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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08년 성탄 1강(사7:1-14) 그 이름, 임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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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2,046회 작성일 08-12-0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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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성탄 말씀 1강                                                                104
말씀 이사야 7:1-14
요절 이사야 7:14
  그 이름, 임마누엘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메리 크리스마스! 우리 모두 주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오늘 말씀은 이사야를 통해 주시는 성탄 메시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서 처녀 마리아에게 나셨습니다. 이는 놀라운 하나님의 자기 비움입니다. 자기를 낮추고 비우지 않고는 죄인들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기뻐하시고 슬퍼하시고 고통을 나누셨습니다. 그는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인간의 연약함을 깊이 체휼하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그리스도 되신 예수님을 깊이 영접하기를 기도합니다.

  때는 주전 734년에 일어난 일입니다. 유다 왕 아하스는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이십 세에 왕위에 올라 십육 년 동안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었습니다.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자녀들을 불사르고 또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습니다. 그는 몰렉 우상에게 자기 자녀들을 불살라 드렸습니다. 옛날 이방 세계에서는 자기 자식을 귀신의 음식물로 제공하기 위해 불태웠습니다. 이런 제사는 그들이 환난 가운데서 신들의 분노를 멈추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이런 것은 특별히 베니게 족속들 가운데 있었다고 합니다. 아하스의 이런 우상 숭배의 죄 값으로 하나님께서는 주변에 있는 원수들을 일으켜 그를 징계하셨습니다.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습니다. 이때 아하스는 그의 아들 마아세야와 궁내대신, 총리대신을 잃고 용사 12만명을 잃었습니다(대하 28:6). 또 이스라엘 자손이 그 형제 중에서 그 아내와 자녀 합하여 이십 만명을 사로잡고 그 재물을 노략하여 사마리아로 가져갔습니다(대하 28:8). 아하스가 유다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여호와께 크게 범죄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유다를 낮추셨습니다(대하 28:19). 그러나 하나님은 유다를 아주 망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윗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사 긍휼을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다시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여 유다를 치고자 했습니다. 그들이 유다를 치는 이유는 그것을 무너뜨리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으로 삼고 자기들이 마음대로 주무르고자 했기 때문입니다(6). 아람과 에브라임이 동맹하였다는 말을 듣고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습니다. 아람과 이스라엘에게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유다 백성들은 두려웠습니다.

  두려움이 왜 문제가 될까요?  두려움은 지옥행 1호의 죄악입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우상을 신뢰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상황을 자기 힘으로 제어할 수 없고 피해를 입어 죽음에 이르게 되기에 두려워합니다. 두려움에는 심판이 따릅니다. 사람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면 머리가 쭈뼛쭈뼛해지고 손발이 마비되고 혈압이 높아집니다. 두려움과 불안은 실제로 발생하기 전의 위험들을 예상하여 삶의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문제는 두려움과 불안이 반복되면서 통제가 불가능하고 합리성에 무감각하고 불안한 사태를 하나의 관점에서 밖에 볼 수 없게 합니다. 이러한 두려움과 불안이 반복되면 신경 상실증과 함께 공포증, 편집 강박증, 불안 발작증 등 병적인 증세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들은 오로지 두려운 상황에만 집중하여 재난을 예방하겠다는 생각에만 집중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실제로 어떤 두려움이 있습니까? 학생들은 학점과 장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군대 훈련에 대한 두려움, 안정되고 비전이 있는 직장에 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친구 관계가 깨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사십이 넘어서면 목자님들은 건강에 대한 염려가 생깁니다. 한 목자님은 지금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의 대학 등록금으로 인해서 걱정으로 하고 있습니다. 딸이 대학을 갈 때에 한 학기 등록금이 천만 원이 넘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를 불안하게 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마다 두려운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려움에 어떻게 직면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서 아하스 왕을 어떻게 위로하셨습니까?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3,4).” “삼가며 조용하라”는 말씀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다만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바라보라는 명령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서 마음이 지켜집니다. 조용히 하나님을 바라보기 위해서 기도만큼 좋은 것이 없습니다. 모세는 홍해 앞에서 추격해오는 애굽 군대로 인해서 두려워 떨고 있던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14:13).” 두 연합군은 작은 세력이 아닌데 하나님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활활 타오르는 불을 끄기는 어렵지만 부지깽이에 붙은 연기 나는 불은 어린 아이라도 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하스 왕에게 아람과 르말이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쓰러뜨리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무너뜨리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을 삼자 하였으나 주 여호와의 말씀에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육십오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망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아람과 북이스라엘 연합군은 곧 그 세력이 다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아람은 2년 뒤에 망했고, 이스라엘은 12년 뒤인 722년 앗수르에게 망했습니다. 북이스라엘에는 앗수르인들이 들어와서 살므로 그들은 잡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을 가질 때 굳게 설 수 있습니다. 위기의 때에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오면 소망이 있습니다. 9b절에서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사람이 굳게 서는 것은 손금에 달린 것도 아니요 별자리에 달린 것도 아니요 혈액형에 달린 것도 아닙니다. 사람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못을 박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아이큐가 낮아서, 키가 작아서, 능력이 부족하여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빽이 없어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믿음에 서면 누구라도 성공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 인생이 변화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고 믿음이 생기면 아무리 강력한 장애물이라도 물리치고 큰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하스에게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해서 징조를 구하라고 하십니다.10,1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하나님께서는 아하스에게 믿음을 심기 위해서 그의 수준에서 도와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으니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십니다. 여호수아처럼 태양과 달을 멈추게 하던지 히스기야처럼 태양을 뒤로 움직이던지, 땅을 진동시키던지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아하스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고 대답했습니다. 그의 이 말은 겉보기에는 아주 겸손하고 경건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겸손한 것이 아니라 이미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하였고 그 힘을 의지하고 있는 탓에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믿지 않고 징조도 구하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불신하는 이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까?

아하스가 징조를 구하지 않겠다고 하자 이사야 선지자는 그를 책망합니다.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를 책망합니다. 하나님은 징조를 행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믿어주지 않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일하시지만 우리와 함께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고향에서 사람들을 고치고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들의 불신으로 인해서 기적을 행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하스 왕과 유다 백성들에게 친히 무슨 징조를 약속하셨습니까? 14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탄생하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마태는 이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증거했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하셨을 때 그들의 인생이 복을 받고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을 보고 아비멜렉은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백세나 되어 아이를 낳고 이삭이 흉년 중에도 백배의 축복을 받는 것을 보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야곱은 고향을 떠나 밧단아람으로 갈 때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자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야곱의 꿈에 나타나서 그가 고향으로 돌아올 때까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대로 야곱과 함께 해 주셨습니다. 야곱과 함께 하사 라반과 에서의 속임과 위협으로부터 보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과도 함께 해 주셨습니다. 요셉이 꿈 때문에 형들의 시기로 노예로 팔려가고 보디발 여사의 죄로 인해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습니다. 아무도 요셉과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해주셨습니다. 함께 하신 하나님은 노예 신분을 벗어나게 하거나 죄수의 누명을 벗어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노예로 있든지, 죄수로 있든지 언제나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그 상황 속에서 형통하게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를 때도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하셨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열 가지 재앙이 내리게 하셨습니다. 홍해가 갈라지게 하셨고 바위에서 샘물이 나게 하셨습니다. 하늘에서는 만나를 내려 주셨고 메추라기를 내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와도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함께 하셨을 때 두려워하지 않고 놀라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여 가나안 정복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요단강이 멈추고 태양이 멈추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도 함께 하셔서 그의 나라를 점점 강성하게 해주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증거합니다. 이사야 41장 10절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두렵지 않습니다. 놀라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나를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나를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은 무엇입니까? 돈을 버는 것도 잠깐이요 좋은 학점을 얻고 취직하는 것도 그때뿐입니다. 좋은 집으로 이사를 하고 자녀들의 복을 받는 것도 잠깐입니다.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 누구와 함께 하십니까? 하나님은 바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사람과 함께 해주십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사람들과 하나님은 함께 해주십니다. 예수님을 인생의 첫 자리에 모신 사람들과 함께 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 은혜를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38년된 중풍병자는 더 이상 베데스다에 가장 먼저 들어갈 용기도 없고, 힘도 없으니, 차라리 저 한 많은 베데스다 연못에 뛰어들어서 죽어 버려야 하겠다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명절에 그를 찾아오셨고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시면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다섯 남편을 두고 한 남자와 동거를 했지만 고독했습니다. 그래서 뜨거운 정오에 혼자서 물을 길러 나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뙤약볕에서 그녀와 함께 하시면서 영혼의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기심으로 인해서 돈은 벌었지만 외톨이가 된 세리 마태와도 함께 해 주셨습니다. 3년 동안 그의 죄를 감당해 주시면서 사도 마태가 되도록 함께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말씀이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불가능한 일이 가능하게 됩니다. 아하스 왕에게 이 예언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것이 그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이는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시고 인간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친히 일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가 깊고 변화되지 않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절망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저도 제자 양성 역사를 섬기면서 가장 힘든 것은 내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점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변화시킬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자가 양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훈련으로 사람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잔소리를 한다고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성령으로 일하십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심을 다해서 연구하고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심겨지면 사람은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체험하는 사람은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는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가시’가 다 있습니다. 그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후 12:9)”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그 가시를 견뎌야 합니다. 참는 가운데 자신감이 커집니다. 자신감이 생기면 어떤 일이든지 해 낼 수 있습니다. 

니키는 중학교 1학년일 때 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니키는 학교에서 유명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녀는 치어 리더였고, 항상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백혈병 치료를 위해서 화학치료를 받다보니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머리카락이 다 빠진다는 것은 너무도 비참한 일이었습니다. 그것도 사춘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여학생이! 니키는 2학년이 되기 전에 가발을 샀습니다. 가발을 쓴 그녀는 아무래도 이상하게 보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불행에 처한 그를 놀리고 장난을 치면서 묘한 쾌감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2학년이 되어서 처음 이주일 동안 아이들은 뒤에서 열 번도 넘게 니키의 가발을 벗기며 장난을 쳤습니다. 당황한 니키는 몸을 숙여 두려움에 떨면서 가발을 다시 쓰곤 했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닦으며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아무도 그녀의 편이 되어 주지 않는 이유를 니키는 알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보름 동안 고통스럽게 계속되었습니다. 마침내 니키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부모님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머리가 빠지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건 참을 수 있어요.” 그녀는 심지어 인생이 끝나는 것까지도 자신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것 역시 난 참을 수 있어요. 하지만 친구를 잃는 것이 어떤 건지 아세요? 내가 복도를 걸어가면 마치 모세가 바다를 가르듯이 아이들이 양쪽으로 갈라진다고 상상해 보세요. 내가 다가오고 있다는 그 사실 때문에 말예요. 또 모두가 좋아하는 피자가 나오는 날 학교 식당으로 들어가면 나 때문에 아이들은 반쯤 먹다 말고 자리를 뜨죠.그들은 더 이상 배가 고프지 않다고 말해요. 하지만 사실은 내가 같은 테이블에 앉으니까 달아나는 것뿐이에요. 내가 쓰는 학교 사물함의 왼쪽 오른쪽 칸은 늘 비어 있어요. 가발을 쓴 이상한 여자애, 기이한 병을 앓고 있는 애와 나란히 사물함을 쓰기 싫다는 이유 때문에  아이들은 다른 애의 사물함에다 책을 포개 놓죠. 내 병이 전염성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예요.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친구라는 사실을 아이들은 모르를 걸까요? 하나님을 믿는다면 영원한 삶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난 죽는 게 두렵지 않아요. 머리칼이 빠지는 것도 아무것도 아네요. 하지만 친구를 잃는다는 건 정말 견딜 수 없는 일이에요.” 니키는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만 있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하나님과 함께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초등학교 6학년 소년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녀는 누가 자신의 진정한 친구인지 알아낼 요량으로 가발을 쓰지 않고 6백 명의 학생들 속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니키가 운동장을 지나 교실로 들어가는 동안 아무도 니키를 못살게 굴지 않았습니다. 단 한 명도 진정한 용기를 지닌 이 소녀를 놀릴 수가 없었습니다. 니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후에는 결혼까지 하게 되어 사랑스런 딸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날마다 힘을 얻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느낍니까? 어떤 분은 감사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새벽에 기도하면서 찬송할 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낍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면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습니다. 어떤 분은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기도 하고 분주하게 일하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수양회에 가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잘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자 있으면서 말씀을 묵상해야 은혜를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각자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잘 감지할 수 있는 자신만의 오솔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길에서 끝까지 버텨야 합니다. 버티는 사람이 결국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불신으로 가득 찬 아하스 왕에게 가장 은혜로운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역발상의 천재이십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성장합니다. 어려울 때 믿음으로 도전하고 개척하는 사람들이 역사의 주인공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불가능이 없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굳게 서게 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시작한 일을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사 이 겨울에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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