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1강(1:1-25) 내 부끄러움을 없애신 주님
페이지 정보

본문
2011년 누가복음 제1강
본문 누가복음 1:1 - 25요절 누가복음 1:25
내 부끄러움을 없애신 주님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이방인이었던 저자 누가는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목자, 부정한 여인, 삭개오, 강도의 회개, 유대인에게 배척을 받던 사마리아 인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 등이 강조되어 나옵니다. 특히 여인들에게도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여인들이 많은 무시를 받아 왔는데 누가복음은 여자들을 많이 강조함으로 “여자들을 위한 복음”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구원 역사에서 자매님들의 활약상은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은 기도와 찬송과 성령의 역사를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영적인 활동임과 동시에 사회적인 약자들에 대한 긍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 각자에게 있는 부끄러움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고 이를 없애시는 주님을 깊이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누가복음의 저술 동기(1-4) : 1,2절을 보십시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예수님이 오셔서 가르치신 말씀과 행하신 일들과 그의 인격에 대해서 기록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자 누가는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피고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습니다. 이는 각하로 하여금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입니다. 누가는 단순히 각 사건들을 시간적으로 배열만 한 것이 아니라 어떤 주제의식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야기를 체계화하고 조직화했습니다. 누가는 복음서를 기술할 때 역사성과 정확성과 논리적 일관성의 원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자세를 가지고 누가복음을 공부하면 좋겠습니다.
둘째,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인생 문제(5-7) :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유대 왕 헤롯 때에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엘리사벳은 아론의 자손으로서 고귀한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였습니다. 그들은 축복의 말씀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말씀만 듣고 선별적으로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 말씀,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도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들은 구약의 의인관에 기초해서 의인입니다. 복음의 관점에서 볼 때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뒤에 사가랴의 불신의 태도를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됩니다(롬 3:20-24).
그들이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했지만 가정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오늘날은 자녀를 많이 갖지 않지만 유대인들은 자녀를 하나님의 축복과 그 기업으로 믿었습니다. 자식이 없는 것을 대단한 수치와 죄의 형벌로 생각했습니다. 유대 랍비들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파문당할 수 있는 일곱가지 유형을 기록했는데 그 문서 서두에서 “유대인이면서 아내가 없고, 또 아내가 있으면서도 자식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하면 합법적인 이혼 사유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엘리사벳은 이미 나이가 많아 아이를 가질 가능성은 더욱 희박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는데도 자녀가 없으니 부끄러움이 더 컸습니다. 자녀가 없는 그들에게 와서 주례를 부탁하는 예비 신랑 신부가 없었습니다. 당시 제사장 직분은 아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아들이 없는 그들 가문은 제사장 직분이 끊기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부끄러움이 있습니까? 사람마다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셨을 때 선한 열매를 맺도록 모든 재능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얼마나 맺고 있습니까? 신앙의 연륜은 오래 되었는데 아직도 내면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어른 아이와 같은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목자인데 양이 없어서 목자라는 호칭이 부끄러울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학생 복음 운동을 하고 있는데 기대만큼 학생들을 돕지 못해서 부끄럽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전하는 성경 선생인데 말씀을 파고 들어가는 것이 부족해서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슬픔과 절망적인 상황에서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더욱 빛나 보입니다. 그들은 자식이 없는 허전함과 비교의식을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가운데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들은 힘을 얻었고 위로를 얻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주어진 직분을 묵묵히 감당했습니다. 우리는 목자로서 양이 있으나 없으나 꾸준히 캠퍼스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기를 원합니다. 이런 선한 마음을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이런 믿음의 사람들을 놀랍게 축복하십니다.
셋째, 부끄러움을 제하시는 하나님(8-25) :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에는 2만 명의 제사장이 있었는데 일주일에 네 명이 성소에 들어가서 섬겼습니다. 사가랴가 분향하는 일의 제비뽑기에 당첨이 되었습니다. 제비를 사람이 뽑지만 그 일을 정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제사장들은 일 년에 한 반열에 두 번씩 성소에 들어가서 일했는데 분향하는 일은 가장 영광스러운 일 중 하나였습니다. 분향할 향단은 지성소 바로 앞에 있었고 기도를 상징합니다. 기도할 때 신자는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과 가장 가까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가랴가 분향하면서 기도할 때에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주셨습니다.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섰습니다. 사가랴가 무서워하니 천사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하나님께서는 사가랴가 이제까지 간구한 기도를 다 듣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가장 적당한 때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리아와 요셉의 정혼, 그들을 통해 태어날 메시아의 탄생 시점을 고려하여 메시아의 선구자 세례 요한의 탄생 시점을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체를 조망하시면서 가장 정확한 때에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소망 가운데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 응답의 때를 우리가 예상하고 정해버리면 제 풀에 지쳐서 낙담하거나 포기해 버리기 쉽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메시아를 보내 온 세상 만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사가랴는 한 아들을 주시도록 줄기차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도를 통해서 세례 요한을 감당할 그릇을 만드셨습니다. 이사야 62:6,7절에 보면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쉬지 못하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도록 믿음의 간구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봄 학기를 맞이하여 새벽기도, 금요기도 뿐만 아니라 개인 기도에 힘쓰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방법은 다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종들의 기도를 받으시고 초자연적인 일들을 이루고 계십니다.
사가랴의 아들은 어떤 인물이 됩니까? 그의 태어남은 사가랴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기뻐할 것입니다. 요한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믿음으로 사는 자들과 함께 하시고 그 백성에게 소망을 두고 계신다는 표지이기에 더욱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가 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까요?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입니다(15,16). 주 앞에 큰 자는 어떤 자를 말할까요? 요즈음 서울시에서는 “당신은 영웅입니다”라는 문구를 넣어서 시민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시에 따르면 사회의 낮은 곳에서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서민들을 격려하기 위해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영웅표창’ 대상자는 직장인뿐만이 아닙니다. 건설노동자, 대중교통기사, 환경미화원, 식당 아주머니, 소방공무원이 서민을 대표하는 위대한 시민으로 함께 뽑혔습니다.
보통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잘 버는 사람을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성공을 성취, 소유를 기준으로 보기 쉽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위대하게 여기십니까? 겸손한 사람,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위대하게 여기십니다.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거룩한 삶을 사는 요한이 위대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을 가리켜 여자가 낳은 사람 중에 요한 만큼 위대한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요한이 위대한 인물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하나님께서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백성들을 주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는 사람을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게 하십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마음과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까?
17절을 보십시오.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엘리야는 주님을 위한 열심이 특심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머뭇거리는 백성들에게 결단을 촉구하기 위해서 갈멜산에서 영적인 대결을 하였습니다. 기도하여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단을 태우는 신이 참 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기도하였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 물로 흠뻑 적셔진 제물을 태웠습니다. 그가 승리한 후에 850명의 거짓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후계자 엘리사를 세웠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요한을 통해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백성을 준비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은 사사 시대와 같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하는 개인주의 성향이 매우 강한 시대입니다. 기존 질서에 대한 반발, 탈 권위, 탈 도덕 등 한마디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살고자 해서 자신의 삶에 간섭하지 말라고 소리칩니다. 우리가 독재에 저항하고 민주화를 이루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는데 그 여파가 이렇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매스컴은 네가 느끼는대로 행하라고 부추깁니다. 매스컴은 대량소비를 일으키기 위해서 이런 광고들을 내보냅니다. 돈만 있으면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돈을 벌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더 나은 스펙을 쌓아서 대기업에 취직하기를 소망합니다. 성경 공부하는 시간은 아까워하지만 자신의 전공과 쾌락을 위해서 쓰는 시간은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부모들 중에는 자기 인생에 걸림이 된다고 아이들을 버리기까지 합니다. 부모가 있는 고아들이 많습니다. 이런 시대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돌이켜서 하나님께 향하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엘리야의 심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기도하는 것을 자기 이름을 위해서 들어주십니다. 우리가 다시 한 번 기도에 전념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부흥을 체험하기를 소원합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가장 좋은 선물인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십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때 사랑으로 충만해집니다. 사랑이 충만할 때 복음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권면을 듣는 사람들이 마음에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가랴의 아들 세례 요한을 통해서 이런 일들을 하고자 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비전을 천사를 통해서 들은 사가랴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18절을 보십시오.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사가랴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의 형편에 주목하였을 때 불신의 말을 내뱉었습니다. 그가 오래동안 기도해 왔지만 정작 기도의 응답을 주겠다고 하자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가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은 모여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기도를 받으시고 천사를 보내사 베드로를 기적적인 방법으로 감옥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새벽에 나와서 성도들이 모여 기도하는 마가의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니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습니다.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서 말하되 베드로는 대문 밖에 서있었습니다. 로데의 말을 듣고 성도들이 하는 말이 “네가 미쳤다”고 하였습니다. 여자 아이는 힘써 참말이라고 하며 다투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랐습니다(행12:12-16). 이와 같이 우리는 열심히 기도하면서도 기도가 응답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가랴는 천사에게 “네가 미쳤다”고 말하는 듯하였습니다.
천사는 화가 났는지 즉시 사가랴를 훈련합니다. 천사는 나이에 상관없이 훈련하였습니다. 천사가 이르기를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사가랴는 불신의 말을 했다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불신의 말을 내뱉느니 입을 다무는 것이 더 현명합니다. 그는 벙어리 상태로 있으면서 하나님과 깊은 관계성을 맺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가 성전 안에서 지체함을 이상히 여겼습니다. 그가 나와서 그들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은 그가 성전 안에서 환상을 본 줄 알았습니다. 그가 몸짓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말 못하는 대로 있더니 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훈련을 받으면서도 감당해야 할 일들을 충성스럽게 마쳤습니다. 이 후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였습니다. 엘리사벳은 늙은 나이에 임신을 하자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은 그녀의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해결하셨습니다.
엘리사벳은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벳의 부끄러움을 없애시려고 이렇게 행하셨습니다. 여기서 부끄러움이라는 말은 단순한 수치심 정도가 아니라 깊은 고뇌와 근심 속으로 빠뜨리는 치욕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부끄러움을 없애주십니다. 엘리사벳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이날까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보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에 아이와 손을 잡고 학교에 가는 젊은 학부모들을 보면서 부러운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어버이 날에 아이들이 자기 부모님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는데 자신들을 위해서 카네이션을 달아줄 아이가 없어서 슬펐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자녀들이 그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면서 위로해 주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성도들의 아이들 백일잔치나 돌잔치에 가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자신의 자녀들로 영접하고 양육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회당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섬기면서 그들의 영적인 성장을 보고 기쁨을 누렸습니다. 매일 매일 자신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에 믿음을 지키고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돌보시는 은혜의 결과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아들을 잉태하게 하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 먹고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가리고자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린 양을 잡아 그 가죽으로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리어 주셨습니다. 탕자는 아버지 집을 떠났다가 거지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돌아온 그를 영접하고 목욕을 시키고 가장 좋은 옷으로 그의 부끄러움을 덮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43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고 광야에서 40년 훈련을 하셨습니다. 여호수아 장군의 인도 아래에 요단강을 건너고 나서 할례를 행하셨습니다. 그곳 이름을 길갈이라고 지었습니다. 이는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노예 생활의 부끄러움을 길갈에서 굴러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에도 일제 36년의 부끄러움, 가난으로 인한 슬픔과 운명주의, 6.25 동란으로 인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부끄러움 등 역사를 돌아볼 때 많은 부끄러움을 없애시고 축복하사 이제는 세계 속에서 당당하게 하셨습니다. 저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때 많은 수치와 부끄러움이 있었습니다. 고입시의 실패로 인해서, 자신의 죄와 허물로 인해서, 목자로서 사명을 다하지 못해서 부끄러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많은 부끄러움들을 하나 하나 제 마음에서 없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돌보시는 은혜를 기억하면서 현재적인 부끄러움들을 이겨나가게 하십니다. 나의 부끄러움을 없애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인생은 연약함과 한계, 죄와 사탄의 공격으로 인해서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이런 부끄러움은 우리를 수치스럽고 고통스럽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고통을 통해서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우리를 겸손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고통 가운데 부르짖어 기도하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보실 때 정확한 때에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를 돌보시며 우리의 부끄러움을 제하여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본문 누가복음 1:1 - 25요절 누가복음 1:25
내 부끄러움을 없애신 주님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이방인이었던 저자 누가는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목자, 부정한 여인, 삭개오, 강도의 회개, 유대인에게 배척을 받던 사마리아 인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 등이 강조되어 나옵니다. 특히 여인들에게도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여인들이 많은 무시를 받아 왔는데 누가복음은 여자들을 많이 강조함으로 “여자들을 위한 복음”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구원 역사에서 자매님들의 활약상은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은 기도와 찬송과 성령의 역사를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영적인 활동임과 동시에 사회적인 약자들에 대한 긍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 각자에게 있는 부끄러움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고 이를 없애시는 주님을 깊이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누가복음의 저술 동기(1-4) : 1,2절을 보십시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예수님이 오셔서 가르치신 말씀과 행하신 일들과 그의 인격에 대해서 기록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자 누가는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피고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습니다. 이는 각하로 하여금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입니다. 누가는 단순히 각 사건들을 시간적으로 배열만 한 것이 아니라 어떤 주제의식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야기를 체계화하고 조직화했습니다. 누가는 복음서를 기술할 때 역사성과 정확성과 논리적 일관성의 원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자세를 가지고 누가복음을 공부하면 좋겠습니다.
둘째,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인생 문제(5-7) :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유대 왕 헤롯 때에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엘리사벳은 아론의 자손으로서 고귀한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였습니다. 그들은 축복의 말씀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말씀만 듣고 선별적으로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 말씀,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도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들은 구약의 의인관에 기초해서 의인입니다. 복음의 관점에서 볼 때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뒤에 사가랴의 불신의 태도를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됩니다(롬 3:20-24).
그들이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했지만 가정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오늘날은 자녀를 많이 갖지 않지만 유대인들은 자녀를 하나님의 축복과 그 기업으로 믿었습니다. 자식이 없는 것을 대단한 수치와 죄의 형벌로 생각했습니다. 유대 랍비들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파문당할 수 있는 일곱가지 유형을 기록했는데 그 문서 서두에서 “유대인이면서 아내가 없고, 또 아내가 있으면서도 자식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하면 합법적인 이혼 사유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엘리사벳은 이미 나이가 많아 아이를 가질 가능성은 더욱 희박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는데도 자녀가 없으니 부끄러움이 더 컸습니다. 자녀가 없는 그들에게 와서 주례를 부탁하는 예비 신랑 신부가 없었습니다. 당시 제사장 직분은 아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아들이 없는 그들 가문은 제사장 직분이 끊기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부끄러움이 있습니까? 사람마다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셨을 때 선한 열매를 맺도록 모든 재능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얼마나 맺고 있습니까? 신앙의 연륜은 오래 되었는데 아직도 내면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어른 아이와 같은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목자인데 양이 없어서 목자라는 호칭이 부끄러울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학생 복음 운동을 하고 있는데 기대만큼 학생들을 돕지 못해서 부끄럽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전하는 성경 선생인데 말씀을 파고 들어가는 것이 부족해서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슬픔과 절망적인 상황에서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더욱 빛나 보입니다. 그들은 자식이 없는 허전함과 비교의식을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가운데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들은 힘을 얻었고 위로를 얻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주어진 직분을 묵묵히 감당했습니다. 우리는 목자로서 양이 있으나 없으나 꾸준히 캠퍼스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기를 원합니다. 이런 선한 마음을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이런 믿음의 사람들을 놀랍게 축복하십니다.
셋째, 부끄러움을 제하시는 하나님(8-25) :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에는 2만 명의 제사장이 있었는데 일주일에 네 명이 성소에 들어가서 섬겼습니다. 사가랴가 분향하는 일의 제비뽑기에 당첨이 되었습니다. 제비를 사람이 뽑지만 그 일을 정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제사장들은 일 년에 한 반열에 두 번씩 성소에 들어가서 일했는데 분향하는 일은 가장 영광스러운 일 중 하나였습니다. 분향할 향단은 지성소 바로 앞에 있었고 기도를 상징합니다. 기도할 때 신자는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과 가장 가까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가랴가 분향하면서 기도할 때에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을 주셨습니다.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섰습니다. 사가랴가 무서워하니 천사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하나님께서는 사가랴가 이제까지 간구한 기도를 다 듣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가장 적당한 때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마리아와 요셉의 정혼, 그들을 통해 태어날 메시아의 탄생 시점을 고려하여 메시아의 선구자 세례 요한의 탄생 시점을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체를 조망하시면서 가장 정확한 때에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소망 가운데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 응답의 때를 우리가 예상하고 정해버리면 제 풀에 지쳐서 낙담하거나 포기해 버리기 쉽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메시아를 보내 온 세상 만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사가랴는 한 아들을 주시도록 줄기차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도를 통해서 세례 요한을 감당할 그릇을 만드셨습니다. 이사야 62:6,7절에 보면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쉬지 못하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도록 믿음의 간구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봄 학기를 맞이하여 새벽기도, 금요기도 뿐만 아니라 개인 기도에 힘쓰기를 바랍니다. 기도의 방법은 다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종들의 기도를 받으시고 초자연적인 일들을 이루고 계십니다.
사가랴의 아들은 어떤 인물이 됩니까? 그의 태어남은 사가랴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기뻐할 것입니다. 요한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믿음으로 사는 자들과 함께 하시고 그 백성에게 소망을 두고 계신다는 표지이기에 더욱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가 왜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까요?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입니다(15,16). 주 앞에 큰 자는 어떤 자를 말할까요? 요즈음 서울시에서는 “당신은 영웅입니다”라는 문구를 넣어서 시민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시에 따르면 사회의 낮은 곳에서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서민들을 격려하기 위해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영웅표창’ 대상자는 직장인뿐만이 아닙니다. 건설노동자, 대중교통기사, 환경미화원, 식당 아주머니, 소방공무원이 서민을 대표하는 위대한 시민으로 함께 뽑혔습니다.
보통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잘 버는 사람을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성공을 성취, 소유를 기준으로 보기 쉽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위대하게 여기십니까? 겸손한 사람,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위대하게 여기십니다.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거룩한 삶을 사는 요한이 위대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을 가리켜 여자가 낳은 사람 중에 요한 만큼 위대한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요한이 위대한 인물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하나님께서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백성들을 주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는 사람을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게 하십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마음과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까?
17절을 보십시오.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엘리야는 주님을 위한 열심이 특심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머뭇거리는 백성들에게 결단을 촉구하기 위해서 갈멜산에서 영적인 대결을 하였습니다. 기도하여 하늘에서 불이 내려 제단을 태우는 신이 참 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기도하였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 물로 흠뻑 적셔진 제물을 태웠습니다. 그가 승리한 후에 850명의 거짓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후계자 엘리사를 세웠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요한을 통해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백성을 준비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은 사사 시대와 같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하는 개인주의 성향이 매우 강한 시대입니다. 기존 질서에 대한 반발, 탈 권위, 탈 도덕 등 한마디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살고자 해서 자신의 삶에 간섭하지 말라고 소리칩니다. 우리가 독재에 저항하고 민주화를 이루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는데 그 여파가 이렇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매스컴은 네가 느끼는대로 행하라고 부추깁니다. 매스컴은 대량소비를 일으키기 위해서 이런 광고들을 내보냅니다. 돈만 있으면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돈을 벌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더 나은 스펙을 쌓아서 대기업에 취직하기를 소망합니다. 성경 공부하는 시간은 아까워하지만 자신의 전공과 쾌락을 위해서 쓰는 시간은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부모들 중에는 자기 인생에 걸림이 된다고 아이들을 버리기까지 합니다. 부모가 있는 고아들이 많습니다. 이런 시대의 사고방식을 어떻게 돌이켜서 하나님께 향하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엘리야의 심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기도하는 것을 자기 이름을 위해서 들어주십니다. 우리가 다시 한 번 기도에 전념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부흥을 체험하기를 소원합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가장 좋은 선물인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십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때 사랑으로 충만해집니다. 사랑이 충만할 때 복음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권면을 듣는 사람들이 마음에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돌아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가랴의 아들 세례 요한을 통해서 이런 일들을 하고자 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비전을 천사를 통해서 들은 사가랴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18절을 보십시오.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사가랴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의 형편에 주목하였을 때 불신의 말을 내뱉었습니다. 그가 오래동안 기도해 왔지만 정작 기도의 응답을 주겠다고 하자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가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은 모여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기도를 받으시고 천사를 보내사 베드로를 기적적인 방법으로 감옥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새벽에 나와서 성도들이 모여 기도하는 마가의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니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습니다.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서 말하되 베드로는 대문 밖에 서있었습니다. 로데의 말을 듣고 성도들이 하는 말이 “네가 미쳤다”고 하였습니다. 여자 아이는 힘써 참말이라고 하며 다투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랐습니다(행12:12-16). 이와 같이 우리는 열심히 기도하면서도 기도가 응답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가랴는 천사에게 “네가 미쳤다”고 말하는 듯하였습니다.
천사는 화가 났는지 즉시 사가랴를 훈련합니다. 천사는 나이에 상관없이 훈련하였습니다. 천사가 이르기를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사가랴는 불신의 말을 했다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불신의 말을 내뱉느니 입을 다무는 것이 더 현명합니다. 그는 벙어리 상태로 있으면서 하나님과 깊은 관계성을 맺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가 성전 안에서 지체함을 이상히 여겼습니다. 그가 나와서 그들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은 그가 성전 안에서 환상을 본 줄 알았습니다. 그가 몸짓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말 못하는 대로 있더니 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훈련을 받으면서도 감당해야 할 일들을 충성스럽게 마쳤습니다. 이 후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였습니다. 엘리사벳은 늙은 나이에 임신을 하자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은 그녀의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해결하셨습니다.
엘리사벳은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하나님께서는 엘리사벳의 부끄러움을 없애시려고 이렇게 행하셨습니다. 여기서 부끄러움이라는 말은 단순한 수치심 정도가 아니라 깊은 고뇌와 근심 속으로 빠뜨리는 치욕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부끄러움을 없애주십니다. 엘리사벳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이날까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보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에 아이와 손을 잡고 학교에 가는 젊은 학부모들을 보면서 부러운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어버이 날에 아이들이 자기 부모님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는데 자신들을 위해서 카네이션을 달아줄 아이가 없어서 슬펐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자녀들이 그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면서 위로해 주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성도들의 아이들 백일잔치나 돌잔치에 가면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자신의 자녀들로 영접하고 양육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회당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섬기면서 그들의 영적인 성장을 보고 기쁨을 누렸습니다. 매일 매일 자신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에 믿음을 지키고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돌보시는 은혜의 결과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아들을 잉태하게 하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 먹고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가리고자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린 양을 잡아 그 가죽으로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리어 주셨습니다. 탕자는 아버지 집을 떠났다가 거지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돌아온 그를 영접하고 목욕을 시키고 가장 좋은 옷으로 그의 부끄러움을 덮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43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고 광야에서 40년 훈련을 하셨습니다. 여호수아 장군의 인도 아래에 요단강을 건너고 나서 할례를 행하셨습니다. 그곳 이름을 길갈이라고 지었습니다. 이는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노예 생활의 부끄러움을 길갈에서 굴러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에도 일제 36년의 부끄러움, 가난으로 인한 슬픔과 운명주의, 6.25 동란으로 인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부끄러움 등 역사를 돌아볼 때 많은 부끄러움을 없애시고 축복하사 이제는 세계 속에서 당당하게 하셨습니다. 저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때 많은 수치와 부끄러움이 있었습니다. 고입시의 실패로 인해서, 자신의 죄와 허물로 인해서, 목자로서 사명을 다하지 못해서 부끄러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많은 부끄러움들을 하나 하나 제 마음에서 없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돌보시는 은혜를 기억하면서 현재적인 부끄러움들을 이겨나가게 하십니다. 나의 부끄러움을 없애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인생은 연약함과 한계, 죄와 사탄의 공격으로 인해서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이런 부끄러움은 우리를 수치스럽고 고통스럽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고통을 통해서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우리를 겸손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고통 가운데 부르짖어 기도하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보실 때 정확한 때에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를 돌보시며 우리의 부끄러움을 제하여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첨부파일
-
data/message1/443bc54b9256f12971bc626f54d85bc2.hwp (0byte)
31회 다운로드 | DATE : 2011-03-06 14:59:2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