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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일용할 양식 교육 제 4강(시 5편) 아침에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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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739회 작성일 10-08-2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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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일용할 양식 교육 제 4 강                                                        483
말씀 시편 5편
요절 3절       
   
아침에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오늘 네 번째로 일용할 양식을 왜 아침 일찍 먹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고자합니다. 속담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 먹는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천냥, 밤에 깨어 있는 것은 백냥”,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병을 모른다”, “아침 시간은 입에 금을 넣는 것이다” 등등이 있습니다. 오늘 시에서 시인은 아침에 주께서 자신의 소리를 들으신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아침에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새벽을 깨워야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아침형 인간의 저자요 의사인 사이쇼 히로시는 주장합니다. 먼저는 시간 관리를 위해서입니다. 아침 시간은 낮이나 밤 시간의 세배의 효과를 가집니다. 새벽을 깨우는 사람은 자신의 생활과 인생의 근본적인 변화를 몰고 올 수 있습니다. 첫째, 신체와 정신이 조화로운 하루, 에너지가 충만한 하루를 갖게 됩니다. 아침을 늦게 시작하는 사람은 아침을 불쾌한 마음과 무기력한 몸으로 시작합니다. 아침잠은 인생에서 가장 큰 지출이라고 카네기는 말했습니다. 아침을 늦게 시작하는 그 사람에게 하루는 ‘버려진 하루’와 같습니다. 둘째, 새벽을 깨우면 생활의 여유를 갖게 되면서도 목표하는 성과를 달성하게 됩니다. 여유란 단순한 휴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모든 일에 여유가 생깁니다. 여유를 가지고 대하는 모든 일은 순리대로 풀리기 마련입니다. 셋째, 새벽을 깨우면 세상과 자신의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밤늦게 깨어 있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감성적이고 비관적이며 불안한 모습을 많이 보입니다. 반면 이른 아침 시간을 많이 활용하는 사람은 이성적이고 적극적이며 안정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아침형 생활을 지속하면 긍정적인 생활 자세를 갖게 됩니다. 넷째, 새벽을 깨우면 건강한 삶, 장수하는 삶을 누리게 됩니다. 건강 장수하는 노인들 가운데 야행성 인간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나이 들어 잠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젊어서부터 생활 습관이 그랬던 것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무엇을 할 것이냐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아침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우리는 언제 부르짖는 기도가 나옵니까? 평안하고 행복할 때는 부르짖음이 나오지 않습니다. 너무나 답답하고 절박하고 앞이 캄캄할 때 저절로 부르짖게 됩니다. 자신은 죽을 곤경에 빠졌는데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 외에는 방법이 없을 때 절규가 나옵니다. 이때는 조용조용히 묵상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기도실이나 골방에 들어가서 큰 소리로 부르짖어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길 때 그런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자신이 충성을 바치고 있는 왕, 자신의 장인이 시기하여 다윗을 죽이고자 하니 그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위에 있는 상관, 동료, 부하들이 모두가 다 왕의 편에 서서 자기를 죽이고자 할 때 그는 피할 곳이 없었습니다. 그가 피할 곳은 오직 피난처 되신 하나님뿐이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1).” 우리가 복음 역사를 섬기다가 상처를 받고 마음이 힘들 때가 있습니다. 누구에게 털어놓아도 이해해 주지 못할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신음하면서 하나님 앞에 탄식하며 기도하게 됩니다.

 의인들의 삶에 항상 평안함이 있고 만사형통한 것이 아닙니다. 원수들의 공격이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조롱이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공격을 받기도 합니다. 악인들이 의인들을 미워합니다. 우리 사회는 안티 크리스천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신자들이 생활에서 좋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기도 하고 십자가보다는 기복신앙을 강조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어렵다고 느낄 때 우리는 의로운 삶을 포기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부르짖음을 소홀히 여기지 아니하십니다. 그는 믿음으로 사는 자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믿음의 승리를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당시 사울이 왕이었지만 그를 의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왕이라고 부릅니다. 왕은 백성들의 억울한 일을 살피고 풀어주어야 합니다. 또 연약한 백성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나라에 공의가 서도록 힘써야 그 나라가 강성해 집니다. 그런데 사울은 자기의 사욕을 따라서 다윗을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믿을 분은 진정한 왕 되신 여호와 하나님뿐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아버지와 인격적인 관계가 깊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하나님이라고 호칭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사정을 아시고 헤아리시는 하나님,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을 그는 사랑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를 만드시고 나를 아시는 창조주시오 영원한 아버지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내가 얼마나 원통한지, 내가 얼마나 두렵고 슬픈지, 내가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내가 얼마나 외로워하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주님께 나아가 기도합니다.

  우리가 힘들면 언제든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당연합니다. 예수님도 새벽 미명에 기도하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철야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습관적으로 새벽 미명에도, 밤에도 기도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하루 시작을 얼마나 일찍 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특별히 일용할 양식과 기도 생활을 언제 하는 것이 좋은가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루 시간을 생각해 보면 아침과 낮 시간, 저녁 시간은 분명히 다릅니다. 밤이 감성적인 시간이라면 새벽은 이성적인 시간입니다. 그래도 어떤 사람은 ‘아침이든 저녁이든 규칙적으로 양식을 먹으면 되지 꼭 이른 아침에 먹어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침 시간은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을 잠잠히 바라기에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특별히 다윗은 언제 기도했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고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여기서 아침은 동트기 전 새벽을 말합니다. 새벽은 조용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놓으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새벽은 영감이 넘치는 시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밤이면 자고 아침이면 일어나 활동하는 기본 패턴만큼은 유지하고 있고 이를 당연시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점점 더 늦게 자고 점점 더 늦게 일어나는 시간이 가속화된다는 것입니다. 또 밤 시간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더 오래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수면 시간이 극히 짧아지면서 아침을 고통스럽게 시작하게 됐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도시는 밤이 되어서야 활력이 넘치고, 오히려 아침이나 낮 시간에는 차분한 기운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밤 시간에 에너지를 쏟아내다 보면  정작 낮 시간은 무기력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최근 들어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자율신경 실조증, 우울증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것도 현대인들의 야행성 생활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아침 우울증은 야행성 생활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합니다. 아침이 우울하다는 것은 정신 건강상 심각한 위험 신호일뿐만 아니라 하루의 성과에도 극히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칩니다. 아침에 학교를 가거나 회사를 가는 것이 ‘죽을 맛’이라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 경우 심각한 아침 우울증인 것입니다. 아침 우울증의 원인은 야행성 생활에 있습니다. 야행성 생활을 지속하게 되면 체력이 떨어지고 면역력도 약해집니다. 야행성 생활은 자연치유력을 현저하게 떨어뜨립니다. 야행성 생활은 심신을 극도로 피로하게 만들기 때문에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기가 힘듭니다. 대부분 생활이 규칙적이지 않기 때문에 감정의 기복이 심해집니다. 그러다보면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두뇌 회전도 더뎌져서 실수가 잦아지게 됩니다.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고 과도하게 걱정하거나 슬퍼하고, 타인에게 쉽게 적개심을 드러내고, 자신의 생각은 없고 무조건 시키는 대로만 하거나 반대로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지 못하면 성이 차지 않는 등 정신적 부조화를 보이는 경향이 많아지게 됩니다.
 
  우리 몸 속에는 놀라운 체내 시계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런 감응 수단이 없어도 스스로 정확한 사이클을 유지한다고 합니다. 체내시계의 사이클은 정확이 24시간이 아니라 24시간 30분에서 25시간 가까이로 확인되었습니다. 그것은 지상의 자연 상태에서의 사이클보다 조금씩 늦는 것입니다. 우리가 잠을 자는 것은 활동으로 인해 피로해진 몸과 정신을 회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충분한 수면’은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일상에 반드시 전제되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새벽에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는 일찍 자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오랜 시간 잠을 자라는 말이 아닙니다. 짧게 자더라도 숙면을 취하기에 좋은 시간대가 있고 또 일어나 활동을 시작하기에 좋은 시간이 있습니다. 사람의 맥박은 오전 5시에 가장 빨라진다고 합니다. 이는 외부의 기온, 습도, 기압의 상태가 가장 불안정한 시간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5시에 일어나기 위해서는 최소한 11시 이전에는 자야 합니다. 사람은 체온이 낮을 때 숙면을 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열대야로 인해서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우리의 체온은 오후 2시경에 최고점에 달하고 반대로 한 밤중인 오전 2시-4시 사이에 최저가 됩니다. 그리고 오전 4시경부터 다시 체온이 상승하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오전 2시-4시는 가장 숙면하기에 좋은 시간대입니다. 결국 이 시간에는 다른 무엇을 하는 것보다 잠을 자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우리가 잠이 깬 5시부터 1시간가량이 지난 6시부터 8시까지는 두뇌가 가장 명석해지는 시간입니다. 이때의 집중력이나 판단력은 낮 시간의 3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 시간에 1시간만 공부해도 낮의 3시간과 맞먹습니다. 이렇듯 아침 시간은 인간에게 보배와 같은 것입니다. 그 보배와 같은 시간만 잘 활용할 수 있다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벽에 잠이 깨면 자리를 박차고 공격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아침 우울증에 대해서 공격하는 마음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잠 6:9-11).”

  현대 그룹의 창업주인 고정주영회장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6시에 중역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매일 아침 4시경에 일어나 가장 빠른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이 일상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왕복 약 16Km를 말을 타고 달리면서, 가는 길에는 전략을 짜고, 돌아오는 길에는 결단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의 시중을 들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보다 이른 새벽 3시쯤 일어나서 말이 달릴 수 있도록 준비했고, 노부나가가 신을 신발을 자기 품 속에 넣어 따뜻하게 데웠습니다. 그는 마침내 천하통일의 꿈을 일궈냈습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예수님도 다 새벽을 깨워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부흥의 원인 중에 하나는 새벽기도에 있습니다. 새벽잠이 꿀보다 달지만 새벽을 깨워서 기도하면 꿀보다 더 좋은 말씀을 얻습니다. 우리가 매일 아침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면서 하루하루를 산다면 그 일생이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새벽에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오늘 하루를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기대감을 가지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새벽을 깨워서 기도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습관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삶은 훨씬 더 긍정적인 성격,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악인들로 인해 고난을 받으면서 새벽을 깨워 부르짖은 시인이 깨닫게 된 것이 무엇입니까? 악인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합니다.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합니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십니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십니다. 악인들의 입에는 신실함이 없습니다. 그들의 심중이 심히 악하며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고 그들의 혀로는 아첨을 합니다. 거짓말을 하고 살인하는 것은 사단이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정죄하사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십니다. 그 많은 허물로 말미암아 그들을 쫓아내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배역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때에 내 마음에 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그가 싫어하시는 악을 회개하고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해치는 악인들로 인해서 시인과 같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악인들을 징계하시고 멸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는데 어찌하여 시편 기자는 악인의 멸망을 위해서 기도하는가 의아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은 의를 행하기에 연약한 사람이지 악이 아닙니다. 정의가 실행되도록 죄악과는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심판자가 되셔서 친히 악인들을 다루십니다. 우리가 악인들에게 당할 때에 피해의식에 빠져서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잠시입니다. 또  우리가 감당할 시험 밖에는 우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우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십니다(고전10:13). 우리는 주님 앞에 서게 될 때에 문제를 전체적인 시야를 가지고 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은 악인들을 그들의 꾀에 빠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을 어떻게 도우십니까? 7절을 보십시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주를 경외하는 자는 주님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그에게 나아갑니다. 주의 풍성한 사랑은 히브리어로 ‘헤세드’라고 하는데 이는 언약에 기초한 사랑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우리는 죄인들이지만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여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주를 경외함으로 예배할 때 주께서 어떤 은혜를 베푸십니까?

  11,12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와 같은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주님을 피난처로 삼는다고 해서 우리가 불의를 행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 피하면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기뻐하게 하십니다. 주님은 방패와 같은 은혜로 그에게 피하는 자들을 호위해 주십니다.

  다윗은 이 세상을 살면서 애매한 고난을 받았지만 시를 써서 고난을 승화시켰습니다. 그는 고난으로 인해서 상처를 받기보다는 새벽에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함으로 응답을 받고 더욱 강인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악한 자들이 그를 공격하고 유혹하고 넘어뜨리고자 했지만 믿음을 지키고 승리했습니다. 우리의 신체가 강해야 여러 가지 질병을 이기고 맡은 사명을 힘 있게 감당할 수 있듯이 마음이 강해야 사탄의 시험을 이기고 믿음 위에 굳게 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새벽을 깨워서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고 세상에서 받는 시험을 이기고 악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를 기도합니다. 이 세상에서 복음 전도자로 살면서 무시 받고, 자존심이 뭉개지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새벽을 깨워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가운데 강한 영성을 덧입고 캠퍼스 개척 역사를 힘써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힘들고 어렵다고 탄식만 나올 때 새벽을 깨워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주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기뻐 외치게 하실 줄 믿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가을 학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매일 일용할 양식을 잘 먹고 강건해져서 영적 싸움을 잘 감당해 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새 학기에 3000명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이로 인해 각 가정 교회들이 배가되는 역사를 이루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일에 헌신할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을 보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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