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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29강(12:49-13:9)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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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078회 작성일 11-10-16 15:06

본문

2011년 누가복음 제29강                                                       
본문 누가복음 12:49 - 13:9
요절 누가복음 13:5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리라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우리는 지난 주 지혜롭고 진실한 청지기 비유를 공부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를 대비하여 깨어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어 주는 삶을 살아야 함을 배웠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경고하시는 데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망하게 됩니다. 교만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갑작스럽게 찾아옵니다. 우리가 늘 겸손한 마음을 갖고 주님 앞에 설 날을 준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불을 던지러 오신 예수님(49-53) : 49절을 보십시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주님이 말씀하시는 불은 무엇일까요? 이 불을 복음 전파, 성령 강림, 심판 등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전체를 볼 때 여기서의 불은 심판의 불을 더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 전파가 이루어질 때 갈등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주로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분쟁입니다. 당시 로마 사회는 다신교가 지배하고 있었고 황제를 신으로 숭배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에게 전하는 복음  즉 오직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를 구원할 유일한 구주라는 메시지는 분쟁을 일으켰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메시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를 했고 로마 당국은 황제를 숭배하지 않는다고 박해했습니다. 오늘날도 구원에 이르는 진리가 다양하고 많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데 하나 밖에 없다고 주장하니 기독교는 독선적이요 교만하다고 핍박을 합니다. 그러나 명품이 있기에 짝퉁이 판을 치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가 진짜 보석이기 때문에 가짜 다이아몬드가 있는 것처럼 구원의 진리가 분명히 있기에 가짜가 많이 생기는 것입니다. 죄사함과 구원은 생명과 죽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타협할 수 없습니다. 가짜와 쭉정이는 불살라져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와 알곡이 구별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악한 세상을 심판할 심판의 불이 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주님이시지만 동시에 공의의 주님이십니다.
 
  50절을 보십시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예수님이 받을 세례는 고난과 죽음을 가리킵니다(막 10:38). 불과 세례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염두에 둡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쏟아붓는 불의 세례를 의미합니다. 불 심판이 있기 전에 예수님이 인류가 받을 심판을 뒤집어 쓰고 죽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받을 심판의 불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붙어서 다 소멸되었기 때문에 그를 믿는 자에게는 더 이상 심판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마음이 답답하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답답한 마음은 십자가의 사역을 하루 빨리 완성하고 싶어 하는 간절한 열망과 그때 까지 겪어야 하는 고통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예수님은 불을 던지러 오셨습니다. 악한 세상에 아무 일도 없으리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악한 세상을 불로 태우기를 강력하게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 심판의 불 세례를 자신이 받으시고 당하셔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고뇌요 대속자의 고뇌입니다. 아주 힘든 일을 해결해야 하는데 해결 방법을 자신은 알고 있습니다. 누가 내 대신 그 일을 해 주면 좋겠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습니다. 결국 내가 그 일을 다 해내야 합니다. 농사를 지을 때 불을 놓아서 벌레를 죽입니다. 그 땅을 정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재는 퇴비가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이 치루어야 하는 기초 작업이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고난입니다. 
 
  51-53절을 보십시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왜 이런 분쟁이 생길까요? 진리의 배타성에 기초한 분쟁입니다. 이는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또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데서 오는 분쟁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요 주인이 되시기 때문에 그에게 절대 순종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육신의 아버지는 자신이 가정에서 왕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전통에 따라서 제사를 지낼 것을 요구합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갈등이 생깁니다. 부모님께 고분고분 순종하던 아이가 하나님을 믿더니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 때 갈등이 빚어지게 됩니다. 또한 누가 우리의 왕으로서 다스릴 것인가로 가는 과정에서 이런 분쟁이 생깁니다. 예수님의 다스림을 중심으로 한 진정한 평화가 오기까지 이런 분쟁은 계속됩니다. 복음 자체가 분쟁의 과정을 거쳐서 평화를 가져옵니다.

  사실 사람들은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불화 상태에 있었고, 사람들 사이에도 자기 영광과 이기적인 죄로 인해서 갈등 가운데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한 죄사함과 생명과 자유를 주는 진리가 들어와서 거짓된 사상을 몰아내고 거짓 사랑을 드러내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참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희생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종교 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살다보면 갈등이 생깁니다. 우리가 믿는 대로 복음을 전하고자 하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면 헤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보면 불교도도 만나게 되고, 유교신봉자도 만나고 선교사님들의 경우 이슬람 신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선교를 하다 보면 그로 인해서 종교분쟁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평화의 복음을 사랑으로 전해야 합니다. 구원의 진리에 대해서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는 타협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선배들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인내하면서 비폭력, 평화의 방법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성령께서 역사하심을 믿고 복음을 전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분쟁을 두려워하지 말고 선한 싸움을 승리로 이끌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시대를 분간하라(54-59) : 사람들은 천지의 기상에 대해서는 잘 분간을 합니다. 요즈음은 레이더, 슈퍼컴퓨터에 인공위성까지 동원하여 바람의 방향, 세기, 온도, 눈 비 올 확률, 태풍 등을 예보해줍니다. 기상 정보를 아는 것이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에게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고 물으십니다.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고 책망하십니다. 우리가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정보는 꿰고 있어도 시대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분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근시안적으로 시대 문제를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통해서 분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스스로 판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의식해서 판단을 유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는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자기 생각을 접고 대세에 따르기 쉽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가 행한 일들을 보고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의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옳은 것임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기득권과 율법과 전통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옳은 것을 판단하려면 내적인 투쟁을 힘써야 합니다. 마음을 써서 탐구를 해야 합니다. 한 가지 주제에 몰입해서 생각하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그때 진리를 깨닫게 되고 확신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구주시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58절을 보십시오.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여기서 고발하는 자는 예수님이십니다. 법관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심판대 앞에 가기 전에 예수님과 화해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는 회개해야 할 때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서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붙잡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바르게 알고 그와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옥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기회를 놓치면 형벌을 다 받아야 합니다. 심판의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회개하고 예수님과 화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우리의 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정의와 힘을 모두 가지고 계십니다. 모든 심판의 권한을 위임받으신 그리스도는 재판관이 되신 분으로 우리는 그 앞에 속히 나아가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그 앞에서 재판을 받는다면 재판은 분명히 우리에게 불리하게 되어 재판장은 우리를 관속에게 넘겨주어 그가 우리를 지옥이라는 옥에 던져 넣어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갚을 때까지’가두어 둘 것 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갚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짧았으나 그 고난의 대가는 인간들의 죄를 속죄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가는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그리스도와 화해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넘치는 은혜의 선물을 주려고 뻗으신 그리스도의 손을 붙잡으십시오. 그때 우리는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평화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회개하지 않으면 망하리라(13:1-9) : 그 때 마침 두 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님께 아뢰었습니다. 이것은 실로 비통한 소식이었습니다. 갈릴리는 헤롯의 통치구역이었으므로, 빌라도에 의하여 저질러진 이 불법 살인으로 인해 누가복음 23:12에서 볼 수 있는 빌라도와 헤롯사이의 분쟁이 일어났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거룩한 장소이고 안식처였던 성전이 이제 함정이 되고 위험과 살육의 장소로 변하였습니다. 비통한 소식을 들은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2절을 보면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그들이 마음속으로 악의에 차서 빗대어 이것을 그에게 말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즉 살해된 갈릴리 사람들은 남모르게 죄를 지은 자들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혹 아니라면 하나님께서는 빌라도가 그들을 그처럼 잔인하게 죽이도록 허락하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들은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경고하십니다. 3절을 보십시오.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우리는 비극적인 죽임을 당한 경우 그 이유에 대해서 해석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비참한 결과만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하십니다. 회개하지 않아도 살아날 수 있다는 요행수를 바라지 마십시오.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망하리라.”고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숨겨진 모든 죄가 그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다 드러날 것입니다. 그는 죄의 행동만이 아니라 동기까지 아시고 심판하십니다. 어둠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행해진 죄도 그의 눈 앞에서는 야간투시경을 통해서 보는 것 같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우리의 뇌는 일생동안 행한 것들을 기억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용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억나는 모든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거기다가 그는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4,5절을 보십시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사람들은 그들이 로마인을 위해서 망대를 쌓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독립 운동하는 자들이 볼 때는 로마에 빌붙은 자에게 임한 심판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받는 큰 고통을 보고 흉악한 죄를 지은 자들로 단정하여 비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통해서 그들의 믿음을 불에 제련되어지는 정금같이 만들기 위해서 용광로에 던져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죄인일 뿐만 아니라 그들보다 더 나을 것도 없는 큰 죄인들입니다. 우리는 회개하기를 힘써 더 이상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이 큰 소리로 우리에게 회개할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회개만이 멸망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며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만일 우리가 회개치 않으면 우리 전에 당했던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 또한 멸망당할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이 세상에서 죽은 것처럼 우리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2001년 9월 11일에 있었던 윌드 트레드 센터의 테러는 우리 시대의 망대와 같습니다. 지난 여름에 있었던 우면산의 산사태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겸손히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생활을 힘쓴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생명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는 포도원지기(6-9) : 예수님이 또 한 가지 비유를 해 주셨습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때가 되어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했습니다. 주인은 포도원지기에게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의 존재의미는 열매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 가나안 땅에 심겨진 무화과나무와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서 공의와 인애의 열매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불법을 행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들은 심판을 받아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포도원지기는 주인에게 부탁을 합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포도원지기는 주인에게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포도원지기는 예수님에 비유됩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우리의 죄를 감당해 주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는 오래 참고 계십니다. 이를 알고 회개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자세로 열매 맺기를 힘써야 합니다. 

  주님은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하셨는데 회개하도록 기다려주십니다. 회개하지 않는다고 당장에 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할 기회를 충분히 주시는데도 사람이 망하는 것은 주님께서 충분히 주신 회개의 기회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인내하시는 주님은 그 기회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을 때에 지체하지 않고 심판의 불을 내리십니다. 베드로후서 3:9-10절을 보면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평화를 주러 오신 줄 압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말구유에 누이심으로 하나님과 평화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은 평화만이 아니라 불을 주러 오셨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고자 할 때 분쟁이 생깁니다. 핍박의 불을 만나게 됩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망하게 됩니다. 지금 주님은 우리가 회개하도록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렇게 말씀을 듣고 회개할 수 있는 때가 복된 날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회개하고 주님과 화평하며 열매맺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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