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 2010년 히브리서 특강 3강(히11: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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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히브리서 특강 제 3 강
말씀 히브리서 11:23-40
요절 히브리서 11:25
세상을 이기는 믿음
1강에서는 믿음이 무엇인가? 그리고 아벨, 에녹, 노아의 믿음에 대해서, 2강에서는 믿음의 4대 조상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믿음을 배웠습니다. 본 3강은 죄악된 세상에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 믿음의 증인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죄악된 이 세상에 사는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이길 수 있는가? 믿음의 증인들을 통해 그 비결을 배울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I. 모세의 믿음(23~29)
모세가 태어날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23절을 보면 모세가 태어났을 때에 그 부모가 석달 동안 몰래 숨어서 키웠다고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출애굽기 1장에서 당시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셉이 이스라엘의 총리로서 오랜 기간 동안 애굽을 통치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죽고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애굽을 다스리자 왕은 매우 심각한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위협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증가하면 막강한 힘이 되어 스스로 애굽을 떠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노동력을 잃게 되기 때문에 나라에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비상각료회의를 소집했습니다. 그 결과 해답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거운 중노동을 시킴으로써 임신을 못하기 하는 작전을 썼습니다. 그런데 심한 노동을 시키고 학대를 하면 할수록 육체가 더 강건해져서 더 많은 아주 건강한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산파를 시켜 아들이면 무조건 죽이라는 살인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산파들의 마음을 움직이사 남자 아이들을 살려주었습니다. 또 왕은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무조건 나일강에 버리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명령을 어기면 죽음을 당할 수 밖에 없는 명령입니다. 이 명령대로 라면 이스라엘 백성은 더 이상 인구가 불어날 수 없는 상황이요 이스라엘 백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운명이 되고 맙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은 모세의 운명이 평범하지 않은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즉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죄악된 세상은 모세가 태어나면 죽일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어떻게 살아나게 되었고 어떻게 성장하게 되었습니까?
첫째 모세는 부모의 믿음 때문에 살게 되었습니다.
23절을 보면 믿음으로 모세가 태어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어서 키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부모들은 속으론 “하나님 남자아이가 아니라 딸을 주시옵소서”간절히 기도했을것입니다.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감당할지 난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외면이나 하듯 남자아이를 허락하셨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부모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갓난아이인 모세의 비범함을 보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두신 특별한 뜻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믿음으로 3개월간 숨어서 키웠습니다. 이는 그들이 눈에 보이는 왕을 무서워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3개월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믿음으로 모세를 키웠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하나님의 주권에 맡겼습니다. 3개월이 되자 그들은 모세를 나일강에 띄워 보냈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젖먹이 아들을 기약없이 나일강에 띄워보내는 모세의 어머니의 마음은 찢어지는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만일 결혼하신 목자님들이 모세의 부모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아픔을 하나님은 다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어떻게 인도하셨습니까?
둘째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최고의 삶을 누리며 성장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나일강에 버려진 모세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당시 목욕을 하고 있던 바로의 공주의 마음을 움직이사 데려다가 자신의 양자로 키우도록 도우셨습니다. 처녀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이는 하나님께서 바로의 공주의 마음을 움직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권자가 되십니다. 모세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일약 황태자로서 바로의 궁에서 최고의 보호를 받으며, 어머니 요게벳의 젖을 먹으며 성장하였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궁중에서 행복하게 자랐습니다.
당시 애굽은 강대국이요 선진국이었습니다. 이런 나라의 황태자가 될 차기 왕으로서의 모든 교육을 받았습니다. 최고의 스승으로부터 외국어를 비롯한 여러 가지 학문을 배웠고, 말타기, 활쏘기, 예절 교육등 모든 것을 습득했습니다. 모세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안고 태어났지만 하나님은 강대국의 황태자로서 모든 특권과 영광을 누리는 행복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장차 모세를 출애굽의 주인공이요 이스라엘을 이끌어갈 지도자로 쓰시기 위해 바로의 공주의 양자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모세는 차기 왕권을 이어받을 유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장래가 보장되었고 모든 것이 장차 모세의 손안에 좌지우지 되는 그런 권력자가 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또 모세가 왕이 되는 것이 동족을 위해서도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런 삶을 포기하고자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이런 모세는 구체적으로 어떤 믿음을 갖고 있었을까요?
첫째 특권과 영광을 버리는 결단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기를 거절하고”
모세가 장성했다는 뜻은 모세가 이제는 성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가치관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세는 그동안 궁중교육과 함께 어머니가 유모이기 때문에 어머니로부터 어릴때부터 신앙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은 애굽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늘 자신이 궁중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노예백성으로 사는 동족을 생각할 때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단을 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영광과 특권을 누리던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고생이 되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 것인가? 결단을 해야 했습니다. 이 결단은 무척 힘든 것입니다. 어떤 점에서 힘이 들까요?
무엇보다 지금까지 모세는 궁중생활에 익숙해 왔고 고생을 모르고 자랐습니다. 섬기는 삶이 아니라 섬김만 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시간만 지나면 강대국 애굽의 왕이 될 사람이었습니다. 편한 삶을 포기하고 사서 고생하는 것, 좋은 것을 버리고 더 나쁜 것을 선택하는 것, 확실한 길을 버리고 불확실한 길을 가는 사람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바로 그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기를 믿음으로 거절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을 잘 키워준 바로의 공주의 정을 뿌리쳐야 하는 아픔을 이겨냈습니다. 우리는 모세와 같이 인간적인 정과 하나님 앞에서 결단을 할 때 참으로 결단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믿음으로 하나님 편에서 인간의 정을 끊었습니다.
당장은 비록 마음은 아프지만, 인간적으로 배신을 하는 것이지만, 모세는 믿음으로 고난의 길을 가고자 결단했습니다. 모세는 거절하는 믿음, 결단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평생 살면서 이런 결단을 할 때가 몇 번 찾아옵니다. 목자로 살 것인가? 평범하게 신자로만 것인가? 학생목자로 살 것인가? 남들같이 죄악의 낙을 누리며 멋지게 캠퍼스 생활을 할 것인가? 믿음의 결혼을 할 것인가? 세상적인 결혼을 할 것인가?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세와 같이 하나님편에서 믿음의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 결단은 모세와 같이 위대한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출발입니다.
그러면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이었습니까?
둘째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믿음의 정체성이 있었습니다.
25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모세는 자신이 선민 이스라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이 있었습니다.
비록 세상적으로 가만히 있으면 강대국 애굽의 왕이 될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보다 더 귀하고 영광스런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라고 그는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이 분명했습니다. 이런 정체성이 있었기에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과감히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체성만 가지고는 부족했습니다. 그는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는 자기백성이 노예로서 학대를 당하고 고난 받고 있는 중에, 자신만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죄악의 낙을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신앙의 양심상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도저히 살 수 없었습니다. 그는 차라리 자기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이 더 즐겁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것이 더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가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방식은 전혀 다르게 나타납니다. 우리가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까? 모세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택하신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목자라는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이 정체성이 있을 때 우리는 모든 문제앞에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정체성 때문에 고난을 받더라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백성이요 홍대의 목자요, 제자양성가로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허락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모세는 상주심을 바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지만 수모를 겪는 것을 수치로 여깁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모세는 어떤 수모를 받았습니까?모세는 완악한 바로 때문에 10가지 재앙을 맛보기까지 온갖 고초를 당했습니다. 출애굽 후에는 동족들로부터 말할 수 없는 모진 수모를 받았습니다. 먹을 것이 없을 때, 물이 없을 때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새왕을 세워달라고 밀어부쳤습니다. 죄악된 자기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것을 보고 그는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참고 견뎠습니다. 이는 모세가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상을 받기 원하십니까? 우리는 모세와 같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 받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모세는 이 땅에서의 상이 아니라 장차 임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상 주실 것을 믿었기에 그는 애굽의 왕자로서의 모든 삶을 과감히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그에게 하나님은 이 땅에서 어떤 상을 주셨나요? 모세는 죽을 힘을 다해 동족을 이끌고 출애굽을 했지만 정작 하나님은 모세를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밟아 보지도 못한채 데려가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진정 모세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요 우리가 흠모하는 믿음의 영웅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모세와 같은 믿음을 덧입혀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넷째 모세는 인내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모세는 동족을 위해 살인죄를 범하여 애굽을 떠나 미디안 광야로 쫓겨갔습니다. 저자는 이 사실을 믿음으로 애굽을 떠났다고 말합니다. 모세는 미디안에서 40년간 양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양을 치면서 모든 혈기가 사라지고 온유한 사람으로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되어갔습니다. 그는 40년간 믿음으로 인내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2~3년만 훈련받아도 참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리고 포기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40년간을 믿음으로 인내했습니다. 위대한 종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위대하게 쓰임 받는 종은 인내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내하는 믿음을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다섯째 모세는 피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모세를 연단하신 후에 애굽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모세에게 유월절 규례를 명령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인들에게 장자재앙을 내리실 것을 말씀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문설주에 짐승의 피를 바르면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믿었습니다. 반드시 장자재앙이 임할 것을 믿었습니다. 또 짐승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재앙이 넘어가 자기 백성이 구원받을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믿은대로해 애굽인들에게는 장자재앙을 내리셨지만, 문설주에 피를 바른 자기 백성은 피를 보고 넘어가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피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이와 같이 피의 능력은 단순히 믿기만 하면 효력이 발생합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피를 믿기만 하면 동일하게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II.홍해와 여리고 작전이 말해 주는 믿음(29, 30)
홍해사건과 여리고 정복사건은 우리가 힘든 세상을 살면서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는가? 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또한 믿음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좋은 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어떻게 건너갔습니까?
29절은 간단하게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홍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들은 추격해 오는 애굽 군대의 말발굽소리를 듣고 간장이 녹는 것 같았습니다. 이젠 죽었다고 복창을 했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손을 바다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모세가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 홍해는 갈라졌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평소에 육지에서 걸어다니던 길과 같이 믿음으로 홍해를 건너갔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언제 바닷물이 합쳐져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걸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오직 믿음으로 홍해를 건넌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애굽 군대들은 흉내만 내었기에 빠져 죽었습니다. 믿음은 흉내 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인격적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홍해는 나의 능력으로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홍해를 건너게 하실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놓여있는 홍해는 무엇입니까?
건강회복일 수 있고, 제자 양성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취직, 물질문제, 인간관계회복, 자녀교육,사업문제 등 다양할 것입니다. 이 홍해는 오직 믿음으로 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홍해를 건너게 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홍해문제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반드시 홍해를 건널 수 있도록 길을 여십니다. 여러분이 이 놀라운 믿음의 체험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홍해문제가 절대절명의 문제라면 여러고성 문제는 가나안 정복이라는 목표지점을 가기위해 반드시 정복해야할 문제입니다. 여리고성은 난공불락의 성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첫 번째 관문인 여리고성을 정복해야 합니다. 여리고성은 장차 가나안 정복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정복해야할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입니다. 이스라엘의 수준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성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그들은 대포도 없고 총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두 주먹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무슨 작전 지시를 하셨습니까? 어떻게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까?
30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하나님께서는 성을 파괴할 다이나마이트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7일 동안 여러고성을 돌라는 이해하기 힘든 작전지시를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비현실적이며 웃기는 작전입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믿음으로 6일 동안 하루에 한 번씩 성을 돌았습니다.
그리고 제 칠일에는 7번 돌았습니다. 모두해서 13번 성을 돌았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한 마음으로 성을 돌았습니다. 그러할 때 철옹성과 같은 여리고성이 굉음을 내며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최근 일어난 아이티지진을 보면 실감이 납니다. 즉 믿음으로 여리고성이 무너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여리고성을 내가 무너뜨릴 수 없다는 불신을 가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합심하여 순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즉 치열한 전투를 사탄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합심해서 믿음으로 나아가야합니다. 그러면 우리 앞에 어떤 장애물도 무너뜨릴 수 있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음 주가 되면 새롭게 지어진 센터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과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마음으로, 한 가지 믿음으로, 한 가지 방향을 좇아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 앞에 있는 불가능해 보이는 제자양성의 벽이 무너져 내려 홍대를 정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이 시간 큰 소리로 ‘믿음으로 홍해를 건너자, 믿음으로 홍대를 정복하자’!외쳐봅시다.
III.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 증인들(31~40)
31절에서 40절까지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 증인들이 나옵니다. .
32절을 보십시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저자는 믿음으로 승리한 증인들이 너무나 많음을 강조하고 나머지는 간략하게 요약을 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다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간략하게 34~40절까지 요약을 하겠습니다.
36,37절을 보십시오. 이 두 요절은 세상이 얼마나 심하게 하나님의 자녀를 핍박하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예레미야는 회개를 촉구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고, 이사야는 톱으로켜서 죽었다고 합니다. 이들의 삶은 광야와 산과 동굴에서 겨우 먹고사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얼마나 당당했습니까? 38절을 보십시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이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입니다.
39,40절은 히브리서 11장의 결론부분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니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사람들은 1절부터 언급한 믿음의 선배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믿음으로 증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약속된 것은 받지 못했습니다.
약속된 것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구현을 말합니다. 그 이유를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오신 이후의 신자들을 위해 더 좋은 것을 예비하여 두신 하나님의 계획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구약의 선진들이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고 살게하시고, 신약의 우리들은 오신 메시야를 바라보고 살므로써 구약과 신약의 성도들로 합하여 온전함을 이루시고자 하십니다.
결국 구약의 선진들의 믿음은 우리가 있음으로써 온전함을 이루게 되고,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그들의 고생이 의미 있게 되고,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히브리서 저자의 결론입니다.
이상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첫째는 우리는 치열한 영적인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 둘째는 이 세상은 죄악되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 때 우리는 믿음의 증인들과 같이 죄악된 세상에서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모든 핍박과 환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새 센터에서 새학기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믿음의 증인들과 같은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가지고 출발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의 소망을 가슴속깊이 영접하고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는 믿음의 주역들로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일생도록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을 누리며 사는 복된 인생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히브리서 11:23-40
요절 히브리서 11:25
세상을 이기는 믿음
1강에서는 믿음이 무엇인가? 그리고 아벨, 에녹, 노아의 믿음에 대해서, 2강에서는 믿음의 4대 조상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믿음을 배웠습니다. 본 3강은 죄악된 세상에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 믿음의 증인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죄악된 이 세상에 사는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이길 수 있는가? 믿음의 증인들을 통해 그 비결을 배울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I. 모세의 믿음(23~29)
모세가 태어날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23절을 보면 모세가 태어났을 때에 그 부모가 석달 동안 몰래 숨어서 키웠다고 말합니다. 구체적으로 출애굽기 1장에서 당시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셉이 이스라엘의 총리로서 오랜 기간 동안 애굽을 통치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죽고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애굽을 다스리자 왕은 매우 심각한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위협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증가하면 막강한 힘이 되어 스스로 애굽을 떠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노동력을 잃게 되기 때문에 나라에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비상각료회의를 소집했습니다. 그 결과 해답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거운 중노동을 시킴으로써 임신을 못하기 하는 작전을 썼습니다. 그런데 심한 노동을 시키고 학대를 하면 할수록 육체가 더 강건해져서 더 많은 아주 건강한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산파를 시켜 아들이면 무조건 죽이라는 살인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산파들의 마음을 움직이사 남자 아이들을 살려주었습니다. 또 왕은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무조건 나일강에 버리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명령을 어기면 죽음을 당할 수 밖에 없는 명령입니다. 이 명령대로 라면 이스라엘 백성은 더 이상 인구가 불어날 수 없는 상황이요 이스라엘 백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운명이 되고 맙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은 모세의 운명이 평범하지 않은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즉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죄악된 세상은 모세가 태어나면 죽일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어떻게 살아나게 되었고 어떻게 성장하게 되었습니까?
첫째 모세는 부모의 믿음 때문에 살게 되었습니다.
23절을 보면 믿음으로 모세가 태어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어서 키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부모들은 속으론 “하나님 남자아이가 아니라 딸을 주시옵소서”간절히 기도했을것입니다.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감당할지 난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외면이나 하듯 남자아이를 허락하셨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부모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갓난아이인 모세의 비범함을 보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두신 특별한 뜻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믿음으로 3개월간 숨어서 키웠습니다. 이는 그들이 눈에 보이는 왕을 무서워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3개월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믿음으로 모세를 키웠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하나님의 주권에 맡겼습니다. 3개월이 되자 그들은 모세를 나일강에 띄워 보냈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젖먹이 아들을 기약없이 나일강에 띄워보내는 모세의 어머니의 마음은 찢어지는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만일 결혼하신 목자님들이 모세의 부모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아픔을 하나님은 다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어떻게 인도하셨습니까?
둘째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최고의 삶을 누리며 성장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나일강에 버려진 모세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당시 목욕을 하고 있던 바로의 공주의 마음을 움직이사 데려다가 자신의 양자로 키우도록 도우셨습니다. 처녀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이는 하나님께서 바로의 공주의 마음을 움직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권자가 되십니다. 모세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일약 황태자로서 바로의 궁에서 최고의 보호를 받으며, 어머니 요게벳의 젖을 먹으며 성장하였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궁중에서 행복하게 자랐습니다.
당시 애굽은 강대국이요 선진국이었습니다. 이런 나라의 황태자가 될 차기 왕으로서의 모든 교육을 받았습니다. 최고의 스승으로부터 외국어를 비롯한 여러 가지 학문을 배웠고, 말타기, 활쏘기, 예절 교육등 모든 것을 습득했습니다. 모세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안고 태어났지만 하나님은 강대국의 황태자로서 모든 특권과 영광을 누리는 행복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장차 모세를 출애굽의 주인공이요 이스라엘을 이끌어갈 지도자로 쓰시기 위해 바로의 공주의 양자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모세는 차기 왕권을 이어받을 유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장래가 보장되었고 모든 것이 장차 모세의 손안에 좌지우지 되는 그런 권력자가 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또 모세가 왕이 되는 것이 동족을 위해서도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런 삶을 포기하고자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이런 모세는 구체적으로 어떤 믿음을 갖고 있었을까요?
첫째 특권과 영광을 버리는 결단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기를 거절하고”
모세가 장성했다는 뜻은 모세가 이제는 성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가치관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세는 그동안 궁중교육과 함께 어머니가 유모이기 때문에 어머니로부터 어릴때부터 신앙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은 애굽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늘 자신이 궁중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노예백성으로 사는 동족을 생각할 때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단을 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영광과 특권을 누리던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고생이 되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 것인가? 결단을 해야 했습니다. 이 결단은 무척 힘든 것입니다. 어떤 점에서 힘이 들까요?
무엇보다 지금까지 모세는 궁중생활에 익숙해 왔고 고생을 모르고 자랐습니다. 섬기는 삶이 아니라 섬김만 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시간만 지나면 강대국 애굽의 왕이 될 사람이었습니다. 편한 삶을 포기하고 사서 고생하는 것, 좋은 것을 버리고 더 나쁜 것을 선택하는 것, 확실한 길을 버리고 불확실한 길을 가는 사람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바로 그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기를 믿음으로 거절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을 잘 키워준 바로의 공주의 정을 뿌리쳐야 하는 아픔을 이겨냈습니다. 우리는 모세와 같이 인간적인 정과 하나님 앞에서 결단을 할 때 참으로 결단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믿음으로 하나님 편에서 인간의 정을 끊었습니다.
당장은 비록 마음은 아프지만, 인간적으로 배신을 하는 것이지만, 모세는 믿음으로 고난의 길을 가고자 결단했습니다. 모세는 거절하는 믿음, 결단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평생 살면서 이런 결단을 할 때가 몇 번 찾아옵니다. 목자로 살 것인가? 평범하게 신자로만 것인가? 학생목자로 살 것인가? 남들같이 죄악의 낙을 누리며 멋지게 캠퍼스 생활을 할 것인가? 믿음의 결혼을 할 것인가? 세상적인 결혼을 할 것인가?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세와 같이 하나님편에서 믿음의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 결단은 모세와 같이 위대한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출발입니다.
그러면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이었습니까?
둘째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믿음의 정체성이 있었습니다.
25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모세는 자신이 선민 이스라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이 있었습니다.
비록 세상적으로 가만히 있으면 강대국 애굽의 왕이 될 수 있지만 그러나 그것보다 더 귀하고 영광스런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라고 그는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이 분명했습니다. 이런 정체성이 있었기에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과감히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체성만 가지고는 부족했습니다. 그는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그는 자기백성이 노예로서 학대를 당하고 고난 받고 있는 중에, 자신만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죄악의 낙을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신앙의 양심상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도저히 살 수 없었습니다. 그는 차라리 자기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이 더 즐겁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것이 더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가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방식은 전혀 다르게 나타납니다. 우리가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까? 모세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택하신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목자라는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이 정체성이 있을 때 우리는 모든 문제앞에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정체성 때문에 고난을 받더라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백성이요 홍대의 목자요, 제자양성가로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허락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모세는 상주심을 바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지만 수모를 겪는 것을 수치로 여깁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모세는 어떤 수모를 받았습니까?모세는 완악한 바로 때문에 10가지 재앙을 맛보기까지 온갖 고초를 당했습니다. 출애굽 후에는 동족들로부터 말할 수 없는 모진 수모를 받았습니다. 먹을 것이 없을 때, 물이 없을 때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새왕을 세워달라고 밀어부쳤습니다. 죄악된 자기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것을 보고 그는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참고 견뎠습니다. 이는 모세가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상을 받기 원하십니까? 우리는 모세와 같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 받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모세는 이 땅에서의 상이 아니라 장차 임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상 주실 것을 믿었기에 그는 애굽의 왕자로서의 모든 삶을 과감히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그에게 하나님은 이 땅에서 어떤 상을 주셨나요? 모세는 죽을 힘을 다해 동족을 이끌고 출애굽을 했지만 정작 하나님은 모세를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밟아 보지도 못한채 데려가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진정 모세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요 우리가 흠모하는 믿음의 영웅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모세와 같은 믿음을 덧입혀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넷째 모세는 인내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왕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모세는 동족을 위해 살인죄를 범하여 애굽을 떠나 미디안 광야로 쫓겨갔습니다. 저자는 이 사실을 믿음으로 애굽을 떠났다고 말합니다. 모세는 미디안에서 40년간 양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양을 치면서 모든 혈기가 사라지고 온유한 사람으로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되어갔습니다. 그는 40년간 믿음으로 인내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2~3년만 훈련받아도 참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리고 포기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40년간을 믿음으로 인내했습니다. 위대한 종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위대하게 쓰임 받는 종은 인내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내하는 믿음을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다섯째 모세는 피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모세를 연단하신 후에 애굽으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모세에게 유월절 규례를 명령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인들에게 장자재앙을 내리실 것을 말씀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문설주에 짐승의 피를 바르면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믿었습니다. 반드시 장자재앙이 임할 것을 믿었습니다. 또 짐승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재앙이 넘어가 자기 백성이 구원받을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믿은대로해 애굽인들에게는 장자재앙을 내리셨지만, 문설주에 피를 바른 자기 백성은 피를 보고 넘어가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피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이와 같이 피의 능력은 단순히 믿기만 하면 효력이 발생합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피를 믿기만 하면 동일하게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II.홍해와 여리고 작전이 말해 주는 믿음(29, 30)
홍해사건과 여리고 정복사건은 우리가 힘든 세상을 살면서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는가? 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또한 믿음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좋은 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어떻게 건너갔습니까?
29절은 간단하게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홍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들은 추격해 오는 애굽 군대의 말발굽소리를 듣고 간장이 녹는 것 같았습니다. 이젠 죽었다고 복창을 했고,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손을 바다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모세가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 홍해는 갈라졌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평소에 육지에서 걸어다니던 길과 같이 믿음으로 홍해를 건너갔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언제 바닷물이 합쳐져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걸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오직 믿음으로 홍해를 건넌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애굽 군대들은 흉내만 내었기에 빠져 죽었습니다. 믿음은 흉내 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인격적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홍해는 나의 능력으로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홍해를 건너게 하실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놓여있는 홍해는 무엇입니까?
건강회복일 수 있고, 제자 양성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취직, 물질문제, 인간관계회복, 자녀교육,사업문제 등 다양할 것입니다. 이 홍해는 오직 믿음으로 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홍해를 건너게 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홍해문제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반드시 홍해를 건널 수 있도록 길을 여십니다. 여러분이 이 놀라운 믿음의 체험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홍해문제가 절대절명의 문제라면 여러고성 문제는 가나안 정복이라는 목표지점을 가기위해 반드시 정복해야할 문제입니다. 여리고성은 난공불락의 성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첫 번째 관문인 여리고성을 정복해야 합니다. 여리고성은 장차 가나안 정복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정복해야할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입니다. 이스라엘의 수준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성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그들은 대포도 없고 총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두 주먹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무슨 작전 지시를 하셨습니까? 어떻게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까?
30절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하나님께서는 성을 파괴할 다이나마이트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7일 동안 여러고성을 돌라는 이해하기 힘든 작전지시를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비현실적이며 웃기는 작전입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믿음으로 6일 동안 하루에 한 번씩 성을 돌았습니다.
그리고 제 칠일에는 7번 돌았습니다. 모두해서 13번 성을 돌았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한 마음으로 성을 돌았습니다. 그러할 때 철옹성과 같은 여리고성이 굉음을 내며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최근 일어난 아이티지진을 보면 실감이 납니다. 즉 믿음으로 여리고성이 무너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여리고성을 내가 무너뜨릴 수 없다는 불신을 가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합심하여 순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즉 치열한 전투를 사탄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합심해서 믿음으로 나아가야합니다. 그러면 우리 앞에 어떤 장애물도 무너뜨릴 수 있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음 주가 되면 새롭게 지어진 센터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과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마음으로, 한 가지 믿음으로, 한 가지 방향을 좇아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 앞에 있는 불가능해 보이는 제자양성의 벽이 무너져 내려 홍대를 정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이 시간 큰 소리로 ‘믿음으로 홍해를 건너자, 믿음으로 홍대를 정복하자’!외쳐봅시다.
III.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 증인들(31~40)
31절에서 40절까지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 증인들이 나옵니다. .
32절을 보십시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저자는 믿음으로 승리한 증인들이 너무나 많음을 강조하고 나머지는 간략하게 요약을 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다 기억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간략하게 34~40절까지 요약을 하겠습니다.
36,37절을 보십시오. 이 두 요절은 세상이 얼마나 심하게 하나님의 자녀를 핍박하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예레미야는 회개를 촉구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고, 이사야는 톱으로켜서 죽었다고 합니다. 이들의 삶은 광야와 산과 동굴에서 겨우 먹고사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얼마나 당당했습니까? 38절을 보십시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이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입니다.
39,40절은 히브리서 11장의 결론부분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니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사람들은 1절부터 언급한 믿음의 선배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믿음으로 증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약속된 것은 받지 못했습니다.
약속된 것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구현을 말합니다. 그 이유를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오신 이후의 신자들을 위해 더 좋은 것을 예비하여 두신 하나님의 계획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구약의 선진들이 오실 메시야를 바라보고 살게하시고, 신약의 우리들은 오신 메시야를 바라보고 살므로써 구약과 신약의 성도들로 합하여 온전함을 이루시고자 하십니다.
결국 구약의 선진들의 믿음은 우리가 있음으로써 온전함을 이루게 되고, 우리가 믿음으로 살 때 그들의 고생이 의미 있게 되고,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히브리서 저자의 결론입니다.
이상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첫째는 우리는 치열한 영적인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 둘째는 이 세상은 죄악되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 때 우리는 믿음의 증인들과 같이 죄악된 세상에서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모든 핍박과 환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새 센터에서 새학기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믿음의 증인들과 같은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가지고 출발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의 소망을 가슴속깊이 영접하고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는 믿음의 주역들로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일생도록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을 누리며 사는 복된 인생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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