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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 12강(6:20-35)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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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288회 작성일 11-06-19 15:14

본문

2011년 누가복음 제12강                                                       
본문 누가복음 6:20 - 35요절 누가복음 6:20
 
행복하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오늘 나눌 말씀은 평지수훈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이 가져야 할 내면성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세상에서 추구하는 행복과 예수님이 제시하신 복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복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첫째,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하나님 나라가 저희 것임이요. 2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여기서 가난한 자란 찢어지게 가난한 자, 구걸할 수밖에 없는 절대 빈곤의 상태에 있는 자를 말합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자신을 부자라고 생각하기보다 가난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교육을 받고 싶어도 원하는 교육을 받지 못합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병에 걸려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합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예방 차원에서 운동을 하려고 해도 하지 못합니다. 통계에 의하면 비만에 걸려 합병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부자가 복이 있다고 말하고 가난한 자는 저주를 받은 것 같이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부자를 부러워하고 가난한 자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부자는 자신이 가진 부를 누리는 이 세상을 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원하지 않습니다. 현재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이 충족하고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부요하고 육신적으로 배부르고 기쁠 때,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고 자신들의 죄악됨과 빈곤함과 무력함을 깨닫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에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가 나오는데 그들의 상태가 그러했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3:17-18).” 

  예수님은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것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나라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겸손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항상 바라봅니다. 또 가난한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가리지 않고 합니다. 선교사님들이 처음에 그 나라에서 자비량을 하려면 잔디 깎는 것, 페인트 칠하는 것, 집 수리 등 가리지 않고 합니다. 그러면서 겸손을 배우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실제적으로 체험합니다. 사람들이 물질적으로 가난할 때 그들은 하나님과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물질적 가난은 심령의 가난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세리였었기 때문에 부자였습니다. 그는 가난을 뼛속 깊이 체험하고 무슨 일을 하던지 돈을 벌어야 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세리가 되어 닥치는 대로 돈을 긁어모았습니다. 그는 많은 돈으로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좋은 집에 살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런데 돈으로 행복한 가정을 살 수는 없었습니다. 돈으로 입에 맞는 맛을 사는 것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돈으로 진정한 만족과 마음의 평강을 살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소유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말씀을 기록했는데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누가도 가난 자체가 복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가 그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입니다. 가난하여도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사람은 자족할 줄을 압니다. 보리밥을 맹물에 말아 먹어도 서로 위해주면서 화평하면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양에게 밥 사줄 돈도 없지만 양들 사랑하는 목자는 복이 있습니다. 가난하여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하는 여러분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필요를 채우실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영적 가난을 인식해야 합니다.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아 산을 헤매는 것 같이 마음이 갈하여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영적인 가난을 인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새롭게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현재적으로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에 비해서 물질적으로 300배 잘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행복이 300배 증가했느냐고 물으면 그 반대입니다. 물질적인 풍요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더욱 이기적이고 매몰차고 내면을 메마르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는 행복지수가 바닥을 기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서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데 행복지수가 최고로 나왔습니다. 이를 볼 때 인간의 행복은 물질적 풍요에 비례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물질적 풍요를 즐기면서 하나님에 대한 갈망을 잊어버린다면 이는 불행한 것입니다.

  우리는 부하려는 욕심보다 하나님이 주신 부를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쓸 것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6-10).” 우리는 이 땅에서도 잘 먹고 잘 살고 하나님 나라에서도 잘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합니다. 짧은 이 세상에서 가난하게 살아도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다면 그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다가 하나님 나라를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가장 어리석고 불행한 사람입니다.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말씀에 주리고, 하나님께 주린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들이 배부름을 얻을 것입니다.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자신의 죄로 인해서 애통하며 우는 사람은 죄사함을 받고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양들을 감당하느라 눈물을 흘리는 목자님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울며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 기쁨으로 추수 단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분들의 눈에서 주님이 눈물을 닦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예수님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을 때에 복이 있습니다. 22,23절을 보십시오.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복음을 전하다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욕을 먹고 배척을 받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핍박을 받을 때 주눅 들지 말고 기뻐하고 뛰놀아야 합니다. 핍박을 받을 때 우리의 영성은 강해지고 건강해 집니다. 세상의 악한 사람들은 정당한 이유 없이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대적하며 그의 진실한 종들과 제자들을 미워하고 배척하고 비난하고 핍박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하나님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성경의 바른 진리 때문에 받는 어려움은 그들에게 복이 됩니다. 우리가 우스개 소리로 이야기 할 때 욕을 많이 먹어서 배부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욕을 많이 먹은 사람들에게 상급도 클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된 종들에게는 항상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사랑하고 따르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를 무시하고 미워하고 비난하고 배척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참된 말씀들은 의인에게는 위로와 힘과 평강과 기쁨이 되지만, 악인에게는 두려움과 고통과 찔림과 상함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하는 종 바울은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습니다(고후 6:8-10). 교회사를 볼 때 환난이나 핍박이 없을 때는 신자들이 타락하고 환난과 핍박이 있을 때는 깨어 있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편안한 가운데 계속 거하면 게을러지고 타락하기 쉽습니다. 핍박을 받지 않고 두루두루 좋게 지내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어려움을 느끼고 위기의식이 있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셋째, 부요한 자, 배부른 자에게 화가 있습니다. 부요한 사람은 이미 위로를 받았기 때문에 화가 있습니다. 지금 배부른 자는 주리게 될 것입니다. 형제가 어려운데, 형제가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자기 배만 채우는 사람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말씀에 배가 불러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화가 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나 진정한 배부름과 만족을 맛볼 수 없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해골과 같이 말라갈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대할 때에 갈급한 심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수많은 청년들이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듣지 못해서 기갈에 들려 있습니다. 그들은 목자들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보지 못하고 세상 것으로 자족하며 사는 분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피의 대가를 우리 손에서 찾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투쟁하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제가 너무 부요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말씀의 생수를 파서 전하는 일을 잘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말씀을 받지 못해서 영혼이 메말라 가는 분들을 잘 살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훈련하시고 깨어나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자신의 비참한 영적 실존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주님께서 종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지금 웃는 자는 애통하며 울게 될 것입니다. 너무나 태평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삶에 문제의식이 없습니다. 인생을 즐기는 일에 만족하며 사는 분들에게 화가 있습니다. 그들은 애통하며 울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허비하고 쭉정이만 거두어들이게 된 것으로 인해서 슬퍼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값어치 없는 웃음을 웃으며 희희낙락할 것이 아닙니다. 세상 일락을 즐기면서 영혼의 잠을 자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결산을 하시는 날에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짧습니다. 안개와 같이 잠간 있다가 사라져 버립니다. 풀의 꽃과 같이 잠시 피었다가 시들어 버립니다. 이 짧은 시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선한 일을 위해서, 의미 있는 일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고난을 받기를 기도합니다. 

  또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면 화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칭찬을 받고자 하면 진리를 거역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귀를 즐겁게 하는 선지자를 좋아합니다. 축복의 메시지, 건강에 대한 메시지, 웃기는 메시지를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회개하라는 말을 하면 부담스러워합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의 칭찬을 받고자 애쓰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살며 진리를 따르는 일에 초점을 맞추기를 기도합니다. 십자가와 사명과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도 달게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넷째, 원수까지 사랑하라. 예수님은 제자의 내면성을 말씀하시고 나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하십니까?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27,28).” 일반적으로 원수에 대해서는 더 철저하게 복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복수를 할 때 마음이 시원합니다. 물론 하나님도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시94:1). 정의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악에 대해서 징계를 해야 합니다. 공적인 원수에 대해서 분명히 징계를 해야 사회적 공의가 이루어집니다. 사법기관은 우리를 대신해서 원수를 갚아줍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원수에 대해서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복수심은 또 다른 복수를 불러들입니다. 이로 인해서 복수의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복수를 하면 내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립니다. 지혜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며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신자의 비범성을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황금률을 가르치십니다. 31절을 보십시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우리는 남에게 요구만 하고 그의 필요를 무시하기 쉽습니다. 요구하기만 하면 섭섭한 마음이 들고 불평이 생깁니다. 우리가 남에게서 이해와 칭찬과 사랑과 선대를 받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먼저 남을 이해하고 남의 장점을 인정하고 남을 사랑하고 남을 선대해야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남에게 먼저 잘 해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대인관계의 원리입니다.
  만일 우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입니까?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합니다. 우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입니까? 죄인들도 이렇게 합니다. 우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입니까?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줍니다. 오직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의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십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 나라는 가난한 자의 것입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욕을 먹고 핍박을 받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욕을 먹는 목자님들은 복이 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상이 클 것입니다. 우리가 부요한 마음, 웃는 마음을 돌이켜 어려운 현실을 잘 보고 눈물을 흘리며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원수 까지도 사랑하는 비범성이 있는 주의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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