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09년 출16강(28:1-31:17) 영화롭고 아름다운 제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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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출애굽기 공부 16강
말씀 출애굽기 28:1-31:17
요절 출애굽기 28:2
영화롭고 아름다운 제사장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제사장의 직분이 얼마나 귀한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제사장의 복장은 영화롭고 아름다웠습니다. 구약에서는 아론의 자손들이 제사장 직분을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와 연합된 신자들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심을 입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제사장으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그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영화롭고 아름다운 제사장의 옷(28:1-5)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 중 그의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 곧 아론과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부르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1). 구약에서 제사장 직분은 아무나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세우신 아론의 자손들이 이를 감당했습니다. 제사장은 아라비아 언어로서 중개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중보자로서 사람들의 문제를 짊어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알리며 백성들에게 종교적 교훈을 가르치는 직분이었습니다. 이러한 제사장의 직분을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그 후손들에게 맡기셨습니다. 히브리서 5:4에 보면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의 제사장에게만 주어졌던 이 거룩한 특권이 신약 시대에 와서는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죄사함을 받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왜 그렇게 귀합니까? 이는 그가 전하는 말씀을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직분도 아름답지만 은혜의 직분은 더욱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중보기도를 하고 죄사함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는 것은 특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그렇게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영화롭고 아름다운 옷을 지어 입히심으로 그의 연약함을 가리시고 제사장의 권위를 세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외모를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속성을 아시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옷을 아름답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의 삶이 거룩해야 그가 입은 옷도 가치를 발휘할 것입니다. 옷만 거룩하고 속은 추하다면 사람들은 제사장을 외식하는 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제사장은 내면의 아름다운 인격이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신약의 제사장된 그들의 내면성이 어떠해야 하는지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심령이 가난하고 죄에 대해서 애통하고 마음이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며 마음이 청결하며 사람 사이를 화평하게 하며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의 옷을 영화롭고 아름답게 한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의 직분이 그렇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2-14)”고 권면합니다. 빛의 갑옷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입는 의의 옷입니다. 이 의의 옷을 입어야만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 직분을 감당할 자격이 있습니다.
둘째, 에봇(6-14) : 그러면 그들이 입어야 할 옷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아론이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에봇은 대제사장이 흉패 밑에 입는 앞치마 같은 것으로서 꼭 맞고 팔 없는 겉 조끼 입니다. 다양한 치수가 있으나 대체로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윗부분에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긴 호마노가 달린 어깨받이로 앞과 뒷 부분을 연결시킨 에봇을 입었습니다. 그 밖의 제사장들은 간소한 에봇을 입었습니다. 이는 세마포 에봇이라 불리웠고 별다른 장식도 없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입는 에봇은 호마노 두 개 위에 이스라엘 지파의 이름을 여섯씩 쓰라고 하셨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 두 보석을 에봇의 두 어깨받이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워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 제사장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깨에 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문제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중보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사죄의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축복해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제사장은 사역자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종이요 일꾼입니다. 우리가 캠퍼스 복음화에 부르심을 입고 목자로 살고 있습니다. 내가 섬기는 양들을 매일 마음에 품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요회와 센터의 양들을 위해서, 동역자들을 위해서,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하는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사무엘은 사사로서 백성들을 위해서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말했습니다(삼상 12:23). 양들을 위해서 중보 기도하는 일은 목자의 의무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서 매일 중보기도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 7:25).”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내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분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어머니, 아버지를 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친구들, 동역자들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 줄 수 있는 양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있는 분들은 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제사장들로서 기도의 직분을 잘 감당하기를 바랍니다.
셋째, 판결 흉패(15-30) : 대제사장은 가슴에 판결 흉패를 붙여야 합니다. 판결 흉패는 가로 세줄, 세로 세줄로 보석을 박았습니다. 첫째 줄은 홍보석(루비), 황옥(토파즈), 녹주옥(가멧)이요 둘째 줄은 석류석(에머랄드), 남보석(사파이어) 홍마노(다이아몬드)요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종이요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다 금 테에 물렸습니다. 색깔도 빨강, 금색, 녹색, 연녹색, 청색, 연황색, 오렌지색, 자색, 연두색, 빨강검정희색이 겹겹이 쳐진 색 등으로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의 가슴에 이 판결흉패를 붙이게 하셨습니다. 그 흉패 보석에는 이스라엘 12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보석은 귀중함과 영광스러움을 나타내 줍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12 지파가 하나님 앞에서 보석과 같이 귀하고 영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깨닫도록 한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 앞에서 중보의 기도를 감당하고 계심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석과 같이 귀하고 영광스러운 존재로 여기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십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림과 둠밈은 하나님의 뜻을 가려내는 제비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민27:21). 대제사장은 이 우림과 둠밈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알려 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림과 둠밈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메시지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또 알려진 뜻에 의해서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 우림과 둠밈은 없지만 말씀은 우리의 삶에 가장 완벽한 인도와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빛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침마다 성경을 열어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 앞에 우리의 생을 의탁해야 합니다. 그럴 때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해서 길을 인도해 주던 놀라운 그 인도가 우리의 생애 속에서도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은 소아시아에 복음을 전하고자 했지만 성령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성령께서 막으시므로 그는 소아시아 전도를 포기하고 유럽 선교로 방향을 전환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길을 막으시면 다른 길을 여십니다. 우리는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넷째, 금방울, 패(31-43) : 34,35절을 보십시오.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한 금 방울, 한 석류, 한 금 방울, 한 석류가 있게 하라. 아론이 입고 여호와를 섬기러 성소에 들어갈 때와 성소에서 나올 때에 그 소리가 들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에봇 받침 겉옷에 금방울을 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금방울 소리가 들리면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이 들어가며 울린 것은 하나님께 먼저 알리는 경외심을 의미하고, 나오면서 울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으셨다는 것이며, 이때 대제사장은 기쁨과 감사와 희열에 넘쳐 딸랑딸랑 금방울 소리를 내면서 지성소에서 걸어 나올 수 있습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를 열납하지 않으실 때가 있습니다. 해결되지 않는 민족적 범죄가 있을 때, 혹은 어느 개인의 문제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속죄 제사를 받지 않으실 때는 대제사장이 죽습니다. 이는 대제사장의 대속적인 사역 때문 일 것입니다. 그러면 제사가 끝나도 금방울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금방울 소리는 모든 무거운 문제를 대신 짊어지고 들어간 대제사장의 나옴을 기다리는 백성들에게 위대한 복음의 종소리였습니다. 또한 석류는 상쾌한 냄새, 달콤한 그 맛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금방울은 아름다운 소리를 상징하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사명이 있음을 깨우쳐 주는 뜻이 있습니다.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사명을 온전히 감당치 못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경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36절을 보십시오. “너는 또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이라 하고” 이 패를 아론의 이마에 두어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과 관련된 죄책을 담당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제사장은 성결해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성결해야 합니다. 그 패는 아론의 제사를 통해서 여호와께 거룩함을 회복하게 됨을 알게 해 주는 뜻도 있습니다. 백성들 스스로는 여호와께 나아가지 못합니다. 제사장을 통해서 여호와께 성결해져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의 이마에 있는 패는 백성들의 성결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임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38절을 보면 이 패가 있음으로 하나님께서 성물을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듣지 아니하십니다. 그러나 성결한 마음으로 드린 기도와 헌물과 헌신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순수함을 원하십니다.
29장은 제사장의 위임식에 대한 내용입니다. 제사장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어린 양을 번제로 드리고 향을 사르라고 했습니다. 향을 사르는 것은 기도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는 것이지만 사실은 하나님께 듣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 시간입니다.
전체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제사장의 예복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사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역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십니다(히7:24,25). 또한 그리스도를 뒤따르고 있는 신자들이 어떤 삶을 걸어가야만 하는가에 관한 교훈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교회는 이 세상에 대해서 제사장직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방인들을 하나님께서 받으심직한 제물로 드리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구주이신 예수님께 나아가도록 중재하는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개인 신앙을 넘어서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야 하는지 숙고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말씀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요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의 아름다운 덕을 힘써 선포하기를 기도합니다.
전남 신안군 증도에는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지가 있습니다. 문전도사는 17살에 증도로 시집을 왔습니다. 이미 딴 살림을 차린 신랑은 초야도 치르지 않고 떠나버렸습니다. 남편 없는 시집살이 20년 뒤 시부모 마저 세상을 뜨자 그는 재봉틀 하나를 들고 오빠가 있던 목포고 나갔습니다. 거기서 이성봉목사가 개척한 북교동교회 전도대원을 만나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남편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을 교회에서 체험한 그는 “내가 받은 예수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야겠다” 결심하고 신안 앞바다의 수많은 섬을 다니면서 전도했습니다. 문전도사가 해질녘 동네 어귀 언덕에 올라가 조용히 노래를 불렀습니다. 라디오가 없던 시절 섬마을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듣기 위해 언덕에 모여들었습니다. ‘천당가’ ‘예수 사랑하심은’ 같은 찬송을 들려준 뒤 노랫말을 풀어 설명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문 전도사의 순교비에는 그를 ‘병든 자의 의사, 아해 낳는 집의 산파, 문맹퇴치 미신타파의 선봉자, 우리들의 어머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마을과 마을을 다니며 잔치집에서 음식을 얻어 굶주리는 이에게 나눠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주고, 병든 사람을 만나면 가슴 아파하며 기도했습니다. 학교도 없는 섬마을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바닥에 나무로 글씨를 써가며 한글을 가르쳐주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증도면 일대 27개 섬에 10개의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나룻배를 타고 산길을 걸어다니며 복음을 전하느라 고무신 밑창이 닳아 1년에 아홉켤레를 갈아 신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증도 일대 2000여명 주민이 90%가 예수님을 믿게 됐고 100명에 가까운 목회자가 배출되었습니다. 김준곤(CCC총재), 이만신(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목사 등이 문전도사가 믿음으로 낳은 ‘자녀’입니다. 6.25전쟁이 나자 공산주의자들이 문 전도사를 체포하였지만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그를 즉결처분하지 못하고 목포로 보냈습니다. 이후 국군이 들어와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증도로 돌아갔다가 결국 새벽녘 바닷가 모래밭에서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 죄 많은 이 영혼을 받으소서”라는 기도를 끝으로 숨졌습니다.
결론적으로 제사장은 백성들을 어깨에 메고 가슴에 품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영화롭고 아름다운 직분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니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도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신령한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신약을 사는 모든 크리스천들은 제사장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고 하나님을 삶 가운데서 거룩하게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인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교제하고 예배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출애굽기 28:1-31:17
요절 출애굽기 28:2
영화롭고 아름다운 제사장
“네 형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제사장의 직분이 얼마나 귀한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제사장의 복장은 영화롭고 아름다웠습니다. 구약에서는 아론의 자손들이 제사장 직분을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와 연합된 신자들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심을 입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제사장으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그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영화롭고 아름다운 제사장의 옷(28:1-5)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 중 그의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 곧 아론과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부르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1). 구약에서 제사장 직분은 아무나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세우신 아론의 자손들이 이를 감당했습니다. 제사장은 아라비아 언어로서 중개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의 중보자로서 사람들의 문제를 짊어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알리며 백성들에게 종교적 교훈을 가르치는 직분이었습니다. 이러한 제사장의 직분을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그 후손들에게 맡기셨습니다. 히브리서 5:4에 보면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의 제사장에게만 주어졌던 이 거룩한 특권이 신약 시대에 와서는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죄사함을 받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이 왜 그렇게 귀합니까? 이는 그가 전하는 말씀을 통해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직분도 아름답지만 은혜의 직분은 더욱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중보기도를 하고 죄사함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는 것은 특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론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그렇게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영화롭고 아름다운 옷을 지어 입히심으로 그의 연약함을 가리시고 제사장의 권위를 세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외모를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속성을 아시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는 옷을 아름답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의 삶이 거룩해야 그가 입은 옷도 가치를 발휘할 것입니다. 옷만 거룩하고 속은 추하다면 사람들은 제사장을 외식하는 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제사장은 내면의 아름다운 인격이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신약의 제사장된 그들의 내면성이 어떠해야 하는지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심령이 가난하고 죄에 대해서 애통하고 마음이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며 마음이 청결하며 사람 사이를 화평하게 하며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의 옷을 영화롭고 아름답게 한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의 직분이 그렇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2-14)”고 권면합니다. 빛의 갑옷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입는 의의 옷입니다. 이 의의 옷을 입어야만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 직분을 감당할 자격이 있습니다.
둘째, 에봇(6-14) : 그러면 그들이 입어야 할 옷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그들이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지어 아론이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에봇은 대제사장이 흉패 밑에 입는 앞치마 같은 것으로서 꼭 맞고 팔 없는 겉 조끼 입니다. 다양한 치수가 있으나 대체로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윗부분에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긴 호마노가 달린 어깨받이로 앞과 뒷 부분을 연결시킨 에봇을 입었습니다. 그 밖의 제사장들은 간소한 에봇을 입었습니다. 이는 세마포 에봇이라 불리웠고 별다른 장식도 없었습니다. 대제사장이 입는 에봇은 호마노 두 개 위에 이스라엘 지파의 이름을 여섯씩 쓰라고 하셨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 두 보석을 에봇의 두 어깨받이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워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 제사장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어깨에 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문제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중보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사죄의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축복해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제사장은 사역자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종이요 일꾼입니다. 우리가 캠퍼스 복음화에 부르심을 입고 목자로 살고 있습니다. 내가 섬기는 양들을 매일 마음에 품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요회와 센터의 양들을 위해서, 동역자들을 위해서,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하는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사무엘은 사사로서 백성들을 위해서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말했습니다(삼상 12:23). 양들을 위해서 중보 기도하는 일은 목자의 의무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서 매일 중보기도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 7:25).”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내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분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어머니, 아버지를 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친구들, 동역자들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 줄 수 있는 양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있는 분들은 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제사장들로서 기도의 직분을 잘 감당하기를 바랍니다.
셋째, 판결 흉패(15-30) : 대제사장은 가슴에 판결 흉패를 붙여야 합니다. 판결 흉패는 가로 세줄, 세로 세줄로 보석을 박았습니다. 첫째 줄은 홍보석(루비), 황옥(토파즈), 녹주옥(가멧)이요 둘째 줄은 석류석(에머랄드), 남보석(사파이어) 홍마노(다이아몬드)요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종이요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다 금 테에 물렸습니다. 색깔도 빨강, 금색, 녹색, 연녹색, 청색, 연황색, 오렌지색, 자색, 연두색, 빨강검정희색이 겹겹이 쳐진 색 등으로 아주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의 가슴에 이 판결흉패를 붙이게 하셨습니다. 그 흉패 보석에는 이스라엘 12 지파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보석은 귀중함과 영광스러움을 나타내 줍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12 지파가 하나님 앞에서 보석과 같이 귀하고 영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깨닫도록 한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 앞에서 중보의 기도를 감당하고 계심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보석과 같이 귀하고 영광스러운 존재로 여기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십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림과 둠밈은 하나님의 뜻을 가려내는 제비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민27:21). 대제사장은 이 우림과 둠밈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알려 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림과 둠밈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메시지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또 알려진 뜻에 의해서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 우림과 둠밈은 없지만 말씀은 우리의 삶에 가장 완벽한 인도와 빛이 될 수 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빛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침마다 성경을 열어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 앞에 우리의 생을 의탁해야 합니다. 그럴 때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해서 길을 인도해 주던 놀라운 그 인도가 우리의 생애 속에서도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은 소아시아에 복음을 전하고자 했지만 성령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성령께서 막으시므로 그는 소아시아 전도를 포기하고 유럽 선교로 방향을 전환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길을 막으시면 다른 길을 여십니다. 우리는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넷째, 금방울, 패(31-43) : 34,35절을 보십시오.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한 금 방울, 한 석류, 한 금 방울, 한 석류가 있게 하라. 아론이 입고 여호와를 섬기러 성소에 들어갈 때와 성소에서 나올 때에 그 소리가 들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에봇 받침 겉옷에 금방울을 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금방울 소리가 들리면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이 들어가며 울린 것은 하나님께 먼저 알리는 경외심을 의미하고, 나오면서 울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으셨다는 것이며, 이때 대제사장은 기쁨과 감사와 희열에 넘쳐 딸랑딸랑 금방울 소리를 내면서 지성소에서 걸어 나올 수 있습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를 열납하지 않으실 때가 있습니다. 해결되지 않는 민족적 범죄가 있을 때, 혹은 어느 개인의 문제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속죄 제사를 받지 않으실 때는 대제사장이 죽습니다. 이는 대제사장의 대속적인 사역 때문 일 것입니다. 그러면 제사가 끝나도 금방울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금방울 소리는 모든 무거운 문제를 대신 짊어지고 들어간 대제사장의 나옴을 기다리는 백성들에게 위대한 복음의 종소리였습니다. 또한 석류는 상쾌한 냄새, 달콤한 그 맛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금방울은 아름다운 소리를 상징하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사명이 있음을 깨우쳐 주는 뜻이 있습니다. 대제사장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사명을 온전히 감당치 못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경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36절을 보십시오. “너는 또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이라 하고” 이 패를 아론의 이마에 두어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과 관련된 죄책을 담당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제사장은 성결해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성결해야 합니다. 그 패는 아론의 제사를 통해서 여호와께 거룩함을 회복하게 됨을 알게 해 주는 뜻도 있습니다. 백성들 스스로는 여호와께 나아가지 못합니다. 제사장을 통해서 여호와께 성결해져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의 이마에 있는 패는 백성들의 성결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임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38절을 보면 이 패가 있음으로 하나님께서 성물을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듣지 아니하십니다. 그러나 성결한 마음으로 드린 기도와 헌물과 헌신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순수함을 원하십니다.
29장은 제사장의 위임식에 대한 내용입니다. 제사장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어린 양을 번제로 드리고 향을 사르라고 했습니다. 향을 사르는 것은 기도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는 것이지만 사실은 하나님께 듣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 시간입니다.
전체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제사장의 예복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사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역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십니다(히7:24,25). 또한 그리스도를 뒤따르고 있는 신자들이 어떤 삶을 걸어가야만 하는가에 관한 교훈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교회는 이 세상에 대해서 제사장직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방인들을 하나님께서 받으심직한 제물로 드리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구주이신 예수님께 나아가도록 중재하는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개인 신앙을 넘어서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야 하는지 숙고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말씀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요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의 아름다운 덕을 힘써 선포하기를 기도합니다.
전남 신안군 증도에는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지가 있습니다. 문전도사는 17살에 증도로 시집을 왔습니다. 이미 딴 살림을 차린 신랑은 초야도 치르지 않고 떠나버렸습니다. 남편 없는 시집살이 20년 뒤 시부모 마저 세상을 뜨자 그는 재봉틀 하나를 들고 오빠가 있던 목포고 나갔습니다. 거기서 이성봉목사가 개척한 북교동교회 전도대원을 만나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남편에게 받지 못했던 사랑을 교회에서 체험한 그는 “내가 받은 예수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야겠다” 결심하고 신안 앞바다의 수많은 섬을 다니면서 전도했습니다. 문전도사가 해질녘 동네 어귀 언덕에 올라가 조용히 노래를 불렀습니다. 라디오가 없던 시절 섬마을 사람들이 그의 노래를 듣기 위해 언덕에 모여들었습니다. ‘천당가’ ‘예수 사랑하심은’ 같은 찬송을 들려준 뒤 노랫말을 풀어 설명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문 전도사의 순교비에는 그를 ‘병든 자의 의사, 아해 낳는 집의 산파, 문맹퇴치 미신타파의 선봉자, 우리들의 어머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마을과 마을을 다니며 잔치집에서 음식을 얻어 굶주리는 이에게 나눠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주고, 병든 사람을 만나면 가슴 아파하며 기도했습니다. 학교도 없는 섬마을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바닥에 나무로 글씨를 써가며 한글을 가르쳐주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증도면 일대 27개 섬에 10개의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나룻배를 타고 산길을 걸어다니며 복음을 전하느라 고무신 밑창이 닳아 1년에 아홉켤레를 갈아 신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증도 일대 2000여명 주민이 90%가 예수님을 믿게 됐고 100명에 가까운 목회자가 배출되었습니다. 김준곤(CCC총재), 이만신(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목사 등이 문전도사가 믿음으로 낳은 ‘자녀’입니다. 6.25전쟁이 나자 공산주의자들이 문 전도사를 체포하였지만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그를 즉결처분하지 못하고 목포로 보냈습니다. 이후 국군이 들어와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증도로 돌아갔다가 결국 새벽녘 바닷가 모래밭에서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 죄 많은 이 영혼을 받으소서”라는 기도를 끝으로 숨졌습니다.
결론적으로 제사장은 백성들을 어깨에 메고 가슴에 품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영화롭고 아름다운 직분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니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도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신령한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신약을 사는 모든 크리스천들은 제사장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고 하나님을 삶 가운데서 거룩하게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인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과 교제하고 예배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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