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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메시지_큰 영광으로 오실 예수님(마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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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한진
댓글 0건 조회 2,430회 작성일 09-07-30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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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수양회를 통해 풍성한 말씀의 은혜를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맡겨주신 복음전파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는 저희 동교센터가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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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마태복음 24:1-51
요절 / 마태복음 24:30

큰 영광으로 오실 예수님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여러분, 여러분들께서는 이 세상이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지구가 멈추는 날’, ‘노잉’과 같은 영화와 같이 언젠가는 지구종말의 날이 올 것이라고 믿습니까? 물론 여러분들의 대부분은 이 세상의 종말과 함께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일주일 뒤, 내일 모레 오신다고 해도 언제든지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이론적으로, 머리로만 믿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보통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묵상도 많이 하고, 일대일 공부 때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다루고 있는 반면에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은 십자가 복음과 더불어 우리가 항상 관심을 가져야할 너무나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실제로 성경을 분석해보면 매 30절의 한 절은 그리스도의 재림이나 말세의 주제를 언급하고 있으며, 신약의 216장 중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언급이 300회 이상 나옵니다.
인류의 역사가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종말과 재림, 심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은 기독교에 있어 근본적인 역사관입니다. 이와 같은 분명한 기독교적 역사관, 즉 재림신앙을 가질 때 우리 삶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은 근본적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하루 하루를 직장과 학업, 각종 잔재미에 빠져 의미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실 그날을 준비하며 우리의 인생을 가장 값지고 의미있게 보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올바른 재림신앙을 정립하고, 예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신실하게 감당하며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제1장. 말세의 징조(1-28)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왔습니다. 이 성전은 헤롯 대왕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건축한 것으로 BC 586년 솔로몬 성전이 파괴 된 후, BC 520년에 스룹바벨이 재건한 것을 개축이라는 명목 하에 지은 세 번째 성전이었습니다. 헤롯 성전은 BC 19년부터 AD 63년까지 무려 80여년에 걸쳐 지어졌으며 거대하고 화려한 흰 대리석들과 황금으로 꾸며진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전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이 성전의 장엄함에 감탄하여 예수님께서도 자기들에게 동조해주길 바랬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2절을 보십시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예수님께서는 그 화려하던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저렇게 웅장하고 화려하게 서 있는 성전이 무너진다니, 유대인들에게 성전의 멸망이란 단순히 건물의 무너짐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선민의식이 뿌리깊었던 그들에게 있어 성전의 멸망은 곧 세상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과도 같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이 두렵기도 하고 더 자세하게 알고 싶어서 조용히 예수님께 와서 여쭈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먼저 세상 끝 날에 임할 징조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시고, 종말의 때에 대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세상 끝날에는 어떤 징조들이 있습니까?

첫째, 많은 거짓 그리스도들이 나타납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사람들을 미혹하는 거짓 그리스도들은 예전부터 계속해서 있어 왔습니다. 사도행전에서도 보면 당시에 ‘드다’나 ‘갈릴리의 유다’ 같은 거짓 메시아들이 일어나 스스로를 선전하고 많은 사람들을 꾀어 따르게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복음진리가 분명히 서있지 않은 초신자들에게 있어 이러한 거짓 그리스도들의 미혹은 대단히 치명적입니다. 그들이 전하는 말을 듣다보면 상당히 논리적이고 또 성경적으로도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의 뒤에는 미혹하는 영, 즉 사단의 영이 함께 하기 때문에 단순히 냉철한 판단력과 지성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여 넘어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이단을 믿는 사람들 중에 대학생 지성인들이 많이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언제라도 그들의 말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오늘날에도 보면 이러한 미혹의 영이 난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통일교 문선명, JMS 정명석 등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하는 자들이 우리나라에만 10명 이상이 된다고 합니다. 제가 예전에 알던 한 자매도 그런 이단의 유혹에 넘어간 케이스였습니다. 그 자매는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되는 초신자였는데, 날마다 예수님과 성경을 알아가는 기쁨을 느끼던 자매였습니다. 저도 이 자매를 보면서 많은 자극이 되었고, 이 자매가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자매가 저에게 자신이 다니는 교회가 이단이라는 얘기가 있던데, 한번 알아봐달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센터 목자님들과 이단에 관한 책자를 통해서 그 교회가 이단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그 사실을 빨리 그 자매에게 알려주고자 하였습니다. 며칠 뒤 그 자매를 다시 만나 조심스럽게 그 이야기를 해주려고 했는데, 이 자매는 이미 자기 교회가 이단이 아니라는 쪽으로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였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자매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지만, 이미 그 자매는 그쪽에 깊이 빠져 마음을 돌리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그 때 처음으로 이단, 즉 미혹하는 영의 세력의 무서움을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미혹하는 영에 한번 사로잡히게 되면 다시 돌이키기가 어렵기에 한 사람이라도 미혹을 더 받기 전에 우리가 더 부지런히 말씀을 전하여 올바른 구원의 길로 인도하여야 하겠습니다.

둘째 징조는, 전쟁과 자연재해입니다. 6-8절을 보십시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지난 20세기 인류는 1차,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많은 희생을 치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중동 지역과 제3세계 국가들에서는 종족 간의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최근 우리와 바로 코를 맞대고 있는 북한이 핵연료봉을 재처리하고, 핵을 무기화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도 북한의 핵위협으로 인한 국제적 긴장이 고조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자연재해는 어떻습니까? 유니세프의 조사에 따르면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어린이의 수가 세계적으로 매년 1200여 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세계 인구의 1/3이 기아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2002년도 동남아에서 발생한 쓰나미는 순식간에 무려 수백명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평화롭게 해변에서 여가를 즐기던 수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물 속에 수장되었습니다. 지진 또한 해가 갈수록 발생주기와 규모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지난 해 5월 발생하였던 중국 쓰촨성 대지진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쓰촨성 지진으로 인해 무려 9만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으며, 그 이후에도 쓰촨성에는 크고 작은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비상이 걸린 신종 플루는 각 정부의 보건당국이 그토록 신경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손을 써보지도 못한채 감염자가 점점 늘어만 가는 상황입니다. 오늘날 인류는 복제 동물을 만들어내고, 우주에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며, 물질의 미세한 원자단위까지 분석해내는 등 최첨단 과학을 통해 자연세계를 알아내고 정복한 듯이 보이지만, 앞서 말한 자연재해들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여전히 자연 앞에 무기력한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소식들이 들려오는 것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8절 후반부를 다시 보십시오.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영어 성경에서는 이 부분을 ‘all these are the beginning of birth pains’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산모가 분만할 때 겪는 해산의 고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보통 산모는 아기를 낳기까지 적게는 수 시간 많게는 수십 시간에 이르는 진통의 시간을 겪게 됩니다. 아기가 나오기 전까지 자궁은 규칙적으로 수축하면서 산모에게 해산 시의 고통을 반복해서 겪게 합니다. 해산의 때가 가까울수록 주기는 점점 짧아지게 됩니다. 이와 같이 전쟁과 자연재해도 말세가 가까울수록 점점 더 자주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러한 재난을 birth pains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이러한 재난이 단순히 의미 없는 재난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의미 있는 고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을 통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징조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입니다. 9, 10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말세가 가까워질수록 성도들은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고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주고 미워하게 됩니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게 됩니다. 성도끼리 서로 사랑이 식어 서로 잡아주고 미워하는 것, 어떻게 보면 앞서 말한 재난의 징조들보다도 훨씬 더 끔찍하고 두려운 징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토록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고 아껴주던 성도들이 서로를 미워하고 잡아 넘겨주는 것은 정말 상상만 해도 두려운 일입니다.
저는 UBF에 와서 목자님들께 많은 섬김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마리아목자님은 1999년 저를 만난 이후로 저를 헌신적으로 섬겨주셨습니다. 군생활을 할 때 그 먼 충주까지 맛있는 음식을 잔뜩 싸가지고 무려 5번이나 심방을 오셔서 영적.육적 양식을 나눠주셨습니다. 제가 전역 후 학교 근처에서 하숙을 하다가 감기가 걸려서 방안에 꼼짝 못하고 누워 있을 때에는 하숙집까지 직접 찾아와서 죽과 과일을 먹여 주셨습니다. 마태 목자님 또한 제가 종종 버릇없이 굴고 짜증을 낼 때도 항상 묵묵하게 저를 감당해주시고 기도해주셨습니다. 두 분 외에도 엘리야 목자님과 선희 사모님, 장막 동역자들을 비롯한 많은 목자님들이 저를 기도와 사랑으로 섬겨주셨습니다. 제가 이 분들을 생각할 때 정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사랑이 충만한 분들이 사랑이 식어져 서로를 미워하고 잡아주는 것은 상상만 해도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입니다. 어떠한 일이 온다 하더라도 우리 믿음의 동역자들끼리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끝까지 함께 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럼 우리가 이러한 말세의 여러 징조들을 보고 경험하게 될 때 우리는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첫째,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6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대지진과 홍수, 해일 등의 자연재해와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족간의 전쟁, 최근에는 신종 플루로 인한 전 세계적 감염과 북한의 미사일과 핵위협까지..지구촌 곳곳에서 들려오는 이런 우울한 소식들을 접할 때 사람들은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이러한 일을 미리 알려 주셨으며 우리를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 종말은 말 그대로 끝을 의미하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 종말이란 곧 새 하늘 새 땅에서의 새로운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둡고 불안한 세상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담대하게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둘째, 인내해야 합니다. 13-1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재난과 기근 같은 육적인 고통을 겪거나, 믿음으로 인해 주위 사람들로부터 정신적인 핍박을 받게 될 때 우리는 종종 믿음의 길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실제로도 많은 신앙인들과 UBF목자님들 중에서도 믿음의 길을 포기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시끄럽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가 핍박을 받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바로 우리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을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이 땅에는 무슬림을 비롯하여 이웃 북한까지 복음을 접해보지 못한 미전도 종족이 너무도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천국복음이 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전에는 끝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는 그 날까지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며 모든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길 기도합니다.  세상 모든 민족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얻기 까지 견디며 소망 가운데 이 소명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러나 견디는 것, 인내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내에는 반드시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먼저 모든 것을 참아내신 인내의 대선배이자 완벽한 롤 모델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히브리서 12:2-3절은 말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예수님은 충분히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까지 그 모든 수치와 고통을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참지 않으셨다면 지금 우리에게 구원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신 예수님, 자기를 거역한 죄인들을 참으신 예수님을 늘 바라보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모든 어려움과 세상 유혹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이 구원의 길을 갈 수가 있습니다.

15-28절은 가장 큰 환난 날에 대한 구체적인 예언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 중 일부는 예루살렘 멸망 시에 성취가 되었으며, 일부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입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이 말씀은 곧 신성모독을 의미하며, 이처럼 성전의 중심이 타락할 때가 멸망의 때임을 예언한 것입니다. 실제로 이 말씀은 AD 70년 로마의 티투스 황제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포위 당하고 불태워짐으로써 성취가 되었습니다. 당시 이 말씀을 기억하고 믿었던 사람들은 로마 군대가 공격했을 때 산으로 도망하여 생명을 건졌습니다. 반면 성전은 안전하리라 굳게 믿고 성전으로 모였던 백만 명이 넘는 이들은 로마 군대에 의해 떼죽음을 당하였습니다. 환난이 임할 때에 물질에 매이면 안됩니다. 환난의 때에 세상 일에 얽매인 사람일수록 피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날은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전무후무한 환난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시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아야 합니다. 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며 할 수만 있다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려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특정한 장소에서 은밀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범우주적으로 보편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제2장.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29-51)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모습으로 재림하게 될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지구의 마지막 날, 즉 종말과 재림의 때에 물리적 가시적 징조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9, 30절을 보십시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날 환난 후, 즉 종말의 때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않을 것입니다.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릴 것입니다. 이 세상을 유지하던 모든 우주의 질서, 모든 자연의 법칙이 무너지게 됩니다. 이에 대해 베드로후서 3장 10절은 이렇게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 재림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일 것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들은 그제서야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와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통곡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인류는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강림하실 때 신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31절을 보십시오.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르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도 예수님의 강림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 장면을 상상해보십시오. 수십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 소리의 웅장함에 놀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빠빠바 빰’. 예수님이 오실 때는 이 지구상의 모든 오케스트라를 모아 놓은 것과도 비교도 되지 않은 웅장한 나팔 소리와 함께 큰 호령소리로 우리의 이름이 불리워지게 될 것입니다. ‘김효연!’ ‘이효선!’ ‘윤소정!’ 이처럼 웅장하고 장엄한 광경 속에서 우리의 이름이 큰 소리로 불리워질 영광의 순간을 그리며, 현재의 고난을 이겨내며 끝까지 믿음의 길을 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세상 끝날에 나타날 징조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때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사람들은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이 주님이 말씀하신 말세의 징조들을 볼 때에 우리는 예수님이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인류의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이 이 세대에 일어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정확한 때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이 아십니다. 천사들도 모르고 심지어 예수님조차 알지 못하십니다. 창세기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할 것입니다.

노아의 때는 어떠하였습니까? 노아 시대에 하나님은 사람들의 죄악이 가득한 것을 보시고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한 중에도 하나님은 의인 한 사람 노아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와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홍수 심판의 계획을 말씀하시고 방주를 지어 준비하도록 하셨습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경고하였지만 사람들은 그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홍수 심판이 다가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에도 그들은 먹고 마시며 장가들고 시집가며 홍수가 자신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 마시며 자기 일에 몰두하며 살아가다가 심판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노아의 때 사람들과 같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다 같이 42-44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우리는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 안다면 도둑이 오기로 한 시간에 알람을 맞추어 놓았다가 깨어 도둑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몇 시에 오겠다고 하는 도둑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는 모두가 잠든 예상치 못한 시간에 들어와 집을 뚫어 소중한 것들을 도둑질해 갈 것입니다. 주님의 임하심 또한 이와 같이 생각지 못한 때에 이루어질 것이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같은 내용을 기록한 누가복음 21장 36절에서는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라’고 말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서 바울은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고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16장 15절 또한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깨어 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합니까? 졸음이 몰려와 눈꺼풀이 천근만근처럼 느껴질 때 성냥개피를 눈 꺼풀 사이에 끼워놓고 졸린 눈을 부릅 뜨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45-46절을 보십시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 라는 말은 주님의 양 무리들을 충성스럽게 잘 먹이라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캠퍼스에 올라 양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일대일 성경공부를 통해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충성스럽게 복음을 전파하고 양을 먹이고 키울 때 주님께서 속히 임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이러한 충성된 종들을 기뻐하시고 당신의 모든 소유, 당신의 나라의 기업을 맡겨 주실 것입니다.

반면 악한 종은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료들을 때리고 술친구와 더불어 먹고 마십니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이와 같은 말세의 시대에 우리를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복된 자들로 부르셨습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캠퍼스 양들을 주시고, 깨어 있을 수 있는 베스트의 환경을 예비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우리가 지금 자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우리가 방탕함과 술취함과 나태함과 생활의 염려에 빠져 마음이 둔하여진 상태에 있지는 않습니까? 물질문제, 취업문제, 회사문제, 세상 잔재미와 욕심에 묻혀 정신을 못차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문제, 내 연약함 속에 파묻혀 고민하다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우리가 자고 있었다면 우리는 지금 이 시간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주안에야! 깨어 있어라. 내가 다시 갈 날이 얼마 안남았으니 이제 그만 일어나 내 양무리들을 먹이거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동교센터를 사랑하시사 올 한해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건축역사를 통해 목자님들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게 하여주시고,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기도하는 기도의 심령을 허락해주셨습니다. 목자님들 한 분 한 분이 센터역사에 주인의식을 가지고 돌아보게 하시고, 부족한 물질생활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건축헌금을 약정하게 하셨으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한 마음이 되게 하셨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건축역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목자님들도 계셨고, 10의 2조 정도의 헌금을 내야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자녀들의 교육비며, 생활비며, 집값이며, 도무지 계산이 나오지 않아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가 진정으로 걱정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분명히 할 수가 있습니다. 앞서 보았던 여러 가지 징조들을 볼 때 예수님의 재림이 문 앞에 와있다는 사실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당장 내일 오실지 아니면 1년 후에 오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당장의 먹고 살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한 명의 양이라도 더 얻어서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건축역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건축역사를 통해 우리는 올해 안에 신세대 양들을 담을만한 아름답고 깨끗한 영적인 환경이 준비될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헌신과 열정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건물이 생긴다하더라도 그 안에 양들이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내일 당장 예수님이 오신다 하더라도 부끄러움이 없도록 하루 하루를 캠퍼스 전도와 말씀공부에 힘을 쏟아야 하겠습니다. 다가오는 가을학기에는 모든 목자님들이 캠퍼스에 올라 곧 새로 지어질 새 센터에 담을 양들을 한 명 이상씩 양성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새로운 센터와 함께 2010년 배가의 역사를 반드시 이뤄낼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여러분들이 양들과 일대일을 하며 예수님을 맞이하여 양과 함께 같이 하늘로 올리워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는 그 동안 UBF에서 7년여간의 생활을 통해 영적으로 많은 성장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인정만을 좇아 항상 1등 만을 추구하며 살아왔던 제가 사람들이 아닌 예수님의 인정을 받는 삶을 살고자 2005년 목자의 삶을 결단하였습니다. 사람들과의 세상적인 만남을 좋아했던 제가 세상적인 관계들을 정리하고 목자님들, 양들과의 믿음의 교제를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생활 가운데서도 믿음의 중심을 지키고자 회식자리에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섬김의 정신을 배우고자 장막생활을 결단하고 생활하고 있으며, 십일조 또한 꼬박꼬박 감당하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성공과 인정만을 인생의 목표로 살아왔던 제가 예수님의 제자요 양들을 섬기는 목자로 변화된 것은 실로 놀라우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의 저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볼 때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답보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회사업무가 점점 많아지면서 매일 같이 퇴근이 늦어지고, 심지어는 주일에도 출근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몸과 마음과 시간을 하나님의 일보다 회사에 더 많이 쏟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새벽기도와 일용할 양식, 주소감 등의 영적기본생활을 충실히 감당하지 못하였고, 목자님의 말씀보다 회사 상사의 지시에 더 순종하였습니다. 주소감을 쓰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서 회사 보고서 제출기한을 지키지 못하는 것에는 스트레스를 받고 야근을 하면서까지 감당하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세상 잔재미를 즐기고자 하였습니다. 작년 수양회 직전에도 저를 심히 번민하게 했던 회사 자매와의 관계를 온전히 정리하지 못하고 친구라는 명목 하에 종종 따로 만남을 가지며 자매와의 만남을 즐기곤 하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저의 부족한 모습이 언젠가는 나아지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스스로를 방치해왔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다보면 언젠가는 학생 양도 치고, 센터역사에도 더 크게 쓰임을 받을 때가 오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저의 상태가 좋아지는 그 언젠가’라는 시기가 오기 전에 예수님께서 먼저 오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여전히 이 모습으로 있다면 제 스스로가 예수님 앞에 떳떳하게 나아갈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예수님 앞에 떳떳하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첫째,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제가 그 동안 막연히 ‘언젠가는 좋아지겠지’라며 방치했던 저의 신앙적 안이함을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장 내일 오실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제 안에 잠들어 있던 모든 안이함과 나태함을 깨부셔야 합니다. 둘째, 준비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맡기신 양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공급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제가 말씀을 잘 먹어야 합니다. 제가 이번 수양회를 계기로 다시금 새벽기도와 일용할 양식, 주소감 등의 영적인 기본생활을 신실하게 감당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저의 자의식 문제로 제대로 도전하지 못했던 캠퍼스 전도를 적극적으로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람들로부터의 인정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해오며 살아왔던 저이기에 사람들로부터의 거절과 무시에 대한 두려움이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제가 거둔 양이 한 명도 없다면, 그것이 훨씬 더 두려운 일일 것입니다. 제가 이러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가을학기에는 적극적으로 캠퍼스에 올라 전도를 감당하고, 2010년까지 한 명의 대학생 제자를 양성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보여지는 많은 징조들이 이 세상의 끝날과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면 만회할 시간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순간, 모든 사람은 버려짐을 당하는 자와 예수님과 함께 올라가는 자의 두 부류로 나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을 통하여 이 같은 예수님의 재림신앙을 다시 한번 확실히 하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홍대와 영남대 캠퍼스 양들을 신실하게 말씀으로 먹이며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해야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우리 목자님들 모두의 이름이 큰 나팔소리와 함께 불려지며, 새 하늘 새 땅에서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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