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 2강(1:26-56) 비천함을 돌보신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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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누가복음 제2강
본문 누가복음 1:26 - 56요절 누가복음 1:48
비천함을 돌보신 주님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처녀 마리아를 택하시고 메시아를 잉태하고 양육하며 십자가의 증인으로서 사명을 감당하도록 부르셨습니다. 마리아가 감당해야 할 이 사명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사명은 은혜요 축복인 동시에 감당해야 할 아픔이 있습니다. 마리아가 성모로서의 사명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묵상해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맡기신 사명을 어떤 자세로 감당해야 하는지 배우기를 원합니다.
첫째, 부르심 자체가 은혜입니다(26-30). 엘리사벳이 잉태한지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사는 처녀 마리아를 찾아갔습니다. 마리아는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사이였습니다. 약혼한 마리아의 마음은 언제나 요셉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요셉만 생각하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요셉과 함께 미래를 꿈꾸며 상상의 나래를 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가구 디자인전에 출품할 작품들을 만드는 요셉을 위해서 맛있는 된장찌개를 끓이고 함께 니스 칠을 하는 자신을 상상해보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는 명장 가구 디자이너가 되어 상 받는 것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와서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는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아니 결혼도 하지 아니한 순수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니 더욱 믿을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약혼 이후에 더욱더 조신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는다니 청천벽력과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당시에 정혼을 하면 결혼한 것과 같은 효력이 있었고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남편이 죽으면 과부로 살았습니다. 또한 처녀 마리아가 요셉과 결혼식을 올리기도 전에 아이를 갖는다면 오해 받을 것이 뻔했습니다. 오해 받을 뿐만 아니라 돌에 맞아 죽을 일이었습니다. 그 수치와 부끄러움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천사가 하는 말은 은혜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여자들 중에서 마리아를 택하여 메시아를 잉태하는 특권을 주신 것입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입는다는 말은 감당해야 할 아픔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은혜는 값싼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목자로 부르심을 입은 것도 은혜입니다. 학생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고 일대일 약속을 합니다. 그한 사람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고 일대일 말씀 공부로 연결시키고자 애를 씁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태신자라고 부릅니다. 여자가 임신하여 태속에 10개월 동안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 여자는 입덧을 합니다. 몸이 무거워지면서 피곤합니다. 한 사람의 일대일 양을 얻는 것은 초청하고 기다리고 다시 초청하는 일을 반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이런 잉태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양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가르치고 제자를 낳고 키우는 일은 복된 일입니다. 여자가 잉태하는 기쁨을 얻는 것처럼 목자는 양을 얻을 때 기쁨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양육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기쁨이 있는 것처럼 목자로서 양을 치는 것이 어렵지만 기쁨이 있습니다. 스코트 팩은 “문제를 대면하는 데 따르는 정당한 고통을 회피할 때, 우리는 그 문제를 통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성장도 회피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줍니다. 그러나 추운 겨울을 보낸 봄 나무들이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이, 진정한 고난과 시련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크게 성장할 수 없고, 눈앞에 다가온 행운도 잡지 못합니다. 은혜를 감당하는데 따르는 고난에 당당히 맞설 때 행복이 따라옵니다. 목자님들이 자녀들을 양육하는데 따르는 고난을 어떻게 감당하십니까?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고난을 감당합니다. 아이들의 끊임없는 요구와 약점을 감당하면서 애를 태우지만 부모이기에 기쁨으로 감당합니다. 우리가 목자로서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 은혜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기쁨으로 목자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마리아가 나을 아들은 누구신가(32-33)? 32,33절을 보십시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가 당해야 할 어려움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낳은 아들이 어떤 분이신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복음 역사에 따르는 어려움보다 예수님을 더 깊이 생각하고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마리아가 낳은 아들은 큰 자가 됩니다. 큰 자란 위대한 인물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위대성을 평가할 때 그의 인격과 업적을 기준으로 합니다. 그가 끼칠 영향력도 좋은 기준이 됩니다. 예수님은 그 인격과 업적 면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겸손과 온유, 사랑과 긍휼, 오래 참음과 친절, 그의 포용성과 관용, 의로우심과 진실 등을 알아갈수록 사모가 됩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구원자가 되기 위해서 율법을 다 지키시고 결국 죄없는 분이 십자가에서 죄인 중의 괴수와 같이 죽으십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그 몸으로 담당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수치와 비방과 모욕을 한 몸에 받으시고 대속적인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또한 그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십니다. 큰 자라는 말은 그의 인간적인 면을 다루었다면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란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성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서 죄사함을 주십니다. 바람과 파도를 잔잔하게 하시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한 말씀으로 뿌리까지 말려버리시는 등 자연을 지배하십니다. 그는 각종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십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육의 세계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지배하고 통치하십니다. 그가 전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그대로 시행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는 말로서 중풍병자를 일으키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와 함께 살았던 사람들은 그의 신성을 보고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하나님으로서 경배 받으셨을 뿐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인 동시에 하나님으로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십니다. 우리는 그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게 되고 교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영원한 왕이십니다. 그는 그 조상 다윗의 위를 물려받으셨고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시며 그 나라가 무궁합니다. 그는 왕 중 왕이십니다. 그는 이 땅에 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영원한 왕이 되셨습니다. 그는 모든 악인들과 사탄을 심판하시고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십니다. 그가 다시 오시는 날 마귀는 무저갱에 던져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게 되고 그의 통치는 영원할 것입니다. 지금도 그는 이 땅에 건설된 하나님 나라인 교회를 통치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의 백성들이요 종들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인 동시에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그의 통치권 속에 살고 있습니다. 영원한 왕 되신 예수님께 충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으면서 그의 인격을 본받고자 합니다. 또 우리는 그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그의 이름을 증거하고 그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셋째, 마리아가 어떻게 아들을 낳는가(34-38)? 마리아는 천사에게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당연한 질문입니다.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마리아는 성령의 역사로 잉태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덮어 잉태하게 되고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입니다. 처녀 마리아의 잉태는 인간의 지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사실 한 사람이 거듭나 새 사람이 되는 것도 성령의 역사입니다. 한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재창조의 역사입니다. 이와 같이 마리아는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하게 됩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한 사람의 예를 들어 증거합니다.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36,37).” 엘리사벳도 나이가 너무 늙어서 아들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가랴에게 말씀하신 대로 아기를 갖게 되어 벌써 여섯 달이나 되었습니다. 마리아의 친척 중에서 이러한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두 말 없이 순종했습니다. 38절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주의 여종이란 내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자신은 주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코치를 받는 가운데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메시아의 어머니로서 택함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다윗의 자손 요셉과 정혼한 상태에서 왜 아기를 가져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사명과 존재 목적이 분명해 지자 마리아는 존재감이 느껴졌습니다. 요셉의 정혼녀요 부모의 딸 이전에 하나님의 여종으로서 자신의 존재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누구인가 자신의 정체성이 분명할 때 고난을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어떻게 되든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의 인생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쓰임 받는 것임을 잘 알았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단순하게 순종했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녀가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길을 인도하시고 필요한 도움과 힘을 주셨습니다.
넷째, 마리아의 찬가(39-56).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듣고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은 윷다로서 나사렛에서 150Km 떨어진 곳입니다. 이 먼 길을 두려움도 없이 담대하게 혼자서 찾아갔습니다. 마리아가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을 하였습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율동을 하면서 뛰놀았습니다.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엘리사벳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마리아를 마음껏 축복했습니다.
엘리사벳의 코칭을 받은 마리아의 마음에 염려와 먹구름이 확 물러갔습니다. 그러면서 찬양이 터져나왔습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마리아는 일생 일대 최대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한 기쁨이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고 있습니다. 왜 입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비천함을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우주를 주관하는 분이십니다. 그 거대한 우주 속에서 지구는 매우 작은 행성입니다. 그 지구 속에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는 약소국가입니다. 이스라엘에서도 갈릴리 나사렛은 이방의 갈릴리라 불릴 정도로 무시 받는 동네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생각했습니다. 나사렛에서도 시골 처녀 마리아는 어떤 존재입니까? 갈릴리 촌구석에서 아줌마로서 평범하게 살다가 이름도 없이 사라질 여인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비천한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신 사실에 놀랐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신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시고 은혜를 베푸신 사실에 감격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인생을 역전시키는 분이셨습니다. 자신의 비천함을 바꾸어 메시아를 낳고 기르는 만세에 복된 여인으로 부르셨습니다.
세상에서는 우리의 약점, 연약한 점이 운명주의요 슬픔이었는데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니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이번에 닥친 지진과 쯔나미로 인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들을 돕고자 구조대 120명을 준비해 놓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일관계가 이런 어려움을 돕는 과정에서 더 가까워지기를 바랍니다. 도한 우상을 섬기던 일본 사람들이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참되신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약할 때 강함이 되신 주님, 내가 슬플 때 위로가 되시는 주님, 내가 방황할 때 인도자가 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가운데 임요한 주니어 목자님은 연요절에서 밝혔듯이 작년 한해 취직 시험에 연속해서 떨어지면서 자신의 초라함을 깊이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부활신앙을 덧입고 도전했습니다. 그는 비천한 자신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대기업에 취직이 되었습니다. 그는 대기업에 취직이 되자 인생의 목표를 잃어버렸습니다. 자신의 적성에도 맞지 않는 의류 사업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직장에서도 딴 생각을 했기 때문에 한 동안 무시 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렇게 10년을 살아간다면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해 보니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관점을 바꾸어 생각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업무는 회계와 관계된 일이 많아 어렵지만 제대로 일을 배우면 사업체를 스스로 경영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됩니다. 세계 선교에도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가 직장 일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게 되었을 때 어려운 업무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가면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장막 리더로서, 사회자로서 쓰임 받으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이 생겨났습니다. 우리 각자의 비천함을 돌아보시고 구속 역사에 쓰시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마리아는 찬양합니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마리아가 찬송하는 내용은 하나님 나라의 회복된 모습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축복하시는 것을 통해서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심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언약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은 약속대로 다 이루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비천한 마리아를 택하여 부르시고 성모로 쓰시기 위해서 어떻게 도우시는가를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죄 가운데 있던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사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훈련과 도우심을 받고 일생 예수님의 온전함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온전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목자로서 사명인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사명인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처녀 마리아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쓰임 받은 것처럼 우리가 신자로서의 부르심, 목자로서의 부르심을 깊이 영접하고 생명을 낳고 기르는 구원 역사에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본문 누가복음 1:26 - 56요절 누가복음 1:48
비천함을 돌보신 주님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처녀 마리아를 택하시고 메시아를 잉태하고 양육하며 십자가의 증인으로서 사명을 감당하도록 부르셨습니다. 마리아가 감당해야 할 이 사명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사명은 은혜요 축복인 동시에 감당해야 할 아픔이 있습니다. 마리아가 성모로서의 사명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묵상해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맡기신 사명을 어떤 자세로 감당해야 하는지 배우기를 원합니다.
첫째, 부르심 자체가 은혜입니다(26-30). 엘리사벳이 잉태한지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사는 처녀 마리아를 찾아갔습니다. 마리아는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사이였습니다. 약혼한 마리아의 마음은 언제나 요셉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요셉만 생각하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요셉과 함께 미래를 꿈꾸며 상상의 나래를 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가구 디자인전에 출품할 작품들을 만드는 요셉을 위해서 맛있는 된장찌개를 끓이고 함께 니스 칠을 하는 자신을 상상해보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는 명장 가구 디자이너가 되어 상 받는 것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와서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는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아니 결혼도 하지 아니한 순수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니 더욱 믿을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약혼 이후에 더욱더 조신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는다니 청천벽력과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당시에 정혼을 하면 결혼한 것과 같은 효력이 있었고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남편이 죽으면 과부로 살았습니다. 또한 처녀 마리아가 요셉과 결혼식을 올리기도 전에 아이를 갖는다면 오해 받을 것이 뻔했습니다. 오해 받을 뿐만 아니라 돌에 맞아 죽을 일이었습니다. 그 수치와 부끄러움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천사가 하는 말은 은혜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여자들 중에서 마리아를 택하여 메시아를 잉태하는 특권을 주신 것입니다. 이를 볼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입는다는 말은 감당해야 할 아픔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은혜는 값싼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목자로 부르심을 입은 것도 은혜입니다. 학생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고 일대일 약속을 합니다. 그한 사람을 마음에 품고 기도하고 일대일 말씀 공부로 연결시키고자 애를 씁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태신자라고 부릅니다. 여자가 임신하여 태속에 10개월 동안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 여자는 입덧을 합니다. 몸이 무거워지면서 피곤합니다. 한 사람의 일대일 양을 얻는 것은 초청하고 기다리고 다시 초청하는 일을 반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이런 잉태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양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가르치고 제자를 낳고 키우는 일은 복된 일입니다. 여자가 잉태하는 기쁨을 얻는 것처럼 목자는 양을 얻을 때 기쁨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양육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기쁨이 있는 것처럼 목자로서 양을 치는 것이 어렵지만 기쁨이 있습니다. 스코트 팩은 “문제를 대면하는 데 따르는 정당한 고통을 회피할 때, 우리는 그 문제를 통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성장도 회피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줍니다. 그러나 추운 겨울을 보낸 봄 나무들이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이, 진정한 고난과 시련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크게 성장할 수 없고, 눈앞에 다가온 행운도 잡지 못합니다. 은혜를 감당하는데 따르는 고난에 당당히 맞설 때 행복이 따라옵니다. 목자님들이 자녀들을 양육하는데 따르는 고난을 어떻게 감당하십니까?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고난을 감당합니다. 아이들의 끊임없는 요구와 약점을 감당하면서 애를 태우지만 부모이기에 기쁨으로 감당합니다. 우리가 목자로서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 은혜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기쁨으로 목자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마리아가 나을 아들은 누구신가(32-33)? 32,33절을 보십시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가 당해야 할 어려움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낳은 아들이 어떤 분이신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복음 역사에 따르는 어려움보다 예수님을 더 깊이 생각하고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마리아가 낳은 아들은 큰 자가 됩니다. 큰 자란 위대한 인물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의 위대성을 평가할 때 그의 인격과 업적을 기준으로 합니다. 그가 끼칠 영향력도 좋은 기준이 됩니다. 예수님은 그 인격과 업적 면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겸손과 온유, 사랑과 긍휼, 오래 참음과 친절, 그의 포용성과 관용, 의로우심과 진실 등을 알아갈수록 사모가 됩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구원자가 되기 위해서 율법을 다 지키시고 결국 죄없는 분이 십자가에서 죄인 중의 괴수와 같이 죽으십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를 그 몸으로 담당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수치와 비방과 모욕을 한 몸에 받으시고 대속적인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또한 그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십니다. 큰 자라는 말은 그의 인간적인 면을 다루었다면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란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성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서 죄사함을 주십니다. 바람과 파도를 잔잔하게 하시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한 말씀으로 뿌리까지 말려버리시는 등 자연을 지배하십니다. 그는 각종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십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육의 세계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지배하고 통치하십니다. 그가 전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그대로 시행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는 말로서 중풍병자를 일으키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와 함께 살았던 사람들은 그의 신성을 보고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하나님으로서 경배 받으셨을 뿐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인 동시에 하나님으로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중재하십니다. 우리는 그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게 되고 교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영원한 왕이십니다. 그는 그 조상 다윗의 위를 물려받으셨고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시며 그 나라가 무궁합니다. 그는 왕 중 왕이십니다. 그는 이 땅에 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영원한 왕이 되셨습니다. 그는 모든 악인들과 사탄을 심판하시고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십니다. 그가 다시 오시는 날 마귀는 무저갱에 던져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게 되고 그의 통치는 영원할 것입니다. 지금도 그는 이 땅에 건설된 하나님 나라인 교회를 통치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의 백성들이요 종들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인 동시에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그의 통치권 속에 살고 있습니다. 영원한 왕 되신 예수님께 충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으면서 그의 인격을 본받고자 합니다. 또 우리는 그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그의 이름을 증거하고 그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셋째, 마리아가 어떻게 아들을 낳는가(34-38)? 마리아는 천사에게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당연한 질문입니다.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마리아는 성령의 역사로 잉태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덮어 잉태하게 되고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입니다. 처녀 마리아의 잉태는 인간의 지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사실 한 사람이 거듭나 새 사람이 되는 것도 성령의 역사입니다. 한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재창조의 역사입니다. 이와 같이 마리아는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하게 됩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한 사람의 예를 들어 증거합니다.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36,37).” 엘리사벳도 나이가 너무 늙어서 아들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가랴에게 말씀하신 대로 아기를 갖게 되어 벌써 여섯 달이나 되었습니다. 마리아의 친척 중에서 이러한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두 말 없이 순종했습니다. 38절을 보십시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주의 여종이란 내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자신은 주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코치를 받는 가운데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메시아의 어머니로서 택함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다윗의 자손 요셉과 정혼한 상태에서 왜 아기를 가져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사명과 존재 목적이 분명해 지자 마리아는 존재감이 느껴졌습니다. 요셉의 정혼녀요 부모의 딸 이전에 하나님의 여종으로서 자신의 존재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누구인가 자신의 정체성이 분명할 때 고난을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어떻게 되든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의 인생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쓰임 받는 것임을 잘 알았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단순하게 순종했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녀가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길을 인도하시고 필요한 도움과 힘을 주셨습니다.
넷째, 마리아의 찬가(39-56).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듣고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은 윷다로서 나사렛에서 150Km 떨어진 곳입니다. 이 먼 길을 두려움도 없이 담대하게 혼자서 찾아갔습니다. 마리아가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을 하였습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율동을 하면서 뛰놀았습니다.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엘리사벳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마리아를 마음껏 축복했습니다.
엘리사벳의 코칭을 받은 마리아의 마음에 염려와 먹구름이 확 물러갔습니다. 그러면서 찬양이 터져나왔습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마리아는 일생 일대 최대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한 기쁨이었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고 있습니다. 왜 입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비천함을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우주를 주관하는 분이십니다. 그 거대한 우주 속에서 지구는 매우 작은 행성입니다. 그 지구 속에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는 약소국가입니다. 이스라엘에서도 갈릴리 나사렛은 이방의 갈릴리라 불릴 정도로 무시 받는 동네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생각했습니다. 나사렛에서도 시골 처녀 마리아는 어떤 존재입니까? 갈릴리 촌구석에서 아줌마로서 평범하게 살다가 이름도 없이 사라질 여인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비천한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신 사실에 놀랐습니다. 마리아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신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시고 은혜를 베푸신 사실에 감격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인생을 역전시키는 분이셨습니다. 자신의 비천함을 바꾸어 메시아를 낳고 기르는 만세에 복된 여인으로 부르셨습니다.
세상에서는 우리의 약점, 연약한 점이 운명주의요 슬픔이었는데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니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이번에 닥친 지진과 쯔나미로 인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들을 돕고자 구조대 120명을 준비해 놓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일관계가 이런 어려움을 돕는 과정에서 더 가까워지기를 바랍니다. 도한 우상을 섬기던 일본 사람들이 이런 어려움을 겪으면서 참되신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약할 때 강함이 되신 주님, 내가 슬플 때 위로가 되시는 주님, 내가 방황할 때 인도자가 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가운데 임요한 주니어 목자님은 연요절에서 밝혔듯이 작년 한해 취직 시험에 연속해서 떨어지면서 자신의 초라함을 깊이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부활신앙을 덧입고 도전했습니다. 그는 비천한 자신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대기업에 취직이 되었습니다. 그는 대기업에 취직이 되자 인생의 목표를 잃어버렸습니다. 자신의 적성에도 맞지 않는 의류 사업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직장에서도 딴 생각을 했기 때문에 한 동안 무시 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렇게 10년을 살아간다면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해 보니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관점을 바꾸어 생각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업무는 회계와 관계된 일이 많아 어렵지만 제대로 일을 배우면 사업체를 스스로 경영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됩니다. 세계 선교에도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가 직장 일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게 되었을 때 어려운 업무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가면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장막 리더로서, 사회자로서 쓰임 받으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이 생겨났습니다. 우리 각자의 비천함을 돌아보시고 구속 역사에 쓰시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마리아는 찬양합니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마리아가 찬송하는 내용은 하나님 나라의 회복된 모습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축복하시는 것을 통해서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심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언약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은 약속대로 다 이루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비천한 마리아를 택하여 부르시고 성모로 쓰시기 위해서 어떻게 도우시는가를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죄 가운데 있던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사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훈련과 도우심을 받고 일생 예수님의 온전함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온전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목자로서 사명인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사명인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처녀 마리아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쓰임 받은 것처럼 우리가 신자로서의 부르심, 목자로서의 부르심을 깊이 영접하고 생명을 낳고 기르는 구원 역사에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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