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주일말씀 성경별메시지 심포지엄 성경 검색
문제지 성경별문제지

출애굽기 09년 출11강(20:1-21) 여호와의 백성이 지켜야 할 계명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2,074회 작성일 09-04-26 11:09

본문

2009년 출애굽기 제11강                                                               
말씀 출애굽기 20:1-21
요절 출애굽기 20:2,3

여호와의 백성이 지켜야 할 계명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말씀을 잘 듣고 그 언약을 지키면 모든 민족 중에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며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켜야 할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백성이 가져야 할 절대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가져야 할 인생의 법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계명부터 넷째 계명까지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고, 다섯째 계명부터 열째 계명은 이웃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고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십계명은 간결하지만  함축하고 있는 내용은 풍성합니다. 도덕이 무너진 이 시대에 이 계명을 지킴으로 인생의 기초를 세우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힘써 지켜야 할 계명은 무엇입니까?

  첫째 계명, 누구를 섬겨야 하는가(1-3) : 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직접 써서 주신 것입니다.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은 그들을 노예 상태에서 구원한 분이십니다. 십계명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해서 지키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지키는 동기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에 있습니다. 죄의 종노릇하면서 우리 영혼이 얼마나 고통했습니까? 죄의식, 정죄감, 수치심, 두려움, 허무감, 무의미에 시달리던 죄인들이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죄사함을 받고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더러운 모든 죄를 물과 피와 성령으로 깨끗이 씻김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죄와 사탄의 결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 때는 죄로 인해 부끄러운 열매만 맺었습니다. 그러나 내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 사랑에 기초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지킵니다. 요한일서 5:3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기를 원하십니까? 그의 말씀을 지키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다보면 그 사랑의 풍성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무겁게 생각된다면 내가 지금 하나님보다 무엇을 더 사랑하고 있는가 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성 속에서 이해되고 지켜져야 합니다.

  그러면 십계명에서 가장 중요한 첫째 계명은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이 말씀은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애굽을 떠나기 전 9개월 동안 열 가지 재앙을 통해서 애굽의 신들이 얼마나 헛된가를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구원자 하나님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가문의 종손으로서 예수님을 믿기 전에 조상신을 섬겼습니다. 조상의 음덕으로 산다고 생각하면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러나 신에 대한 갈망은 있는데 영적인 갈급함이 채워지지 않음으로 인해 그 공허함을 달랠 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진정으로 참신을 섬기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대학에 들어와서 성경을 공부하고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이심을 알고 그를 경배하는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충성과 경배와 헌신을 받으실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이십니다. 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시고 만물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 하나님으로 섬기며 인격적인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은 정말 행복합니다.

  그런데 우리 삶에는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고 섬기는 것을 방해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에 대한 헌신이 만일 하나님 앞에 위치해 있다면 그것은 제일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요즈음은 경제가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일에 파묻혀서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나라 전체가 일중독이 된 것 같습니다. 이 나라가 경제회복을 이루기 전에 먼저 신앙의 회복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는 분들은 절대적인 자세로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기 때문에 하는 일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와 지혜와 능력을 덧입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일을 다스릴 힘을 덧입습니다. 

  어떤 분은 행복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권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음의 안정과 복을 받기 위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신앙을 우리는 기복신앙이라고 부릅니다. 행복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면 윤리가 없어집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을 받고자 하기 때문에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 불교가 샤머니즘에 먹히고 기독교가 샤머니즘에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무당 신앙은 결국 하나님보다 자기를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 자체에 대한 헌신이 하나님 앞에 위치하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만족은 하나님께로부터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진정으로 행복합니다. 다윗은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아 헤매듯이 자신은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하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은 복된 백성입니다.

  학생들은 배우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공부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공부를 위한 헌신이 하나님보다 앞서면 그것도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특히 시험 기간에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공부만 하고자 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대입 수험생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시험보다 앞세운다면 그런 사람의 장래는 열려 있다고 확신합니다. 저는 신앙생활을 막 시작한 대학 일학년 때 월요일에 시험이 있어서 주일 예배에 못 나올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저를 지도하던 분이 절대적인 자세로 주일을 지키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것이 일생을 그렇게 살도록 방향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를 통해서 신앙초기에 분명히 믿음으로 살도록 가르쳐야 함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주일에 토플시험을 본다든지, 입사시험을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방해합니다. 이 나라가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편리한 주일에 시험을 보도록 하기보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탄 연합 예배를 볼 때쯤에는 꼭 기말고사를 봅니다. 그러나 이때 성탄 연극과 댄싱을 준비하면서 헌신했는데 시험을 더 잘 보았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해 주십니다.

  우리가 바쁘고 속도를 요구하는 현대에 하나님을 앞세우고 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쉽게 묵인해 주면 결과적으로 악을 방어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필요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면 사람들이 마음이 좁다고 비난하거나 이상주의자라고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1 계명은 하나님의 유일성을 언급하고 있으며 타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보다 앞세워진 우상들이 무엇인가 살펴보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들이 시대를 따라서 생겨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많은 일도 헛되고, 술과 춤과 노래 등 쾌락도 헛되고, 학문을 하는 것도 헛되고, 모든 것이 헛됩니다. 솔로몬은 말씀합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3).”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십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기독교는 그렇게 독선적이고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냐고 말합니다. 다원주의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주는 한 분이시지 많을 수가 없습니다. 구원자는 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들과 대화는 할 수 있으나 경배의 대상까지 타협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함을 받고 그 사랑을 맛본 사람은 오직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께 헌신하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주 만물의 창조주시오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성삼위 하나님만을 경배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자손만대 까기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더욱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지금 누구를 예배하고 있습니까? 나의 주인,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은 누구이십니까? 내가 정말로 붙들고 의지하는 신은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 성삼위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서 의지하고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계명,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할 것인가(4-6) : 4,5a절을 보십시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둘째 계명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과 혼동할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을 우상시하는 경우는 태양신, 달신, 별신, 독수리 상 등등이 있습니다. 땅에 있는 것은 상상의 동물인 용 또는 뱀을 신으로 섬깁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어느 대륙에서든지 공통적으로 뱀을 신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으로는 용왕신, 물고기 등의 형상을 만들어 신으로 섬깁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사람을 신으로 숭배합니다. 십이지신상은 동물들을 신으로 경배합니다. 칼빈은 인간의 마음을 우상공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신약에서는 눈에 보이는 우상보다 마음의 첫 자리를 차지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3:5b절은 말씀합니다.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우리는 마음의 우상, 성취의 우상, 성공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사랑의 우상, 쾌락의 우상, 물질의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이미지로 만들어 섬기게 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하나님을 제한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하시는 범위를 제한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무소부재하십니다. 두세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형상을 돌로 만든다든지, 그림을 그려 숭배한다든지, 사진을 찍어 경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물론 예술 활동으로 하는 것은 제한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배의 대용으로 그런 것들을 이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돌이나 철로 만든 동상이 숨을 쉬는 것도 아니고, 귀가 있어서 알아듣는 것도 아니고, 눈이 있어 보는 것도 아닙니다. 제 2 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경배와 헌신에 있어서 인간을 위하여 어떠한 물건으로 대치시키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소유물이 탁월한 것이 될 때 삶은 우상화되어 왔습니다. 좀 더 좋은 집, 좀 더 좋은 자가용, 좀 더 좋은 직업, 좀 더 좋은 음식, 좀 더 좋은 화장품, 좀 더 훌륭한 교육, 좀 더 멋있는 옷, 좀 더 좋은 교회 건물, 좀 더 좋은 일반적인 것들은 쉽게 우상화됩니다. 더 나은 명성, 더 나은 권력, 더 나은 기회, 좀 더 많은 사치품들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 형상을 걸어놓았지만 이것이 우상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앞에 절을 한다거나 거룩한 어떤 존재처럼 여겨서는 안 됩니다. 십자가는 하나의 상징물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을 받고자 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5b-6절을 보십시오.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의 계명을 지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올바로 예배하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이곳에 와서 예배할 때 하나님을 예배하는 감격을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감격에 빠져야 합니다. 예배의 감격에 빠지지 못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이 우리 마음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고, 돈을 더 사랑하고, 성공을 더 사랑하기 것 때문에 예배의 감격을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예배에 성공하면 이곳을 나가서 하는 모든 일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의 영광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갚으십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는 자신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 또 손자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칩니다. 그렇다고 가계의 저주를 이어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몇 년 전에 교계에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으라는 책을 써서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가계의 저주가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저주를 십자가에서 다 감당하시고 가져가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저주에서 자유롭습니다. 죄의 영향력은 있지만 그것이 저주가 대물림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되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되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마음을 알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변화의 역사가 우리 예배 가운데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계명,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7) : 7절을 보십시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은 단순히 신성모독을 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계명은 하나님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망령되이’라는 말은 공허한, 무의미한, 거짓된, 경망스러운 어떤 것을 묘사합니다. 신성하게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 한 후, 삶에 있어서 본이 되지 못하는 행동을 하면 하나님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폼으로 가지고 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신자라고 하면서 신자답지 못하게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목자님들을 보고 나도 하나님을 믿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의 이름이 얼마나 영광스럽겠습니까? 저는 UBF에 와서 우리 목자님들의 삶을 보고 나도 한번 저렇게 믿어보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그 말씀대로 살고자 애쓰는 선배 목자님들을 봤을 때 ‘내가 신앙생활을 할 곳은 바로 여기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학생들에게 그런 영향력을 끼치고 있지 못한 것 같아서 하나님께 죄스러운 마음뿐입니다. 제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참된 헌신과 깊은 열정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열심이 최고일 경우, 하나님의 이름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인간적인 야망과 자랑은 접어두고 하나님의 뜻을 무조건 따른다면 이 명령은 지켜지는 것입니다. 습관이 신앙 고백과 일치하고 삶이 언어와 일치한다면 제 3 계명은 지켜진 것입니다.

  넷째 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8-11) : 8절을 보십시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이 말씀은 영적 재충전과 휴식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나님이 주신 시간과 관련하여 하나님을 충성되게 섬기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엿새 동안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열심히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야 휴식을 즐겁게 취할 수 있습니다. 일곱째 날은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 즉 아들이나 딸이나 직장의 동료들이나 가축이나 내 집에 거하는 손님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엿새 동안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고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하루를 쉬면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사야 58:13-14절은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이 즐거움을 누리고, 세상에서 높이 되고, 복을 받는 길입니다.

  안식일은 토요일인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 그 날을 기념하여 제자들은 주일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예배하는 것이 유대교와 기독교를 분리시켰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주일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인이 되십니다. 이 날에 우리는 생명을 살리고 선을 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합니다. 예배는 모든 사람이 다 참여해야 합니다. 찬송과 성경 읽기와 헌금과 섬기는 일과 예배 준비에 모두가 동참하는 것이 좋습니다. 요회 목자님들은 주일 예배를 드리고 그 후에 말씀 공부를 하고, 소감 모임을 하고, 역사 보고를 합니다. 주일을 제대로 보내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날을 합당하게 지키는 것은 시간을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기꺼이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시간까지도 포함하여 만물의 주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휴식과 일, 단체로 드리는 예배를 위해서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다섯째 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12). 12절을 보십시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인간 윤리의 근본입니다. 부모를 공경할 때 장수하리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효는 먼저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훌륭한 학생이요 건실한 사회인으로서 또 믿음의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시면 전화라도 자주해서 안부를 묻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모님의 건강을 돌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여섯째 계명: 살인하지 말라(13). 인간이 살인할 수 없는 이유는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2)”고 경고하셨습니다. 사람을 무시하고 욕하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증도하면 살인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형제를 존귀하게 여기고 그 생명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일곱째 계명, 간음하지 말라(14).  이는 가정을 거룩하게 지키는 기초가 되는 계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시조인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두 사람을 부부로 맺어 일부일처제의 결혼제도를 이루셨습니다. 간음은 부부이외에 성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가정을 깨뜨리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5:27,28). 이는 결과뿐만 아니라 간음을 일으키는 동기도 다스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섬긴다고 하면서 자매님들이 형제의 마음을 빼앗고 즐기고자 하거나 형제가 자매에게 음란한 마음을 품고 헛생각을 한다면 바로 이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로를 형제요 자매로 여기고, 나이 드신 분들은 부모님과 같이 여기고 깨끗한 마음으로 교제해야겠습니다.

  여덟째 계명: 도둑질하지 말라(15). 이 말씀은 사유재산권을 보장하는 말씀입니다. 도둑질을 하지 않으려면 자신이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재산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섬기는 삶을 살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야 하겠습니다. 돈을 꾸고 갚지 않는 것, 책을 빌리고 돌려주지 않는 것, 컨닝하는 것도 도둑질에 해당이 됩니다. 오늘날은 지적 재산권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아홉째 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16 ). 인터넷에 악플을 다는 것도 죄입니다. 이는 다른 사람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명예를 존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거짓말 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항상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열째 계명: 탐내지 말라. 17절을 보십시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십계명이 금하는 것은 마음의 탐욕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소유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1,12)”고 했습니다. 너무 부하면 교만의 죄를 범하고 너무 가난하면 탐심의 죄를 범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자족하고 감사하는 가운데 탐욕을 다스려야 합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십계명을 조목조목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감정과 육신의 소욕을 좇아 살다가 멸망할 수밖에 없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한 나라요, 제사장 백성으로의 소망 가운데 십계명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나라에 많은 크리스천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우리가 먼저 십계명 말씀을 지키고 살면 이 나라가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십계명을 살펴볼 때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날마다 이 계명에 자신을 비추어 보고 회개하여 예수님의 피로 죄를 씻고 거룩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마음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서 자라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율법을 완성해 가는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첨부파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323건 59 페이지
주일메시지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453 출애굽기 이엘리야 2098 06-07
452 출애굽기 이엘리야 2324 05-31
451 출애굽기 이엘리야 2224 05-24
450 출애굽기 이엘리야 2191 05-17
449 특강 이엘리야 1855 05-10
448 출애굽기 이엘리야 2251 05-03
열람중 출애굽기 이엘리야 2075 04-26
446 출애굽기 이엘리야 2144 04-19
445 고린도서 이엘리야 2120 04-12
444 고린도서 정베드로 2568 04-12
443 고린도서 이요한 2362 04-11
442 출애굽기 이엘리야 2244 04-05
441 출애굽기 이엘리야 2169 03-29
440 출애굽기 이엘리야 2181 03-22
439 출애굽기 이엘리야 2074 03-15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