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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09년 출18강(32:30-33:23)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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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2,149회 작성일 09-06-2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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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출애굽기 공부 18강                                                       
말씀 출애굽기 32:30-33:23
요절 출애굽기 33:16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소서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여러분의 기도가 응답된다고 믿으십니까? 기도가 응답된다는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열심을 내어 기도할 수 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버드박사가 입원환자 393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임상실험을 했습니다. 한 부류는 중보기도 팀이 그들의 치료와 회복을 위해서 기도하고 한 부류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환자들은 누군가 자기들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일정 기간 동안 기도하고 환자들을 비교해 보았더니 기도를 받은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그룹의 사람들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기도를 받은 그룹은 합병증이 별로 없고 항생제 사용이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오늘은 모세의 중보기도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첫째, 모세의 생명을 건 중보기도(32:30-33:6) : 모세는 금송아지 사건에 대해서 백성들을 징계하고 이튿날 하나님께 속죄를 구하기 위해서 시내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혹 속죄가 될까 하는 마음으로 올라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 대한 진노를 경감하기는 하였지만 사죄를 확신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했습니다.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31,32).” 그는 하나님께 그들의 죄를 사해주시도록 간구할 때 마치 자신이 죄를 지은 사람마냥 생명을 걸었습니다. 그는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는 것의 심각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지옥의 고통이 뒤따르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중보자로서 자신의 생명과 백성들의 죄를 맞바꾸고자 기도하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예수님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이시지만 죄인 중의 괴수와 같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자기 목숨을 바쳐 속죄를 했습니다. 모세는 백성과 자신을 하나로 생각했습니다. 그 만큼 백성들을 사랑했습니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배척을 받았는데 이렇게까지 한 것을 보면 그들의 진정한 지도자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받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33,34).”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백성들을 위해서 목자 노릇을 하도록 격려하셨습니다. 그러데 친히 그들과 함께 가시지 않고 사자를 보내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이 목이 곧은 백성이라 길에서 그들을 진멸할까 염려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 자손에게 주기로 한 땅을 주기 위해서 사자를 보내겠다고 하십니다.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목이 곧은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한 순간에라도 그들 가운데에 이르면 진멸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장신구를 떼어내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의 모습은 참담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적은 가능성을 보여주셨습니다. 일말의 희망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장신구는 자기를 단장하고 기분을 낼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애통해 할 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때이지 기분을 낼 때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회개해야할 때에 마음을 높이고 자기 고집을 부립니다. 머리에 재를 뿌리며 가슴을 치며 회개해야 마땅할 때에 하나님께 대적하고 죄악 된 본성대로 행하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교만한 사람은 갑자기 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을 깊이 영접하고 하나님 앞에서 죄로 인해서 통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직 하나님의 마음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둘째, 여호와를 앙망하는 백성들(7-11) :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했습니다. 회막(tent of meeting)이란 성막과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곳이라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 회막이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회막을 진 밖으로 멀리 옮긴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거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서 멀리 나가신 것입니다. 언약은 깨어졌고 하나님은 결별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로부터 나가셨습니다. 한마디로 별거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다 진 바깥으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발적으로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진 밖 회막으로 나아오는 것을 막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백성들은 모세가 회막에 나아갈 때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백성들은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였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과 별거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대한 사모함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학연수 때문에 동역자와 6개월간 떨어져 살아보니 사랑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더욱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좋은 본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말씀을 나누는데 사람이 자기 친구와 이야기함 같았습니다. 친구 사이는 속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대화가 통하는 사이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말씀을 드리고 하나님도 모세에게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이야기 하는 것이 즐거우셨던 것 같습니다. 친구 사이는 비밀을 아낌없이 나눕니다. 그 만큼 친구를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서는 자기 목숨까지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의 아픔에 희생적으로 동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모세의 관계에 희망을 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친구라고 부르십니다. 여러분은 친구되신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까? 한편 목자가 하나님과 친밀한 것이 중요합니다. 목자가 하나님과 친밀할 때 양들이 회복될 소망이 있습니다. 목자는 하나님과 친밀한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를 기초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목자의 중보기도를 통해서 양들을 구원하십니다. 그러면 모세는 하나님과 친구처럼 말하면서 무엇을 구했을까요?

  셋째, 주의 백성으로 삼아주소서(12-17) :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었습니다.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12,13).”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께 은총을 입었다는 말씀을 인용합니다. 그러면서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겨 달라고 간청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이 아니라고만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겨 달라고 합니다. 그는 주의 길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주의 길이란 여호와의 본질적인 성품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신 성품을 말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보여 달라고 하는 동시에 하나님과 자기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한가를 말하면서 그 사이에 슬쩍 이 백성을 집어넣었습니다. 16절에 보면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서 구별해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마음을 다 아십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말라고 배수진을 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해 주셨습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바꾸어 친히 가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이 백성은 망하고 만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의로우신 성품 때문에 목이 곧은 이 백성을 길에서 진멸할까 두렵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신 성품에 기초해서 이 백성이 목이 곧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자신들은 소망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인간의 실존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죄인에게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지하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을 때 버려진 자식과 같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명예를 누린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의 영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도록 간구했습니다. 우리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데 이를 소멸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계속해서 불순종하면 성령께서 물러나 계십니다. 하나님은 섬세한 인격의 소유자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불순종할 때 슬픔을 느끼시며 억지로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매주 예배를 통해서 또는 일대일을 통해서 또는 개인적인 일용할 양식 생활과 묵상을 통해서 말씀을 받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깊이 체험하는 때는 죽을 지경의 일들이 많은 환난의 때입니다. 문제가 계속해서 터지면 더욱 간절히 하나님을 찾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더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런 때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합니까? 아닙니다. 평소에도 진리에 합당하게 살고자 노력하면 하나님의 살아계심, 나와 동행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이제까지 고생한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쉬게 하리라고 위로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짐을 대신 져 주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연약함을 알고 함께 짐을 지시는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셀라)(시68:19)”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모세는 하나님의 이런 사랑에 감격했습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다시 주님께 간구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모세의 백성들을 위한 끈질긴 기도, 강청하는 기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는 어찌하든지 하나님과 백성들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끈질기게 기도합니다. 이러한 목자의 마음, 목자의 심정을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에 계속해서 응답해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17).” 하나님께서 이름으로도 너를 안다고 하십니다. ‘안다(히, 야다)’는 말은 부부처럼 가깝고 인격적인 친밀함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모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독점적이고 밀접하고 유일한 관계라는 것입니다. 이런 특별한 관계 속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겨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모세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도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끊을 마음이 없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이렇게 기도하기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중보자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마음을 알고 그가 하는 대로 따라가십니다. 이는 본래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별거를 하지만 언제든지 집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마음과 같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이키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영적 소원이 어떠했습니까? 

  넷째, 주의 영광을 보여 주소서(18-23) :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의 응답을 받고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여 달라고 간청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에 가 있지 않고 하나님 자체에 가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이야기를 할 정도로 하나님과 사귐이 깊었지만 이를 이용해서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자체를 알고자 하는 소원으로 충만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알기를 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 세상의 명예와 영광은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그 영광을 보기 원하는 모세를 통해 불타는 영적 소원을 배우게 됩니다. 모세는 단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보다도 하나님의 축복을 더 구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축복을 주실 때는 감사하게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하나님께 쓴 뿌리를 품고 인상을 쓰게 됩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실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자 하는 순수한 소원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1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그의 선하심을 맛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태양보다 더 영광스럽고 빛나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의 얼굴을 보고 살 자가 없습니다. 그의 영광 앞에 서면 우리의 육신은 다 사그라들고 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반석 틈에 두고 하나님께서 지나도록 손으로 그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면 그의 등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부분만 볼 수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인식했다고 하는 순간 그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는 마치 소경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습니다. 소경이 코끼리의 다리는 만져보고 코끼리는 기둥과 같다고 말한다면 이는 코끼리가 아닙니다. 소경이 코끼리의 배를 만져보고 코끼리는 넓다고 말한다면 이도 코끼리가 아닌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식능력으로 다 감지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인식능력으로 하나님을 다 감지한다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비하십니다. 우리의 인식 능력을 뛰어넘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 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사 40:6,7).” 이 세상에 속한 것은 다 지나갑니다. 내가 소유한 것도 죽기 전에 다 써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허무한 것에 집중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만 해도 일생토록 해야 합니다. 성 프란시스도 하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기도를 일생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체험하는 일에 온 힘을 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사역하는 머시 선교사님의 편지입니다. “올해는 저희 가정이 남아공에 온지 10년이 됩니다. 그런데 여전히 주일예배 30명대에 해당하는 것을 보고 문제의식이 들었습니다. 어린 한 자매님이 예수님을 믿은 지도 2년이 조금 넘었는데 이번에 문제에 빠지면서 저를 떠난다고 하는 것 앞에서 깊은 슬픔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때부터 밤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저에게 개인적으로 비전을 넓혀 주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은 이곳이 겨울이라 방에서 기도하면 백발백중 잠자기가 일쑤여서 아예 마당에 나가 걸어다니면서 기도를 합니다. 참 제일 하기 힘든 것이 기도인 것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기도가 없이는, 하나님 없이는 이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때부터 양들을 보내시기 시작하셨습니다. 한 학기 동안 그러니까 두 달간 제 개인적으로 새 양 13명을 얻었습니다. 이들과 일대일 역사를 이루었는데 시험기간 한 양이 바빠해서 일대이로 하자고 했더니 거절을 하면서 다른 시간을 잡아서 일대일을 고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한양은 아리보리 코스트라는 중부아프리카에서 온양인데 이 양도 시험기간 한 시간은 꼭 일대일을 할 수 있다고 하면서 말씀을 사모하며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양은 제가 전도를 해놓고 못 나갔는데 그 후 이틀이 지나서 제가 그날도 학생들이 많이 다니는 복도에서 전도를 하고 있었는데 뒤에서 누가 치면서 왜 이틀 전에 안 나왔냐면서 말씀공부 좀 해달라고 하면서 이 딸이 되레 저를 재휘싱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딸과 말씀공부를 그 주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13명을 일일이 말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성령께서 이루시는 일은 참으로 놀랍고 기이하기만 하였습니다. 8월말 수양회 전까지 제 개인적으로 밤낮으로 뛰면 양들 50명은 주님께서 보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미 일을 시작하신 주께서 이일을 이루어 가고 계시며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선교사님이 기도의 노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양무리들을 어떻게 섬기는가 배울 수 있습니다.

  모세의 중보기도는 그 백성들을 멸망에서 건져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 관계로 인해서 하나님께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사해 주시고 그들을 다시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이 목이 뻣뻣한 백성이지만 은혜를 베푸사 함께 해 주셨습니다. 모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시도록 간구했습니다. 모세의 영적 소원을 우리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모세와 같은 목자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하고 백성들을 자기의 생명같이 여기는 목자 말입니다. 우리가 그와 같은 목자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모세와 같은 심정을 갖고 이 백성과 나라를 위해서 우리의 양들을 위해서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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