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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빌2:1-30)-김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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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676회 작성일 11-06-05 18:20

본문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서 2:1-30
요절 5절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는 최고의 영성을 가르쳐 주는 책입니다. 빌립보서 1:6절은 말씀합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이루시는 착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롬8:29)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도록 인도하십니다.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성령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사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게 하시고 예수님의 형상으로 자라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 주시길 기도합니다.

1.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라 (1절-4절)

  1절에서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고 있는 축복들에 대해 말합니다. 권면(한글 성경에는 권면이라고 나옵니다), 위로, 성령의 교제, 긍휼과 자비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권면과 위로를 통해 우리를 채웁니다. 우리는 주님의 권면 또는 격려 때문에 우리 자신과 상관없이 소망가운데 자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로 인해 어떤 슬픔도 외로움도 고통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우리의 죄악된 본성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로써 사는 데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정죄하거나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대신에 긍휼과 자비로 우리를 안아주십니다. 하나님은 넘어진 우리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긍휼히 여기시고 당신의 부드러운 팔로 일으키사 다시 걷게 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들에 대해 상기시킨 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그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 호소합니다. 많은 공동체들처럼 빌립보 교회도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문제의 중심에는 두 자매 리더가 있었습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였습니다. 4장 3절에서 바울은 이 두 사람이 복음에 자신과 함께 힘쓰는 자들이라고 칭찬합니다.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핍박했을 때 그들은 용감하게 바울 편에 섰습니다(행16:22). 그러나 그들은 서로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사이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릅니다. 아마도 유오디아는 자기가 순두게보다 더 영적이라고 생각했고 순두게는 그 반대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종에게 있어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을 보는 것처럼 큰 기쁨은 없습니다. 성도들이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될 때 그들 모두 행복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흥왕하게 일어납니다. 반대로 성도들이 분열할 때 그들 자신과 하나님의 역사 또한 고통을 겪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기억하고 서로에 대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라고 간구합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예수님은 모든 믿는 자들이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요한17:20-21). 하나님은 왜 그의 백성들이 하나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안에 서로를 위한 영원한 사랑이 있습니다. 자기를 내어 줌으로 삼위의 하나님은 완전히 하나가 되십니다. 우리를 위한 주님의 기도는 바로 이와 같은  하나됨의 아름다움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는 것입니다(요17:11).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 크리스챤들이 사랑 안에서 하나 되는 것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초기 성도들은 반사회적이며 부도덕하다고 거짓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로마로 하여금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했습니까? 그들의 글에서 많은 로마인들이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놀라움을 표현하였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서로 깊이 사랑하는지 보라” 로마가 기독교 국가로 바뀐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랑 안에서 연합하는 것을 통해 일어난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목말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입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볼 때 그들은 변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 목적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마음이며 사랑입니까? 성부, 성자, 성령은 모두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성자는 자발적으로 성부에게 복종합니다. 성령은 자발적으로 성부와 성자에게 복종합니다. 그러나 성부는 어떤 것도 단독으로 하지 않으시고 성자와 성령과 상의하시고 모든 것을 행하십니다. 이 땅에 계실 때 성자는 성부를 영화롭게 하셨고 성부와 성령은 성자가 그의 사명을 완성하도록 격려하였습니다. 그들은 속에 있는 깊은 것들을 서로 나누었습니다. 세 분이 함께 타락한 인류를 사랑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인간을 구원하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함께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는 것에 동의하였습니다. 성령은 성자가 생명을 준 사람들안에 거하러 오는 것에 대해 동의하였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자기를 내어주고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한편, 죄악된 인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자신을 먼저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심지어는 사랑하는 배우자에게도 복종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남편들은 아내가 그들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내들은 남편이 먼저 자기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서로 싸우고 남편은 식은 밥을 먹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의 관심사는 다른 이들의 필요가 아닙니다. 함께 일하기 전에 먼저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죄악된 본성에 대하여 죽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도록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타인 중심적인 사람들로 변화되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 목적을 가지게 될 때 교회 안에 분열과 부조화가 없게 됩니다. 그런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정말 변화될 수 있을까요? 예!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확실히 변화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구체적인 지침을 줍니다. 3절과 4절을 읽어 보십시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첫째,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 영어 성경에는 다툼이 ‘selfish ambition'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selfish ambition'은 자기 영광을 위해 힘이나 명예, 인정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기적인 야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면 그 열매가 건강하지 않습니다. 허영은 vain conceit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허영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어를 본 적이 있습니까? 축 늘어져 있던 물고기가 조금만 간질이면 부풀어 올라 공처럼 빵빵해집니다. 부푼 몸속에는 다만 공기로 채워져 있을 뿐입니다. 자만하는 사람은 복어와 같습니다. 이기적인 야망이나 허영은 자기 사랑과 교만의 증상입니다. 교만은 창조 질서를 깨뜨립니다. 관계성을 파괴시킵니다. 교만은 우리를 완악하게 하고 상처를 받으며 시기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여전히 이기적인 야망이나 허영심으로 무엇인가를 한다면 깊이 회개해야 합니다.

  둘째,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동역자들의 단점이나 미성숙함이 분명하게 보일 경우 어떻게 우리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길 수 있을까요? 우리 중의 가장 어린 자를 정말로 나보다 낫게 여길 수 있습니까? 예, 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서 우리 자신보다 나은 점을 적어도 한가지라도 찾을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적어도 한 가지는 뛰어난 자질을 주셨습니다. 그것으로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섬기도록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가 자기 자신과 또한 다른 사람의 뛰어난 자질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제가 가진 좋은 자질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배우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옆에 앉은 사람의 한 가지 장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셋째,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십시오.” 어떻게 우리가 타인 중심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한자어로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본다는 말입니다. 첫 단계는 그들의 입장에 서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볼 때는 그들을 받아들이거나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들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려고 노력할 때 그들이 왜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을 긍휼히 여기게 되고 필요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이렇게 보시며 긍휼히 여기십니다. 다음으로 그 사람의 필요들을 채워주고자 행동해야 합니다. 위로가 필요하면 위로해 줍니다. 격려가 필요하면 격려해 줍니다. 교제가 필요하면 함께 시간을 보내야 줍니다. 기도 지원이 필요하면 그를 위해 기도해 줍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저희를 위하여 하신 일이며 성령께서 우리 각자를 위해 지금 하고 계시는 일입니다.

  우리의 삶은 물을 받아들여서 대지에 공급하는 저수지와 같습니다. 이기적인 사람은 물을 받기만 하고 주지는 않는 팔레스틴에 있는 사해와 같습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행복할까요? 아닙니다. 영어의 JOY는 “Jesus first, Others second, and Yourself third"의 머릿글자를 합한 것입니다. 타인 중심적인 사람은 충분한 물을 받아서 넓은 땅으로 보내주는 저수지와 같습니다. 삶에 있어서 물이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온유 같은 것입니다(갈5:22-23). 우리가 이런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때 성령께서 우리 심령에 더욱 풍성하게 채워주십니다. 주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는 복의 근원이 됩니다. 열매 맺는 삶을 살게 됩니다. 게다가 행복해집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날 때 우리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주님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했던 것들만이 영원히 남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각자의 삶을 축복하사 소양강 저수지 댐과 같은 풍부한 저수지 같게 해 주셔서 우리의 가족과 교회 멤버들로 시작해서 많은 이들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지금까지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성품에서 자람으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가 되기를 강조했습니다. 이제 그는 그리스도의 본을 통해 신자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성숙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II. 그리스도의 본(5-11절)

  5절을 보십시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리스도의 마음은 어떠했습니까?

  첫째, 그는 자신을 비웠습니다. 6절에서 7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사람들은 학위나 지위, 명예와 부와 같은 것들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것들을 꽉 움켜쥐고 자기들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그에 따른 대우를 받기 원합니다. 예수님은 성부와 성령과 함께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으로서 그는 최고의 영광과 존귀와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취한다(grasp)”는 것은 꽉 움켜쥐고 놓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최고의 영광으로부터 자신을 비우시고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위와 권리를 포기하는 것을 수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 조건이 변한다고 우리 자신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 예수님께서 자신을 비우셨을 때도 여전히 성자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는 겸손을 입으셨지만 수치스럽게 되지 않으셨습니다.

   둘째, 그는 종이 되었습니다. 7절 하반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여기서 형체라는 말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라는 말씀에 사용된 본체와 같은 단어입니다. 이것은 참 하나님이 참 종이 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단순히 흉내를 내거나 종인체 하지 않으시고 진짜 종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것은 사람이 벌레가 되는 것보다 더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그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그들을 섬기기 위해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는 우리를 사랑하사 자원하여 사람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친구가 되시기 위해 종의 형제를 가지셨습니다.
 
  셋째, 그는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단지 종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기까지 희생하셨습니다. 사실 한 생명은 부모의 희생으로 양육됩니다. 타락한 인생에게 영적인 생명을 주는 것은 가장 커다란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은 가장 큰 고통을 받으셨고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희생하셨습니다. 그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가장 큰 희생을 하셨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그는 아버지께 복종하시기 위해 그 길을 가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한 겸손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겸손입니다.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을 위해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왕의 왕, 주의 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9-11) 이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예수님의 겸손, 종의 도 그리고 순종하심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지극히 높이신 것 같이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을 가질 때 우리를 높이지 않으시겠습니까? 세상에서도 훌륭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는 사람들이 그들 속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의 죄악된 성품이 그리스도의 것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이룬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서 존귀히 여길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자기를 비우기 원합니까?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이제 그것으로부터 여러분 자신을 비우시겠습니까? 진정으로 종이 되고자 합니까? 단지 겉으로나 입술로가 아니라 참 종이 되고자 하십니까? 진정으로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고자 합니까? 그들을 섬기기 위해 희생하고자 하십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사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진정한 겸손에서 자라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III. 너희 구원을 이루라 (12-30절)

이 부분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우리의 구원의 완성은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을 이루라는 것은 예수님의 형상에서 자라가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가지고 행하도록 우리 안에서 일하십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특정한 상황이나 사람들, 심지어 시험과 환란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이런 것에 부딪힐 때 “왜 접니까?” 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과 선한 목적을 영접할 때 자신을 부인하고 순종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 경외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이런 자세를 가질 때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할 수 있습니다.  15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을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라고 부릅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의 특징은 원망과 시비입니다. 이 시끄러운 세대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순종을 통해 우리는 흠 없고 순수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이상한 사람들로 볼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가 하늘의 빛나는 별들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눈에 스타들은 영화 스타나, 팝 스타, 스포츠 스타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형상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입니다.

  17절에서 바울은 말했습니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한 때 바울은 예수님의 형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과 순종을 통해 가장 아름답고 희생적인 그리스도의 종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의 목자로 그의 궁극적인 기도는 그리스도를 닮은 빌립보 성도들의 삶 위에 자기 생명을 전제로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은 삶과 희생의 섬김이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하는 제사인 것과 이것이 우리 인생의 최고의 목적이 되어야 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19절로 30절에서 사도 바울은 두 사람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칭찬합니다. 디모데는  빌립보 성도들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였기 때문에 바울은 그를 빌립보 성도들에게 보내기 원했습니다. 그는 영적 아들로서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일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을 위해 보낸 것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병이 들어 거의 죽음에 이르렀다가 살아났습니다. 그는 주의 종 바울의 필요를 공급함으로 그리스도의 일을 섬기는 데 그의 시간과 건강까지도 희생하였습니다. 이들 두 분은 다 그리스도 중심적이고 타인 중심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교회의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영적인 리더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모든 동역자들에게 큰 위로요 축복이 되도록 그들과 같이 자라게 하시길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축복하사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섬기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동교, 화랑의 UBF 공동체를 축복하사 홍대와 신촌골과 세계에 하나님의 사랑의 원천이요 축복이 되게 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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