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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 17강(8:22-25) 그분이 누구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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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205회 작성일 11-07-17 14:54

본문

2011년 누가복음 제17강                                                     
본문 누가복음 8:22 - 25       
요절 누가복음 8:25
그분이 누구시기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요즘 우리나라는 태풍의 영향 속에 계속 비가 오다가 이제 햇빛이 나고 있습니다. 이 기간을 장마철에서 우기로 바꾸어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지구 온난화가 빚어낸 현상입니다. 우리는 자연 현상의 변화를 보면서 과학적인 설명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연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지만 자연법칙을 넘어서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초자연적인 일들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누구신가를 드러내주는 사건을 배우고자 합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호수 건너편으로 수양회를 떠나고자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열심히 일을 했기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쉼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오랜 만에 배에 올라 노를 저으며 배 노래를 부르며 나아갔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몸도 마음도 편안해졌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새 잠이 드셨습니다. 제자들도 하나 둘 졸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참으로 달콤한 시간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뿐이었습니다.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은 일기 예보가 있어서 어느 정도 기상을 예측하고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일기를 예측한다는 것이 오늘날보다 훨씬 더 어려웠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골란 고원과 헬몬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에 의해서 갑자기 파도가 높아지곤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익힌 모든 기술을 다 동원해서 파도타기를 시도했지만 자신들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었습니다. 물이 배에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셨고, 예수님이 함께 계신 배였지만 광풍 속에서 배가 침몰할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나아가고 있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지만 고난의 광풍이 불어 닥칩니다. 세상이나 교회나 고난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피해서 편히 살자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고난 속에서 생기고 자라납니다. 우리는 여러 모양의 광풍을 만납니다. 가정에 광풍이 몰아닥치기도 합니다. 부부관계에 위기가 오기도 하고, 자녀들이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경제의 광풍도 있습니다. 직장을 잃는다든지, 사기를 당한다든지 해서 갑자기 빚더미에 앉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선교사님은 사업을 하다가 사기를 당하여 집을 내놓고 많은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어떤 분은 인간관계에광풍이 불어 고통을 하다가 직분을 내 놓기도 했습니다. 건강에 광풍이 불어오기도 합니다. 목자 생활에 따르는 광풍도 있습니다. 믿고 있던 동역자가 떠날 때 광풍이 불어 닥친 것 같이 괴롭습니다. 문제는 이런 광풍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무언가를 해보지만 자신의 무력감을 느낍니다. 여러분은 어떤 광풍을 만나보셨습니까?

  그런데 제자들은 광풍 속에서 어떻게 했습니까? 24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 대” 제자들은 곤히 주무시는 예수님을 큰소리로 깨웠습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제자들은 이런 광풍 속에서도 편히 주무시는 예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어찌 이렇게 태평하신지 자신들과 딴 세상에 사는 분 같았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평화로웠습니다. 제자들로서는 광풍 속에서 예수님을 깨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습니다. 이는 제자들의 기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33:3절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수님께서는 주무시는 중에도 제자들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파도소리에는 일어나지 않으셨지만 제자들이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는 일어나셨습니다. 이는 마치 어머니들이 아무리 시끄러운 가운데서도 아이의 울음소리를 정확히 분별해 내어 반응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제자들에게 가 있기 때문에 언제나 기민하게 반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제자들을 눈동자와 같이 보호하고 계십니다. 광풍을 통해서 제자들의 믿음을 연단하고 계셨습니다. 앞으로 제자들이 맞닥뜨려야 할 광풍은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광풍들을 잘 견디고 극복하도록 훈련을 하기 원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초대교회에 핍박의 광풍이 휘몰아쳤습니다. 헤롯 왕이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였습니다. 헤롯은 유대인들이 이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를 잡아 옥에 가두었습니다.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서 끌어내어 죽이고자 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예루살렘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교회의 최고리더들이 순교를 하면 교회의 장래가 암담해집니다. 그런데 이런 핍박의 광풍 속에서 베드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고 있었습니다. 그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두려움이 없이 평안한 가운데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파수꾼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자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보다 더 다급해진 주의 사자가 홀연히  나타나 옥중에 빛을 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웠습니다.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졌습니다. 베드로는 천사의 인도로 겹겹이 쳐져 있는 옥문을 뚫고 나왔습니다. 그는 수많은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지만 광풍 훈련을 잘 받았기 때문에 깊은 평강을 누리면서 어려움들을 헤쳐 나갔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초대교회를 힘 있게 이끌었습니다.

  예수님은 잠을 깨신 후에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셨습니다. 그의 말씀이 떨어지기도 무섭게 바람이 그치고 물결이 잔잔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신 것은 무슨 뜻이 있을까요?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 인간 →만물이라는 질서를 부여하셨습니다. 인간과 만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있습니다. 바람이 창조주 예수님의 잠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제자들을 수장시켜서 구속역사를 뒤집어엎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또한 욥의 경우와 같이 사탄이 바람을 일으켜서 제자들을 수장시키고자 시도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로서 사람뿐만 아니라 영적인 존재들, 자연만물까지도 말씀으로 다스리십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도 짐승들을 말로 다스리도록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소를 끌고 가다가 ‘워워’ 하면 서고 ‘이랴’ 하면 갑니다. 예수님께서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람과 물결을 잔잔하게 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25a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예수님은 제자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광풍 앞에서 믿음을 어디 두었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들은 문제 앞에서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이 광풍을 바라보니 자기들을 삼킬 것 같았습니다. 두려움이 그들 마음에 크게 일어났습니다. 두려움이 그들의 마음에서 일어나자 믿음을 잃고 평강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광풍과 파도를 볼 때 이것이 믿음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생각합니다. 바람과 파도는 자연적인 현상인데 우리가 믿음을 갖는다고 해서 자연적인 현상들을 바꿀 수 있을까 의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 11:22-23).” 믿음의 사람 엘리야는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했을 때 3년 동안 이스라엘에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가 기도했을 때 구름이 몰려와 홍수를 이루었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제한이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기뻐들으시고 응답하심으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경험 속에 갇히지 말고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 때 창의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엉뚱한 데가 있습니다. 단순하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장애를 돌파해 냅니다. 중풍병자 친구들을 예수님께 데려가기 위해서 지붕을 뚫은 사람들,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해서 기도한 바울과 베드로 등등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를 섬기기 위해서 불가능을 모르는  믿음, 한계를 모르는 믿음, 도전하는 믿음, 창의적인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호수 건너편으로 가신다고 했으면 반드시 갑니다. 그는 말씀하신대로 이루십니다. 그는 결코 문제에 말려들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시작할 때 가졌던 믿음을 끝까지 견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할 때에 장애가 없을 때가 없습니다. 항상 장애가 있습니다. 이런 장애물들은 우리의 믿음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우리는 학생 MT를 설악산으로 가고자 방향을 잡고 준비모임을 했습니다. 이때 한 형제는 등산을 할 때 비가 오면 좋겠다고 말했고 이를 위해 기도까지 했습니다. 그 다음 주에 매우 더웠는데 MT를 가고자 하는 날 아침부터 비가 왔습니다. 세 명의 학생들이 가지 않겠다고 알려왔습니다. 그런데 비가 오도록 기도했던 형제는 비가 오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는 고난을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으로 인해 우리는 용기백배하여 여름수양회 준비를 위한 대청봉 정복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장대비를 뚫고 대청봉까지 올라갔습니다.

  지금 우리가 여름 수양회를 잘 섬기기 위해서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 믿음이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말씀의 권세를 믿습니다.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담대히 기도할 수 있습니다. 캠퍼스 개척 역사가 어려운 이때에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1980-90년대에 우리는 영적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그때 캠퍼스는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서 최루탄 가스가 캠퍼스를 뒤덮었습니다. 최루탄 가스를 마시고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캠퍼스에 올라가서 복음을 전하고 양들을 만났습니다. 지금은 학생들이 취직 준비를 위해서 스펙을 쌓느라 매우 바쁩니다. 방학 때는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수양회를 위해서 비싼 회비를 내야 합니다. 양들을 수양회에 초청하기 위해서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20명이상의 학생들을 초청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학생들이 수양회에 참석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어두운 내면이 환해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영접하고 거듭나 새 사람이 되는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새롭게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믿음이 어디 있으냐” 물으시자 제자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25b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게 여겨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가 하더라.” 제자들은 두려워하고 놀랐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경외심이 생겼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바람과 물을 명하여 순종하게 하시는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을 잘 전하고 병자를 고치는 분 정도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생각한 것 이상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경배의 대상이십니다.
 
  우리는 인생 항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많은 광풍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맞닥뜨린 광풍도 있고, 가정이 맞이하는 광풍도 있고, 공동체가 직면한 광풍도 있습니다. 이런 광풍 앞에서 불신의 말보다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말보다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절망적인 말보다 희망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문제만 보기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마음과 상황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광풍을 통해서 믿음을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광풍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기를 소원합니다. 광풍은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두려움을 주고 무기력을 느낍니다. 주님을 믿고 평강을 누려야 합니다.

  죤 웨슬레가 미국에 선교사로 갔다고 돌아올 때에 큰 광풍을 만났습니다. 그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모라비안 형제들은 찬송을 하면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똑 같은 상황에서 너무나 다른 모습에 죤 웨슬레는 추역을 받고 나중에 모라비안 집회에 참석하여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론을 읽는 것을 듣던 중에 거듭남을 체험했습니다. 그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에게 믿음이 생기자 전세계를 나의 교구로 삼고 다니며 복음 역사를 섬겼습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밤에 찬송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랬을 때 쇠사슬이 풀리고 감옥의 터가 흔들리고 간수를 구원하였습니다. 저는 신장병에 걸려서 무기력하게 누워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놀라운 일들을 이루셨습니다. 저의 결혼 방향을 바꾸셨습니다. 저를 겸손하게 하셨습니다. 은혜로 사는 법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동역자의 돌봄과 섬김, 목자님들의 기도, 의사들의 도움 등을 통해서 사랑을 많이 받게 하시고 이전보다 더욱 건강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광풍을 만났을 때 절망하기보다 파도타기를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각자가 만난 광풍을 통해서 믿음을 연단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만난 예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체험한 예수님은 저의 목자이시오 제 삶의 주관자이십니다. 제가 깨달은 예수님은 저보다 저를 더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나의 기업이십니다. 이 주님 앞에 엎드려 경배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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