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주일말씀 성경별메시지 심포지엄 성경 검색
문제지 성경별문제지

마가복음 여름수양회 저녁강의(막5장)_네 이름이 무었이냐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김성수
댓글 0건 조회 2,263회 작성일 09-07-30 21:15

본문

여러분의 이름은 무었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여러분께 이름을 물어보실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내 실존의 모습을 깨닫고 치유하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네 이름이 무었이냐
마가복음 5:1-20,”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었이냐 이르되 내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감사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시간 말씀을 조명할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시고 부족한 종을 세우셨다오니 다만 주님의 말씀을 밝히 드러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종은 감사드리며 모든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오늘 말씀에서는 귀신이 들려 영혼과 육체가 완전히 파괴되어져 버린 한 청년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영혼을 고쳐주시는 예수님께서 나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귀신의 세력에 신음하는 자들을 치유하시는 완전하신 주님이십니다. 이시간 이 예수님의 권능을 체험하고, 버려진 한 영혼을 사랑하사 살리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 귀신들린 청년을 만나신 예수님(1-8)
1절을 보십시요. 예수님과 제자 일행은 광풍을 만나 간신히 죽을고비를 넘기고 갈리리 바다 건너편 거라시인의 지방에 이르렀습니다.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긴 제자들이었기에 ‘휴! 이제 좀 쉴수 있겠네..!’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제자들의 기대를 완전히 깨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2절”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무덤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쉼을 간절히 원했던 제자들에게 귀신들린 한 청년이 무서운 두 눈을 부라리며 예수님과 그 제자들에게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귀신들린 이 젊은 청년은 불청객이었습니다. 옷은 다 찢어져 있었고 머리는 삼발이 되어서 헝클어져 있었으며 온몸은 자해의 흔적으로 피와 상처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그는 더러운 귀신이 들려 있었습니다. 귀신이 들렸다는 것은 귀신에 사로잡혀서 그의 조종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만난 이 사람은 귀신들린 정도가 아주 심했습니다. 장애자에게도 여러가지 등급이 있듯이 귀신들린 것도 등급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귀신이 들렸지만 거의 정상인 처럼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사람은 1급, 아니 특급 귀신들린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왜 이렇게 흉악한 귀신에 사로잡히게 된 것일까요? 그 이유를 정확하게는 알수 없지만 어느정도 추측은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죄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정욕의 죄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죄인줄 알면서도 회개하지 못하고 반복해서 고의로 죄를 지을 때 귀신이 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귀신들린자의 90%가 정욕때문이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사람이 정욕의 귀신에 잡히게 되면 사람을 온전히 사람으로 보지 못하게 되고 정욕의 대상으로 보게 되고 짐승의 모습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두번째는 갑자기 정신적인 쇼크를 크게 먹었을 때 귀신에 들리게 됩니다. 세번째는 반발심이나 분노등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폭발하게 될 때 귀신에 잡힙니다. 네번째는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없이 지나치게 자학적인 생각을 많이 하다보면 귀신에 들리게 됩니다.

저에게는 한가지 경험이 있습니다. 초등학교때 시골 할머니집에 놀러가서 밤에 친구들과 몰래 수박서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구석에 혼자 쭈그리고 서리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어느순간 검은 옷을 입고 검은 삿갓을 쓰고 체구가 엄청큰 형체가 제 앞에 서있었습니다. 근데 얼굴의 형상이 없었습니다. 저는 너무 무서워서 “하나님, 예수님 살려주세요” 눈을 감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그 형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 그때 귀신보다 하나님 예수님이 더 센 분이라는 것을 어린마음이었지만 알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귀신이 관념적인 존재이거나 조상, 혹은 원한은 갖고 죽은 혼령이 아니고 실제적으로 시공간 속에 존재하는 인격적인 존재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단지, 우리눈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귀신은 본래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장 이었지만, 타락하여 이세상으로 쫒겨난 존재입니다. 이 귀신은 끊임없이 우리의 내면속에 파고들어 진리를 대적하고 죄앞에 쓰러지도록 유혹합니다. 이 세력은 늘 우리곁에서 우는 사자같이 우리를 삼킬 기회만을 엿보고 있습니다.

영화 반지의제왕에서는 한때 두려움을 모르고 악의 세력들과 맞섯던 명장중의 명장 세오덴이라는 왕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 훌륭하고 두려움 모르던 왕이 악한 마법사귀신 사루만의 세력에 잡히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악한 귀신의 세력에 사로잡힌 한 위대했던 왕의 비참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악한 마법사 사루만은 악의 종족들 오크족을 계속해서 만들어 로한 왕국의 백성들을 처참하게 도륙합니다.

또한 귀신들린 세오덴 왕의 아들까지 죽이지만, 안타깝게도 세오덴왕은 죽은 아들도 못알아보고 악의 세력에 조종을 당합니다. (반지의 제왕2부)17:45~20:15, 53:10~53:45
더러운 귀신의 세력에 잡혀버린 세오덴왕은 몸도 마음도 폭삭늘어 왕으로서의 기백과 모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사단의 똘마니가 됩니다. 이처럼 사람이 귀신에 들리면 어떻게 됩니까? 2절을 보십시요.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말씀에서는 귀신을 더러운 귀신이라고 표현합니다. 귀신은 더러운 것을 좋아하며 자신이 지배하는 그 사람을 더럽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 사람이 무덤사이에 거했다는 것만 봐도 귀신이 얼마나 더러운 것을 좋아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귀신으로 말미암아 비단 그 사람의 몸 만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까지도 더러워 집니다. 온갖 불의하고 추하며 더럽고 엽기적인 생각들로 가득하여 집니다. 겉은 멀쩡하고 아름다운 선남선녀처럼 보일지 몰라도 속은 곯고 썩어가게 됩니다. 3,4절을 보십시요. 사람들은 그가 어찌나 난동을 부리고 동네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지, 고랑과 쇠사슬로 칭칭 묶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귀신의 세력은 그에게 감당할 수 없는 괴력을 주었고 그는 마치 종이 조각 끊어버리듯이 고랑과 쇠사슬을 끊어버렸습니다.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마치 버러지 처다보듯 바라보고 상대도 하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마을에 나타나면 다들 집속으로 들어가 문을 잡갔습니다. 그리고 틈만나면 그를 데려다가 쇠사슬로 묶어놓았습니다. 아무도 그를 고귀한 한 인격체로 대해주지 않았습니다.
5절을 보십시요. 다같이 읽겠습니다. “밤낮 무덤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그 사람은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과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열불이 났습니다.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것도 아닌데 미칠 것 같았습니다.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소리질렀습니다. 심장이 터질듯이 외쳐댓습니다. 그래도 분이 안풀리고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으면 돌로 자기의 몸을 마구 찔러댓습니다. “아.. 내가 왜이러지, 정말 미치겠네. 다 죽여버리겠어, 다 죽여버리겠어..!” 자기와 타인에 대한 경멸과 학대는 점점 극에 달하게 됩니다.   

본문처럼 심각하게 귀신려버린 현상은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는 아닙니다. 하지만 귀신들림의 초기증상을 보이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도 예외일수 는 없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영접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고집하였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책망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방심하면 언제든지 귀신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죄로 오염되고 더럽게 될 때 귀신은 자연스레 우리안에 들어옵니다. 한여름 더운날 썩어있는 쓰래기 더미를 보십시요. 그 안에는 반드시 구데기들이 꾸물꾸물 기어다닙니다. 이처럼 우리안에 오염된 죄의 세력이 남아 있을 때 귀신의 세력은 자연히 우리안에 들어오게 됩니다.

들어와서 나를 조금씩 조금씩 지배하기 시작하다가 결국에 가서는 전 인격을 파괴하고 자아를 상실하게 만듭니다.

6,7절을 보십시요.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데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게 마옵소서 하니”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봤습니다.  절박하게 그분 앞으로 뛰어나왔습니다. 마치 절박한 도움이라도 요청하려는 사람처럼 단숨에 뛰어나와 절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입에서 전혀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이 튀어나옵니다. “나를 좀 고쳐주세요..”,라는 말대신 “나와 당신이 무슨상관이 있나이까?  제발 나좀 괴롭히지 마세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모습은 자아가 분열된 모습입니다. 한쪽에서는 예수님을 갈망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예수님의 빛 앞에 나아가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내안에 내가 어쩌지 못하는 또다른 세력이 나를 파멸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바울은 롬7:2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사도바울도 고뇌했듯이 이 문제는 사람의 힘과 의지로는 절대 해결할수도 없으며, 해결할려 해도 언제나 백전백패일 뿐입니다.

그러나 8절을 보십시요.”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예수님은 육지에 닿자마자 그를 보셨고 이미 그의 문제가 무었인지를 아셨습니다. 그가 귀신의 세력으로 인해 고생하고 원치도 않는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치유해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come out of this man..!”

예수님은 이제껏 온갖 병자들을 다 치유해 오셨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셨고 보지 못하는 자를 보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능력이 충만하신 분이실 뿐만이 아니라 모든 세계를 그 뜻대로 주관하시며 통치하시는 주권자이심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이 전능하신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에게 명령하십니다. “더러운 귀신아 그사람에게서 나오라” 귀신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앞에 벌벌떨며 생명을 구걸합니다.

저는 얼마전에 장막 집주인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집주인은 계약기간도 다 되어가니 전세금을 1500만원을 더 올려달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런게 어딨있어요”따져 물었습니다. 그러자 집주인은 아니면 방을 빼달라고 하였습니다. 정중하게 이렇게 말한 것이지, 쉽게 말하면 “아니꼬우면 나가”라는 것 입니다. 저는 이 말앞에 바로 깨갱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집의 소유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잠시 돈을 주고 거주하는 것 일뿐이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나가라면 언제든 나가야 합니다. 끝까지 버티고 있을 권한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몸은 예수님의 거룩한 피값을 주고 사신바 된 거룩한 성전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소유권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사단은 잠시 우리안에 주인되시는 예수님의 허락도 없이 무허가로 머물고 있을 뿐입니다. 귀신이 어찌 내몸안에서 주인이 따로 있는데, 주인행세를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너..나가” 하면 귀신은 깨갱 아무소리 못하고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만의 나의 참된 주인이 되시며 의와 평강의 길로 인도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고백합니다. 아멘!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귀신의 세력에 잡혀있던 세오덴왕은 백색의 선한 마법사 간달프의 방문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귀신의 세력으로부터 자유케 하고자 하는 간달프의 선한힘과, 귀신에들린 세오덴 왕안에 있는 귀신의 힘이 맞부딪히게 됩니다. (영화반지의 제왕2)57:15~ 1:03:10
백색의 마법사 간달프의 선한힘은 악한 귀신의 세력을 몰아내게 됩니다. 그리고 세오덴왕은 다시금 이전의 그 모습과 파이팅 스피릿을 회복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귀신의 세력으로부터 자유케 하실 수 있는 분은 바로 우리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뿐입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 영혼이 회복되고 인생이 온전하여질 수 있습니다.

2. 귀신들린 사람을 온전케 하신 예수님(9-20)
9절을 보십시요 다 갖이 읽겠습니다.”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었이냐 이르되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예수님은 귀신에게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귀신은 마지막 발악을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네 이름이 무었이냐’고 물으십니다.

그럼 왜 이름을 물어보신 것 입니까? 제 중학교 동창중에 이름이 이양복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친구 동생이름은 이내복입니다. 부모님이 함께 양복점을 하고있습니다. 양복점이 번창하길 기원하며 지었다고 합니다.

이름에는 그사람의 삶의 과정 그리고 인격과 실존이 드러납니다. 그의 정체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이름을 물어보신 이유는 바로 귀신의 정체를 폭로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귀신은 자신의 정체가 예수님 앞에 들어나면 힘을 못습니다. 세균이 햇빛에 들어나면 다 죽어버리듯이 예수님의 빛 앞에 귀신의 세력이 들어나면 귀신의 세력이 맥을 못쓰게 됩니다. 그래서 점점 더 어두운 곳으로 숨으려 하고 내면 깊숙한 곳으로 도망하여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가장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흔히 수양회, 특히 여름수양회때 이런 것을 볼수 있습니다. 십자가 말씀앞에 자신의 죄가 적나라 하게 들어날때 많은 양들이 충격을 받거나 힘들어 합니다. 가슴이 답답하다며 중간에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양도 있습니다.(혹 지금 이자리에도 그런 분이 있으신가요?)

계시다면 이는 내 마음의 의도가 아니고, 예수님앞에 자신의 모습이 들어나기를 절대 원치 않는 귀신의 의도임을 알아야 합니다. 귀신은 나의 실존을 깨닫고 예수님 앞에 나의 죄를 드러내는 것을 굉장히 부담스럽고 죽을 것만 같은 것으로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이는 내 영혼의 바램이 아니요 내 안에 역사하는 죄를 지배하는 귀신의 의도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름을 물으시는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현 상태가 근본적으로 어떠한지 자기 발견을 하고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을 통해 치료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그의 대답이 무었입니까? “내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여기서 군대라 함은 헬라어로 레기온으로서 연대 즉2000명 정도의 규모를 말합니다. 정욕귀신, 이기심귀신,혈기귀신, 총각귀신,처녀귀신, 달걀귀신, 아귀, 동자귀신, 몽달귀신, 물귀신까지 왠갖 잡동사니 귀신이 다 그 안에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거적대기를 들춰보니 그 밑에 뱀새끼들이 우글우글거리는 것처럼, 그안을 들춰내보니 온갖추악하고 흉측하고 더러운 귀신들이 다 모여있었습니다.

이 어마어마한 귀신들의 세력에 조종당하고 있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요. 얼마나 비참하고 끔찍합니까? 그의 영혼은 말할 수 없는 압박에 시달리고 갈기갈기 찢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 앞에 모든 것이 벌거벗은 듯이 드러남으로서 그의 인생은 회복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네 이름이 무었이냐?” 물으십니다. 내 이름이 무었입니까? 자꾸 숨기고 싶고 결코 드러내고 싶지않은 나만의 죄 문제가 무었입니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를 얽어매고 나를 조종하는 어둠의 세력은 무었입니까?

우리는 거라사 광인처럼 심하게 귀신에게 끌려다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귀신의 세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한 것도 아닙니다. 때로는 정욕의 귀신에 사로잡혀 밤새 음란 사이트를 정신없이 뒤적뒤적하다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서 쓰러져 잠을 청합니다. 하지만 잠은 안오고  내내 뒤적거렸던 음란동영상이 눈에 아른거립니다. 그러고는 자신도 어쩔수 없는 힘에 이끌려 자위행위를 하고 수치심과 비참함으로 온종일 자신을 자책합니다. 그리고는 또다시 밤만되면 이러면 않되는데 하면서도 음란사이트를 뒤적거립니다. 그러면서 점점 헤어나올수 없는 귀신의 세력에 끌려들어갑니다. 또한 어쩔때는 내 옆의 동역자가 잘 되는 것이 시기심이 들어서 밤새 배가 아파 잠못이루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상대적인 열등감에 사로잡혀 괴로워 합니다. 또 어떨때는 알수 없는 분노와 혈기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또한 요즘은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그 어느때보다 어려운 시기 입니다. 뽑는 인원은 적고 구직자는 점점 늘어납니다. 계속되는 구직의 실패로 많은 청년들이 실업자가 되어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상실하고 방황합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비관하며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는 이도 있습니다. 이런 청년들에게 많이 들어오는 것이 바로 허무귀신입니다. 들어와서는 “인생 뭐 있나..그냥 그렇게 살다 가는거지”하며 한창 팔팔할 나이에 나이 80먹은 영감처럼 애 늙은이가 되어 방콕족으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인정해야 합니다. 귀신의 지배를 받는 죄인이란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수치스럽더라도 예수님 앞에 그 죄들을 고백해야 합니다. 요일1:8,9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끝게 하실 것이요” 예수님은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할 권세가 있으신 분이십니다. 이 예수님께 나아와 우리 내면 깊은곳의 더러운 죄악들을 고백하고, 죄에서 자유한 삶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1,12절을 보십시요. 예수님의 강력한 음성에 귀신들은 움찔하더니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때에게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자 이놈의 돼지때들은 갑자기 광돈병에 걸린것처럼 미쳐 날뛰며 꽥꽥거리더니 바다를 향해 비탈을 내리달아 바닷물에 전부 빠져 장렬하게 죽게 됩니다. 근데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합니까? 17절을 보십시요”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우리는 여기서 한 생명을 대하는 예수님과 마을 사람들의 극명하게 대조되는 가치관을 볼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한생명을 살리는데 초점이 있었습니다. 반면 마을 사람들은 한 생명보다 돼지때가 더 소중했습니다. 참으로 그곳은 한 영혼의 생명보다 돼지를 더 귀하게 여기는 곳이었습니다. 목숨보다 돈을 더 중하게 여기는 물질주의, 실용주의 가치관이 팽배한 곳이었습니다. 이런 곳은 순수한 사람들에게 상처나 주고 귀신들린 자나 만들어내는 곳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의 사회가 그렇습니다. 사람의 고귀한 영혼보다 물질을 더 중히 여기고, 이를 위해서는 사람목숨 파리목숨보다 못하게 여기는 것이 오늘날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이런 시대 이런 영혼들을 섬기려면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가족도 사회도 학교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서 버려진 영혼, 바로 그 영혼이 나를 위해 준비된 양임을 믿어야겠습니다. 우리가 양을 치는 사명도 시대의 실용주의적 가치관에 기초하지 않고 예수님의 순수한 목자의 심정에 기초해서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0절을 보십시요.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결국 그는 돌아가서 데가볼리 지역에 예수님의 행하신 일을 기쁨으로 전파하였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이 지역에 복음이 편만하게 증거된 사실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그 사람이 뿌린 씨의 열매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귀신들렸던 자가 이렇게 변화된 삶을 살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귀신들려서 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사람이 한 지역을 섬기는 지부장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죄를 고백하고 사함받고 온전히 자유해 질 때 세상이 감당못할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귀신의 세력으로부터 자유해진 세오덴왕은 이제 변화된 모습으로 전쟁터에 나아갑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오크족들에 의해 완전히 전멸직전의 상태에 놓인 헬름계곡을향해구원의깃발을높이세우고전진해 나아갑니다.(영화반지의제왕3)1:55:45~2:01:30
이처럼 예수님안에서 우리가 참 자유함을 얻고 새사람이 될 때, 세상이 감당못할 스피릿과 영성을 덧입게 됩니다. 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자가 변화되어, 세계를 향해 주님의 깃발을 들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스펙타클한 인생이 기대되지 않으십니까? 지극히 너무나도 뻔한 스토리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다람쥐 챗바퀴 돌 듯 그런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무미 건조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역동적으로 바꾸고 개척해가는 삶이 기대되지 않으십니까? 해답은 바로 예수님께 있습니다. 이번 수양회를 통해 그렇게 우리를 변화시켜 가시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는 1978년 어느추운 겨울에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태어날 당시 체중이 상당히 모자라 생명이 위험해서 인큐베이터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몸이 많이 약했고 기억이라고는 맨날 아파서 어머니 손을 잡고 병원에 가거나,아님 이불 속에서 콜록거렸던 기억밖에는 없습니다. 삐쩍 말라서 바람불면 날아갈 것 같아서, 어렸을 때 가장 부러웠던 사람이 배나오고 뚱뚱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성을 알게 되고 친구들에게 알게된 자위행위를 통해 하루하루 제 자신에게 수치스러운 짓을 하며 정죄 감에 사로잡혀야 했습니다. 자주 제 손등에서 야수의 털이 나는 환영을 보곤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열심히 공부하고 또 성적도 좋고 성격도 착해 남에게 싫은 말 않좋은 말 절대 하지 않는 아주 착하고 순한 사람이었지만, 집에만 오면 이중적이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음란동영상을 보며 제 영혼은 정욕의 세력에 사로잡혀갔습니다. 고등학교때는 아버지가 외도를 하게되었습니다. 집안은 풍지박살이 났고 어머니는 분을 삭히지 못해 날마다 아버지 욕을 해가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버지는 두집살림을 차려놓고 어쩌다 집에 들어와 가족들에게 욕을 해가며 심지어 동생에게 손지검도 하였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진정시키고 아버지를 한동안 설득시켜 상황을 진정시켰지만 어머니의 이런 피해의식은 한동안 사그러들지 안았습니다. 아버지와 살림을 차린 그 여자가 죽이고 싶도록 미웠습니다. 아버지 역시 죽이고 싶도록 미웠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연민으로 마음이 애리고 쓰라려, 내가 꼭 성공해 어머니의 자랑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렇게 제안에 미움의 감정이 있을 때 저는 아버지와 완전히 대화의 담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도저희 용서할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이런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미움의 감정,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연민으로 저는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이런 제게 탈출구가 있었으니 바로 대학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지만, 저는 역대수능중 가장 어려워 남들다 30-40점씩 떨어졌다는 수능에서 무려 40점이 올라 실력은 않됬지만 홍대 전자전기 공학부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마치 이것이 내 능력인양 자만하며 기대만빵 대학생활의 쾌락에 빠졌습니다. 매일 밤새도록 술에 쩔어서 살았고 담배도 피웠습니다. 아침마다 술이 덜깨서 수업에 들어가 한쪽 구석에서 쭈그리고 잘때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대학생활이 지나가면서 이게 전부였나 생각하니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친구 만나러 동아리 방에 왔다가 밥 한끼 사주시는 목자님께 미안해서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 여름수양회 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무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나를 너무나도 끔찍히 사랑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것을 보며 회개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소감을 통해 그간 제 안에 꽁꽁 숨겨놓았던 더럽고 추한 죄악들과 정욕문제를 예수님 앞에 드러내고 죄사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정욕귀신의 세력에서 비로소 제가 자유하게 된 것 입니다. 예수님이 제 삶에 들어오셔서 인생이 변화되었을 때,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모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렇게 미워하던 아버지를 용서하고, 무었보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 관계성이 온전히 회복되어 미움의 귀신에서 자유할수 있었습니다. . 비록 군대기간동안 하나님을 잠시떠나 자매를 만나며 정신못차리고 집떠난 탕자처럼 죄가운데 방황할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저를 포기 아니하시고 집떠난 탕자를 기다리시듯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시 돌아왔을 때 하나님은 “사랑하는 내 아들아!”하시며 저를 맞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평생 정욕과 미움의 귀신에서 질질끌려다녀할 저를 온전히 은혜로 자기발켠케 해주시고 귀신의 세력에서 자유케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제 인생의 초점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제게 구직활동을 통해 믿음을 배우게 하시고 승리를 주셨습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제가 어느 모 기업에 면접을 보러 갔을때였습니다. 급하게 서둘러 가다보니 복장은 전부 검은색 정장인데, 양말이 눈에 확띄는 살색을 신은 것을 면접시간이 다 되서 알게 되었습니다. 인사담당자는 저를 위아래를 훍어 보더니 양말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너는 않되겠다 포기해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풀이죽어 면접실에 들어갔는데 한명씩 자기소개를 시켰습니다. 근데 저는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는줄로 잘못알고 열심히 영어 자기소개서를 외워 갔습니다. “땡큐 포 인바이팅 미, 렛미 이트로튜스...”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는데 첫사람이 자기소개 시작을 하였습니다. 근데 영어가 아니라 한국말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너는 떨어졌다”생각했습니다. 근데 그 다음사람도 또 그다음사람도 한국어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점점 불길함이 엄습해왔습니다. 앞이 캄캄했습니다. 영어자기소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순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럴때 하나님은 마치 제 입에서 방언이 튀어나오듯 생각지도 않은 말들을 즉흥적으로 쏟아내게 하셨습니다. 그때 했던말이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아마 이랬던 것 같습니다. “충성, 끈기, 책임 저를 이 세 단어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저는 군대생활을 통해 끈기와 충성을 배웠습니다. 이 세가지 장점을 통해 귀사에 꼭 도움이 되는인제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그후 면접관님은 얼굴에 턱을 괴고 끄덕거렸습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상대방 앞에서 얼굴에 턱을 괜다는 것은 관심이 없다는 표현이기에 저는 떨어진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결과를 확인해보니 합격이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귀신들렸던 제 인생을 고치셨을 때 그후 제인생은 하나님 안에서 축복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려운 구직활동가운데 믿음의 직장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그 직장가운데서 순례자 훈련을 하시며 제 내면을 연단하시고 개인신앙을 키워가셨습니다. 그리고 업무에서도 승리를 주시고 올해 우수사원추천을 받게 하시고 연말에 회장님께 표창을 받는 영광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제 인생을 통해서 크고 놀라운 일을 행사실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귀신의 세력에 잡혀 질질끌려다니는 캠퍼스의 영혼들을 먹이고 살리는 귀한 직분에 저를 크게 사용하실 하나님의 손길을 인해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구체적으로 제가 올해 한명을 섬기는 데서 반드시 승리의 체험을 해야 하겠습니다. 한 영혼을 섬기지 못하는 자가 어찌 열국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올 한해 한영혼을 섬기며 이를 통해 세계를 먹일 사람으로 제가 연단되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네 이름이 무었이냐” 말씀하심으로 죄와 귀신의 정체를 드러내시고 한영혼을 온전히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숨기고자 하는 나의 죄문제 나의 이름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자유함과 치유함을 누리며 승리하는 삶을 살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323건 58 페이지
주일메시지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468 야고보서 이엘리야 2318 08-23
467 야고보서 허느헤미야 2840 08-16
466 야고보서 이엘리야 2429 08-09
465 수양회 심마태 2276 08-03
464 야고보서 이엘리야 2378 08-02
463 특강 섬김이 2147 07-31
462 수양회 정베드로 2423 07-30
열람중 마가복음 김성수 2264 07-30
460 마태복음 권한진 2431 07-30
459 마태복음 이엘리야 2100 07-19
458 출애굽기 이엘리야 1984 07-12
457 출애굽기 이엘리야 2037 07-05
456 출애굽기 이엘리야 2212 06-28
455 출애굽기 이엘리야 2150 06-21
454 출애굽기 이엘리야 2053 06-14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