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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010년 로마서 제10강(12장) 영적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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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784회 작성일 10-11-0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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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로마서 제10강                                                       
말씀 로마서 12:1-21
요절 로마서 12:1

영적 예배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톨스토이의 작품에는 세 가지 질문이 나옵니다. 첫째, 사람의 성품 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둘째,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셋째, 인간은 무엇으로 살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첫째 대답은 사랑입니다. 둘째 대답은 인간은 자신의 육체에 앞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능력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인간은 자기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이 베푸는 사랑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할 때 정말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복음 진리를 깊이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민족과 구원 역사의 관계를 살펴보았습니다. 12장부터는 실천 편으로서 기독교 윤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론만 있고 실천이 없으면 그 진리는 힘이 없습니다. 진리에 따르는 실천이 있을 때 신앙인의 삶은 아름답고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리 삶에 나타나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께 드릴 진정한 예배(1-2) :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신자는 그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산 제물이란 우리의 삶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가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이 다가 아니라 나머지 6일 동안의 삶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 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예배 수준으로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는데 이제는 자기를 위해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그 뜻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성취를 위한 것이라면 아무리 많은 시간도 아까워하지 않고 드렸습니다. 돈을 벌고 쓰는 재미를 아는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서 아낌없이 자신을 드립니다. 어제 에버랜드에 가보니 잠깐의 재미,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 수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허리케인, 바이킹, 티 익스프레스, 트위스트 등등. 그러나 우리 목자님들은 토요일에 센터에 나와서 대청소를 하고 여러 가지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것이 영적 예배입니다. 사실 제가 학생들과 함께 에버랜드에 가서 교제를 나누고 휴식을 취한 것도 영적 예배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의 교육을 위한 일이라면 아낌없이 투자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리더들이 되도록 투자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안일과 헛생각과 죄에게 드리기 쉽습니다. 예배는 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또 예배는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예배는 자기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드린다”고 말할 때 드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나는 무엇을 드려야 할까요? 모든 것을 소유하신 하나님 앞에 도대체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께 사랑을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을 아주 특별하게 받으십니다. 마가복음 12:30절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원하십니다. 마음이 떠난 예배와 헌신은 공허한 것입니다. 영적인 위기는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데서부터 옵니다. 마음이 떠난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헌신, 억지로 드리는 것을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우리가 회개하여 첫 사랑을 회복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은혜와 선을 베푸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일상적인 삶에서 예배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죽은 것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합니다. 복음 진리를 굳게 붙들 때 믿음으로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둘째, 은사를 발휘해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3-13) :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분수에 맞게 생각해야 합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처지나 조건에 맞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현실을 무시하고 꿈대로 살 수 없습니다. 꿈을 이루려면 현실에서 그에 합당한 고난과 희생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꿈이 많으면 번뇌도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강을 주셔서 맡기신 일에 충성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 무엇인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속해 있는 지체들입니다.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막을 짓도록 하시면서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하나님의 영을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를 부어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신약에서는 성전인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 우리 각자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릅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일은 믿음의 분수대로 해야 합니다.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입니다. 이 외에도 많은 은사들이 있습니다. 컴퓨터 기술, 음악, 미술, 요리, 운동, 가르침, 상담, 남을 즐겁게 하는 것 등등 우리가 교회의  성장과 덕을 세우기 위해서 받은 은사들이 있습니다. 이 은사를 적극 사용함으로서 교회를 풍성하게 하고 자신도 의미가 있는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은사는 탁월한 사람만이 쓰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받은 믿음의 분량대로 쓰임 받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은사가 무엇인가를 알려면 자신이 대가 없이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찾아야 합니다. 동료들과 함께 일함으로써 자신의 은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솔직한 평가를 들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은사는 쓰지 않으면 퇴색해 버립니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은사를 발휘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은사를 써야 하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은사를 사용해야 합니다. 은사는 나를 자랑하고 세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제자매들을 섬기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해야 합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섬기고자 마음을 먹고 살펴보면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섬기는 가운데 기쁨을 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말만하면 아무 성과가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수고에는 열매가 따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길 수 있을까요? 기도에 항상 힘을 써야 합니다.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는 새 힘을 얻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40:31).” 우리가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는 것이 다 사랑의 행위입니다. 아브라함은 손님 대접을 하여 천사를 영접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없어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지만 아무 것도 줄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 자체가 바로 사랑의 행위입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을 갖고 사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한 사모님이 환난 가운데서도 참으며 교회를 섬기는 것을 봅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자신의 몸이 아픈데도 센터의 궂은일들을 묵묵히 감당하십니다. 센터의 쓰레기를 말없이 치우고 식사를 대접합니다. 또 새벽 기도에 빠지지 않고 나와서 기도하십니다. 저는 한 형제가 장막에서 어머니 노릇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형제들을 위해서 청소와 요리를 합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대화를 나눔으로 형제들 간에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한 목자님은 동역자가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는 가운데 외로움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충성스럽게 요회 모임을 섬기고 양들을 돌봅니다. 남편과 자녀들을 돌보고 죽도록 충성하는 사모님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동역자들을 사랑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복된 교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서로 사랑하는 일에 더욱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선으로 악을 이기라(14-21) :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나를 사랑하고 지원해 주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핍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복음의 원수 노릇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나와 별로 상관이 없는데 미워하고 욕을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는 자체만으로 미워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몇 번 당하면 욕을 해 주고 때려 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2-3절에서 이런 약속을 아브라함과 믿는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복의 근원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핍박하는 사람들과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이상한 것은 우리를 핍박하는 사람들이 불신자들이 아니라 신자들일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더욱 밉습니다. 그러나 분노로 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입니다. 동시에 예수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말세가 가까울수록 사람들은 이기적이 되고 서로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시대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눅 7:31-32).”고 하셨습니다. 마음에 울림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야 합니다. 인생이란 참으로 외로운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로서  낮은 마음으로 서로를 돌보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악한 일을 하는 사람들, 원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17-20).” 우리 신자는 이 세상에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았습니다. 할 수 있으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롭게 지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경건 생활을 유지하는 데 유익이 됩니다. 심지어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고 하십니다. 신자의 비범한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악한 자들을 징계하십니다. 우리가 원수를 갚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으면 나도 악하게 됩니다. 영화 벤허에서 에스더가 메살라에게 원수를 갚고자 하는 벤허에게 하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에스더는 “당신이 메살라”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 충격을 받고 벤허는 고민합니다. 그러나 벤허는 십자가 위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기도를 듣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의 이 기도를 들었을 때 벤허의 마음에 있던 복수의 칼을 주님께서 가져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결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이 악에게 지는 것입니다. 악을 이기는 길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악에 대해서 심판을 해야 정의가 살아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악인을 심판한다고 해서 악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노아 시대에 하나님께서 홍수로 이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노아가 드리는 제사를 받으시고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8:21).” 심판을 받은 인간의 마음에 변화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악을 감당하면서 살아야 하는 신자의 삶은 고난일 수밖에 없습니다. 악은 선으로 이겨야 하고 사랑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주일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자신의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 예배입니다. 또한 우리의 은사를 교회 공동체에서 덕을 세우기 위해서 사랑으로 써야 합니다. 나아가 원수까지도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며 악을 선으로 이겨야 합니다. 신자의 삶은 비범한 삶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믿음으로 이런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덕을 세우는 삶이야말로 거룩한 삶입니다. 우리가 힘써 서로 사랑함으로 우리의 삶이 더욱 풍성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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