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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09년 출15강(25:1-27:21) 내가 거할 성소를 지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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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2,324회 작성일 09-05-3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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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출애굽기 공부 15강                                                                     
말씀 출애굽기 25:1-27:21
요절 출애굽기 25:8
내가 거할 성소를 지으라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오늘은 성소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상태에서 구원하신 후 그들이 하나님을 자유롭게 예배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성소를 지으라고 하십니다. 성소는 하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하시는 장소입니다. 이 성소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성품과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소를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모세에게 구체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성소의 구조와 특징을 알아보고 성소 되신 예수님을 깊이 영접하기를 기도합니다. 성소의 각 기구들은 예수님의 성품과 사역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나아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1-8) :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2).” 하나님께서는 성소를 짓기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예물을 가져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발적으로 헌신할 때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생각할 때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 자체가 예배 행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헌신의 표현으로 예물을 드립니다. 예물은 내가 가진 것들 중에서 가장 훌륭하고 귀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쁨 마음으로 드리는 예물은 즐겨 받으시지만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는, 그리고 마음에 없는 예물은 단호히 거절하십니다(사 1:10-17, 말1:10).  동방 박사들이 예수님께 경배하기 위해서 보배합을 드렸듯이 우리는 나의 땀과 수고의 결과로 얻은 물질을 드립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수고할 수 있는 힘과 일할 수 있는 지혜와 재능을 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셨고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애굽 사람들에게서 받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게 되었습니다(출12:36). 하나님은 백성들이 드리는 모든 것을 받으셔서 성소를 짓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료와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이상에 열거한 것들은 성소를 짓는데 필요한 재료들이었습니다. 당시 염색하는 비용이 비쌌기 때문에 염색실은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 중에 청색 실이 가장 비쌌다고 합니다. 청색 염료 1.4g을 얻기 위해 12,000마리 뿔고둥 달팽이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관유는 성막과 법궤 및 성막 기구들을 성별할 때나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제사장 직분을 수여할 때 붓는 기름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몰약과 육계와 창포와 계피 등을 넣어서 만들었기 때문에 역시 귀했습니다. 등유는 올리브 기름으로서 성소에 있는 촛대 등불을 켜는데 사용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소를 짓기 위해서 어떻게 헌신하였습니까? 36장 5-7절을 보십시오.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 모세가 명령을 내리매 그들이 진중에 공포하여 이르되 남녀를 막론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 하매 백성이 가져오기를 그치니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헌신은 놀라웠습니다. 그들이 매일 성소에 쓸 것을 가져오므로 일하는 사람들이 그만 가져오는 것이 좋겠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백성들의 사랑과 헌신이 넉넉한 건축 헌금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성소를 왜 지으라고 하셨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성소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 중에 거하시는 곳입니다. 성소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는 장소입니다. 성소가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거할 곳이기 때문입니다. 거한다는 것은 단순히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며 돌보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결혼을 비유로 하면 십계명과 율례가 결혼서약이라면 성소는 신방을 차리는 것입니다. 신방은 신랑과 신부가 만나는 사랑의 장소요 거룩한 장소요 신비한 장소입니다. 성소는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 가장 가까이 만나고 교제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신약에서 성소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그 백성과 함께 먹고 마시고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그들은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자세히 보고 그들의 손으로 만진 바 되었습니다(요일1:1). 이 생명이 나타나셨고 사도들이 증거하였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을 갖게 하고자 함입니다. 또 우리도 이제 진정한 사귐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사귐을 막고 있던 것은 죄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추한 죄를 속죄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씻으시고 그 백성과 화목하고자 하셨습니다. 인생들이 추하고 죄악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을 때 그 죄악에서 건져내시고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로 삼으시고 그들과 함께 거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번에 센터 건축을 하게 되었습니다. 건축 위원회에서 센터 건축을 디자인 할 때 교제를 위한 공간이 되도록 하고자 했습니다. 사귐을 원하는 이 시대에 진정한 사귐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귐은 먼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이루어지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용서를 통해서 막힌 벽을 허물고 진정한 사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사귐이 이루어져야 하고 요회에서 사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도들 사이에 하나님을 중심으로 깊은 사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와 너의 사귐은 삼각형의 한 꼭지 점과 같습니다. 너와 내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나아갈 때 우리는 더 가까워지게 됩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요일1:7).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거하기를 열망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는 성령 하나님을 보내셔서 우리 안에 내주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몸은 성령께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전입니다(고전6:19).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에 충만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성소에 거하신다고 해서 성소에만 계신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성소는 여호와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성소의 넓은 의미는 여호와의 현현이 이루어지는 모든 거룩한 장소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거하심으로 우리가 어떤 공동체를 이루기를 원하십니까?
 
  둘째, 진리와 용서의 공동체(10-29)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소의 모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증거궤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빌딩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인 모임입니다. 그런데 그 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 위에 교회는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 위에서 교회는 비로소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진 교회, 하나님의 말씀이 부요하지 못한 교회,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지 못한 교회 그것은 비어 있는 교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있을 때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있을 때 행복한 신지가 되고 말씀이 있을 때 복된 교회가 됩니다. 우리가 센터를 짓는데 거기에서 일대일 말씀 공부가 흥왕하게 일어나야 합니다. 소그룹 성경 공부가 매일 매일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꿈꾸는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게 전파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공동체 그것은 진리의 공동체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진리의 메시지가 선포될 때에 사람들은 진리 안에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짓고자 하는 센터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힘 있게 전파되려면 여러분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나눌 일대일 양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제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사귐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교제를 나누지 않는다면 세상의 모임과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는 세상과 구별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나누는 그런 공동체로 계속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증거궤 위에는 속죄소가 있습니다. 21,22절을 보십시오.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속죄소는 원어로 ‘카파르’인데 이는 ‘덮는다, 제거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인간의 죄를 덮어주고 용서해 주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속죄소는 언약궤의 뚜껑 역할을 하면서 그곳에 피를 뿌려 속죄를 했습니다.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씩 들어가서 그 위에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피를 뿌렸습니다. 하나님은 속죄소를 두심으로 범죄한 인간이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이었습니다. 이 특권은 일시적이었으며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매년 피를 뿌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를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룩하고 흠 없는 자신의 피를 제단에 뿌리사 단번에 영원한 속죄제사를 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속죄소가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사건 속에서 완전한 속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저와 여러분을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사죄의 은총을 덧입혀 주시고 우리와 교제하시며 말씀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율법 시대에 살지 아니하고 은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은혜와 축복을 받고자 이 보좌 앞에 지금 나오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심판을 받게 되고 그 심판 때는 누구도 핑계치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분은 그 큰 사랑으로 나를 구원하시려 했지만 내가 원치 않았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속죄소의 양 옆에는 그룹들을 세웠습니다. 그룹들의 날개로 속죄소를 덮게 했습니다. 천사들은 몸이 서로 마주 보면서 속죄소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의 표시입니다. 우리는 경외심을 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모세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말씀하시겠다고 했습니다(22).

  이를 볼 때 교회는 용서를 체험하는 장소입니다. 교회는 모든 죄인들이 와서 죄를 고백하고 죄사함을 받는 장소입니다. 그런 점에서 교회는 죄인들의 천국입니다. 죄로 병든 사람들이 와서 치료를 받는 영적인 병원입니다. 병원에서 환자가 왜 그런 병에 걸렸느냐고 꾸지람을 받지 않듯이 교회는 죄인들이 정죄 받지 않는 곳입니다. 도리어 죄를 용서받고 거룩한 사람으로 회복되는 곳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대개 자기의 추한 죄를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죄사함을 받은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상을 만들어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하나님 앞에 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진설병은 하나님의 집에 영적인 양식이 항상 있어야 함을 나타내줍니다. 하나님의 교회에는 모든 족속이 먹고도 남을 만한 양식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더불어 식사를 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한다는 증거로서 식사를 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영적인 양식으로 먹음으로 교제를 나누고 힘을 얻습니다. 매일 일용할 양식을 먹는 가운데 이 험한 세상을 이길 힘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하늘로부터 온 생명의 떡이라고 공표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은 영원히 주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만족을 줍니다. 
   
  셋째, 세상의 빛 된 공동체(31-40) : 성소에는 순금으로 등잔대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등잔대에는 항상 불을 켰습니다. 이 등잔대는 어두운 세상을 비추도록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은 빛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어두움을 밝혀 주는 생명의 빛이 되십니다. 예수님의 빛이 우리 내면에 있을 때, 빛 가운데 걸으며 분명한 방향과 목적 가운데 빛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에게서 빛을 받아서 이 세상을 비추는 등대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세상이 나아가야 할 길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비추어야 합니다. 세상이 갈 길을 몰라 방황할 때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비전을 주어야 합니다. 이 나라가 무지와 미신 가운데 있을 때 교회는 진리의 빛을 비추었고 참되신 하나님을 알도록 했습니다. 지금은 물질만능주의 사상으로 사회가 어둡습니다. 이런 시대에 사람들의 영혼을 진리의 빛으로 비추어야 합니다. 이 나라는 지난 주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추모 분위기로 가득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인해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슬픔에 빠진 백성들을 위로하고 두려움에 빠진 백성들에게 용기를 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 나라에 빛을 비출 수 있습니까? 그것은 먼저 우리 안에 말씀의 빛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빛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이 빛을 밝혀서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의 비전을 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런 고난을 이기고 많은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로 우뚝 서서 세계를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하시고 축복하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넷째, 구별되지만 봉사하는 공동체(26,27장) : 26장에 보면 성막은 네 겹으로 덮었습니다. 첫 번째 휘장은 값비싼 천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짠 열 폭의 세마포 휘장입니다. 휘장에는 각각 그룹들을 수놓았습니다. 이는 성소와 지성소의 천장에 해당합니다. 이는 마치 하늘에서 영광스러운 옷을 입은 천사들이 내려다보는 것 같았고 천국에 들어온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두 번째 휘장은 염소 털로 만들어서 처음 휘장을 완전히 덮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속죄 제물로 죽임을 당하실 것을 상징해 줍니다. 세 번째 덮개는 숫양 가죽으로 만들고 마지막 덮개는 해달 가죽으로 만들었습니다.  수양은 화목제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 덮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고 헌신할 것을 말해 줍니다. 다시 그 위에 해달의 가죽 덮개를 만들어 맨 바깥에 덮도록 하였습니다. 해달(물소)의 가죽은 물이 스며들지 않아 방수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또 뜨거운 태양과 사막의 모래 바람으로부터 성막을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빛깔은 불그스레한 회색으로 볼품이 없었습니다. 그 덮개 밑에 있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아무런 암시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해달의 가죽 덮개는 예수님의 인성을 의미합니다. 성막의 바깥쪽은 수수했지만 안쪽은 매우 화려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는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사53:2,3)” 빌라도는 “너 같은 것이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겉으로 볼 때는 볼품이 없었습니다. 그는 사람의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죄인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어 주시고 눈물과 겸손으로 섬겨 주셨습니다.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죄인들을 눈물과 겸손으로 섬기시느라 온 몸이 마른 넝쿨처럼 되셨습니다. 우리도 겉은 좀 볼품이 없더라도 내면은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과 거룩하심과 순결하심과 덕스러움으로 빛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성소에는 제물을 드리는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아카시아 나무로 사방 2.5m 크기로 번제 단을 만들라고 명하셨습니다. 이 번제 단 네 모퉁이에 뿔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단을 놋으로 싸라고 하셨습니다. 놋은 하나님의 심판의 불에 능히 견디어 내는 유일한 것입니다. 네 모퉁이에 있는 놋으로 만든 뿔은 구원의 능력과 힘을 상징합니다. 제사를 드리고 마지막으로 뿔을 잡을 때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누구든지 이 뿔을 잡으면 그 사람을 죽일 수 없었습니다. 이 뿔이 가장 거룩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번제 단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곳이요, 동시에 죄 많은 인간이 구원의 능력을 덧입는 곳입니다. 이곳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여러 짐승들이 죽임을 당하는 장소요, 동시에 짐승의 희생과 죽음을 통해서 인간이 사죄의 은혜를 덧입고 구원을 받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이곳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이곳에서 인간을 대신하여 짐승들이 죽임을 당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번제 단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율법의 저주를 받으시고 피 흘려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심판을 받지 아니하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갈3:13).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의 뿔이십니다(눅1:69). 죄악된 인간은 아무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율법의 저주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가 죄를 자백하면 주님께서는 그 모든 죄를 사해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심판에서 능히 구원해 주십니다.

  성소에서는 소와 양을 잡아서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불을 피우고 재를 버리는 등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제사장이 말씀이나 가르치고 기도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한 부류는 열심히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소를 잡고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단에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 공동체는 봉사하고 희생하는 모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안일하고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부지런해야 합니다. 봉사와 헌신은 시간이 남아돌아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맡은 일에 충실하면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보다 더 부지런해야 합니다. 시간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공동체를 하나님을 섬길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진리의 말씀과 사랑으로 섬기도록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갈 길을 제시하고 인도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27:9-19절은 성막의 뜰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막의 뜰은 길이가 45.6m, 폭이 22.8m입니다. 성막의 담장의 높이는 2.5m입니다. 그러므로 밖에서는 아무리 키가 큰 사람이라도 성막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죄인 된 인간이 아무렇게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쪽에 보면 이런 죄인들을 위해 넓고 아름다운 문이 하나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은 크고 넓습니다. 이 문은 폭이 약10m로서 아무나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구주시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이 문 외에 다른 문은 없습니다. 성막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동편에 있는 이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 문은 바로 양의 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이 문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10:9)”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문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듯 누구나 각기 자기 방법대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는 길은 단지 하나 밖에 없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하나님께서는 성소에 들어놓아야 할 기구들을 보여주시고 그대로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방법대로 해야 하나님을 만나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백성들이 거룩한 공동체, 진리의 말씀이 있는 공동체, 세상의 빛이 되는 공동체, 섬기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짓고자 하는 센터는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게 전파되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곳에서 죄사함과 용서를 경험하고 치유가 일어나고 쉼이 있는 공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그런 공동체로 세워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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