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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010년 요한복음 제 17 강(17:1-26) 예수님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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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679회 작성일 10-07-1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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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봄 학기 요한복음 제 17 강
말씀 : 요한복음 17:1-26
요절 : 요한복음 17:17 찬480장

  예수님의 기도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오늘 메시지의 주제는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40일 금식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는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습니다. 중요한 일을 만나면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십자가에 달려 기도하시면서 끝 마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묻고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좋은 기도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신 대상을 보면 먼저 자신을 위해서(1-5), 둘째 제자들을 위해서(6-19), 셋째 그들을 통해서 믿게 될 미래의 제자들을 위해서(20-26)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기도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자신을 위한 기도(1-5) : 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먼저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우리는 중보기도를 하는데 선교사님들이나, 센터 동역자들, 역사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남북통일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그리고 중보기도 시간에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면 무언가 이기적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을 덕목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먼저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한 기도의 목적은 아버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4절을 보면 “아버지께서 내개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하라고 주신 일은 무엇입니까?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고 하나님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치유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전인적인 회복을 위해서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그 말씀대로 살도록 하심으로서 제자 양성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신다고 믿었습니다. 당시 십자가 죽음은 영광보다는 수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의미만큼은 영광입니다. 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까? 십자가의 죽음은 아버지 하나님을 온전히 계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의 공의와 사랑을 계시합니다. 또 아들이 십자가 죽음을 통해 영광을 받아야만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자들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성공하고 부자가 되고 승리해야만 영화롭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가 잘 되는 것이 자기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으로 그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복을 받고 누리는 것으로 그친다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습니다. 사실 내가 채워져야 남을 채울 수 있습니다. 내게 은혜가 있어야 남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습니다. 나에게 무언가 있어야 남에게 줄 수 있습니다. 내가 건강하고 힘이 있어야 남을 섬길 수 있지 내가 병들고 비실비실해서는 남을 섬기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나의 뜻과 목적보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데 마음을 써야 합니다. 그것이 비록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내가 피곤하고 힘들지라도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사명을 이루는 일이라면 기꺼이 감수해야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내가 힘들지만 새벽을 깨워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내가 무시 받고 욕을 먹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성실하게 감당할 때 양들이 진리를 깨닫고 믿음이 자라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내가 잘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을 위한 기도에 헌신할 때 양들과 동역자들을 잘 섬길 수 있습니다. 내가 극복해야 할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가장 큰 원수도 나 자신입니다. 힐러리 경의 말과 같이 우리가 정복해야 할 산은 바로 나 자신인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자신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제자들을 위한 기도(6-19) : 예수님은 제자들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선택 주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역을 계승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존귀한 자들입니다. 또 10절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실수하고 죄와 허물만 드러내고 있는 제자들을 생각할 때 “내가 저들로 말미암아 참 속을 많이 썩었습니다. 철없는 저들을 두고 가려니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제자들로 인해서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셨다는 것은 놀라운 인식입니다. 사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예수님은 기쁨을 얻고 행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로 인해 감사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4:1절에서 성도들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양이 있기에 목자가 있고, 제자가 있기에 선생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권위가 있으시되 권위적이지 아니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용서받은 의인이요 그는 구주이시지만 제자들을 친구로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자들에게 자신이 감당하셨던 사명을 맡기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서 어떻게 기도하셨습니까?
첫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전해 주시도록 기도하셨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제자들이 이 세상에 남아서 사역을 감당할 때 많은 핍박과 환란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같이 돌아다니면서 제자들을 공격하여 실족시키고자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거룩한 삶을 사는 제자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고 이 세상과 타협하고 죄에 동참하도록 유혹합니다. 제자들은 어린 양과 같은데 세상 사람들은 이리들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전해 주시도록 기도하십니다. 제자들이 보전되어야 예수님의 수고가 헛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제자들을 보전해 주시도록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악으로부터 지켜주시고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14,15절을 보십시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주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어렵다고 해서 산 속으로 들어가거나, 회피하기를 원하지 아니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살면서 악에 빠지지 않고 보전되기를 원하십니다. 힘들다고 자살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고 살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나가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겉으로 볼 때 똑 같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닮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같은 믿음과 말씀을 배우고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 됨의 모델은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것 같이 제자들 모두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말을 하고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같이, 제자들도 모두 동일하게 예수님의 말씀과 그의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로 사랑해서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한 목적과 한 스피릿과 한 사랑으로 뭉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사람들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줄을 알게 됩니다. 제자들이 하나가 될 때 예수님의 기쁨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됩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거룩한 삶을 살도록 기도하셨습니다. 17-19절을 보십시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거룩하다는 것은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 따로 구별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구별된 삶은 격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순수성이 부패해지기 시작하던 중세시대 초기에 어떤 사람들은 수도원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순결함을 지키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선명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3m 두께의 담을 쌓고 세상으로부터 숨어 지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수도원과 같은 집단생활이 생겨나기 전까지 자기 홀로 은둔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는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에 속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떠나서도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지키는 가운데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거룩한 삶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입니다. 그 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옵니다.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BC 290-212/211)는 “나에게 지레를 받칠 수 있도록 세계 밖의 한 점을 주시오. 그러면 지레 하나로 세계를 움직이겠소”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교회가 세상 바깥에 있는 한 지점에 의존하고 있지 않다면 지레로 세상을 움직일 수 없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면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 거룩한 삶을 통해서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삶을 살고, 세상을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어버리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빛이 그 빛을 잃어버리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소금과 빛이 되려면 거룩함이 생명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사랑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사랑하고 지킬 때 혼합주의 다원주의 시대에서 예수님의 제자요 캠퍼스 목자로서 자존감과 정체성을 지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아버지께서 그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그도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즉 제자들은 단지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로서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가지고 세상에 파송을 받은 것입니다. 제자들은 세상 속으로 파고들어가야 합니다. 그 속에서 살면서 거룩하게 되어야 합니다. ‘구별된 삶’과 ‘격리’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구별된 삶은 세상 속으로 침투해 들어감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었기에 세상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거룩하지 않으면 세상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니 들어가서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세상에게 먹히고 맙니다. 짠맛이 있어야 짠맛을 줄 수 있고, 빛이 있어야 빛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며칠 전에는 텔레비전에서 결혼 전에 동거하는 문제에 대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동거해 보는 것이 좋다는 의견들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자신을 지키며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겠습니까? 혼전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는 신자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 나라에 음란한 문화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음악에서는 동성애를 부추기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타락한 나라가 이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전쟁을 통해서 올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망할 수밖에 없는 세 가지 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음란, 부정부패, 거짓말입니다. 우리나라는 한 해 24조원을 매매춘 비용으로 소비하고 있습니다. 세계 40위의 부패국가입니다. 우리 신자들이 먼저 회개하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성결하고 경건하고 정직하고 화평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가르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서 자신을 거룩하게 하신 것 같이 우리도 우리의 자녀들과 양들을 위해서 자신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거룩하게 한다는 말씀은 그의 눈앞에 닥친 십자가의 죽음을 염두에 두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드린 자발적인 헌신과 순종의 극치이자 절정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자기 성화는 제자들의 온전한 헌신과 순종을 위한 모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께 하신 것을 표준삼아 제자들이 아버지께 온전히 바쳐질 수 있도록 진리로 거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셋째, 미래의 제자들을 위한 기도(20-26) : 예수님은 제자들을 통해서 믿게될 미래의 신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이 기도는 두 가지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을 떠나 뿔뿔이 흩어질 제자들이 회복되어 그의 사역을 계승할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은 제자들이 지금은 비록 어리고 약하지만 이들이 세상으로 파송되어 사역을 성공적으로 감당할 것을 믿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께서 오셔서 그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그들을 담대하게 하셔서 빼어난 성경 선생들이요 제자 양성가들이 될 것을 믿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을 위임하고 떠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믿음대로 제자들은 그 이후에 놀랍게 세계 복음화 역사를 섬겼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민족과 백성과 언어와 종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바라보셨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민족들이 하나님을 믿고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게 될 때를 바라보시면서 기도하신 내용이 무엇입니까? 21절을 보십시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미래의 신자들 속에는 우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다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즉 믿는 모든 사람들이 교파와 단체는 다르지만 모두가 한 가지로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을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또 다른 의미는 모두가 아버지와 아들과 진정한 교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예수님의 양들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을 믿게 됩니다.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됩니다. 즉 믿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됩니다. 우리가 다 하나가 될 때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가 될 때 하나님이 복 주신 사람이라는 것이 나타납니다. 신자들이 하나가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시대에 세계 복음화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연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를 위해서 당장 자기나 자기 단체에 유익이 되지 않더라도 함께 하여 대화를 나누고 서로에 대한 생각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보편성을 갖고 자기 단체를 부르신 특수성을 지켜야 합니다. 즉 개방성과 다양성을 갖되 자기 것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연합 사역을 하면서도 대학생 선교와 자비량 선교에 대한 부르심을 지키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주적 교회 속에서 우리의 존재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훌륭한 기도를 배워서 우리 자신을 위해서 기도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겠습니다. 교회의 거룩함과 하나 됨과 보전을 위해서 기도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기도는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 기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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