고자 할 때 계속해서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고난을 받으며 그 속에서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명인으로 사시면서 많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비난과 정죄의 표적이 되셨습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버림을 받으시고 백성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시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모욕과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죄와 허물을 감당하기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우리가 문제들과 고난을 두려워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세상은 감당하지 못합니다. 믿음이 세상을 이깁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은 최후 승리자가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번성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흥왕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복을 주어 그들을 창대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세상에 복이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세상에 복을 나누어 주도록 하기 위해서 먼저 복을 주셨습니다. 그들이 이 사명을 붙잡고 살면 학대를 받을 때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낙심하지 않습니다. 복의 근원으로 쓰임 받게 될 비전이 있으면 학대를 뚫고 일어나는 생명력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신 뜻이 무엇입니까? 성경 공부와 기도와 제자 양성을 통해서 한국과 세계 캠퍼스를 복음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 사는 영적 리더들을 키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6,37).”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없으신 것 같은 상황,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곳에 나와 함께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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