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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023년 행3강(3:1-26)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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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55회 작성일 23-07-02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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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도행전 제 3 강
말씀 | 사도행전 3:1-26
요절 | 사도행전 3:6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늘 말씀은 베드로와 요한이 날 때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을 예수님의 이름 권세로 일어나 걷게 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오 창조주시오 구세주요 심판자요 만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의 이름 권세가 제자들을 통해서 어떻게 역사하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 사건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소개하고 복음을 영접하도록 돕습니다. 이때 믿는 자가 오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만왕의 왕으로서 전 세계를 통치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힘입어 구원 역사를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1-10). 오후 3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때였습니다. 성전 미문에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돈이 있었다면 적선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호주머니에는 돈이 없었습니다. 옛날 같으면 베드로는 슬픈 기색을 하며 자신과 이 사람의 처지를 운명적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고 이 사람이 이렇게 된 것이 누구의 죄인지를 물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가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갈 때에 도와야 할 사람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보고 따라갈 수 있습니다. 기도는 덫과 같습니다. 기도할 때에 기회를 포착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요한과 더불어 구걸하는 그를 주목하였습니다. “우리를 보라!” 보통 내가 도와줄 돈이 없으면 구걸하는 사람을 회피하게 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에게 줄 것이 있었습니다.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베드로가 얼마나 줄지, 5만원을 줄지, 저금통장을 깨뜨려서라도 도와줄지를 바라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를 어떻게 도와줍니까?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그는 솔직하게 자신에게 돈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권세가 있습니다. 그는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 권세로 일어나 걸으라고 명령합니다. 당시에는 예수라는 이름이 많아서 나사렛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나사렛이란 사람들이 멸시의 뜻으로 썼습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의 이름 속에는 사랑과 권능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분이십니다. 그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권세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문둥병자를 깨끗이 낫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중풍으로 38년 동안 누워 꼼짝 못하는 병자를 일어나 걷게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죄로 인해서 절망적인 인생을 살아가던 수많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3,14).” 베드로는 이런 예수님의 약속과 이름 권세를 가지고 앉은뱅이를 일어나 걷게 합니다.

  그가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그는 40년 동안 성전 미문에 앉아 있었지만 앉은뱅이라서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문 앞에까지만 가고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는데 몸이 온전히 회복되자 먼저 성전 안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저는 목자가 되고 10년 동안 공항에 선교사님들 환송과 영접을 나가면서도 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도 수속을 하고 당당히 공항 안으로 들어갈 때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와 같이 그는 성전 안에서 걷기도 하며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랐습니다.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까요? 반대로 돈이 많으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할 때 나에게 돈이 얼마나 있는지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내가 꼭 해야 하는지를 생각합니다. 소원이 강하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돈은 따라옵니다. 베드로는 이 사람의 근본문제를 도와줍니다. 만일 베드로와 요한이 돈을 주었다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잠시 배부르게 하고 몸을 따뜻하게 해줄 수는 있었지만 거지생활에서 벗어나게 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고기를 잡아주기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개척하고 정복하고 창조하는 인생을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도 사람들을 도울 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자립적으로 감당하는 사람이 되도록 도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통해서 날 때부터 걷지 못하던 이 사람의 인생이 자립적인 사람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 권세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치유되고 있습니다. 허무한 생각으로 무기력한 삶을 살던 청년이 예수님의 이름 권세로 죄사함을 얻고 의미있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정욕으로 인해서 몸과 마음이 파괴된 사람이 죄사함을 받고 일어나 걸으며 거룩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가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을까 바라보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이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의지하여 앉아 있는 자리에서 일어나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기도하며 자립적인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금과 은으로 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나의 고질병을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믿음으로 치료받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베드로의 설교(11-26).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았습니다. 그는 왜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았을까요?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였을까요? 사람들에게 그들을 드러내고자 했을까요?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에 모였습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보고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베드로는 자신에게 주목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도록 증거하기 시작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단도직입적으로 그들의 죄를 지적합니다.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빌라도가 놓아 주려고 하던 생명의 주, 예수님을 너희가 죽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셨습니다.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다고 증거합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다고 증거합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창시자요 믿음의 완성자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만성질환이 치유가 됩니다. 부활의 역사가 베드로와 이 사람 속에도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믿음은 우리를 전능하신 예수님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마음으로 믿는 믿음은 결국 행동으로 나타나고 순종으로 표현됩니다. 그때 놀라운 예수님의 권능을 체험하게 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구원받는 것은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믿음은 내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하게 주님께 긍휼히 여겨주시도록,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을 덧입을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믿음을 주시고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예수님을 믿을 것을 어떻게 권면합니까?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베드로는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했다.” “너희 관리들도 알지 못해서 그리했다.”라고 말함으로 목자의 심정으로 죄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성취했다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죄책감과 배은망덕한 자신들의 마음을 바라볼 때 탄식이 나왔습니다. 그들이 무지한 상태에서 행한 일들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구원 계획이 성취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지혜로 이루신 구원 역사입니다. 이때 베드로가 어떻게 그들을 도와줍니까?

  19-2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회개하고 죄 없이 함을 받을 때 새롭게 되는 날이 이른다는 말은 상쾌하게 되는 날이라고 개역 성경에는 되어 있습니다. NIV는 “times of refreshing”으로 번역했습니다. 회개란 자신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죄의 길에서 돌이켜서 하나님의 길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유대인들은 생명의 주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에 가담한 죄를 인정하고 진실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체한 것처럼 심령이 답답합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겁게 놀고자 하고, 좋은 집에서 편안히 있어도 불안과 두려움이 끊이지 않습니다. 인생이 허무하게 여겨집니다. 자기 욕심을 따라서 열심히 살지만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면, 마음의 불안과 두려움과 허무함이 사라집니다. 마음이 상쾌하고 힘이 생겨서 삶의 의욕이 넘칩니다. 인생이 허무하지 않고 내일 죽는다고 하더라도 두렵지 않습니다. 진실하게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은 비록 육신은 쇠하지만 영혼은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저는 UBF에 와서 소감을 써서 나눌 때에 속이 뻥 뚫리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 전에는 믿음의 친구들과 함께 있지만 비닐과 같은 막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감을 나누면서 자신의 죄와 허물을 다 드러내고 말씀 안에서 교제할 때에 마음 속으로부터 기쁨이 생겼습니다. 마음에 막힌 것이 없으니 자유롭고 담대해졌습니다. 우리가 서로 죄를 고하며 병 낫기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영육간의 질병들을 치료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 건강할 때 모든 것이 새롭게 됩니다. 내가 새롭게 되면 나의 가정이 새롭게 되고 이 사회가 새롭게 회복이 됩니다. 심지어 자연만물까지도 회복하게 됩니다. 우리가 죽으면 육체는 한 줌의 흙이 되지만 영혼은 하나님의 품에서 안식합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서 살 수 있는 강하고 신령하고 거룩한 부활의 몸을 입게 됩니다. 모든 만물이 회복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것이 믿는 자들의 참된 소망입니다.
 
  베드로는 그들이 잘 아는 구약 성경을 인용하여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예수님과 모세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압제로부터 구원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로부터 믿는 자를 구원하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셔서 진리대로 살게 해주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 종으로 헌신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충성하셨습니다.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이 선지자들의 자손들이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이런 약속된 축복을 유대인들이 먼저 받을 수 있도록 예수님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족속을 복 주시려고 그의 종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각각 회개하고 돌이켜서 그 악함을 버려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이렇게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담대하게 회개를 촉구했을 때 남자만 5천명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의지하여 말씀을 전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이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4:4).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에게 복을 주기 위해서 죄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메시지 결론입니다. 참된 축복은 진실한 회개로부터 옵니다. 우리는 좀처럼 죄에서 돌이키기가 어렵습니다. 죄의 관성이 있고, 죄에는 쾌락이 있습니다. 자기 뜻대로 살고 싶은 소망 때문에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사실 회개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부드럽게 하실 때 회개하기가 좋습니다. 이 시간 주님께서 은혜를 주실 때 회개합시다. 우리가 깊이 회개하고 새롭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 만민을 복주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복을 받고 남을 복되게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가장 복 받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계 만민을 복주기 위해서 나를 복 주시는 하나님, 우리 교회를 복 주시는 하나님, 이 나라를 복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세계에 대해서 복을 나누어 주는 삶을 계속 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이 나라를 계속해서 복 주시고 제사장 나라로 쓰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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