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09년 출17강(31:18-32:29) 자기를 위하여 신을 만든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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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출애굽기 공부 17강
말씀 출애굽기 31:18-32:29
요절 출애굽기 32:7,8
자기를 위하여 신을 만든 이스라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한 신혼부부가 거룩한 산 밑에서 결혼식을 성대하게 마쳤습니다. 건강하거나 병들거나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일생토록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서로 사랑할 것을 서약했습니다. 그들은 신방을 차리기 위해서 단독 주택을 짓고자 돈을 들여 설계도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혼인신고를 하고 돌아와서 한 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신부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서 혼인 서약을 파기해 버렸습니다. 신랑은 단단히 화가 나서 신부를 없애버리겠다고 합니다. 중매를 한 사람은 매우 난처해져서 백방으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가정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첫째, 언약을 파기한 신부(31:18-32:10) :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친히 쓰신 증거판 둘을 주셨습니다. 이제 모세가 산에서 막 내려오려고 하는데 백성들은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더디다고 생각했습니다(S1 십계5/5 21′26″-25′35″). 그들은 아론에게 말했습니다.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1).” 백성들은 모세가 산에서 더디 내려오는 것이 불안했습니다. 그들은 모세가 언제 내려온다는 기약이 없었기 때문에 장래가 더욱 불확실했습니다. 그들은 염려와 불안 속에서 의지할 대상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지 않으면 우리를 인도할 지도자를 세워달라고 해야 하는데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목적이 하나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 땅에 인도하는데 필요한 도구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자기중심적인 신앙의 모습이 여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신부가 신랑과 결혼을 하는데 신랑의 재산이나 보고 또는 자기에게 유익한가 아닌가만 보고 결혼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을 것이고 또 오래 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는 결혼은 파국은 맞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어도 중심이 하나님께 가 있지 아니하면 신앙이 파탄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결혼을 이용해서 다른 무엇을 얻고자 한다면 사실 이는 악한 것입니다. 슈렉 영화2에서 슈렉과 피오나 공주는 서로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왕궁인 신부 집에 피로연을 갔을 때 왕이나 다른 사람들의 관점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슈렉의 외모 때문에 신부가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피오나 공주는 슈렉을 있는 그대로 사랑했습니다. 신랑과 신부의 외모가 어떠하든지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기 때문에 요정 대모의 유혹을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해 주시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우리의 창조주시오 구원자시오 영적인 남편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 권세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한편 모세는 그들에게 신적인 존재였습니다. 모세의 카리스마가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그들은 모세와 하나님을 혼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사람을 의지했습니다. 그들이 이날 이때까지 애굽에서 또 광야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많이 체험했지만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맺혀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군중심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분위기 신앙도 위험합니다. 하나님과 개인적인 만남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적으로 영접하고 체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고 내면이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되는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이번 여름 수양회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역사가 많은 분들에게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한편 아론은 모세가 없을 때 모세를 대신해서 백성들을 격려하고 믿음으로 기다리도록 도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압력에 굴복했습니다. 그는 기회주의자였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2)”고 요청했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오자 아론이 그것을 녹여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백성들은 이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4).” 금송아지 우상을 본 백성들은 정신이 나간 사람들 같았습니다. 아론이 그들을 즐겁게 하고자 그 앞에 제단을 쌓고 공포했습니다.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이튿날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았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시내산 언약을 체결할 때의 모습과 똑 같았습니다(24:4,5). 그들은 금송아지를 여호와 하나님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이제 그들은 모세의 대체물로 금송아지를 만든 것입니다. 모세가 없어졌으니 다른 신적인 대체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모세를 통해서 그들을 인도하셨듯이 이제는 금송아지를 통해서 그들을 인도해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우상숭배를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관계성이 깊지 않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우상을 만들어서 의지하고자 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으면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합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하거나, 하나님보다 손에 잡히는 물질을 의지하거나, 권력을 의지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는데 실제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자신들의 죄악된 욕망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마음껏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맛보며 산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요 생명을 충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허무와 죽음으로 인도했습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시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한 것은 외적으로 볼 때 애굽에서 섬기던 금송아지 숭배의 영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진단은 무엇입니까? (S2 십계 5/5 27′15″-28′00″)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부패했다는 말은 썩었다는 뜻입니다. 싱싱한 과일이 썩어버리면 먹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썩어버린 이스라엘 백성은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맺은 언약이 파기되었다는 사실을 모세에게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라고 부르심으로 알리셨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그들을 볼 때 정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문제를 지적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들은 목이 뻣뻣한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은 고개를 숙일 줄 모르는 백성이었습니다. 아주 고집이 센 백성이었습니다. 죄에 대한 고집이 황소고집과 같았습니다. 소는 그들과 닮은 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옛 습성을 버리지 않고 죽어도 그것을 좇아서 살고자 했습니다. 이왕 죽는 거 즐기면서 살다가 죽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속마음이 이번 사건을 통해서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 대한 진노가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자손을 통해서 지금보다 더 큰 나라를 이루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돌들로도 하나님의 백성을 만드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큰데 이렇게 빨리 배반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은 자신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지만 사실은 나를 말려 달라는 뜻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깊은 속 사랑을 알지 못했다면 얼씨구 좋구나 하면서 주님의 뜻대로 하시라고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그가 이제까지 불평하고 원망하는 완악한 그 백성들 때문에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싹 쓸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고픈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 너무 힘들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을 감당하시고 야곱을 감당하시고 자신을 감당하신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지만 동시에 사랑이 풍성하십니다. 그는 인자하신 분이십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를 어떻게 중재했습니까?
둘째, 모세의 중보기도(11-14) :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11,12).” 모세는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진멸하면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에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 비웃음 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막무가내로 하나님께 죄를 범한 그 백성을 용서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서 용서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사 그들에게 맹세한 약속을 지켜 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일해 오셨습니다. 지금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부패했지만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시도록 간구하고 있습니다. 진멸당해야 할 백성들은 죄를 지으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과 모세 간에 줄다리기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 백성들은 죄로 인해 눈이 멀었습니다. 영적인 분별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와 같았습니다.
모세의 중보기도를 듣고 하나님께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우리는 여기서 중보기도 하는 한 사람 모세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파멸을 모면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의인 한 사람의 중보기도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한반도의 평균 전쟁주기는 5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60년 동안 전쟁이 없었던 것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울부짖는 의인들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으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 전쟁이 벌어지면 2300만명 정도의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정말 모세와 같이 목숨을 걸고 이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와 이 백성의 우상숭배와 교만과 음란한 죄악을 용서하시고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써 주십시오. 통일한국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는 밤낮 부르짖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 나라와 공동체가 유지됨을 알아야 합니다. 동역자들과 센터 건축과 여름 수양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기도의 종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백성의 죄에 대한 모세와 아론의 대조적인 행동(15-29) : 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두 증거판이 그의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쪽 저쪽에 글자가 있었습니다. 그 판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입니다. 모세는 이렇게 귀한 증거판을 고이 가지고 내려오다가 백성들이 진중에서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S3 십계 5/5 29′56″-31′06″, 32′45″-34′57″) 모세가 진에 가까이 이르러 보니 금송아지와 백성들이 춤 추는 것들을 보자 분노가 크게 일어났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렸습니다. 이 증거판은 사실 영원히 보전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체결된 언약이 파기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증거판을 깨뜨리는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모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 그들의 죄가 얼마나 큰가를 깨닫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복수를 하고자 할 때 원수의 뼈를 갈아 마신다는 말을 합니다. 모세는 금송아지 우상에 대한 분노를 가루를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시게 함으로 표현했습니다.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히 행하였습니다.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입니다.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말하자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갔습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러자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이 날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레위 자손은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인간적인 정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전체를 진멸하는 대신에 삼천 명을 죽이는 것으로 대신하셨습니다. 레위 사람들처럼 하나님 편이 된다는 말은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힘든 일입니까?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단호함이 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삼천명을 죽이고 이 사건을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통제된 분노’라고 부릅니다. 이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죄의 무서움을 알게 했습니다. 죄의 결과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알도록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엄격함과 경외심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엄격한 태도를 가질 때 아이들이 방자하게 행하지 않습니다. 경외심 속에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이 절도가 있고 경외심을 갖고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법을 지킬 때 우리가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법이 지켜지지 않으면 공권력이 우리를 제어하고 구속하게 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자랄 때 우리는 그의 풍성한 생명과 사랑을 맛보게 됩니다.
모세는 아론을 책망했습니다. “이 백성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당신이 그들을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 그러자 아론은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라고 말하면서 책임을 백성들에게 전가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변명했습니다. 그들이 자기에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그가 백성들이 가져온 금을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다고 에둘러댔습니다. 사실 그는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지도자로서 백성들을 안돈시키고 감독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모세가 백성들에게 신적인 대우를 받는 것을 보고 열등감을 느꼈는지 아니면 시기심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요구가 있자 그들의 악함을 분별하고 책망해야 마땅했지만 백성들의 인정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마음을 자기에게 돌리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편에 서기보다 백성들 편에 섰습니다. 그는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했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이 방자하게 행동하게 되었습니다. 방자하게 행한다는 것은 제멋대로 군다는 뜻입니다. 백성들이 본성대로 행하게 내버려둠으로서 그들은 결국 망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본주의적인 지도자와 영적인 지도자상을 보게 됩니다. 아론은 백성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습니다. 그는 백성이 원하는 대로 해 주는 민주적인 훌륭한 지도자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백성들의 악한 마음과 타협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중죄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양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죄와 싸워야 합니다. 그러면 일시적으로 사이가 나빠질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양이 살아납니다. 반면 모세는 백성과 타협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마음이 근본적으로 삐뚤어졌을 때 무섭게 분노했습니다. 이 분노는 죄에 대한 영적 분노였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죄와 싸웠습니다. 오늘날은 아론과 같이 인본적인 지도자가 인기가 있고, 양들의 죄를 책망하는 모세와 같은 지도자는 인기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시대 분위기 가운데 양들의 죄와 타협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시대 분위기에 말려들지 말고 먼저는 자신의 죄와 철저히 싸우고, 그 다음에는 양들의 죄를 책망하는 모세와 같은 영적 지도자가 되어야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내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나의 이기적인 욕심을 위해서, 나의 욕망을 위해서 신앙 생활을 하게 되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게 됩니다. 아무리 신앙의 모양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버리게 됩니다. 그것은 썩은 것입니다. 썩은 것은 버려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와 같은 단호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은 잘라 버리는 단호함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고자 하는 단호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내 안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고 철저하게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고 섬기고자 결단합니다. 우리 모두 내 안에 있는 우상들을 제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일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출애굽기 31:18-32:29
요절 출애굽기 32:7,8
자기를 위하여 신을 만든 이스라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한 신혼부부가 거룩한 산 밑에서 결혼식을 성대하게 마쳤습니다. 건강하거나 병들거나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일생토록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서로 사랑할 것을 서약했습니다. 그들은 신방을 차리기 위해서 단독 주택을 짓고자 돈을 들여 설계도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혼인신고를 하고 돌아와서 한 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신부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서 혼인 서약을 파기해 버렸습니다. 신랑은 단단히 화가 나서 신부를 없애버리겠다고 합니다. 중매를 한 사람은 매우 난처해져서 백방으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가정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첫째, 언약을 파기한 신부(31:18-32:10) :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친히 쓰신 증거판 둘을 주셨습니다. 이제 모세가 산에서 막 내려오려고 하는데 백성들은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더디다고 생각했습니다(S1 십계5/5 21′26″-25′35″). 그들은 아론에게 말했습니다.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1).” 백성들은 모세가 산에서 더디 내려오는 것이 불안했습니다. 그들은 모세가 언제 내려온다는 기약이 없었기 때문에 장래가 더욱 불확실했습니다. 그들은 염려와 불안 속에서 의지할 대상을 찾았습니다. 그들은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지 않으면 우리를 인도할 지도자를 세워달라고 해야 하는데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목적이 하나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 땅에 인도하는데 필요한 도구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자기중심적인 신앙의 모습이 여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신부가 신랑과 결혼을 하는데 신랑의 재산이나 보고 또는 자기에게 유익한가 아닌가만 보고 결혼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을 것이고 또 오래 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는 결혼은 파국은 맞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어도 중심이 하나님께 가 있지 아니하면 신앙이 파탄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결혼을 이용해서 다른 무엇을 얻고자 한다면 사실 이는 악한 것입니다. 슈렉 영화2에서 슈렉과 피오나 공주는 서로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왕궁인 신부 집에 피로연을 갔을 때 왕이나 다른 사람들의 관점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슈렉의 외모 때문에 신부가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피오나 공주는 슈렉을 있는 그대로 사랑했습니다. 신랑과 신부의 외모가 어떠하든지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기 때문에 요정 대모의 유혹을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해 주시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우리의 창조주시오 구원자시오 영적인 남편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와 사망 권세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한편 모세는 그들에게 신적인 존재였습니다. 모세의 카리스마가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그들은 모세와 하나님을 혼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사람을 의지했습니다. 그들이 이날 이때까지 애굽에서 또 광야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많이 체험했지만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맺혀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군중심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분위기 신앙도 위험합니다. 하나님과 개인적인 만남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개인적으로 영접하고 체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고 내면이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되는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이번 여름 수양회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역사가 많은 분들에게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한편 아론은 모세가 없을 때 모세를 대신해서 백성들을 격려하고 믿음으로 기다리도록 도와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압력에 굴복했습니다. 그는 기회주의자였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2)”고 요청했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오자 아론이 그것을 녹여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백성들은 이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4).” 금송아지 우상을 본 백성들은 정신이 나간 사람들 같았습니다. 아론이 그들을 즐겁게 하고자 그 앞에 제단을 쌓고 공포했습니다.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이튿날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았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시내산 언약을 체결할 때의 모습과 똑 같았습니다(24:4,5). 그들은 금송아지를 여호와 하나님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이제 그들은 모세의 대체물로 금송아지를 만든 것입니다. 모세가 없어졌으니 다른 신적인 대체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모세를 통해서 그들을 인도하셨듯이 이제는 금송아지를 통해서 그들을 인도해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우상숭배를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관계성이 깊지 않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우상을 만들어서 의지하고자 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으면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합니다.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하거나, 하나님보다 손에 잡히는 물질을 의지하거나, 권력을 의지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는데 실제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자신들의 죄악된 욕망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마음껏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맛보며 산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요 생명을 충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허무와 죽음으로 인도했습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시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한 것은 외적으로 볼 때 애굽에서 섬기던 금송아지 숭배의 영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진단은 무엇입니까? (S2 십계 5/5 27′15″-28′00″)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부패했다는 말은 썩었다는 뜻입니다. 싱싱한 과일이 썩어버리면 먹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썩어버린 이스라엘 백성은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맺은 언약이 파기되었다는 사실을 모세에게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라고 부르심으로 알리셨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그들을 볼 때 정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문제를 지적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들은 목이 뻣뻣한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은 고개를 숙일 줄 모르는 백성이었습니다. 아주 고집이 센 백성이었습니다. 죄에 대한 고집이 황소고집과 같았습니다. 소는 그들과 닮은 점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옛 습성을 버리지 않고 죽어도 그것을 좇아서 살고자 했습니다. 이왕 죽는 거 즐기면서 살다가 죽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속마음이 이번 사건을 통해서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 대한 진노가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자손을 통해서 지금보다 더 큰 나라를 이루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돌들로도 하나님의 백성을 만드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제까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큰데 이렇게 빨리 배반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은 자신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지만 사실은 나를 말려 달라는 뜻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깊은 속 사랑을 알지 못했다면 얼씨구 좋구나 하면서 주님의 뜻대로 하시라고 말씀드렸을 것입니다. 그가 이제까지 불평하고 원망하는 완악한 그 백성들 때문에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싹 쓸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고픈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 너무 힘들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을 감당하시고 야곱을 감당하시고 자신을 감당하신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지만 동시에 사랑이 풍성하십니다. 그는 인자하신 분이십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를 어떻게 중재했습니까?
둘째, 모세의 중보기도(11-14) :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11,12).” 모세는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진멸하면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에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 비웃음 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막무가내로 하나님께 죄를 범한 그 백성을 용서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서 용서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사 그들에게 맹세한 약속을 지켜 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일해 오셨습니다. 지금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부패했지만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시도록 간구하고 있습니다. 진멸당해야 할 백성들은 죄를 지으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과 모세 간에 줄다리기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 백성들은 죄로 인해 눈이 멀었습니다. 영적인 분별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와 같았습니다.
모세의 중보기도를 듣고 하나님께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우리는 여기서 중보기도 하는 한 사람 모세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파멸을 모면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의인 한 사람의 중보기도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한반도의 평균 전쟁주기는 5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60년 동안 전쟁이 없었던 것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울부짖는 의인들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으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 전쟁이 벌어지면 2300만명 정도의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정말 모세와 같이 목숨을 걸고 이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와 이 백성의 우상숭배와 교만과 음란한 죄악을 용서하시고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써 주십시오. 통일한국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는 밤낮 부르짖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 나라와 공동체가 유지됨을 알아야 합니다. 동역자들과 센터 건축과 여름 수양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기도의 종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백성의 죄에 대한 모세와 아론의 대조적인 행동(15-29) : 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두 증거판이 그의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쪽 저쪽에 글자가 있었습니다. 그 판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입니다. 모세는 이렇게 귀한 증거판을 고이 가지고 내려오다가 백성들이 진중에서 노래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S3 십계 5/5 29′56″-31′06″, 32′45″-34′57″) 모세가 진에 가까이 이르러 보니 금송아지와 백성들이 춤 추는 것들을 보자 분노가 크게 일어났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그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렸습니다. 이 증거판은 사실 영원히 보전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체결된 언약이 파기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증거판을 깨뜨리는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모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이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 그들의 죄가 얼마나 큰가를 깨닫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복수를 하고자 할 때 원수의 뼈를 갈아 마신다는 말을 합니다. 모세는 금송아지 우상에 대한 분노를 가루를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시게 함으로 표현했습니다.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히 행하였습니다. 이는 아론이 그들을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음입니다.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말하자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갔습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각 사람이 자기의 이웃을 죽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러자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이 날에 삼천 명 가량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레위 자손은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인간적인 정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전체를 진멸하는 대신에 삼천 명을 죽이는 것으로 대신하셨습니다. 레위 사람들처럼 하나님 편이 된다는 말은 얼마나 부자연스럽고 힘든 일입니까?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단호함이 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삼천명을 죽이고 이 사건을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통제된 분노’라고 부릅니다. 이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죄의 무서움을 알게 했습니다. 죄의 결과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알도록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엄격함과 경외심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엄격한 태도를 가질 때 아이들이 방자하게 행하지 않습니다. 경외심 속에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이 절도가 있고 경외심을 갖고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법을 지킬 때 우리가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법이 지켜지지 않으면 공권력이 우리를 제어하고 구속하게 됩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자랄 때 우리는 그의 풍성한 생명과 사랑을 맛보게 됩니다.
모세는 아론을 책망했습니다. “이 백성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당신이 그들을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 그러자 아론은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라고 말하면서 책임을 백성들에게 전가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변명했습니다. 그들이 자기에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그가 백성들이 가져온 금을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다고 에둘러댔습니다. 사실 그는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지도자로서 백성들을 안돈시키고 감독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모세가 백성들에게 신적인 대우를 받는 것을 보고 열등감을 느꼈는지 아니면 시기심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요구가 있자 그들의 악함을 분별하고 책망해야 마땅했지만 백성들의 인정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마음을 자기에게 돌리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편에 서기보다 백성들 편에 섰습니다. 그는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했습니다. 그 결과 백성들이 방자하게 행동하게 되었습니다. 방자하게 행한다는 것은 제멋대로 군다는 뜻입니다. 백성들이 본성대로 행하게 내버려둠으로서 그들은 결국 망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본주의적인 지도자와 영적인 지도자상을 보게 됩니다. 아론은 백성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했습니다. 그는 백성이 원하는 대로 해 주는 민주적인 훌륭한 지도자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백성들의 악한 마음과 타협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중죄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양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죄와 싸워야 합니다. 그러면 일시적으로 사이가 나빠질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양이 살아납니다. 반면 모세는 백성과 타협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마음이 근본적으로 삐뚤어졌을 때 무섭게 분노했습니다. 이 분노는 죄에 대한 영적 분노였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죄와 싸웠습니다. 오늘날은 아론과 같이 인본적인 지도자가 인기가 있고, 양들의 죄를 책망하는 모세와 같은 지도자는 인기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시대 분위기 가운데 양들의 죄와 타협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시대 분위기에 말려들지 말고 먼저는 자신의 죄와 철저히 싸우고, 그 다음에는 양들의 죄를 책망하는 모세와 같은 영적 지도자가 되어야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내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나의 이기적인 욕심을 위해서, 나의 욕망을 위해서 신앙 생활을 하게 되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게 됩니다. 아무리 신앙의 모양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버리게 됩니다. 그것은 썩은 것입니다. 썩은 것은 버려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와 같은 단호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은 잘라 버리는 단호함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고자 하는 단호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가 내 안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고 철저하게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고 섬기고자 결단합니다. 우리 모두 내 안에 있는 우상들을 제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일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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