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09년 성탄 2강(눅1:67-79) 구원의 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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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성탄 제 2 강
말씀 누가복음 1:67-79
요절 누가복음 1:69
구원의 뿔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한국도자기 김동수 회장은 선친으로부터 매년 40%에 달하는 사채를 잔뜩 짊어진 기업을 물려 받았습니다. 40%의 사채는 피를 말리는 고금리입니다. 죽도록 일해서 빚을 갚아봐야 이자만 치루는 나날이었습니다. 그의 몸무게가 58Kg이었는데 몇 달이 지나지 않아 48Kg 밖에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10년 만에 빚을 다 갚았습니다. 그리고 도자기 공장에 있는 여공들이 퇴근을 할 때 깡패들이 괴롭히는 것을 알고 검도를 익혔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허약하기 때문에 도장에서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믿음으로 검도를 시작하여 실력을 쌓고 깡패들을 평정했습니다. 여공들을 괴롭히던 그 깡패를 직원으로 채용했습니다. 이런 그가 각고의 노력 끝에 본차이나 도자기를 만들어 세계에서 1등을 하는 도자기 만드는 기업을 일구었습니다. 이 회사는 빚이 없고 직원들을 해고하지 않는 기업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직원들을 가족들처럼 사랑하고 기업에서 얻은 부를 함께 나누고 있는 신실한 크리스천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를 괴롭히던 원수 사탄을 제압하시고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구원의 뿔 되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으며 성결과 의로 주님을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지만 늙도록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사가랴가 분향하는 직무에 뽑히게 되었고 거기서 천사 가브리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그러나 사가랴는 너무나 놀라서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라며 불신의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가브리엘은 화가 나서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사가랴는 구 개월 동안 심사숙고하면서 기도하고 구약 성경을 묵상하면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의 불신에 대한 징계로 천사는 침묵 훈련을 주었지만 하나님은 항상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징계를 보상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우리가 과거 죄의 상처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지키고 있다면 죄의 상처를 은혜로운 기억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하셨습니다(롬5:20). 사가랴는 침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놀라운 영적 비밀을 깨닫고 찬송이 터지게 되었습니다. 68절을 보십시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사가랴는 처음에는 자기 아내가 아이를 낳게 될 것을 믿지 못했지만 아이를 낳고 지금은 성령이 충만해서 메시아가 다시 오셔서 자기 백성을 속량하실 것을 노래했습니다. 그는 믿음 가운데서 하나님의 약속이 선하게 성취되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가랴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법을 알게 되었고 놀라운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찾아오사 속량하셨다.”
메시아 예수님이 오신 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심방오신 것입니다. 대통령이 서민들을 돌아보기 위해서 시장에서 고생하는 분들을 찾아가 손을 꼭 잡고 위로의 말을 건넬 때 늙으신 아주머니들이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그가 선물로 준 목도리를 고이고이 간직합니다. 대통령이 고생하는 나를 찾아왔다는 것이 그렇게 고마운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사탄의 노예가 되어 절망스럽고 우울한 날을 보낼 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내가 죄의식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할 때 찾아오셨습니다. 엡 2:2-6절은 말씀합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를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는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셨습니까? 69절을 보십시오.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구원의 뿔이란 구원하는 힘입니다. 뿔은 힘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뿔은 음악적인 도구가 아니라 황소의 가공할 만한 무기입니다. 구원의 뿔이란 구약의 배경 가운데서 신약에서 유일하게 사용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시편 92:9,10절에 보면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리이다 정녕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리니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흩어지리이다.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화가 난 들소 뿔에 받히면 살아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괴롭히는 원수들이 있습니다. 71절을 보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히브리서 2:14-15절은 말씀합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우리의 원수는 마귀입니다. 마귀는 일곱 머리에 열 뿔을 가진 존재입니다. 마귀는 매우 영리하고 다양한 방향에서 우리를 공격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정욕의 뿔, 교만의 뿔, 우울증의 뿔, 운명주의의 뿔, 탐심의 뿔, 이단의 뿔, 미움의 뿔, 미혹의 뿔, 두려움의 뿔, 거짓의 뿔 등으로 우리를 공격합니다. 우리는 사람과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닙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원수는 사탄입니다. 사탄은 자기의 노예된 사람들을 꼬드겨서 신자들을 공격합니다. 신자들에게 아무 이유도 없는데 적대적인 마음을 품고 공격하게도 합니다. 열뿔 가진 사탄의 세력을 볼 때 두렵습니다. 사탄은 우리 마음에 두려움을 심어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만듭니다.
하와는 사탄의 유혹을 받고 아담은 여자의 유혹을 받아서 하나님께 불순종의 죄를 짓고 나서 마음에 들어온 것이 두려움이었습니다. 죄를 지으면 정죄감과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으면 본능적으로 양심과 법과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습니다. 두려움은 관계성을 파괴시킵니다. 죄를 짓고 나서 아담과 하와의 관계가 깨졌습니다. 서로가 비난하는 사이로 발전하였습니다. 자기를 철저하게 합리화시키고 상대방에게 죄를 뒤집어씌웠습니다. 모두가 조상 탓이요 목자 탓이요 다른 사람 탓이었습니다. 내 탓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책임을 지고 문제를 풀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 탓을 하면 문제는 평행선을 달립니다. 두려움으로 인해서 관계가 깨진 사람은 소외감을 느낍니다. 외롭습니다. 고독합니다. 자신은 사람들과 마음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하고 싶지만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거절당할까봐 두려워 합니다. 다른 사람의 반응에 대해서 어떻게 처신을 해야 좋은지 몰라서 두렵습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의 근원은 죽음입니다.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합니다. 장래에 대한 두려움, 불안정에 대한 두려움,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두려움으로 고통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야 합니까? 요한일서 4:18a절은 말씀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대인관계에 대한 두려움도 사람에 대한 사랑을 가질 때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데 어떻게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면 나에게 죄를 지은 사람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하면 행복해 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기를 깊이 발견하고 회개할 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죄사함을 받고 성령이 충만해지면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는 속 사람이 자라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우리가 성장하는 속도가 더딜지라도 조금씩 조금씩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는 순식간에 신령하고 거룩한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변화를 시작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4:16).” 우리 자신들을 살펴보면 사실 많이 변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변화의 기대치가 큰 사람에게는 별로 변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많이 변했고 변화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한다면 하루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변화될 줄 믿습니다. 사가랴가 예언한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는 역사는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서 영적인 변화와 영적인 전쟁에서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적인 정복자이십니다. 우리 죄에 대한 빚을 탕감하시기 위해서 죽으신 주님은 우리가 그를 믿고 따를 때 죄로부터 자유를 주십니다. 죄사함을 받은 사람의 마음은 평강이 넘칩니다. 기쁨으로 노래합니다. 예수님이 구원의 뿔로서 이 땅에 오신 것을 생각하면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거움을 나누고자 하는데 별로 기쁘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배부른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라고 권한다면 감사하는 마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욕망이 없는 사람은 만족할 수 없고, 궁핍 하지 않은 사람에게 구호품은 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원수에 의해서 위협을 받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누가 도움을 제공하겠다고 말한다면 별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영적인 상태가 어떠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구원의 뿔 되신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구원의 뿔은 쓸모없는 장난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저에게 죄의 치명적인 병으로부터 회복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가장 위험한 외부의 적인 사탄으로부터 내 영혼이 보호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패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실제적이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 여기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1:8).”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6:23a).” 실제하는 가장 강력한 원수가 여기 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고후 4:4)” 가장 무섭고 치명적인 병과 원수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 모든 사람은 이 병으로 인해 죽게 될 것이고 구원의 뿔이 없다면 이 원수에게 삼키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사가랴는 오랫 동안 기도하고 간구하였지만 아이를 낳지 못하자 불신의 뿔에 찔렸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개월 동안 불신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는 말을 할 수 없고 들을 수도 없는 어둡고 답답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자신을 자책하였습니다. “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던가? 왜 내가 그렇게 회의적이었던가?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 놈인가!” 천사 가브리엘은 사가랴가 구 개월 동안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사가랴는 듣지 못하고 아내나 친구들과 대화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가랴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생각과 마음은 놀랄만하고, 믿을 수 없는, 그리고 의미심장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잠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침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한다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침묵하고 벙어리가 되고 귀머리리가 될 때 하나님이 거기 계신 것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기 말을 멈추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면 아내와 아이들의 눈으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양의 눈으로 더 많은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의 눈으로 우리의 사역과 가정 생활을 볼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생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이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묵상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절대적인 침묵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도 이런 기간을 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최대한 침묵하면서 우리의 사역과 나 자신에 대해서 돌아보고 있습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 해를 준비하면서 한 가지를 분명하게 붙잡고 새 해의 방향을 잡고자 기도합니다. 사가랴는 이런 시간을 통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고 놀라운 찬송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찬송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예수님의 탄생으로 이루어질 놀라운 일들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도 얼마 동안 자신에 대해서 침묵을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현재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해법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되도록 침묵하면서 새해 방향에 대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76-77)”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불신이 믿음으로, 정욕이 거룩함으로, 거짓이 진실로, 운명이 섭리로 바뀌는 것이 구원입니다.
우리 인생에 하나님의 구속이 성취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74,75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이번 성탄의 복된 소식은 구원의 뿔을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부르고 그를 믿을 때 그는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의 뿔이 되십니다. 우리는 이제 두려움이 없이 성결과 의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된 원인은 무엇입니까?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78-79).”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처한 상황을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우리가 처한 비참한 상태를 보실 때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긍휼로 인해서 우리에게 구원의 뿔이요 돋는 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돋는 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임하자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 물러가고 밝은 빛이, 따뜻한 빛이 비추이게 되었습니다.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사람들의 삶이 어떠합니까? 어둡습니다. 앞이 깜깜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수없이 시행착오를 하면서 헤매게 됩니다.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힙니다. 마음이 어둡고 생각이 어둡고 말도 어둡고 장래도 어둡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돋는 해가 필요합니다. 돋는 해가 그 마음에 임하게 되면 헤맬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이 어두운 사람들은 우울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햇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지하실에 가면 어떻습니까? 어두운 곳에는 곰팡이가 잘 핍니다. 영적인 우울증도 마찬가지입니다. 햇빛이 마음에 없기 때문에 불안하고 부정적이고 음란하고 어둡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에게 하루에 몇 번씩 밝은 태양빛을 쬐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영적인 햇빛을 쬐여야 합니다. 시84:11a절은 말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일용할 양식 말씀을 먹고 소감을 쓰고 성경을 읽는 가운데 마음에 빛을 받아야 합니다. 말라기 4:2절은 말씀합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그렇습니다. 돋는 해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을 때 우리 마음에 생명의 빛이 임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치료하는 광선을 우리에게 비추어 주십니다.
결론적으로 사탄은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뿔 되신 예수님께 피하는 사람은 아무도 멸망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구원의 뿔 되신 예수님을 믿고 두려움이 없이 성결과 의로 일생 주님을 섬기며 평강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돋는 해 되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우리 마음에 치료의 역사가 일어나고 생명의 빛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누가복음 1:67-79
요절 누가복음 1:69
구원의 뿔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한국도자기 김동수 회장은 선친으로부터 매년 40%에 달하는 사채를 잔뜩 짊어진 기업을 물려 받았습니다. 40%의 사채는 피를 말리는 고금리입니다. 죽도록 일해서 빚을 갚아봐야 이자만 치루는 나날이었습니다. 그의 몸무게가 58Kg이었는데 몇 달이 지나지 않아 48Kg 밖에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10년 만에 빚을 다 갚았습니다. 그리고 도자기 공장에 있는 여공들이 퇴근을 할 때 깡패들이 괴롭히는 것을 알고 검도를 익혔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허약하기 때문에 도장에서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믿음으로 검도를 시작하여 실력을 쌓고 깡패들을 평정했습니다. 여공들을 괴롭히던 그 깡패를 직원으로 채용했습니다. 이런 그가 각고의 노력 끝에 본차이나 도자기를 만들어 세계에서 1등을 하는 도자기 만드는 기업을 일구었습니다. 이 회사는 빚이 없고 직원들을 해고하지 않는 기업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직원들을 가족들처럼 사랑하고 기업에서 얻은 부를 함께 나누고 있는 신실한 크리스천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를 괴롭히던 원수 사탄을 제압하시고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구원의 뿔 되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으며 성결과 의로 주님을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지만 늙도록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사가랴가 분향하는 직무에 뽑히게 되었고 거기서 천사 가브리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그러나 사가랴는 너무나 놀라서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라며 불신의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가브리엘은 화가 나서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사가랴는 구 개월 동안 심사숙고하면서 기도하고 구약 성경을 묵상하면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의 불신에 대한 징계로 천사는 침묵 훈련을 주었지만 하나님은 항상 믿음을 지키는 자에게 징계를 보상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우리가 과거 죄의 상처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지키고 있다면 죄의 상처를 은혜로운 기억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하셨습니다(롬5:20). 사가랴는 침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놀라운 영적 비밀을 깨닫고 찬송이 터지게 되었습니다. 68절을 보십시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사가랴는 처음에는 자기 아내가 아이를 낳게 될 것을 믿지 못했지만 아이를 낳고 지금은 성령이 충만해서 메시아가 다시 오셔서 자기 백성을 속량하실 것을 노래했습니다. 그는 믿음 가운데서 하나님의 약속이 선하게 성취되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가랴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법을 알게 되었고 놀라운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찾아오사 속량하셨다.”
메시아 예수님이 오신 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심방오신 것입니다. 대통령이 서민들을 돌아보기 위해서 시장에서 고생하는 분들을 찾아가 손을 꼭 잡고 위로의 말을 건넬 때 늙으신 아주머니들이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그가 선물로 준 목도리를 고이고이 간직합니다. 대통령이 고생하는 나를 찾아왔다는 것이 그렇게 고마운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사탄의 노예가 되어 절망스럽고 우울한 날을 보낼 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내가 죄의식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할 때 찾아오셨습니다. 엡 2:2-6절은 말씀합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를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는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셨습니까? 69절을 보십시오.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구원의 뿔이란 구원하는 힘입니다. 뿔은 힘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뿔은 음악적인 도구가 아니라 황소의 가공할 만한 무기입니다. 구원의 뿔이란 구약의 배경 가운데서 신약에서 유일하게 사용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시편 92:9,10절에 보면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리이다 정녕 주의 원수들은 패망하리니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다 흩어지리이다.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화가 난 들소 뿔에 받히면 살아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괴롭히는 원수들이 있습니다. 71절을 보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히브리서 2:14-15절은 말씀합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우리의 원수는 마귀입니다. 마귀는 일곱 머리에 열 뿔을 가진 존재입니다. 마귀는 매우 영리하고 다양한 방향에서 우리를 공격할 수 있습니다. 마귀는 정욕의 뿔, 교만의 뿔, 우울증의 뿔, 운명주의의 뿔, 탐심의 뿔, 이단의 뿔, 미움의 뿔, 미혹의 뿔, 두려움의 뿔, 거짓의 뿔 등으로 우리를 공격합니다. 우리는 사람과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닙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원수는 사탄입니다. 사탄은 자기의 노예된 사람들을 꼬드겨서 신자들을 공격합니다. 신자들에게 아무 이유도 없는데 적대적인 마음을 품고 공격하게도 합니다. 열뿔 가진 사탄의 세력을 볼 때 두렵습니다. 사탄은 우리 마음에 두려움을 심어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만듭니다.
하와는 사탄의 유혹을 받고 아담은 여자의 유혹을 받아서 하나님께 불순종의 죄를 짓고 나서 마음에 들어온 것이 두려움이었습니다. 죄를 지으면 정죄감과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으면 본능적으로 양심과 법과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습니다. 두려움은 관계성을 파괴시킵니다. 죄를 짓고 나서 아담과 하와의 관계가 깨졌습니다. 서로가 비난하는 사이로 발전하였습니다. 자기를 철저하게 합리화시키고 상대방에게 죄를 뒤집어씌웠습니다. 모두가 조상 탓이요 목자 탓이요 다른 사람 탓이었습니다. 내 탓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책임을 지고 문제를 풀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 탓을 하면 문제는 평행선을 달립니다. 두려움으로 인해서 관계가 깨진 사람은 소외감을 느낍니다. 외롭습니다. 고독합니다. 자신은 사람들과 마음과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하고 싶지만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거절당할까봐 두려워 합니다. 다른 사람의 반응에 대해서 어떻게 처신을 해야 좋은지 몰라서 두렵습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의 근원은 죽음입니다.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합니다. 장래에 대한 두려움, 불안정에 대한 두려움,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두려움으로 고통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야 합니까? 요한일서 4:18a절은 말씀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대인관계에 대한 두려움도 사람에 대한 사랑을 가질 때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데 어떻게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면 나에게 죄를 지은 사람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하면 행복해 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기를 깊이 발견하고 회개할 때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죄사함을 받고 성령이 충만해지면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는 속 사람이 자라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우리가 성장하는 속도가 더딜지라도 조금씩 조금씩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는 순식간에 신령하고 거룩한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변화를 시작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4:16).” 우리 자신들을 살펴보면 사실 많이 변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변화의 기대치가 큰 사람에게는 별로 변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많이 변했고 변화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한다면 하루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변화될 줄 믿습니다. 사가랴가 예언한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는 역사는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서 영적인 변화와 영적인 전쟁에서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적인 정복자이십니다. 우리 죄에 대한 빚을 탕감하시기 위해서 죽으신 주님은 우리가 그를 믿고 따를 때 죄로부터 자유를 주십니다. 죄사함을 받은 사람의 마음은 평강이 넘칩니다. 기쁨으로 노래합니다. 예수님이 구원의 뿔로서 이 땅에 오신 것을 생각하면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거움을 나누고자 하는데 별로 기쁘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배부른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으라고 권한다면 감사하는 마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욕망이 없는 사람은 만족할 수 없고, 궁핍 하지 않은 사람에게 구호품은 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원수에 의해서 위협을 받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누가 도움을 제공하겠다고 말한다면 별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영적인 상태가 어떠한지를 모르기 때문에 구원의 뿔 되신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구원의 뿔은 쓸모없는 장난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저에게 죄의 치명적인 병으로부터 회복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가장 위험한 외부의 적인 사탄으로부터 내 영혼이 보호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패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실제적이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 여기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1:8).”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6:23a).” 실제하는 가장 강력한 원수가 여기 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고후 4:4)” 가장 무섭고 치명적인 병과 원수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 모든 사람은 이 병으로 인해 죽게 될 것이고 구원의 뿔이 없다면 이 원수에게 삼키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사가랴는 오랫 동안 기도하고 간구하였지만 아이를 낳지 못하자 불신의 뿔에 찔렸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구개월 동안 불신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는 말을 할 수 없고 들을 수도 없는 어둡고 답답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자신을 자책하였습니다. “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던가? 왜 내가 그렇게 회의적이었던가?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 놈인가!” 천사 가브리엘은 사가랴가 구 개월 동안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사가랴는 듣지 못하고 아내나 친구들과 대화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가랴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생각과 마음은 놀랄만하고, 믿을 수 없는, 그리고 의미심장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잠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침묵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한다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침묵하고 벙어리가 되고 귀머리리가 될 때 하나님이 거기 계신 것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기 말을 멈추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면 아내와 아이들의 눈으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양의 눈으로 더 많은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의 눈으로 우리의 사역과 가정 생활을 볼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생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이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많이 묵상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절대적인 침묵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도 이런 기간을 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최대한 침묵하면서 우리의 사역과 나 자신에 대해서 돌아보고 있습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 해를 준비하면서 한 가지를 분명하게 붙잡고 새 해의 방향을 잡고자 기도합니다. 사가랴는 이런 시간을 통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고 놀라운 찬송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찬송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예수님의 탄생으로 이루어질 놀라운 일들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도 얼마 동안 자신에 대해서 침묵을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현재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해법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되도록 침묵하면서 새해 방향에 대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76-77)”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불신이 믿음으로, 정욕이 거룩함으로, 거짓이 진실로, 운명이 섭리로 바뀌는 것이 구원입니다.
우리 인생에 하나님의 구속이 성취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74,75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이번 성탄의 복된 소식은 구원의 뿔을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부르고 그를 믿을 때 그는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의 뿔이 되십니다. 우리는 이제 두려움이 없이 성결과 의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된 원인은 무엇입니까?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78-79).”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처한 상황을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우리가 처한 비참한 상태를 보실 때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긍휼로 인해서 우리에게 구원의 뿔이요 돋는 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돋는 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임하자 어둠과 죽음의 그늘이 물러가고 밝은 빛이, 따뜻한 빛이 비추이게 되었습니다.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사람들의 삶이 어떠합니까? 어둡습니다. 앞이 깜깜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수없이 시행착오를 하면서 헤매게 됩니다.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힙니다. 마음이 어둡고 생각이 어둡고 말도 어둡고 장래도 어둡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돋는 해가 필요합니다. 돋는 해가 그 마음에 임하게 되면 헤맬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이 어두운 사람들은 우울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햇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지하실에 가면 어떻습니까? 어두운 곳에는 곰팡이가 잘 핍니다. 영적인 우울증도 마찬가지입니다. 햇빛이 마음에 없기 때문에 불안하고 부정적이고 음란하고 어둡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에게 하루에 몇 번씩 밝은 태양빛을 쬐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영적인 햇빛을 쬐여야 합니다. 시84:11a절은 말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일용할 양식 말씀을 먹고 소감을 쓰고 성경을 읽는 가운데 마음에 빛을 받아야 합니다. 말라기 4:2절은 말씀합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그렇습니다. 돋는 해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을 때 우리 마음에 생명의 빛이 임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치료하는 광선을 우리에게 비추어 주십니다.
결론적으로 사탄은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뿔 되신 예수님께 피하는 사람은 아무도 멸망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구원의 뿔 되신 예수님을 믿고 두려움이 없이 성결과 의로 일생 주님을 섬기며 평강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돋는 해 되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우리 마음에 치료의 역사가 일어나고 생명의 빛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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