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 26강(눅 11:33-54)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페이지 정보

본문
2011년 누가복은 제26강
본문 누가복음 11:33 - 54
요절 누가복음 11:41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우리는 지난 주 진정으로 복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오늘은 등불 비유와 여섯 가지 화에 대해 나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어둡게 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우리 내면이 빛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마음에 더러운 것들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비결이 무엇인지 배우고 신앙생활의 본질을 깨달아 알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내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33-36) :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둡니다. 오늘날이야 전기가 다 들어가고 형광등이 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린 시절에는 가난한 집이나 시골에서는 등경 위에 등잔을 놓고 밤마다 불을 켰습니다. 바늘로 심지가 굳지 않도록 손질을 하고 적당한 높이로 맞추어야 불이 환하게 타면서도 그을음이 나지 않습니다. 방 안에서는 등잔을 윗목에 두고 그 아래서 공부도 하고 바느질도 하였습니다. 또 집 입구에도 불을 켜서 들어가는 사람들이 그 빛을 보게 했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34절을 보십시오.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여기서 몸은 우리의 인격을 가리킵니다. 등불은 예수님, 또는 복음을 가리킵니다. 눈은 진리를 분별하고 받아들이는 통로입니다. 예수님은 큰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사야서 9:2절에 보면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라고 예언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고통을 받고 멸시를 받던 하나님의 백성들을 창성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즐거움을 더하셨습니다.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사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복음 진리를 깨닫는 빛을 비추실 때 자신이 죄인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구원의 길 되신 예수님,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복음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일 때 예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사랑, 독생자를 희생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비추일 때 인생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여러 복잡한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의 빛이 임하면 문제를 관통하는 통찰력이 생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이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됩니다. 우리는 그러한 예를 여호수아와 갈렙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서 열 두 명을 뽑아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보냈습니다. 그들이 똑같은 것을 보고 돌아와서 보고를 했는데 그 내용이 달랐습니다. 열 두령은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2-33).”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보고했습니다. 열 두령이 본 것도 사실이고 여호수아와 갈렙이 본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믿음의 눈으로 보았느냐, 불신의 눈으로 보았느냐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문제를 보면 상황이 밝습니다. 우리가 나 자신의 인생을 볼 때도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소명을 주시고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보면 밝습니다. 비전이 보입니다. 나의 인생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을 생각하면서 내 인생을 보면 소망이 생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문을 보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내 인생을 보면 매우 어둡습니다.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주장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러니 교회는 소망이 있습니다.
35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우리 속에 있는 빛을 어둡게 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4절을 보면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을 혼미하게 합니다. 특히 사탄은 죄의 유혹으로 우리를 넘어지게 함으로 마음을 어둡게 만듭니다. 음란한 동영상을 보게 하고, 감정대로 행하도록 유혹합니다. 죄를 지으면 영적인 소원이 뚝 떨어집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들어오면 모든 것이 아깝게 보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헌신으로 인해 감사하기보다 손해의식이 생깁니다. 문제를 나를 훈련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로 보기보다 운명으로 생각하고 포기해 버립니다.
36절을 보십시오.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면 밝아지게 됩니다. 빛과 어두움은 얼마나 먼 거리에 있을까요? 아무리 어두움이 깊어도 빛이 비추이면 순식간에 어두움이 사라지고 밝아집니다. 아무리 밝아도 어두움이 마음을 덮치면 순식간에 어두워집니다. 우리의 삶이 그와 같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믿음의 눈으로 문제를 보면 마음이 밝아집니다. 인생이 밝아집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처한 상황이 당장에 바뀌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인격에 예수님의 빛, 말씀의 빛이 비추이면 반드시 어두움은 물러나고 근심과 염려하는 문제들은 해결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11:40)” 우리가 마르다와 마리아와 같이 생명이요 부활이신 예수님을 믿고 각자가 처한 죽음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주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고 문둥병자도 깨끗하게 하시고 무기력한 중풍병자도 일어나 걷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믿음을 주시고 우리가 처한 물질 문제 앞에서 필요를 채워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 될 때 믿음으로 이를 영접하면 마음이 밝아지고 삶이 밝아집니다. 말씀의 빛이 우리 안에 있는 어두움을 몰아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영접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여섯 가지 화(37-54) : 앞에서 예수님은 큰 빛으로 우리에게 오셨고 그를 영접하는 사람의 마음은 빛으로 충만해 집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내 인생 길에서 등불과 같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영적 소경들이었습니다. 아무리 태양이 밝게 비추어도 소경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소경은 여전히 어두움 가운데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매주 들으면서도 빛보다 어두움에 거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했습니다.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겼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식사 전에 손을 씻는 행위는 위생상의 이유보다 정결의식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한 바리새인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마시라고 준 물로 정결예식을 행하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형식주의를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39-41).” 탐욕과 악독이 그들의 마음을 더럽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마음으로부터 자선을 베풀라고 방향을 주십니다. 그들은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버렸습니다. 그들이 십일조와 구제하는 일의 기초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십일조를 드리고 감사헌금을 드리고 건축 헌금을 드립니다.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에 구제헌금을 드리고 희생적으로 섬깁니다. 그리하면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우리는 발광체가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빛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빛을 받아서 반사시키는 일을 합니다. 즉 우리 마음이 깨끗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빛을 잘 반사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더러우면 빛을 반사시키기보다 흡수하고 산란시켜 버립니다. 우리 마음이 깨끗해지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잘 반사시키게 됩니다. 우리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을 막음으로써 깨끗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것을 줌으로써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41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돈, 재능, 시간, 지식 등등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중보기도와 정신적, 육체적인 노동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줌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또한 구제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인 구제입니다. 영적으로 굶주려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나누어 주고 영원한 구원을 선물로 받도록 돕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구제입니다. 우리 목자님들은 바로 이런 구제를 하는 귀한 분들입니다. 우리가 평생 이런 영원하고 값진 구제를 하는 목자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 바리새인들이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 것 즉 하나님을 섬기고 영광을 돌려야 할 사람들이 도리어 사람들의 섬김을 받고 인정을 받고 높임을 받고자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비출 수 없습니다. 평토장한 무덤과 같이 다른 사람을 부정하게 만듭니다.
한 율법교사는 예수님께서 신랄하게 말씀하시자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라고 항변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당시 성경 선생이었던 그들이 지기 어려움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자신들은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성경 선생은 자신이 먼저 말씀에 순종을 해 봐야 어떤 점이 어려운지,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잘 순종하는 것인지, 또 순종에 따르는 축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먼저 해 보고 제자들에게 따라오도록 해야 합니다. 자기는 그를 돕기 위해서 한 손가락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는 어두움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진리의 빛이 마음에 충만히 임하게 됩니다. 다 안다고 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구체적으로 순종할 때 우리의 삶은 빛으로 충만해집니다.
율법교사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와 사도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초대 교회를 핍박하면서 자기 의를 쌓았습니다. 그는 마음이 어두웠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빛 가운데 만나고서야 눈의 비늘이 벗겨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 판단할 수 있는 지식이 생깁니다. 이 지식으로 주의 종들과 교회를 비난하고 원망하고 핍박하면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그들의 부족함을 위해서 기도하고 격려할 때 마음이 밝아집니다. 나도 교회의 일부이기에 책임감을 가지고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형제의 허물을 용서하고 감당하는 사람의 마음과 삶은 하나님의 빛으로 환해집니다.
율법 교사들은 지식의 열쇠를 가졌습니다. 그것을 사용해서 자신도 천국에 들어가고 또 방황하는 사람들을 천국에 들어가도록 도와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습니다(52). 선지자들을 죽이는 것은 살인 행위 자체로서 악한 것이지만 더 악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것을 차단시켜 버리는 행위입니다. 성경 선생은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천국 문을 열고 닫는 사람입니다. 지식의 열쇠를 사용하여 백성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 선생으로서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은 빛을 비추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전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힘써 하지 않으면 자신도 어둡고 세상도 어둡게 만드는 죄악입니다. 23절에서 예수님은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전도하지 않는 사람은 교회를 헤치는 자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전파하는 삶을 살 때 우리의 마음과 삶에 빛으로 충만해 집니다. 말과 삶으로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 세상은 빛으로 환해집니다.
53,54절을 보십시오.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겸손히 회개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들은 회개하기는커녕 자기들의 잘못을 비판하는 선지자들을 죽인 조상들처럼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들은 깊은 어둠 가운데 사는 소경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 마음에 빛이 있는가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이 거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할 때 우리의 인격이 빛으로 채워짐을 배웠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탐욕과 교만과 악독을 회개해야 합니다. 탐욕과 악독을 씻는 길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구제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더러움이 씻겨서 깨끗하게 되면 하나님의 빛을 잘 반사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믿음의 눈으로 현실적인 문제들을 바라보고 극복하여 빛의 자녀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본문 누가복음 11:33 - 54
요절 누가복음 11:41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우리는 지난 주 진정으로 복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오늘은 등불 비유와 여섯 가지 화에 대해 나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어둡게 하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우리 내면이 빛으로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마음에 더러운 것들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비결이 무엇인지 배우고 신앙생활의 본질을 깨달아 알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내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33-36) :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둡니다. 오늘날이야 전기가 다 들어가고 형광등이 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어린 시절에는 가난한 집이나 시골에서는 등경 위에 등잔을 놓고 밤마다 불을 켰습니다. 바늘로 심지가 굳지 않도록 손질을 하고 적당한 높이로 맞추어야 불이 환하게 타면서도 그을음이 나지 않습니다. 방 안에서는 등잔을 윗목에 두고 그 아래서 공부도 하고 바느질도 하였습니다. 또 집 입구에도 불을 켜서 들어가는 사람들이 그 빛을 보게 했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34절을 보십시오.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여기서 몸은 우리의 인격을 가리킵니다. 등불은 예수님, 또는 복음을 가리킵니다. 눈은 진리를 분별하고 받아들이는 통로입니다. 예수님은 큰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사야서 9:2절에 보면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라고 예언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고통을 받고 멸시를 받던 하나님의 백성들을 창성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즐거움을 더하셨습니다.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사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복음 진리를 깨닫는 빛을 비추실 때 자신이 죄인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구원의 길 되신 예수님,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복음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추일 때 예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사랑, 독생자를 희생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비추일 때 인생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여러 복잡한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의 빛이 임하면 문제를 관통하는 통찰력이 생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이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됩니다. 우리는 그러한 예를 여호수아와 갈렙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서 열 두 명을 뽑아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보냈습니다. 그들이 똑같은 것을 보고 돌아와서 보고를 했는데 그 내용이 달랐습니다. 열 두령은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2-33).”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보고했습니다. 열 두령이 본 것도 사실이고 여호수아와 갈렙이 본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믿음의 눈으로 보았느냐, 불신의 눈으로 보았느냐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문제를 보면 상황이 밝습니다. 우리가 나 자신의 인생을 볼 때도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소명을 주시고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보면 밝습니다. 비전이 보입니다. 나의 인생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을 생각하면서 내 인생을 보면 소망이 생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문을 보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내 인생을 보면 매우 어둡습니다.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주장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러니 교회는 소망이 있습니다.
35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우리 속에 있는 빛을 어둡게 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4절을 보면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을 혼미하게 합니다. 특히 사탄은 죄의 유혹으로 우리를 넘어지게 함으로 마음을 어둡게 만듭니다. 음란한 동영상을 보게 하고, 감정대로 행하도록 유혹합니다. 죄를 지으면 영적인 소원이 뚝 떨어집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들어오면 모든 것이 아깝게 보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헌신으로 인해 감사하기보다 손해의식이 생깁니다. 문제를 나를 훈련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로 보기보다 운명으로 생각하고 포기해 버립니다.
36절을 보십시오.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으로 충만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면 밝아지게 됩니다. 빛과 어두움은 얼마나 먼 거리에 있을까요? 아무리 어두움이 깊어도 빛이 비추이면 순식간에 어두움이 사라지고 밝아집니다. 아무리 밝아도 어두움이 마음을 덮치면 순식간에 어두워집니다. 우리의 삶이 그와 같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믿음의 눈으로 문제를 보면 마음이 밝아집니다. 인생이 밝아집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처한 상황이 당장에 바뀌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인격에 예수님의 빛, 말씀의 빛이 비추이면 반드시 어두움은 물러나고 근심과 염려하는 문제들은 해결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11:40)” 우리가 마르다와 마리아와 같이 생명이요 부활이신 예수님을 믿고 각자가 처한 죽음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주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고 문둥병자도 깨끗하게 하시고 무기력한 중풍병자도 일어나 걷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믿음을 주시고 우리가 처한 물질 문제 앞에서 필요를 채워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 될 때 믿음으로 이를 영접하면 마음이 밝아지고 삶이 밝아집니다. 말씀의 빛이 우리 안에 있는 어두움을 몰아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영접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여섯 가지 화(37-54) : 앞에서 예수님은 큰 빛으로 우리에게 오셨고 그를 영접하는 사람의 마음은 빛으로 충만해 집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내 인생 길에서 등불과 같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영적 소경들이었습니다. 아무리 태양이 밝게 비추어도 소경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소경은 여전히 어두움 가운데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매주 들으면서도 빛보다 어두움에 거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했습니다.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겼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있어서 식사 전에 손을 씻는 행위는 위생상의 이유보다 정결의식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한 바리새인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마시라고 준 물로 정결예식을 행하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형식주의를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39-41).” 탐욕과 악독이 그들의 마음을 더럽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마음으로부터 자선을 베풀라고 방향을 주십니다. 그들은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버렸습니다. 그들이 십일조와 구제하는 일의 기초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십일조를 드리고 감사헌금을 드리고 건축 헌금을 드립니다.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에 구제헌금을 드리고 희생적으로 섬깁니다. 그리하면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우리는 발광체가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빛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빛을 받아서 반사시키는 일을 합니다. 즉 우리 마음이 깨끗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빛을 잘 반사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더러우면 빛을 반사시키기보다 흡수하고 산란시켜 버립니다. 우리 마음이 깨끗해지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잘 반사시키게 됩니다. 우리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을 막음으로써 깨끗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것을 줌으로써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41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돈, 재능, 시간, 지식 등등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중보기도와 정신적, 육체적인 노동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줌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또한 구제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인 구제입니다. 영적으로 굶주려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나누어 주고 영원한 구원을 선물로 받도록 돕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구제입니다. 우리 목자님들은 바로 이런 구제를 하는 귀한 분들입니다. 우리가 평생 이런 영원하고 값진 구제를 하는 목자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 바리새인들이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 것 즉 하나님을 섬기고 영광을 돌려야 할 사람들이 도리어 사람들의 섬김을 받고 인정을 받고 높임을 받고자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비출 수 없습니다. 평토장한 무덤과 같이 다른 사람을 부정하게 만듭니다.
한 율법교사는 예수님께서 신랄하게 말씀하시자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라고 항변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당시 성경 선생이었던 그들이 지기 어려움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자신들은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성경 선생은 자신이 먼저 말씀에 순종을 해 봐야 어떤 점이 어려운지,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잘 순종하는 것인지, 또 순종에 따르는 축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먼저 해 보고 제자들에게 따라오도록 해야 합니다. 자기는 그를 돕기 위해서 한 손가락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는 어두움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진리의 빛이 마음에 충만히 임하게 됩니다. 다 안다고 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구체적으로 순종할 때 우리의 삶은 빛으로 충만해집니다.
율법교사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와 사도들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초대 교회를 핍박하면서 자기 의를 쌓았습니다. 그는 마음이 어두웠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빛 가운데 만나고서야 눈의 비늘이 벗겨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 판단할 수 있는 지식이 생깁니다. 이 지식으로 주의 종들과 교회를 비난하고 원망하고 핍박하면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그들의 부족함을 위해서 기도하고 격려할 때 마음이 밝아집니다. 나도 교회의 일부이기에 책임감을 가지고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형제의 허물을 용서하고 감당하는 사람의 마음과 삶은 하나님의 빛으로 환해집니다.
율법 교사들은 지식의 열쇠를 가졌습니다. 그것을 사용해서 자신도 천국에 들어가고 또 방황하는 사람들을 천국에 들어가도록 도와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습니다(52). 선지자들을 죽이는 것은 살인 행위 자체로서 악한 것이지만 더 악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것을 차단시켜 버리는 행위입니다. 성경 선생은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천국 문을 열고 닫는 사람입니다. 지식의 열쇠를 사용하여 백성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 선생으로서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은 빛을 비추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전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힘써 하지 않으면 자신도 어둡고 세상도 어둡게 만드는 죄악입니다. 23절에서 예수님은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전도하지 않는 사람은 교회를 헤치는 자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전파하는 삶을 살 때 우리의 마음과 삶에 빛으로 충만해 집니다. 말과 삶으로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 세상은 빛으로 환해집니다.
53,54절을 보십시오.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겸손히 회개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들은 회개하기는커녕 자기들의 잘못을 비판하는 선지자들을 죽인 조상들처럼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들은 깊은 어둠 가운데 사는 소경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 마음에 빛이 있는가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이 거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할 때 우리의 인격이 빛으로 채워짐을 배웠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탐욕과 교만과 악독을 회개해야 합니다. 탐욕과 악독을 씻는 길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구제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더러움이 씻겨서 깨끗하게 되면 하나님의 빛을 잘 반사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믿음의 눈으로 현실적인 문제들을 바라보고 극복하여 빛의 자녀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첨부파일
-
data/message1/eb6ae35a62c12d4e8415ba8698fd8165.hwp (0byte)
51회 다운로드 | DATE : 2011-09-25 14:47:1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