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09년 출9강(17:8-18:27) 혼자 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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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출애굽기 공부 9강
말씀 출애굽기 17:8-18:27
요절 출애굽기 18:18
혼자 할 수 없으리라
“너와 또 너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네게 너무 중함이라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피곤해지고 더 나아가 탈진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위기가 찾아옵니다. 문제가 생깁니다. 사탄의 공격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때 어떻게 방어를 하고 영적인 싸움을 계속할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과 전투를 어떻게 감당했습니까? 그들은 합심 기도와 동역을 통해서 승리를 했습니다. 이 후에 지도자 모세가 재판하는 일이 많아서 피곤할 때에 어떻게 했습니까? 중간 리더들을 세우고 동역을 했습니다. 영적 싸움을 하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승리를 할 수 있습니까?
첫째, 기도의 동역(17:8-16) :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비딤, 즉 반석에서 생수를 마셨던 곳에 있을 때였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이 와서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에서의 후손들입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은 사람입니다. 영적인 가치관이 없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던 그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대적하는 세력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했습니까? 신명기 25:18절을 보면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곤할 때에 뒤에 떨어진 약한 사람들을 공격했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공격한다면 어떤 사람들을 공격하겠습니까? 뒤에 쳐져 있는 약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영적 침체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영적 침체는 언제 올까요? 신자가 경건 생활을 하찮게 여길 때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우리의 태만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소멸해 버릴 때 영적으로 연약해 집니다. 거짓된 자신감과 교만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범하기 쉬운 죄입니다. 삶에 지쳐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지 않고 일대일도 잘 하지 않는 사람들이 위험합니다.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고 그러다보면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자꾸 움츠러드는 사람들이 위험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탄의 공격을 받기가 쉽습니다. 관계가 깨어지고 혼자 있는 분들이 위험합니다. 사탄이 베드로를 언제 공격했습니까? 멀찍이 예수님을 따를 때 공격했습니다(눅22:54). 사탄은 이런 베드로를 공격해서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도록 했습니다.
우리는 어려울수록 더욱 주께 더 가까이 나가야겠습니다. 말씀을 죽기 살기로 붙잡아야겠습니다. 그런 가운데 마음으로 자신의 문제를 깨달아야 합니다. 새벽을 깨워 간절히 기도하여 하나님의 기이한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한 친구들과 깊이 속마음을 털어놓고 교제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4:9-12).” 지치고 넘어진 형제들을 붙잡아 주고 격려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함께 손에 손을 잡고 믿음의 행진을 하기를 기도합니다.
모세는 아말렉이 공격해 올 때 여호수아를 전선에 보내고 자신은 기도하러 산 꼭대기에 올라가 섰습니다. 그는 전투상황을 보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11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팔이 피곤하여 팔이 내려가면 전투에서 지니까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고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습니다. 모세는 해가 지도록 손을 내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결국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찔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전쟁에서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6:12)”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사람들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진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전쟁의 승패가 앞에 나가서 싸우는 사람보다 기도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싸움에서 먼저 승리해야 합니다. 기도에 헌신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힘이 듭니다. 물론 기도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단계로 가기까지 자기 부인을 해야 합니다. 기도는 노동이라고 했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은 기도를 쉬는 것은 죄악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중보 기도를 많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합심해서 기도하고 새벽을 깨워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매주 금요 기도 모임에 참석해서 합심해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보고 게임이나 하지 말고 모여서 기도합시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로 매인다면 센터에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아이들끼리 다른 방에서 놀도록 하고 함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직장에서 할 일이 많습니까? 좀 일찍 나오시기 바랍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기도하는 일에 두시기 바랍니다. 루터는 나는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매일 세 시간 이상씩 기도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일이 많으실수록 더욱 기도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 지혜인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것이 내가 좀 더 일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관계가 깨졌습니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용서할 힘을 주실 것입니다. 용서하면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어찌하든지 기도함으로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노예 해방을 선언한 링컨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병력과 무기, 지휘관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열세였던 북군은 전쟁 초반에 계속 패배했습니다. 남부군은 워싱턴 방어선까지 올라왔고 게티즈버그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링컨은 국가적인 금식 기도일을 선포했고 자신도 방문을 잠그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승리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 그의 심령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평안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받아주셨으며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사령관 미이도가 승리의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전세는 북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링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북군의 승리는 기도의 승리였습니다. 우리에게 남군의 로버트 리 장군 같은 명장이 없었음은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영적으로 위기의 때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 가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말씀을 갈망하는 영적인 소원이 부족합니다. 센터 건축과 학생 제자 양성 등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스피릿이 부족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기도하는 일에 먼저 헌신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문제가 해결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기도의 동역자들을 많이 만들어서 중보 기도를 하는 가운데 영적인 싸움을 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내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내가 어려울 때 은밀히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중보기도해 주십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4).”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모세는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하였습니다. 닛시란 나의 기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단을 쌓고 승리를 기념하였습니다. 김연아가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서 우승하자 태극기가 올라갔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의 승리를 할 때 여호와의 깃발이 올라갑니다. 모세의 깃발이 아닙니다. 여호수아의 깃발이 아닙니다. 내가 기도했다고, 내가 앞에서 싸웠다고 의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를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깃발이 올라갑니다. 우리도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고 승리의 깃발을 올리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합심 동역(18:1-27) : 모세의 장인이며 미디안 제사장인 이드로가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두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모세는 장인을 만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바로와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모든 일과 길에서 당한 모든 고난과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을 다 말했습니다. 이드로는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심을 기뻐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리고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하나님께 가져오매 아론과 모든 장로가 와서 모세의 장인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떡을 먹었습니다. 이드로는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였습니다.
이튿날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이드로가 모세에게 조언을 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너와 또 너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네게 너무 중함이라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아말렉과 전투에서도 그렇고 여기서도 그렇고 피곤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모세 혼자서 그 많은 일을 다 할 수 없습니다. 그에게 일이 집중이 되면 자신도 곧 지치고 백성들도 지치게 됩니다. 그래서 이드로는 한 가지 방침을 그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은 모세로 하여금 중간 지도자들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라고 합니다.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들을 살펴서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으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는 어떤 사람을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대개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잘하고 돈을 잘 버는 사람을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 예를 요셉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을 때 그는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했지만 보디발 가정의 총무가 되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지만 거기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사 전옥의 신임을 받게 하셨습니다. 결국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신약에서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으로 봅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집사들을 뽑을 때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뽑았습니다. 이사야 11:2절에 보면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에게 여호와의 영 곧 성령이 충만히 임했기 때문에 그렇게 능력있게 복음 역사를 섬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한 가지를 구해야 한다면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도록 구할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리더로 세워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리더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힙니다. 성령의 대표적인 열매는 사랑과 충성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깁니다. 이들은 충성스럽습니다. 믿음직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섬기게 되면 공동체가 살아납니다.
이드로는 큰 일은 모두 모세가 담당하고 작은 일은 모두 중간 리더들이 스스로 감당하게 되면 그들이 다 평안하게 목적지를 향해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큰 일은 처음으로 부딪치는 문제라든가,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결정을 말합니다. 또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입니다. 그리고 작은 일은 선례가 있는 일입니다. 또는 판에 박힌 일들입니다. 또 상식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이렇게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면 정말 중요한 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을 깊이 있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리더는 중간 리더에게 일을 맡기고 책임을 지게 해야 합니다. 일을 맡길 때 중간 리더들이 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번에 건축 역사를 진행하면서 건축 위원들을 세우고 일의 책임을 맡겼습니다. 그로 인해서 업무를 총무, 재정, 설계 디자인, 홍보 등으로 세분화하고 은사와 능력에 맞는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저는 말씀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자님들이 더욱 주인의식을 가지고 충성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합심 동역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혼자서 일을 하는 것보다 함께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으로 또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백지 한 장도 맞들면 낫다고 합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둘이 하면 두 배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 배, 네 배의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함께 하면 다 같이 일하고 주인 의식을 갖습니다. 하나님의 일도 분담해서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시면서 둘씩 둘씩 짝을 지어 보내셨습니다. 혼자서 전도하려고 하면 이 핑계 저 핑계로 빠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약속을 하고 함께 하면 서로 힘이 되어 일할 수 있습니다. 전도하다가 상처를 받고 힘들면 서로 위로해 주고 다시 도전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세계야구대회에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 김인식 감독은 우리가 힘을 합쳐서 하나가 되면 못할 일이 없다는 말을 했습니다. 야구팀도 처음에는 선수를 구성하는데 크고 작은 문제가 있었지만 국가를 위해서 하나가 되었을 때 희망을 심고 큰일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합심 동역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교만한 생각입니다. 서로 판단하는 마음입니다. 자기중심적인 마음입니다. 이기심입니다. 죄 문제입니다. 합심동역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한쪽이 죽어야 합니다. 큰 사람이 죽어야 합니다. 저는 역사를 섬기면서 다른 목자님들보다 제가 먼저 죽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목자로서 권위가 사라지는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무시 받는 기분도 듭니다. 그러나 내가 죽어 하나님의 역사가 살아난다면 매일 기쁜 마음으로 죽을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쉽지 않지만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길입니다. 저는 그것을 말씀뿐만 아니라 일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일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깨닫는 것은 축복입니다. 고이사무엘 선교사님과 마더 배리 선교사님은 동역을 잘 하셔서 지금과 같은 큰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 비결은 동역이었습니다. 그 분들은 자기를 철저하게 죽이고 상대편의 이야기를 들음으로 동역을 이루었습니다. 마더 배리 선교사님의 전기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책을 보면 동역에 대해서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시카고에 온 후에 사라 선교사는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진정으로 사무엘 선교사와 깊이 있게 동역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그가 미국인들을 사랑하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사라 선교사 자신이야말로 아마도 그가 영접하기 가장 힘든 미국인일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사라 선교사는 시카고에서 사무엘 선교사의 아내, 그레이스 선교사가 그의 최고의 동역자가 되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레이스 선교사는 자신도 미국 선교사로 살면서 고난을 겪기 때문에 사무엘 선교사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인인 사라 선교사는 미국 선교사가 되기 위한 사무엘 선교사의 투쟁이나 고난의 깊이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인 그레이스 선교사는 그를 이해했습니다.” 위대한 주의 종들도 동역의 한계를 잘 알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고난에 동참함으로 동역을 배울 수 있고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목자로서 캠퍼스에서 양을 얻어 일대일로 말씀을 공부하고, 제자 양성을 하고, 그러면서 때로는 양을 떠나보내야 하는 고통을 겪어본 사람들은 목자 생활의 어려움을 압니다. 이런 고난을 겪어본 사람들끼리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동역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서로 힘을 얻습니다. 우리는 학사목자님들이 직장 일에 바쁘고 어렵지만 시간을 내서 매주 목요 바이블 아카데미에서 메시지를 섬기고 있습니다. 이런 동역이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모세는 아론과 훌, 여호수아를 핵심적인 리더들로 세우고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웠습니다. 그는 환상적이며 완벽할 정도의 팀을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업무를 분배했습니다. 큰 일은 모세가 담당하고 사안의 경중에 따라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에게 업무를 분배했습니다. 그들은 업무만 분배한 것이 아니라 범위의 한계 안에서 권위를 위임하여 저들이 재판권을 행사하게 했습니다. 동역 역사를 이루려면 일과 함께 그 일을 처리할 권위를 위임해야 하는 원리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을 해야 할 책임만 주는 것이 아니라 권한도 주어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혼자서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열두명을 한 팀으로 조직하여 그들을 훈련시키시고 그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계속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동역을 잘 하도록 하기 위해서 분명한 원칙을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서로 다투는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3-45)”고 말씀하셨습니다. 리더는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리더 중에서 십부장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들은 오늘 우리로 말하면 요회 목자들입니다. 공동체의 기본적인 모임이 강해야 전체가 강해집니다. 요회 목자들이 리더들을 잘 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회 목자들은 교회 안의 작은 교회 사역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의 동역이 얼마나 중요한가 가르쳐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는 동역의 역사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독불장군은 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주님께서는 교회에 목사와 교사와 기타 여러 가지 은사를 주시고 책임 목자가 팀의 지도자가 되어 멤버를 총동원하여 성공적인 목회를 하게 준비해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유능한 소수의 특정인만이 일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의 다양한 기능과 역할과 필요를 채워 풍성한 교회가 되게 하려면 많은 일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꾼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런 일꾼들을 세우고 훈련하고 협력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나가기를 기도합니다. 합심해서 기도하고 한 마음이 되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제자 양성과 건축 역사를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깃발을 높이 올리기를 바랍니다.
말씀 출애굽기 17:8-18:27
요절 출애굽기 18:18
혼자 할 수 없으리라
“너와 또 너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네게 너무 중함이라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피곤해지고 더 나아가 탈진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위기가 찾아옵니다. 문제가 생깁니다. 사탄의 공격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때 어떻게 방어를 하고 영적인 싸움을 계속할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과 전투를 어떻게 감당했습니까? 그들은 합심 기도와 동역을 통해서 승리를 했습니다. 이 후에 지도자 모세가 재판하는 일이 많아서 피곤할 때에 어떻게 했습니까? 중간 리더들을 세우고 동역을 했습니다. 영적 싸움을 하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승리를 할 수 있습니까?
첫째, 기도의 동역(17:8-16) :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비딤, 즉 반석에서 생수를 마셨던 곳에 있을 때였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이 와서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에서의 후손들입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은 사람입니다. 영적인 가치관이 없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던 그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대적하는 세력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공격했습니까? 신명기 25:18절을 보면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곤할 때에 뒤에 떨어진 약한 사람들을 공격했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공격한다면 어떤 사람들을 공격하겠습니까? 뒤에 쳐져 있는 약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영적 침체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영적 침체는 언제 올까요? 신자가 경건 생활을 하찮게 여길 때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우리의 태만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소멸해 버릴 때 영적으로 연약해 집니다. 거짓된 자신감과 교만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범하기 쉬운 죄입니다. 삶에 지쳐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지 않고 일대일도 잘 하지 않는 사람들이 위험합니다.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고 그러다보면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자꾸 움츠러드는 사람들이 위험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탄의 공격을 받기가 쉽습니다. 관계가 깨어지고 혼자 있는 분들이 위험합니다. 사탄이 베드로를 언제 공격했습니까? 멀찍이 예수님을 따를 때 공격했습니다(눅22:54). 사탄은 이런 베드로를 공격해서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도록 했습니다.
우리는 어려울수록 더욱 주께 더 가까이 나가야겠습니다. 말씀을 죽기 살기로 붙잡아야겠습니다. 그런 가운데 마음으로 자신의 문제를 깨달아야 합니다. 새벽을 깨워 간절히 기도하여 하나님의 기이한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한 친구들과 깊이 속마음을 털어놓고 교제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4:9-12).” 지치고 넘어진 형제들을 붙잡아 주고 격려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함께 손에 손을 잡고 믿음의 행진을 하기를 기도합니다.
모세는 아말렉이 공격해 올 때 여호수아를 전선에 보내고 자신은 기도하러 산 꼭대기에 올라가 섰습니다. 그는 전투상황을 보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11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팔이 피곤하여 팔이 내려가면 전투에서 지니까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고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습니다. 모세는 해가 지도록 손을 내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결국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찔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전쟁에서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6:12)”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사람들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진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전쟁의 승패가 앞에 나가서 싸우는 사람보다 기도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싸움에서 먼저 승리해야 합니다. 기도에 헌신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힘이 듭니다. 물론 기도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단계로 가기까지 자기 부인을 해야 합니다. 기도는 노동이라고 했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은 기도를 쉬는 것은 죄악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중보 기도를 많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합심해서 기도하고 새벽을 깨워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매주 금요 기도 모임에 참석해서 합심해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보고 게임이나 하지 말고 모여서 기도합시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로 매인다면 센터에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아이들끼리 다른 방에서 놀도록 하고 함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직장에서 할 일이 많습니까? 좀 일찍 나오시기 바랍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기도하는 일에 두시기 바랍니다. 루터는 나는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매일 세 시간 이상씩 기도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일이 많으실수록 더욱 기도하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 지혜인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것이 내가 좀 더 일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관계가 깨졌습니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용서할 힘을 주실 것입니다. 용서하면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어찌하든지 기도함으로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노예 해방을 선언한 링컨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병력과 무기, 지휘관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열세였던 북군은 전쟁 초반에 계속 패배했습니다. 남부군은 워싱턴 방어선까지 올라왔고 게티즈버그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링컨은 국가적인 금식 기도일을 선포했고 자신도 방문을 잠그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승리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 그의 심령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평안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받아주셨으며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사령관 미이도가 승리의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전세는 북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링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북군의 승리는 기도의 승리였습니다. 우리에게 남군의 로버트 리 장군 같은 명장이 없었음은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영적으로 위기의 때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 가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말씀을 갈망하는 영적인 소원이 부족합니다. 센터 건축과 학생 제자 양성 등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스피릿이 부족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기도하는 일에 먼저 헌신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문제가 해결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기도의 동역자들을 많이 만들어서 중보 기도를 하는 가운데 영적인 싸움을 싸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내릴 때, 주님은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사랑으로 인도하시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내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내가 어려울 때 은밀히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중보기도해 주십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4).”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모세는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하였습니다. 닛시란 나의 기라는 뜻입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단을 쌓고 승리를 기념하였습니다. 김연아가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서 우승하자 태극기가 올라갔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의 승리를 할 때 여호와의 깃발이 올라갑니다. 모세의 깃발이 아닙니다. 여호수아의 깃발이 아닙니다. 내가 기도했다고, 내가 앞에서 싸웠다고 의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를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깃발이 올라갑니다. 우리도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고 승리의 깃발을 올리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합심 동역(18:1-27) : 모세의 장인이며 미디안 제사장인 이드로가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두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모세는 장인을 만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바로와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모든 일과 길에서 당한 모든 고난과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을 다 말했습니다. 이드로는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심을 기뻐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리고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하나님께 가져오매 아론과 모든 장로가 와서 모세의 장인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떡을 먹었습니다. 이드로는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였습니다.
이튿날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 앉아 있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이드로가 모세에게 조언을 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너와 또 너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네게 너무 중함이라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아말렉과 전투에서도 그렇고 여기서도 그렇고 피곤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모세 혼자서 그 많은 일을 다 할 수 없습니다. 그에게 일이 집중이 되면 자신도 곧 지치고 백성들도 지치게 됩니다. 그래서 이드로는 한 가지 방침을 그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은 모세로 하여금 중간 지도자들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라고 합니다. 또 온 백성 가운데서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들을 살펴서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으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는 어떤 사람을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대개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잘하고 돈을 잘 버는 사람을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 예를 요셉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을 때 그는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했지만 보디발 가정의 총무가 되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지만 거기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사 전옥의 신임을 받게 하셨습니다. 결국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신약에서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으로 봅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집사들을 뽑을 때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뽑았습니다. 이사야 11:2절에 보면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에게 여호와의 영 곧 성령이 충만히 임했기 때문에 그렇게 능력있게 복음 역사를 섬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한 가지를 구해야 한다면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도록 구할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충만한 사람을 리더로 세워야 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리더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힙니다. 성령의 대표적인 열매는 사랑과 충성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깁니다. 이들은 충성스럽습니다. 믿음직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섬기게 되면 공동체가 살아납니다.
이드로는 큰 일은 모두 모세가 담당하고 작은 일은 모두 중간 리더들이 스스로 감당하게 되면 그들이 다 평안하게 목적지를 향해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큰 일은 처음으로 부딪치는 문제라든가,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결정을 말합니다. 또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입니다. 그리고 작은 일은 선례가 있는 일입니다. 또는 판에 박힌 일들입니다. 또 상식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이렇게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면 정말 중요한 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을 깊이 있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리더는 중간 리더에게 일을 맡기고 책임을 지게 해야 합니다. 일을 맡길 때 중간 리더들이 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번에 건축 역사를 진행하면서 건축 위원들을 세우고 일의 책임을 맡겼습니다. 그로 인해서 업무를 총무, 재정, 설계 디자인, 홍보 등으로 세분화하고 은사와 능력에 맞는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저는 말씀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자님들이 더욱 주인의식을 가지고 충성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합심 동역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혼자서 일을 하는 것보다 함께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으로 또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백지 한 장도 맞들면 낫다고 합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둘이 하면 두 배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 배, 네 배의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함께 하면 다 같이 일하고 주인 의식을 갖습니다. 하나님의 일도 분담해서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시면서 둘씩 둘씩 짝을 지어 보내셨습니다. 혼자서 전도하려고 하면 이 핑계 저 핑계로 빠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약속을 하고 함께 하면 서로 힘이 되어 일할 수 있습니다. 전도하다가 상처를 받고 힘들면 서로 위로해 주고 다시 도전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세계야구대회에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 김인식 감독은 우리가 힘을 합쳐서 하나가 되면 못할 일이 없다는 말을 했습니다. 야구팀도 처음에는 선수를 구성하는데 크고 작은 문제가 있었지만 국가를 위해서 하나가 되었을 때 희망을 심고 큰일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합심 동역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교만한 생각입니다. 서로 판단하는 마음입니다. 자기중심적인 마음입니다. 이기심입니다. 죄 문제입니다. 합심동역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한쪽이 죽어야 합니다. 큰 사람이 죽어야 합니다. 저는 역사를 섬기면서 다른 목자님들보다 제가 먼저 죽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목자로서 권위가 사라지는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무시 받는 기분도 듭니다. 그러나 내가 죽어 하나님의 역사가 살아난다면 매일 기쁜 마음으로 죽을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쉽지 않지만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길입니다. 저는 그것을 말씀뿐만 아니라 일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일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깨닫는 것은 축복입니다. 고이사무엘 선교사님과 마더 배리 선교사님은 동역을 잘 하셔서 지금과 같은 큰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 비결은 동역이었습니다. 그 분들은 자기를 철저하게 죽이고 상대편의 이야기를 들음으로 동역을 이루었습니다. 마더 배리 선교사님의 전기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책을 보면 동역에 대해서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시카고에 온 후에 사라 선교사는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진정으로 사무엘 선교사와 깊이 있게 동역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그가 미국인들을 사랑하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사라 선교사 자신이야말로 아마도 그가 영접하기 가장 힘든 미국인일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사라 선교사는 시카고에서 사무엘 선교사의 아내, 그레이스 선교사가 그의 최고의 동역자가 되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레이스 선교사는 자신도 미국 선교사로 살면서 고난을 겪기 때문에 사무엘 선교사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인인 사라 선교사는 미국 선교사가 되기 위한 사무엘 선교사의 투쟁이나 고난의 깊이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인 그레이스 선교사는 그를 이해했습니다.” 위대한 주의 종들도 동역의 한계를 잘 알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고난에 동참함으로 동역을 배울 수 있고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목자로서 캠퍼스에서 양을 얻어 일대일로 말씀을 공부하고, 제자 양성을 하고, 그러면서 때로는 양을 떠나보내야 하는 고통을 겪어본 사람들은 목자 생활의 어려움을 압니다. 이런 고난을 겪어본 사람들끼리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동역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서로 힘을 얻습니다. 우리는 학사목자님들이 직장 일에 바쁘고 어렵지만 시간을 내서 매주 목요 바이블 아카데미에서 메시지를 섬기고 있습니다. 이런 동역이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모세는 아론과 훌, 여호수아를 핵심적인 리더들로 세우고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웠습니다. 그는 환상적이며 완벽할 정도의 팀을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업무를 분배했습니다. 큰 일은 모세가 담당하고 사안의 경중에 따라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에게 업무를 분배했습니다. 그들은 업무만 분배한 것이 아니라 범위의 한계 안에서 권위를 위임하여 저들이 재판권을 행사하게 했습니다. 동역 역사를 이루려면 일과 함께 그 일을 처리할 권위를 위임해야 하는 원리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을 해야 할 책임만 주는 것이 아니라 권한도 주어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혼자서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열두명을 한 팀으로 조직하여 그들을 훈련시키시고 그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계속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동역을 잘 하도록 하기 위해서 분명한 원칙을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서로 다투는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3-45)”고 말씀하셨습니다. 리더는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리더 중에서 십부장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들은 오늘 우리로 말하면 요회 목자들입니다. 공동체의 기본적인 모임이 강해야 전체가 강해집니다. 요회 목자들이 리더들을 잘 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회 목자들은 교회 안의 작은 교회 사역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의 동역이 얼마나 중요한가 가르쳐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는 동역의 역사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독불장군은 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주님께서는 교회에 목사와 교사와 기타 여러 가지 은사를 주시고 책임 목자가 팀의 지도자가 되어 멤버를 총동원하여 성공적인 목회를 하게 준비해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유능한 소수의 특정인만이 일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의 다양한 기능과 역할과 필요를 채워 풍성한 교회가 되게 하려면 많은 일꾼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꾼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런 일꾼들을 세우고 훈련하고 협력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나가기를 기도합니다. 합심해서 기도하고 한 마음이 되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제자 양성과 건축 역사를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깃발을 높이 올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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