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09년 출애굽기10강(19:1-25) 내 말을 잘 듣고 지키라
페이지 정보

본문
2009 출애굽기 공부 10강
말씀 출애굽기 19:1-25
요절 출애굽기 19:5,6
내 말을 잘 듣고 지키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오늘 공부할 19장은 출애굽기에서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죄와 사탄의 노예로 비참하게 살던 우리를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참으로 크고 고귀합니다.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는 모두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를 중보하는 직분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고 백성들의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어 그 도우심과 은혜를 구합니다. 제사장된 우리는 자기 자신만을 생각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에 그 백성과 세계를 품고 살아야 합니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을 정신병자라고 부릅니다. 그들이 분별력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 자기 이야기들뿐입니다. 국가적으로, 가정적으로, 공동체적으로 당면한 위기 앞에서 자기들만 생각하고 자기주장만 하는 사람들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고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로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시내 광야에 이르러 장막을 쳤습니다. 시내 광야는 시뻘건 바위로 뒤덮인 산이 펼쳐져 있는 시내산 골짜기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푸른 나무와 강이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하시지 않고 이렇게 거칠고 험한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만나고자 하실까요? 그들이 하나님만을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 광야에서 다른 무엇을 추구할 수 없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3b과 4절을 보십시오.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을 내려서 그들이 섬기는 우상들이 얼마나 헛된가를 보여주셨습니다. 나일 강물을 피로 물들이시고 거기서 나오는 고기와 생물들을 죽이시며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피부병 재앙, 파리 재앙, 이 재앙, 개구리 재앙, 메뚜기 재앙, 우박 재앙, 흑암 재앙, 장자 재앙 등을 내리셔서 바로의 마음을 꺾으셨습니다. 애굽의 우상들이 거짓된 신들임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열 가지 재앙을 거치고 나자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부려먹던 데서 놓아주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피라밋을 지으며 거대한 곡물 저장소를 짓는 등 노예 생활을 하면서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채찍에 맞으면서 밤낮 없이 일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이 고난으로부터 해방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까지 상달되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사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들은 해방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그것도 잠시 홍해 앞에서 그들은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애굽의 전차와 넘실거리는 홍해 앞에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도 믿음으로 건넜습니다. 애굽을 나올 때 가져왔던 음식이 다 떨어지자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들은 어린 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삶에서 고민하는 차원을 높여야 했습니다. 육체적인 필요에서 영적인 필요로 자라나고, 자기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자기들의 필요를 구하면 될텐데 꼭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을 하고 불평을 합니다. 감사 찬송을 하면서 믿음으로 구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감사 찬송하며 구하세요”라고 옆에 사람들에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떡고물 같은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마실 물이 없자 마라의 쓴 물을 달게 만드시고 반석에서 생수를 내어 마시게 하셨습니다. 아말렉이 공격했을 때 모세의 기도와 여호수아를 앞세워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들은 이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기심과 교만과 정욕과 인생의 허무함과 죽음의 고통으로 신음할 때 하나님께서는 목자님들을 보내셔서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래 참으면서 양육해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직장을 얻고 자녀들을 얻었습니다. 각종 질병에서 고통 할 때에 불쌍히 여기사 구원해 주셨습니다. 결혼의 소망도 없을 때에 믿음으로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우리 앞에는 이런 은혜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은혜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훈련해 해주시는 은혜도 있습니다. 4b절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독수리 날개로 업어 인도하셨다고 했습니다. 독수리는 그 새끼를 사랑하기 때문에 훈련을 시킵니다. 독수리는 모성애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어미 독수리는 때가 되면 아기 독수리의 보금자리를 흩어버리고 날게 합니다. 아기 독수리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날개를 퍼덕 거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날개에 힘이 생겨서 날게 됩니다. 아기 독수리가 지쳐서 땅에 곤두박질을 칠라치면 어미 독수리는 잽싸게 날아와서 날개로 아기 독수리를 업고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이렇게 떨어지고 올라가는 훈련을 반복하다보면 아기 독수리는 멋진 비행을 합니다. “주를 앙모하는 자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 같이” 또 태양을 향하여 날면서 강한 눈을 갖도록 훈련도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믿음의 정병이 되도록 훈련하십니다. 어떤 분은 장모님의 훈련을 받고 마음이 좀 더 강해졌습니다. 어떤 분은 직장에서 또 가정에서 인간 갈등을 겪으면서 넓은 내면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자녀로 인해서 목자의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훈련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목적은 하나입니다.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질 훈련, 믿음 훈련, 전도 훈련, 일대일 목자 훈련, 메신저 훈련, 베이비시터 훈련, 머리 짧게 자르는 훈련, 외치는 훈련, 개명 훈련, 섬기는 훈련, 그룹 바이블 리더 훈련, 죽은 개 훈련, 무시 받는 훈련, 새벽 기도 훈련, 양식 훈련, 재소감 훈련, 화장실 청소 훈련, 순례자 훈련 등등 많은 종류의 훈련을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해 가도록 하십니다. UBF에는 훈련의 종류가 이루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 만큼 우리는 훈련을 받았고 또 훈련을 사랑했습니다. 우리가 훈련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영적인 훈련을 사모하기를 기도합니다. 훈련을 받지 아니하면 짐승과 같은 사람이 됩니다.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잠12:1).” 훈련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당신도 사람이십니까?”라고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해병대는 아무나 갈 수 없습니다. 훈련이 세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아무나 UBF 목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막에 떨어뜨려 놓아도 살아남아서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훈련을 받고 이 시대 구원 역사를 섬기는 영적인 특공대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키고 독수리 날개로 업어서 시내 광야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4b절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구원의 은혜와 여러 모양의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제자들을 일대일로 양육하여 어디로 데려가야 합니까? 자신에게로 데려가면 안 됩니다. 한 단체의 일군으로만 키워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로 데려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뛰어넘어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섬기는 종이 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히브리어 원문에서 강조하는 말씀은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입니다. 잘 듣는다는 말씀은 깊이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깨달아야 행동의 변화가 옵니다.
사람이 잘 듣고자 하는데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먼저는 졸음이 있습니다. 육신이 피곤하면 말씀을 듣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주일 예배를 열한 시에 드립니다. 가장 좋은 상태에서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말씀을 방해하는 자세는 흘려듣는 것입니다. 마이동풍이라고 하지요. 또는 ‘소 귀에 경 읽기’라고도 합니다. 또 말씀을 들을 때 방해요소는 선입관을 가지고 듣는 것입니다. 자기의 경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것입니다. 잡음과 소음도 듣는 것을 방해합니다. 다 안다는 생각, 이미 들어봤다는 마음을 가지고 들으면 판단만 하게 됩니다. 배우려는 마음을 잃어버립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주범입니다. 세상에 대한 염려, 돈에 대한 욕심, 죄의 소원, 세상의 잔재미를 부추겨서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합니다.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텔레비전을 보고 게임을 하는 데로 분산시킵니다. 우선순위를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데 두기보다 차순위로 밀리도록 유혹합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이것을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을까요?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고 외치심으로 관심을 집중시키라고 하십니다. 귀가 있다고 다 듣는 것이 아닙니다. 집중하지 아니하면 사탄이 말씀을 가로채 가 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해서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귀나 머리로만 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상대적인 생각을 버리고 절대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요한복음 5:24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됩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그 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기 위해서는 묵상이 필요합니다. 묵상은 되새김질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암송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기억을 떠올려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같은 말씀이라도 의미가 깊어지고 깨달음도 많아집니다. 또 상황이 달라지면 같은 말씀이라도 마음에 새롭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학자의 자세로 연구하고 저자이신 성령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고자 애를 써야 합니다. 그때 성령의 밝은 빛으로 비추심을 받게 됩니다.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 들으면 다시 듣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그러나 교육 방법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런 반복 과정을 통해서 피상적이던 말씀이 머리로 이해가 되고, 더 반복하면 가슴으로 내려오고, 더 반복하면 손과 발로 행동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을 암송하신 분들을 보십시오. 얼마나 스피릿이 있었습니까! 그러므로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은 배우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갈급한 마음입니다. 가난한 마음입니다.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말씀에 갈급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영적으로 건강한 것입니다. 저는 제가 전하는 메시지를 듣고 소감을 발표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런데 제가 의도하는 것을 잡아내서 소감을 쓰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서 제가 배우는 바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내용이 무엇인가를 잘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무다리를 긁는 겪이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끝나서는 안 됩니다. 그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듣는 것보다 가르침으로 더 많이 배우게 됩니다. 가르치고자 하면 정확하게 들어야 하고 깊이 들어야 합니다. 일대일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해도 가르칠 양이 있는 사람과 자기로 끝나는 사람의 자세가 다릅니다. 자기로 끝나는 사람은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자세로 공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르칠 양이 있는 사람은 열심히 받아 적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효과적으로 가르치고 전달하기 위해서 연구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실력이 붙습니다. 일대일로 열 명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은 같은 말씀을 자기가 배우는 것으로 끝내는 사람보다 훨씬 더 깊이 있게 묵상할 수 있습니다. 배운 말씀을 가르치지 않는 사람은 밥을 먹고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과 같습니다. 머리는 큰데 손과 발이 약합니다. 어딘지 모르게 균형이 잡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를 전달해야 하는 사명이 있는 사람은 잘 듣습니다. 물론 영적으로 어린 사람은 먼저 자신이 듣고 성장해야 할 것입니다. 어린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르치면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합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나아오는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요 5:39-42).”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면 그 말씀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의도를 알고 실천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들을 때는 그의 편에 서서 생각하게 되고 그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까지 생각하여 행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 신뢰를 받고 인정을 받습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잠23:26)”라고 말씀했습니다.
저는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아니하여 아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제 아내는 그 편지를 고이 고이 간직하고 반복해서 읽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편지는 누구나 여러 번 읽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읽어도 지겹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낸 연애편지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성경 어디를 펴서 읽어보아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내용으로 가득 합니다. 저도 주님의 첫 사랑을 경험했을 때 성경을 먼지가 너풀거릴 정도로 많이 읽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고 머리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깨닫고 실천하기 까지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을 즐기기 위한 것입니까? 고상하다는 말을 듣기 위함입니까? 아니면 듣는 것으로 의무를 다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자기 위안을 삼기 위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이유는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행동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저주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을 통해서 과거의 실패를 만회하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본문에서 지키라는 말씀은 순종을 의미합니다. 듣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으로 그치면 안 되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체적인 일상생활에서 올바른 삶과 행동을 하는 것은 올바른 가르침보다 더욱 중요합니다. 이점이 다신교 사회에서, 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가 성공할 수 있었던 으뜸가는 이유였습니다. 확실히 행동은 조용하지만 말보다 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가르침과 함께 행동을 함으로 복음 진리를 힘 있게 전파해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관념이 아니라 좀 더 실용적으로 배워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할 때 주어지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5,6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보물이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너는 내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사랑의 속성은 독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이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주면 시기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시기하기까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되 자기의 가장 귀한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보배로 택함을 받는 것은 엄청난 특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이 어디가 이쁘다고 무엇이 귀하다고 그렇게 사랑하시는 것입니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부모 된 입장에서 부모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자녀가 가장 사랑스럽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부모가 자기 자녀를 사랑하는 것처럼 본성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백성은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사랑 받는 백성이 됩니다. 그것은 역사가 입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언약을 지키면 제사장 나라로 삼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성취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3).” 세계 만민에게 복을 나누어 주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고대에서 제사장은 어느 정도의 위치였을까요? 왕과 같은 위치였습니다. 왕은 제사장의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은 만인 제사장 설의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교회였습니다(행 7:38). 이스라엘 백성들이 교회로서 제사장이었기 때문에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도 제사장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어주는 직분입니다. 이스라엘은 선민으로서 특권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세계 모든 민족에 대해서 제사장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로마는 세계에 대해서 법률과 제도를 주었고, 그리스는 철학과 교육을 제공했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제공했습니다.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가 다 한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기독교는 이스라엘의 자양분 속에서 자랐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많은 것들을 차용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불순종하고 메시야를 거부해서 2천년 동안 나라 없이 유리방황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시고 전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지금 그들이 세계에 끼치는 영향은 놀라울 정도로 큽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했다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큰 선한 영향력을 발휘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사장 나라로 세우셨습니다. 이 나라에 복음이 들어온 지 120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선교사 파송 2위 국가가 되었습니다. 상품 수출은 세계 12위인데 복음 수출은 세계 2위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특권을 맡겨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특권을 감당하는 것이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공부만 하고 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직무유기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라고 말씀했습니다. 또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그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전하는 것을 생명보다 귀히 여겼습니다. 우리의 사명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캠퍼스와 세계에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나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주님의 임재와 능력을 체험하고 싶으십니까? 복음을 증거하십시오.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약속하신 성령의 권능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심령에는 위로부터 오는 기쁨이 넘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이나 친구나 가족들이나 캠퍼스 양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침으로 여러분에게 주어진 특권을 마음껏 활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공동체가 왜 존재하는 것입니까? 복음을 전하고 제자 양성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연수를 받을 때 매주 토요일 마더 배리 선교사님과 말씀을 공부하고 교제를 하였습니다. 한 번은 마더 배리 선교사님께서 UBF 모임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아니하면 없어져도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하라고 주신 일을 하지 아니하면서 땅만 차지하고 있을 필요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사람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복음을 전하고 제자들을 키우고자 한다면 이 세상에 존재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고 못 맺고는 주님의 주권에 달린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믿음으로 살면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왜 우리를 택하셨습니까?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 15:16).”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셨고 가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캠퍼스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니 그들은 일제히 응답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그들은 분명하게 결단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그들에게 임하사 모세와 말씀하시고 백성들로 그를 영영히 믿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하는 종의 권위를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도록 돕기 위해서 영적인 환경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들은 몸과 마음을 성결하게 한 후에 하나님을 만나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를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로 택하시고 전 세계 만민에게 복을 나누어 주는 직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우리가 이 직분을 잘 감당하도록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잘 듣고 가서 전합시다!
말씀 출애굽기 19:1-25
요절 출애굽기 19:5,6
내 말을 잘 듣고 지키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오늘 공부할 19장은 출애굽기에서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죄와 사탄의 노예로 비참하게 살던 우리를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참으로 크고 고귀합니다.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는 모두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를 중보하는 직분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고 백성들의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어 그 도우심과 은혜를 구합니다. 제사장된 우리는 자기 자신만을 생각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에 그 백성과 세계를 품고 살아야 합니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을 정신병자라고 부릅니다. 그들이 분별력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 자기 이야기들뿐입니다. 국가적으로, 가정적으로, 공동체적으로 당면한 위기 앞에서 자기들만 생각하고 자기주장만 하는 사람들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고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로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시내 광야에 이르러 장막을 쳤습니다. 시내 광야는 시뻘건 바위로 뒤덮인 산이 펼쳐져 있는 시내산 골짜기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푸른 나무와 강이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하시지 않고 이렇게 거칠고 험한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만나고자 하실까요? 그들이 하나님만을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 광야에서 다른 무엇을 추구할 수 없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3b과 4절을 보십시오.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을 내려서 그들이 섬기는 우상들이 얼마나 헛된가를 보여주셨습니다. 나일 강물을 피로 물들이시고 거기서 나오는 고기와 생물들을 죽이시며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피부병 재앙, 파리 재앙, 이 재앙, 개구리 재앙, 메뚜기 재앙, 우박 재앙, 흑암 재앙, 장자 재앙 등을 내리셔서 바로의 마음을 꺾으셨습니다. 애굽의 우상들이 거짓된 신들임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열 가지 재앙을 거치고 나자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부려먹던 데서 놓아주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피라밋을 지으며 거대한 곡물 저장소를 짓는 등 노예 생활을 하면서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채찍에 맞으면서 밤낮 없이 일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이 고난으로부터 해방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까지 상달되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사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들은 해방의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그것도 잠시 홍해 앞에서 그들은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애굽의 전차와 넘실거리는 홍해 앞에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홍해도 믿음으로 건넜습니다. 애굽을 나올 때 가져왔던 음식이 다 떨어지자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들은 어린 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삶에서 고민하는 차원을 높여야 했습니다. 육체적인 필요에서 영적인 필요로 자라나고, 자기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자기들의 필요를 구하면 될텐데 꼭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을 하고 불평을 합니다. 감사 찬송을 하면서 믿음으로 구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감사 찬송하며 구하세요”라고 옆에 사람들에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떡고물 같은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마실 물이 없자 마라의 쓴 물을 달게 만드시고 반석에서 생수를 내어 마시게 하셨습니다. 아말렉이 공격했을 때 모세의 기도와 여호수아를 앞세워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들은 이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기심과 교만과 정욕과 인생의 허무함과 죽음의 고통으로 신음할 때 하나님께서는 목자님들을 보내셔서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래 참으면서 양육해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직장을 얻고 자녀들을 얻었습니다. 각종 질병에서 고통 할 때에 불쌍히 여기사 구원해 주셨습니다. 결혼의 소망도 없을 때에 믿음으로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우리 앞에는 이런 은혜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은혜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훈련해 해주시는 은혜도 있습니다. 4b절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독수리 날개로 업어 인도하셨다고 했습니다. 독수리는 그 새끼를 사랑하기 때문에 훈련을 시킵니다. 독수리는 모성애의 상징이라고 합니다. 어미 독수리는 때가 되면 아기 독수리의 보금자리를 흩어버리고 날게 합니다. 아기 독수리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날개를 퍼덕 거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날개에 힘이 생겨서 날게 됩니다. 아기 독수리가 지쳐서 땅에 곤두박질을 칠라치면 어미 독수리는 잽싸게 날아와서 날개로 아기 독수리를 업고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이렇게 떨어지고 올라가는 훈련을 반복하다보면 아기 독수리는 멋진 비행을 합니다. “주를 앙모하는 자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 같이” 또 태양을 향하여 날면서 강한 눈을 갖도록 훈련도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믿음의 정병이 되도록 훈련하십니다. 어떤 분은 장모님의 훈련을 받고 마음이 좀 더 강해졌습니다. 어떤 분은 직장에서 또 가정에서 인간 갈등을 겪으면서 넓은 내면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자녀로 인해서 목자의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훈련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목적은 하나입니다.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질 훈련, 믿음 훈련, 전도 훈련, 일대일 목자 훈련, 메신저 훈련, 베이비시터 훈련, 머리 짧게 자르는 훈련, 외치는 훈련, 개명 훈련, 섬기는 훈련, 그룹 바이블 리더 훈련, 죽은 개 훈련, 무시 받는 훈련, 새벽 기도 훈련, 양식 훈련, 재소감 훈련, 화장실 청소 훈련, 순례자 훈련 등등 많은 종류의 훈련을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해 가도록 하십니다. UBF에는 훈련의 종류가 이루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 만큼 우리는 훈련을 받았고 또 훈련을 사랑했습니다. 우리가 훈련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영적인 훈련을 사모하기를 기도합니다. 훈련을 받지 아니하면 짐승과 같은 사람이 됩니다.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라(잠12:1).” 훈련받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당신도 사람이십니까?”라고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해병대는 아무나 갈 수 없습니다. 훈련이 세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아무나 UBF 목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막에 떨어뜨려 놓아도 살아남아서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훈련을 받고 이 시대 구원 역사를 섬기는 영적인 특공대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키고 독수리 날개로 업어서 시내 광야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4b절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구원의 은혜와 여러 모양의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제자들을 일대일로 양육하여 어디로 데려가야 합니까? 자신에게로 데려가면 안 됩니다. 한 단체의 일군으로만 키워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로 데려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뛰어넘어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섬기는 종이 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히브리어 원문에서 강조하는 말씀은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입니다. 잘 듣는다는 말씀은 깊이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깨달아야 행동의 변화가 옵니다.
사람이 잘 듣고자 하는데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먼저는 졸음이 있습니다. 육신이 피곤하면 말씀을 듣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주일 예배를 열한 시에 드립니다. 가장 좋은 상태에서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말씀을 방해하는 자세는 흘려듣는 것입니다. 마이동풍이라고 하지요. 또는 ‘소 귀에 경 읽기’라고도 합니다. 또 말씀을 들을 때 방해요소는 선입관을 가지고 듣는 것입니다. 자기의 경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것입니다. 잡음과 소음도 듣는 것을 방해합니다. 다 안다는 생각, 이미 들어봤다는 마음을 가지고 들으면 판단만 하게 됩니다. 배우려는 마음을 잃어버립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는 주범입니다. 세상에 대한 염려, 돈에 대한 욕심, 죄의 소원, 세상의 잔재미를 부추겨서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합니다.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텔레비전을 보고 게임을 하는 데로 분산시킵니다. 우선순위를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데 두기보다 차순위로 밀리도록 유혹합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이것을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을까요?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고 외치심으로 관심을 집중시키라고 하십니다. 귀가 있다고 다 듣는 것이 아닙니다. 집중하지 아니하면 사탄이 말씀을 가로채 가 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해서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귀나 머리로만 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상대적인 생각을 버리고 절대적인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요한복음 5:24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됩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그 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기 위해서는 묵상이 필요합니다. 묵상은 되새김질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암송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기억을 떠올려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같은 말씀이라도 의미가 깊어지고 깨달음도 많아집니다. 또 상황이 달라지면 같은 말씀이라도 마음에 새롭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학자의 자세로 연구하고 저자이신 성령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고자 애를 써야 합니다. 그때 성령의 밝은 빛으로 비추심을 받게 됩니다.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 들으면 다시 듣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그러나 교육 방법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런 반복 과정을 통해서 피상적이던 말씀이 머리로 이해가 되고, 더 반복하면 가슴으로 내려오고, 더 반복하면 손과 발로 행동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을 암송하신 분들을 보십시오. 얼마나 스피릿이 있었습니까! 그러므로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은 배우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갈급한 마음입니다. 가난한 마음입니다.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말씀에 갈급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영적으로 건강한 것입니다. 저는 제가 전하는 메시지를 듣고 소감을 발표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런데 제가 의도하는 것을 잡아내서 소감을 쓰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서 제가 배우는 바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내용이 무엇인가를 잘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무다리를 긁는 겪이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끝나서는 안 됩니다. 그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듣는 것보다 가르침으로 더 많이 배우게 됩니다. 가르치고자 하면 정확하게 들어야 하고 깊이 들어야 합니다. 일대일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해도 가르칠 양이 있는 사람과 자기로 끝나는 사람의 자세가 다릅니다. 자기로 끝나는 사람은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자세로 공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르칠 양이 있는 사람은 열심히 받아 적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효과적으로 가르치고 전달하기 위해서 연구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실력이 붙습니다. 일대일로 열 명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은 같은 말씀을 자기가 배우는 것으로 끝내는 사람보다 훨씬 더 깊이 있게 묵상할 수 있습니다. 배운 말씀을 가르치지 않는 사람은 밥을 먹고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과 같습니다. 머리는 큰데 손과 발이 약합니다. 어딘지 모르게 균형이 잡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를 전달해야 하는 사명이 있는 사람은 잘 듣습니다. 물론 영적으로 어린 사람은 먼저 자신이 듣고 성장해야 할 것입니다. 어린 사람이라 할지라도 가르치면 훨씬 더 빠르게 성장합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나아오는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요 5:39-42).”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면 그 말씀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의도를 알고 실천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들을 때는 그의 편에 서서 생각하게 되고 그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까지 생각하여 행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 신뢰를 받고 인정을 받습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잠23:26)”라고 말씀했습니다.
저는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아니하여 아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제 아내는 그 편지를 고이 고이 간직하고 반복해서 읽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편지는 누구나 여러 번 읽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읽어도 지겹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낸 연애편지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성경 어디를 펴서 읽어보아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내용으로 가득 합니다. 저도 주님의 첫 사랑을 경험했을 때 성경을 먼지가 너풀거릴 정도로 많이 읽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고 머리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깨닫고 실천하기 까지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씀을 즐기기 위한 것입니까? 고상하다는 말을 듣기 위함입니까? 아니면 듣는 것으로 의무를 다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자기 위안을 삼기 위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이유는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행동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저주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을 통해서 과거의 실패를 만회하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본문에서 지키라는 말씀은 순종을 의미합니다. 듣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으로 그치면 안 되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체적인 일상생활에서 올바른 삶과 행동을 하는 것은 올바른 가르침보다 더욱 중요합니다. 이점이 다신교 사회에서, 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가 성공할 수 있었던 으뜸가는 이유였습니다. 확실히 행동은 조용하지만 말보다 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가르침과 함께 행동을 함으로 복음 진리를 힘 있게 전파해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관념이 아니라 좀 더 실용적으로 배워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할 때 주어지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5,6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보물이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너는 내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사랑의 속성은 독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이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주면 시기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시기하기까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되 자기의 가장 귀한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보배로 택함을 받는 것은 엄청난 특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이 어디가 이쁘다고 무엇이 귀하다고 그렇게 사랑하시는 것입니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부모 된 입장에서 부모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자녀가 가장 사랑스럽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부모가 자기 자녀를 사랑하는 것처럼 본성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백성은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사랑 받는 백성이 됩니다. 그것은 역사가 입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언약을 지키면 제사장 나라로 삼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성취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3).” 세계 만민에게 복을 나누어 주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고대에서 제사장은 어느 정도의 위치였을까요? 왕과 같은 위치였습니다. 왕은 제사장의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은 만인 제사장 설의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교회였습니다(행 7:38). 이스라엘 백성들이 교회로서 제사장이었기 때문에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도 제사장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어주는 직분입니다. 이스라엘은 선민으로서 특권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세계 모든 민족에 대해서 제사장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로마는 세계에 대해서 법률과 제도를 주었고, 그리스는 철학과 교육을 제공했다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제공했습니다.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가 다 한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기독교는 이스라엘의 자양분 속에서 자랐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많은 것들을 차용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불순종하고 메시야를 거부해서 2천년 동안 나라 없이 유리방황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시고 전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지금 그들이 세계에 끼치는 영향은 놀라울 정도로 큽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했다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큰 선한 영향력을 발휘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사장 나라로 세우셨습니다. 이 나라에 복음이 들어온 지 120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선교사 파송 2위 국가가 되었습니다. 상품 수출은 세계 12위인데 복음 수출은 세계 2위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특권을 맡겨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특권을 감당하는 것이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공부만 하고 전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직무유기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라고 말씀했습니다. 또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그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전하는 것을 생명보다 귀히 여겼습니다. 우리의 사명도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캠퍼스와 세계에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나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주님의 임재와 능력을 체험하고 싶으십니까? 복음을 증거하십시오.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약속하신 성령의 권능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심령에는 위로부터 오는 기쁨이 넘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이나 친구나 가족들이나 캠퍼스 양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침으로 여러분에게 주어진 특권을 마음껏 활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공동체가 왜 존재하는 것입니까? 복음을 전하고 제자 양성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연수를 받을 때 매주 토요일 마더 배리 선교사님과 말씀을 공부하고 교제를 하였습니다. 한 번은 마더 배리 선교사님께서 UBF 모임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아니하면 없어져도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하라고 주신 일을 하지 아니하면서 땅만 차지하고 있을 필요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사람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복음을 전하고 제자들을 키우고자 한다면 이 세상에 존재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고 못 맺고는 주님의 주권에 달린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믿음으로 살면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왜 우리를 택하셨습니까?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 15:16).”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셨고 가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캠퍼스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니 그들은 일제히 응답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그들은 분명하게 결단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그들에게 임하사 모세와 말씀하시고 백성들로 그를 영영히 믿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하는 종의 권위를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도록 돕기 위해서 영적인 환경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들은 몸과 마음을 성결하게 한 후에 하나님을 만나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를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로 택하시고 전 세계 만민에게 복을 나누어 주는 직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우리가 이 직분을 잘 감당하도록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잘 듣고 가서 전합시다!
첨부파일
-
data/message1/09ex10.hwp (0byte)
89회 다운로드 | DATE : 2009-04-19 11:24:3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