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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09년 출14강(23:20-24:18) 피로 세운 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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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2,224회 작성일 09-05-2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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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출애굽기 공부 14강                                                                   
말씀 출애굽기 23:20-24:18
요절 출애굽기 24:8

피로 세운 언약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우리는 20-23장까지에서 십계명과 법규들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로 하여금 이런 계명과 법규들을 기록하고 낭독하게 하시고 이스라엘의 반응을 들으셨습니다. 그런 기초 위에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고자 하셨습니다. 그 언약은 양자 사이에 피를 뿌림으로 체결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언약의 피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언약의 예표였습니다. 언약을 체결한 다음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먹고 마시며 축제를 즐기는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가운데 이루어진 놀라운 언약의 성취를 살펴보고 앞으로 있을 하나님 나라에서의 어린 양의 잔치를 소망하며 은혜 받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라(23:20-33)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축복하기를 원하십니다. 먼저 그는 사자를 앞서 보내어 길에서 그들을 보호하고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광야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는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필요는 안전하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의 생사와 장래가 걸린 문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인도하고 보호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대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그의 대적에게 대적이 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가 앞에 가서 그를 가나안 땅에 인도하고 그들을 끊겠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과 동일 선상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약속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그들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그들 중에 병을 제하리라고 하십니다. 그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 안에 생육하고 번성하는 생명의 역사를 계속 이루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장수의 복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런 모든 축복이 우리에게 있기 위해서 하나님은 한 가지 조건을 다셨습니다. 그 조건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21절과 22절에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들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의 육신의 귀로 들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성경이 기록되기 전 구약 시대에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직접 말씀하기도 하시고 환상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완성된 이후로 우리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또한 그 말씀을 기초로 설교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건과 사고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오늘날은 인터넷과 통신 기술이 발달되어 내가 듣고자 한다면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외치고 계십니다. 수없이 많은 소리들이 울리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마음 자세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주일 메시지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소감을 쓰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인격적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매일 일용할 양식을 먹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다음에 우리가 할 일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밥을 먹은 다음에 힘을 내서 일을 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즐기라거나 교양삼아서 들으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기 위해서 우리는 잘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목적은 우리와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가 맺혀져야 마음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배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24,25절을 보십시오. “너는 그들의 신을 경배하지 말며 섬기지 말며 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고 그것들을 다 깨뜨리며 그들의 주상을 부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그를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풍요로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문화가 달라집니다. 가나안 문화는 당시 최고로 앞선 문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목민에서 농경민으로 생활이 바뀌게 됩니다. 그러면 농경 신으로서 풍요와 다산을 약속하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길 유혹을 받게 됩니다. 거기에 쾌락까지 동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보다 다른 신을 섬기라는 유혹이 끊임없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우상은 눈에 보이고 만져지고 느껴지기 때문에 강력해 보입니다. 오늘날은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지 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고자 하는 유혹을 물리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2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매우 강력한 주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신을 경배하지 말며 섬기지 말며 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며 그것들을 다 깨뜨리며 그들의 주상을 부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세속주의 문화를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속주의는 하나님을 떠난 세대들이 만들어낸 신에게 경배하는 문화입니다. 그들의 신은 인간이요 물질이요 배(stomach)입니다. 그들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을 그것들에게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예배하고 섬기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신 분이시오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넘치게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까? 27,28절에서는 “내가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어 네가 이를 곳의 모든 백성을 물리치고 네 모든 원수들이 네게 등을 돌려 도망하게 할 것이며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위엄은 그들에게 두려움을 심음으로 나타났고 왕벌은 우박과 같은 자연 재앙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위하여 싸우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우리 편으로 삼는 것보다 우리가 하나님 편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편이 되는 것은 그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들을 쫓아내되 일 년 안에 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 땅이 황폐하게 됨으로 들짐승이 번성하여 그들을 해할까 하여 일 년 안에는 그들을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고 그들이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조금씩 쫓아내겠다고 하십니다. 원수들이 없으면 그 땅은 황폐하게 됩니다. 원수들이 있음으로 그 땅은 보전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수들이 있음으로 깨어 있게 됩니다. 바이올린 줄이 팽팽해야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처럼 영적인 긴장이 있어야 살아 있게 됩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세상에 많이 있는 가운데서 우리는 깨어서 영적인 투쟁을 하게 됩니다. 돈에 대한 욕심, 쾌락의 유혹, 세상의 잔재미들의 유혹이 있지만 이런 것들을 적절히 다루면서 영적인 투쟁을 할 때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문명은 도전에 대한 바른 응전을 통해서 발전해 온 것처럼 우리 앞에 당한 문제와 도전들을 지혜롭게 대처해 나갈 때 승리할 수 있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경배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물질의 복, 건강의 복, 장수하는 복, 인도하심과 안전의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땅의 경계까지 말씀하십니다. 즉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바다까지, 광야에서부터 강까지 정하고 그 땅의 주민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겠다고 하십니다. 이 약속의 말씀은 다윗과 솔로몬 때에 성취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조급하지 아니하십니다. 우리의 수준과 형편에 맞게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우리가 힘써서 해야 할 일입니다. 

  둘째, 언약의 피(24:1-8) :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명과 함께 여호와께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너 모세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 한 사람을 붙잡고 일하셨습니다. 그를 특별히 배려하시고 친밀하게 대우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의 임재를 풍성히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 다음에 칠십 장로들을 가까이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있게 하셨습니다. 이는 성막의 구조와 일치합니다. 칠십 명의 장로들은 이스라엘 전체를 대표합니다.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한 소리로 응답했습니다. 3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이튿날 모세는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 두 지파대로 열 두 기둥을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였습니다. 듣고 마음을 정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야 후에 딴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고대의 법규는 왕이 법규를 정해서 일방적으로 명령을 합니다. 백성의 동의는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었습니다. 대개가 왕의 유익을 위한 법입니다. 그렇게 하고도 듣지 않으면 왕명을 거역한 죄로 죽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백성이 듣도록 낭독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을 존중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듣고 자발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응답했습니다.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7).” 백성들은 법의 내용으로 인해 감동을 받았습니다. 당시 애굽 법과 비교해 볼 때 하나님의 법에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었고 따뜻함이 느껴졌습니다. 애굽에 있을 때 바로는 노예 동원령을 내리고 바로를 위해서 죽도록 일하게 시켰습니다.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죽이라고 강요했습니다. 그것이 바로의 법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세를 통해서 듣게 된 하나님의 법은 달랐습니다. 12,13장에서 보았듯이 하나님의 법은 공의가 있으면서도 약자에 대한 배려,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법이 좋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자 결심했습니다. 그 법은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 수 있도록 인도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해 줍니다.               

  8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이로써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언약이 체결되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복되다는 것을 알고 순종하고자 결단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생겼고 하나님을 삶 가운데서 체험하는 가운데 믿음의 결단을 했습니다. 축복의 말씀은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합니다. 그들은 출애굽과 광야 생활을 통해서, 그리고 모세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로우심, 하나님의 자비하심,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한 신뢰와 사랑에 기초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겠다고 결단을 했습니다. 그들의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헌신의 결단이기도 합니다. 모세는 언약을 굳게 하기 위해서 피를 제단과 백성들에게 뿌렸습니다.

  그러면 왜 피로 언약을 세웠을까요? 여기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로, 언약을 위반할 때는 죽음이 뒤따른다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고대 관습에는 계약 위반시 죽임이라는 경고로 피를 뿌렸다고 합니다. 하나님도 이 언약은 생명의 언약임을 분명하게 경고하신 것입니다. 둘째로, 피를 뿌림으로 혈족 관계를 맺었음을 나타냅니다. 고대에는 쌍반간에 피를 뿌리거나 마심으로 언약 맺은 사람이나 국가는 피를 나눈 관계가 된 것으로 여겼습니다. 삼국지에 보면 유비와 관우와 장비는 의형제를 맺을 때 피를 나누어 마셨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도 이런 관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언약의 피를 뿌림으로 하나님은 그들의 아버지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셋째로는 속죄의 의미가 있습니다. 고대에는 어떤 실수, 어떤 잘못이 있을지라도 피를 뿌려 언약을 맺으면 모두 없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피는 화해하고 죄를 덮고 혈족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스라엘의 이전 실수와 허물을 문제삼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죄를 모두 덮고 화해하시며 친밀한 관계를 맺으십니다. 결국 피는 계약의 도장 역할을 하게 됩니다. 피가 있으므로 이 언약은 쌍방간에 동의하고 위에서 열거한 세 가지 의미를 받아들인 것이 됩니다.

  이 피는 옛 언약이고 그리스도의 피는 새 언약입니다. 짐승의 피는 온전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장래 나타날 일의 그림자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일찍이 이를 예언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31:31-34).” 짐승의 피로는 언약을 견고하게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때마다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짐승의 피로는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짐승의 피가 우리를 온전히 속죄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범죄하였고 후에는 범죄함으로 옛 언약이 파기되었습니다. 짐승의 피는 장차 올 것의 그림자요 예표였습니다. 죄없는 온전한 피가 필요했는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입니다. 히브리서 9:13-15절은 말씀합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짐승의 피로 언약을 맺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언약을 맺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님의 피가 우리 심령에 뿌려져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법을 우리 마음과 생각에 새겨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과 유월절 만찬을 하셨습니다. 그때 떡을 떼시고 잔도 그와 같이 하여 그 의미를 드러내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22:20).” 예수님의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 무엇입니까?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심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예수님의 피는 항상 현재형으로 믿는 자에게 효력을 발휘합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셨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 속에 내주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의 의미를 드러내시고 그 사역을 효력있게 역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묵상할 때 우리는 내면의 상처들이 치료가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불러일으킵니다.

  셋째,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심(9-18) :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때까지는 하나님을 단지 ‘조상의 하나님’으로 알고 있었으나 이제 언약 예식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고 그들을 용납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먹고 마시며 축제를 즐겼습니다. 하나님과 친교의 자리가 마련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과 실제적인 관계가 확립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이는 신약 시대 성만찬의 예표가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될 때에 기쁨이 넘치고 감사와 자유함이 있습니다.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쓴 돌판을 주고자 하십니다.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렸습니다.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받도록 모세를 준비시키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보다 밀접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영광을 바라보고 자신을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사르는 불과 같기 때문입니다.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었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에 들어가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 말씀에 기초해서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습니다. 그리한 후에야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시며 교제를 나누는 삶은 새로운 힘을 얻게 합니다.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잘 배우고 실천하기를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장차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어린 양의 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하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 나라를 소망하면서 사망으로 인해 애통하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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