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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0년 추수감사절 특강(눅 17:11-19) 감사하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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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514회 작성일 10-11-2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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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추수 감사절 특강                                                       
말씀 누가복음 17:11 - 19
요절 누가복음 17:19

감사하는 믿음

  전광목사님은 「평생감사」라는 책을 썼습니다. 거기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어느 날 영국의 콩글톤 경은 부엌에서 일하는 하녀 한 명이 다른 하녀에게 하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오! 나한테 5파운드만 있다면 정말 행복할텐데.” 그는 하녀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나에게 있으나마나한 5파운드가 하녀에게는 행복을 가져다주는구나.” 그는 정말 한 사람이 행복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5파운드를 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부엌으로 하녀를 찾아가 우연히 대화를 듣게 되었으며 그녀가 진정 행복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한 뒤 5파운드를 건네주었습니다. 하녀는 감격하여 그의 친절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콩글톤 경은 부엌을 나와 한 사람을 행복하게 한 자신의 작은 선행을 기뻐하며 잠시 문밖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 안에서 하녀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난 참 바보야. 왜 10파운드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이미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소유하고도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욕심의 수렁에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성경에도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고 만족하지 못하는 태도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4-15).”

  오프라 윈프리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연예인입니다. 그녀의 특징은 매일 감사제목을 일곱 가지를 쓴다고 합니다. 시카고의 문누가 선교사님은 매주일 감사제목 7가지를 몇 년째 써오고 있습니다. 우리도 매 주일 헌금을 할 때 감사제목을 써서 드리고 있습니다. 기쁠 때, 무엇을 받았을 때 감사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슬픈 일을 만났을 때 애통한 일을 당했을 때 감사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사제목을 찾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은 우리를 복되게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감사하는 생활에 대해서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셨는데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에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 나병환자 열 명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나라에서 쫓겨나 변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부정하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없었습니다. 레위기에 보면 나병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쳐야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예방하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옷을 찢고 머리를 푸는 것은 죽은 자를 애도할 때의 모습입니다. 나병환자는 자기를 죽은 자로 여겼습니다. 나병 판결을 받은 순간부터 그들은 가족 속에서, 사회에서 죽은 자와 방불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죽고 싶어도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그런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낮아지니 유대인이건 사마리아 인이건 구별하지 않고 동병상련을 느끼면서 함께 살았습니다. 이렇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을 때 그나마 서로를 위로하고 위로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자기를 낮출 때 많은 사람들을 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어린 아이와 같은 겸손한 마음에 임합니다. 사람이 마음을 낮출 때 함께 일할 수 있습니다. 함께 일할 때 시너지 효과가 크게 나타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하되 함께 소리를 높여서 부르짖었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13).” 문둥병자들은 성대가 상하여 모기 소리만한 목소리로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사람이 두려움에 빠지면 소리도 크게 나오지 않습니다. 그들은 혼자서 폐쇄적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가운데 함께 모든 것을 공유했을 때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알고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합심해서 부르짖었습니다. 렘 33:3절에서 주님은 약속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그들이 이렇게 믿음으로 부르짖어 기도했을 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응답해주셨습니까?

  14절을 보십시오.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예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본래 문둥병자가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는 것은 그들의 몸이 나아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다는 사인을 받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안수하거나 어떤 치료행위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말씀만 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그 말씀에 순종하여 가다가 더럽고 진물이 나는 몸이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피부가 가는 도중에 회복되어 어린 아이의 피부와 같이 뽀얗게 치료되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의 응답하시는 말씀을 들었을 때 주저 없이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의문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물 먹이시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이 부정한 몸으로 어찌 거룩한 제사장 앞에 나아갈 수 있단 말인가?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돌을 던질텐데“ 등등 수없이 많은 부정적인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이 이런 부정적이 생각들을 물리쳤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다. 더 이상 나빠질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했습니다.

  나를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관념일 뿐입니다. 전요한 선교사님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망설일 때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낫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가나에서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마리아는 예수님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에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잠시 후에는 그 물을 떠다가 연회장에게 떠다 주라고 하셨습니다. 하인들이 그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 물이 포도주로 변화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여 기적을 체험한 예는 성경에 수없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켜 주십니다. 우리가 믿음생활을 할 때 이해가 되어서 행하는 것보다는 믿음으로 순종할 때 깨닫게 되는 영적 진리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순종할 때 우리는 그 말씀의 진가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주 토요일에 전국 학생 연합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캠퍼스 개척이 어렵다고 해서 가만히 있기보다 믿음으로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목자님들이 학생 양들을 믿음으로 초청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실 위대한 일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영적 성장과 변화를 위해서 작은 시도를 믿음으로 감당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병에서 열 사람이 나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는 병에서 낫도록 요청할 때에도 큰 소리로 했는데 나음을 받고 나서도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는 얼마나 감사한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의 진심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아홉 명은 자기 성취를 위해서 신앙생활을 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고침을 받았으니 예수님을 찾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이용한 사람들입니다. 이제 고침을 받았으니 돈도 벌어야 했습니다. 결혼도 해야 했습니다. 친구들도 만나서 관계를 새롭게 맺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나병에서 나음을 받게 되자 더 큰 욕심이 생겼습니다. 욕심이 많아지면 감사가 안 됩니다. 도리어 불평을 합니다. 자신의 과거가 하나님 때문에, 목자 때문에, 누구 때문에 낭비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불평을 합니다. 자신이 병이 걸리지 않았었다면 더 잘 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상상하면서 불평을 합니다. 역사는 가정법이 없습니다. 역사는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것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지금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라는 고백이 따르지 않으면 원망이 나옵니다. 그랬을 때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은혜를 받은 다음에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아홉 명은 다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선민으로서 나병에서 나음을 받은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뒤쳐져 있다는 생각과 이제까지의 삶이 낭비였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병에서 낫고 나니 해야 할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율법적인 생각에 매여서 제사장에게 자기들의 몸을 보이기 위해서 계속 나아갔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율법적이었습니다. 또한 나병에서 나음을 받고 보니 사마리인과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인들과 상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그들과 함께 하여 부정하게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이 예수님께 돌아가자 자신들은 반대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인이 나병에서 나음을 받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나온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감사하지 않는 것은 죄의 뿌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로 인해서 감사하러 나온 사람은 열 명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10%의 사람만이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우리도 하나님께 받은 것의 10% 정도만 감사할 뿐입니다. 그 만큼 죄인들은 감사에 인색합니다. 우리는 받은바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싹 수가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예수님은 감사하러 나온 이 사람을 어떻게 축복해 주셨습니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이 사람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시고 그가 믿음으로 나음을 입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는 앞으로도 믿음으로 새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8절은 말씀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시편 50:23절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아홉 명의 유대인들도 믿음으로 나병에서 나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육체의 병이 낫는데서 그쳤습니다. 진정한 복은 병에서 나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감사하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먼저 자신의 과거의 모습을 기억해야 합니다. 죄에서 고통하던 삶, 질병으로 시달리던 삶,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몰라서 방황하던 삶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 주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평범한 삶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병원에서 산소 호흡기를 끼고 하루를 보내면 30만원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꽁짜로 깨끗한 공기를 마시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머리가 된 사람이 머리를 심는데 하나에 만원이라고 합니다. 우리 머리털 숫자가 200만개라고 하는데 머리가 다 빠지지 않은 사람은 20억원을 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머리라고 해도 감사할 이유가 여섯 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1. 대머리는 여성에게는 거의 없는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여성은 감사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가 대머리가 됩니다. 날마다 이마를 쓰다듬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3. 대머리인 사람은 얻어먹고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대머리로 구걸하는 사람은 아직 한 사람도 못 보았습니다. 4. 비교적 목회자들이 대머리가 된 사람이 많습니다. 엘리사도 대머리였습니다. 5. 비누, 삼푸, 물을 상당히 절감할 수 있습니다. 6. 하나님을 편하게 해 드립니다. 주님은 날마다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시기 때문입니다(마10:30).

  우리는 평범한 일상을 인해서 감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슬픈 일을 당했을 때도 감사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 슬픔 가운데 감사한 사람이 바로 욥입니다. 그는 하루아침에 재산을 잃고 자녀들을 열 명이나 잃었습니다. 그런데 고백하기를 주신 자도 여호와시여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는 찬송을 받으실지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벌거숭이로 왔으매 벌거벗은 몸으로 돌아갈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채워주시고 입혀주시고 먹여주시고 재워주시고 가르쳐 주신 것으로 인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밤에 상처로 인해서 몸이 아프고 쓰라렸을텐데 도리어 감사기도를 드리고 찬송을 했습니다. 그러자 거기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옥문이 열리고 터가 흔들렸습니다. 거기서 간수장의 가족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려울 때 100가지 감사제목을 써보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감사를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난 가운데 감사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두시고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드시면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16-20).” 예수님은 자신의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고자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희생하시는 것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하셨습니다. 자기가 희생되는 것을 생각할 때 손해의식에 빠지거나 왜 나이어야 하는가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죄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감사기도에서 자발적인 주님의 헌신과 희생과 한량없는 사랑을 느낍니다. 주님은 마리아와 마르다 가정에서 기둥이었던 나사로가 죽자 애통한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부활 신앙을 심을 수 있게 된 것으로 인해 감사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우리가 올 한 해를 생각할 때에 감사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선교센터 건축 역사를 이루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가정 교회 사역을 축복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일학년 팀 모임을 이루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가운데 선교사 파송 역사와 결혼 역사를 이루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를 이 역사에 써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부족한 종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동역해 주신 목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라. 큰 것을 얻으리라.
부족할 때 감사하라. 넘침이 있으리라.
고통 중에 감사하라. 문제가 풀리리라.
있는 중에 감사하라. 누리며 살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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