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09년 성탄 1강(1:26-38) 은혜를 입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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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성탄말씀 1강
말씀 누가복음 1:26-38
요절 누가복음 1:30,31
은혜를 입었느니라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찬양합니다. 이로 인해서 놀라운 구원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오늘 말씀은 마리아에게 임한 성탄 메시지입니다. 마리아가 받은 은혜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마리아는 어떤 자세로 이 은혜를 감당했습니까? 마리아가 낳게 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 시간 우리도 우리가 받은 은혜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고 이 은혜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엘리사벳이 수태한 후 여섯째 달에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갔습니다. 거기에는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가 살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장차 남편이 될 요셉을 생각만 해도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요셉을 생각하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요셉을 위해서 자신을 어떻게 꾸밀까를 생각하면서 2시간에 한 번씩 거울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놀라운 말을 하였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28).”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의미합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을 했고 이후 결혼을 통해서 누리게 될 달콤한 꿈을 꾸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왜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 메시아를 이 세상에 보내고자 뜻을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뜻을 정하시고 마리아를 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그를 부르시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듣고 놀라서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했습니다. 놀랐다는 말은 당황스러웠다는 뜻입니다. 이는 예사로운 인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한 목자님은 결혼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발수건으로 얼굴을 닦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고 합니다. 마리아의 마음 상태는 이보다 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은혜를 받았다는 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았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또 좋아합니다. 말씀을 공부하고 좋으면 은혜를 받았다고 하고 식사 대접을 잘 받아도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여튼 좋으면 은혜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마리아가 은혜를 받았다는 말은 메시아를 잉태하는 사명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처녀로서 메시아를 잉태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많은 비난과 고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특히 요셉으로부터의 오해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사랑하는 요셉의 마음에 원치 않게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요셉과 함께 아기자기 하게 살고 싶은 자신의 달콤한 꿈은 깨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마리아의 마음에 평안이 임하기를 빌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우리가 사명인으로 살고자 할 때 즐겁고 기쁜 일도 많이 있지만 어렵고 힘든 일도 종종 일어납니다. 큰 기대를 가지고 사명을 감당하지만 자신의 능력과 인격적인 부족함으로 인해서 고통 할 때가 있습니다. 겹겹이 쌓이는 문제로 인해서 눌리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충성을 하지만 눈에 보이는 열매가 보이지 않을 때 자신이 드린 헌신과 희생이 무의미해 보여서 고통스럽습니다. 이런 목자님들의 마음에 평안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한 해를 보내는 우리의 마음에 주님은 평안이 임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아서 마음에 평안이 임해야 사명을 즐겁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어떤 희생이라도 감당하면서 사명을 성취하고자 투쟁을 합니다. 또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자 애를 쓰다보면 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쓰고자 하실 때는 그 사역에 필요한 것들을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주님의 열심으로 인해서 구원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도록 힘을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는 사람은 더 풍성한 은혜를 받습니다. 지난번에 UBF 음악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 해 동안 수고한 목자님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감사 음악제를 준비했는데 가장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그 음악제를 준비하기 위해서 수고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목양을 하는 목자의 삶은 힘들지만 사실 가장 은혜를 받는 사람들은 목자 자신들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혹시 주님을 섬기면서 손해의식에 빠진 분이 계시다면 좀 더 참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그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시고 상상할 수 없는 상급으로 갚아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과 더욱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대하여 마음이 닫힌 분들이 있다면 주님께서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 마음에 은혜를 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들이 당하는 마음의 슬픔과 아픔을 제가 다 위로할 수 없지만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변함없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세상 끝날 까지 나와 함께 하겠다고 하신 주님을 믿으시기를 기도합니다. 마음에 느끼는 고통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마음이 열리지 않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주님은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주여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29절을 보십시오.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듣고 심히 고통스러웠지만 이 모든 일을 곰곰이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생각하는 여성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장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에 한번은 갈릴리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성전에서 성경 선생들과 함께 토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 어린 예수님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었다고 했습니다(2:48-51). 마리아는 생각이 깊은 여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인간적인 갈등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천사는 놀라고 당황하는 마리아를 어떻게 도왔습니까?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30-33).” 천사는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임을 다시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받은 은혜가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말해주었습니다. 그녀가 감당해야 할 고난은 그녀가 받은 축복에 비하면 새 발에 피와 같이 작은 것입니다. 여자로서 마리아와 같은 축복을 받은 어머니는 역사 이래로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가 낳을 아기는 정말 위대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격적인 면에서 큰 자입니다. 즉 사랑과 섬기는 도리를 행하심으로 그보다 위대한 인격을 가진 사람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는 능력과 권세에 있어서도 큰 자입니다. 그는 귀신들린 자를 말씀으로 고치고, 자연을 주관하시고 말씀의 권세가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진리의 빛으로 인도했습니다. 사역 면에서 생각해 볼 때 그는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오 죽음을 정복하셨습니다. 그래서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향으로 인해서 이 세상은 놀랍게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여자와 어린 아이 등 약자의 인권이 향상되었습니다. 자유와 평등사상에 기초해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사랑과 평화에 기초한 구제와 봉사는 인류의 생존 방식이던 전쟁을 완화시켰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사상들과 투쟁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향이 깊이 배어 있습니다.
그는 육신을 입으신 사람의 아들이지만 동시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귀신들이 떠나가며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외쳤습니다. 당시 대중들은 메시아의 칭호인 ‘다윗의 자손’이라고 그를 불렀습니다. 그는 다윗과 같은 믿음의 왕이요 사랑과 평화의 왕이요 공의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그가 다스리는 나라는 영원무궁합니다. 세상 나라를 흥망성쇠를 반복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는 사랑과 평화, 진리와 공의로 다스리기 때문에 영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소망해야 할 나라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완성하실 하나님 나라입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마리아는 처녀인데 아들을 낳다니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이는 이사야 선지자가 600년 전에 예언한 말씀의 성취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마리아의 예수님 탄생은 창세기 3:15절 말씀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셔야 합니다. 그래야 죄가 없으십니다. 히브리서 4:15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마리아의 임신은 성령의 직접적인 활동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실 때 흙으로도 만드시고 여자는 갈비뼈로 만드셨습니다. 그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임하셔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덮는다는 말은 출애굽기에서 영광의 구름이 성막에 임하고 덮은 광경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으로 마리아는 잉태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태어나신 예수님이 죄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의 죄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실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죄를 씻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언하셨던 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기 위해 태어나셨습니다. 이를 보는 마리아의 마음은 칼로 그 마음을 찌르듯 하였습니다. 이것도 마리아가 감당해야 할 슬픔이요 고통이었습니다.
천사는 당황하는 마리아에게 한 가지 예를 들어 믿음을 심었습니다. 36,37절을 보십시오.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사라도 경수가 끊어졌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90세에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마리아의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습니다. 이런 예를 볼 때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습니다. 천사가 전해준 예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마리아도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38절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우리는 여기서 은혜를 감당하는 마리아의 자세에 대해서 배울 것이 있습니다.
첫째, 겸손한 자세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 분명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요셉의 약혼녀라고 말하지 않고 ‘주의 여종’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누구인가 인식하고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랬을 때 자신은 주의 여종이라는 것입니다. 종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종은 노예를 말합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순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여자는 누구나 퀸(여왕)이 되기를 원하지 종으로서 인식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관심과 사랑을 받기 원하지 자존심이 상하게 종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구의 종인가가 중요합니다. 사람의 종이 되면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끊임없이 사랑에 목이 마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될 때 더 이상 목마르지 않습니다. 도리어 목마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사랑하는 주의 여종이 될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주의 여종으로서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자신을 드려 섬기기를 원했습니다. 자신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을 종이라고 말하면 화를 냅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종이 된 사람은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교만을 물리치고 겸손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겸손합니다. 나 같은 자를 하나님께서 구속 역사에 써 주신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호의로 인해서 감사합니다. 겸손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끝까지 감당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쓰임 받고자 하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과 장래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자신에게 유익한 말씀만 취하지 않고 손해와 희생이 따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순종했습니다. 마리아의 말씀에 대한 믿음은 성모로서 손색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은 앞으로 일어날 모든 고난을 능히 이기고도 남을 만합니다. 마리아는 태어날 아기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기로 결단을 한 것입니다. 이런 마리아의 결단으로 인해서 하나님은 얼마나 기쁘셨겠습니까? 마리아는 말씀에 따라 결단하고 순종할 때 자신이 지불해야 할 대가와 희생이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희생이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깨닫고 동참하게 해 주었습니다. 마리아가 당하는 현재의 아픔은 나중에 얻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천사는 마리아의 결단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떠나갔습니다. 이 시간 우리도 마리아와 같은 결단을 드림으로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쓰임 받고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성탄 시즌에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마음이 열리고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그 은혜로 우리 앞에 당한 아픔과 어려움 이기고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귀히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말씀 누가복음 1:26-38
요절 누가복음 1:30,31
은혜를 입었느니라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찬양합니다. 이로 인해서 놀라운 구원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오늘 말씀은 마리아에게 임한 성탄 메시지입니다. 마리아가 받은 은혜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마리아는 어떤 자세로 이 은혜를 감당했습니까? 마리아가 낳게 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 시간 우리도 우리가 받은 은혜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고 이 은혜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엘리사벳이 수태한 후 여섯째 달에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갔습니다. 거기에는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 마리아가 살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장차 남편이 될 요셉을 생각만 해도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요셉을 생각하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요셉을 위해서 자신을 어떻게 꾸밀까를 생각하면서 2시간에 한 번씩 거울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놀라운 말을 하였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28).”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의미합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을 했고 이후 결혼을 통해서 누리게 될 달콤한 꿈을 꾸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왜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 메시아를 이 세상에 보내고자 뜻을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뜻을 정하시고 마리아를 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그를 부르시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듣고 놀라서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했습니다. 놀랐다는 말은 당황스러웠다는 뜻입니다. 이는 예사로운 인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한 목자님은 결혼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발수건으로 얼굴을 닦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고 합니다. 마리아의 마음 상태는 이보다 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은혜를 받았다는 말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았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또 좋아합니다. 말씀을 공부하고 좋으면 은혜를 받았다고 하고 식사 대접을 잘 받아도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여튼 좋으면 은혜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마리아가 은혜를 받았다는 말은 메시아를 잉태하는 사명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처녀로서 메시아를 잉태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많은 비난과 고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특히 요셉으로부터의 오해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사랑하는 요셉의 마음에 원치 않게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요셉과 함께 아기자기 하게 살고 싶은 자신의 달콤한 꿈은 깨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마리아의 마음에 평안이 임하기를 빌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우리가 사명인으로 살고자 할 때 즐겁고 기쁜 일도 많이 있지만 어렵고 힘든 일도 종종 일어납니다. 큰 기대를 가지고 사명을 감당하지만 자신의 능력과 인격적인 부족함으로 인해서 고통 할 때가 있습니다. 겹겹이 쌓이는 문제로 인해서 눌리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충성을 하지만 눈에 보이는 열매가 보이지 않을 때 자신이 드린 헌신과 희생이 무의미해 보여서 고통스럽습니다. 이런 목자님들의 마음에 평안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한 해를 보내는 우리의 마음에 주님은 평안이 임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아서 마음에 평안이 임해야 사명을 즐겁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어떤 희생이라도 감당하면서 사명을 성취하고자 투쟁을 합니다. 또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자 애를 쓰다보면 주님께서 함께 하셔서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쓰고자 하실 때는 그 사역에 필요한 것들을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주님의 열심으로 인해서 구원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도록 힘을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는 사람은 더 풍성한 은혜를 받습니다. 지난번에 UBF 음악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 해 동안 수고한 목자님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감사 음악제를 준비했는데 가장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그 음악제를 준비하기 위해서 수고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목양을 하는 목자의 삶은 힘들지만 사실 가장 은혜를 받는 사람들은 목자 자신들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복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혹시 주님을 섬기면서 손해의식에 빠진 분이 계시다면 좀 더 참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그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시고 상상할 수 없는 상급으로 갚아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과 더욱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대하여 마음이 닫힌 분들이 있다면 주님께서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 마음에 은혜를 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들이 당하는 마음의 슬픔과 아픔을 제가 다 위로할 수 없지만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변함없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세상 끝날 까지 나와 함께 하겠다고 하신 주님을 믿으시기를 기도합니다. 마음에 느끼는 고통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마음이 열리지 않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주님은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주여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29절을 보십시오.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듣고 심히 고통스러웠지만 이 모든 일을 곰곰이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생각하는 여성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장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을 때에 한번은 갈릴리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성전에서 성경 선생들과 함께 토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고 말했습니다. 이 때 어린 예수님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었다고 했습니다(2:48-51). 마리아는 생각이 깊은 여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인간적인 갈등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천사는 놀라고 당황하는 마리아를 어떻게 도왔습니까?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30-33).” 천사는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임을 다시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받은 은혜가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말해주었습니다. 그녀가 감당해야 할 고난은 그녀가 받은 축복에 비하면 새 발에 피와 같이 작은 것입니다. 여자로서 마리아와 같은 축복을 받은 어머니는 역사 이래로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가 낳을 아기는 정말 위대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격적인 면에서 큰 자입니다. 즉 사랑과 섬기는 도리를 행하심으로 그보다 위대한 인격을 가진 사람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는 능력과 권세에 있어서도 큰 자입니다. 그는 귀신들린 자를 말씀으로 고치고, 자연을 주관하시고 말씀의 권세가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을 진리의 빛으로 인도했습니다. 사역 면에서 생각해 볼 때 그는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오 죽음을 정복하셨습니다. 그래서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향으로 인해서 이 세상은 놀랍게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여자와 어린 아이 등 약자의 인권이 향상되었습니다. 자유와 평등사상에 기초해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사랑과 평화에 기초한 구제와 봉사는 인류의 생존 방식이던 전쟁을 완화시켰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사상들과 투쟁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향이 깊이 배어 있습니다.
그는 육신을 입으신 사람의 아들이지만 동시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귀신들이 떠나가며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외쳤습니다. 당시 대중들은 메시아의 칭호인 ‘다윗의 자손’이라고 그를 불렀습니다. 그는 다윗과 같은 믿음의 왕이요 사랑과 평화의 왕이요 공의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그가 다스리는 나라는 영원무궁합니다. 세상 나라를 흥망성쇠를 반복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는 사랑과 평화, 진리와 공의로 다스리기 때문에 영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소망해야 할 나라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완성하실 하나님 나라입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마리아는 처녀인데 아들을 낳다니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이는 이사야 선지자가 600년 전에 예언한 말씀의 성취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마리아의 예수님 탄생은 창세기 3:15절 말씀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셔야 합니다. 그래야 죄가 없으십니다. 히브리서 4:15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마리아의 임신은 성령의 직접적인 활동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실 때 흙으로도 만드시고 여자는 갈비뼈로 만드셨습니다. 그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임하셔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덮는다는 말은 출애굽기에서 영광의 구름이 성막에 임하고 덮은 광경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으로 마리아는 잉태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태어나신 예수님이 죄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의 죄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실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죄를 씻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언하셨던 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기 위해 태어나셨습니다. 이를 보는 마리아의 마음은 칼로 그 마음을 찌르듯 하였습니다. 이것도 마리아가 감당해야 할 슬픔이요 고통이었습니다.
천사는 당황하는 마리아에게 한 가지 예를 들어 믿음을 심었습니다. 36,37절을 보십시오.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사라도 경수가 끊어졌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90세에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마리아의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습니다. 이런 예를 볼 때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습니다. 천사가 전해준 예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마리아도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38절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우리는 여기서 은혜를 감당하는 마리아의 자세에 대해서 배울 것이 있습니다.
첫째, 겸손한 자세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 분명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요셉의 약혼녀라고 말하지 않고 ‘주의 여종’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누구인가 인식하고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랬을 때 자신은 주의 여종이라는 것입니다. 종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종은 노예를 말합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순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여자는 누구나 퀸(여왕)이 되기를 원하지 종으로서 인식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관심과 사랑을 받기 원하지 자존심이 상하게 종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구의 종인가가 중요합니다. 사람의 종이 되면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끊임없이 사랑에 목이 마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될 때 더 이상 목마르지 않습니다. 도리어 목마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사랑하는 주의 여종이 될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주의 여종으로서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자신을 드려 섬기기를 원했습니다. 자신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을 종이라고 말하면 화를 냅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종이 된 사람은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교만을 물리치고 겸손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겸손합니다. 나 같은 자를 하나님께서 구속 역사에 써 주신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호의로 인해서 감사합니다. 겸손한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끝까지 감당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쓰임 받고자 하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과 장래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자신에게 유익한 말씀만 취하지 않고 손해와 희생이 따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순종했습니다. 마리아의 말씀에 대한 믿음은 성모로서 손색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은 앞으로 일어날 모든 고난을 능히 이기고도 남을 만합니다. 마리아는 태어날 아기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기로 결단을 한 것입니다. 이런 마리아의 결단으로 인해서 하나님은 얼마나 기쁘셨겠습니까? 마리아는 말씀에 따라 결단하고 순종할 때 자신이 지불해야 할 대가와 희생이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희생이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깨닫고 동참하게 해 주었습니다. 마리아가 당하는 현재의 아픔은 나중에 얻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천사는 마리아의 결단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떠나갔습니다. 이 시간 우리도 마리아와 같은 결단을 드림으로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쓰임 받고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성탄 시즌에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마음이 열리고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그 은혜로 우리 앞에 당한 아픔과 어려움 이기고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귀히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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