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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 19강(9:1-17)너희가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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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296회 작성일 11-08-0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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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누가복음 제19강                                                       
말씀 누가복음 9:1-17
요절 누가복음 9:13a
 너희가 주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예수님은 제자들을 믿음의 사람들이요 심정이 있는 사람들로 키우셨습니다. 제자들이 자기 한계를 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생명을 낳는 사람들이 되도록 훈련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시간과 물질과 능력에 한계가 있지만 예수님을 믿고 우리에게 맡겨주신 양들을 먹이는 목자들이 다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 혼자서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일하셨습니다. 그들이 비록 어리지만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리지만 현장에서 일하면서 하나님의 사람들로 성장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제자들이 이론의 사람들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훈련하셨습니다. 학자들은 예수님을 실천의 대가라고 부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말쟁이들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습니다(행1:8). 우리는 계속해서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고 능력있게 일할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눅 11:13). 주님은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선물인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 권능이 임하게 됩니다. 성령은 우리가 교회의 성숙을 위해서 일하도록 필요한 은사를 주십니다.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은사가 무엇인지 아시고 그 뜻대로 주십니다. 주님은 특별히 우리 공동체에는 말씀의 은사, 지식의 은사, 지혜의 은사를 주셔서 대학생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일대일로 가르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이르셨습니다.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왜 이렇게 생존을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십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이 돈을 믿거나 자기들의 지식이나 기술이나 경험을 믿기보다 오직 하나님을 믿고 일하도록 도우십니다. 제자들이 어리기 때문에 사람을 믿기 쉽습니다. 그러나 구원 역사는 하나님이 친히 이루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해서 나아가 말씀을 전할 뿐입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좋은 도구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도구들을 이용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을 통해서 역사하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도구 자체가 사람을 구원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방법도 연구해야 하지만 방법이 사람을 구원하지 않습니다. 지식도 중요하지만 지식 자체가 사람을 구원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키우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누구든지 그들을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십니다. 이는 비록 제자들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영적 권위와 사도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가져야 함을 가르치십니다. 영접하지 않는 자들로 인해서 위축되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에게 거절당하는 것은 두렵습니다. 그러나 거절당한다고 해서 자기 연민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당당한 자세로 계속 하나님 나라를 전파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제자들은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쳤습니다(6).

  제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을 듣고 분봉 왕 헤롯이 심히 당황했습니다. 이는 어떤 사람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며 어떤 사람은 옛 선지가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함이었습니다. 헤롯은 자기가 요한의 목을 베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듣고 두려웠습니다. 그는 이 사람이 누군가 보고자 했습니다. 복음 전파가 끼치는 영향력은 대단히 컸습니다. 사회적, 정치적으로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한국 근대에 기독교가 들어와서 끼친 영향도 매우 큽니다. 수많은 교육기관, 의료 기관을 세워 이 땅의 변화와 근대화를 주도했습니다. 신분 철폐와 초혼, 축첩, 도박 금지, 금주 금연 운동, 구제와 복지 시스템, 산업화와 민주화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물질적이고 향락적인 이 시대에 우리가 검소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는 가운데 작은 영향력이라도 끼치면 그것이 모여 큰 사회변화를 이끌 수 있습니다. 이제는 생각이나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런 변화를 이끌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복음에 기초한 삶을 살아야 하고 제자들과 같이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는 가운데 작은 변화라도 이끌어 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도들이 갈릴리 각 지를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하고 돌아와서 선교보고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보고를 통해서 제자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나누고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보고를 받으시고 그들에게 쉼이 필요함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따로 제자들을 데리시고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습니다. 제자들은 매우 기뻤습니다. 기대감도 컸습니다. 예수님과 오붓한 시간을 가지면서 재충전하기를 원했습니다.

  제자들이 벳새다에 도착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무리가 어느새 낌새를 알아차리고 따라왔습니다. 한 두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무리였습니다. 제자들의 복음전파를 통해서 수많은 마을에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던 사람들이 찾아온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씀의 능력을 맛보았습니다. 그들은 실제적인 도움도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서 새로운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어디 갈 데도 없었고 오라고 하는 데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언제나 이들을 환영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멀리까지 보내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런데 무리들을 보고 제자들은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자기들의 휴가를 방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셨습니다(11). 예수님은 제자들과 휴식 시간을 갖고자 했는데 무리들이 찾아오자 갑자기 계획을 바꾸셨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다니시며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각 성과 촌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역사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은 찾아온 이들에게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세상 나라의 일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이야기하셨습니다. 성경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창세기는 하나님 나라의 시작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고, 계시록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대해서 기록된 책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찾아온 무리들에게 날이 저물어 갈 때까지 성경을 강해하며 메시지를 열심히 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두 사람도 아니고 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처럼 오랜 시간 동안 말씀을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말씀 공부가 언제 끝날 것인가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 공부는 결론적으로, 마지막으로, 끝으로, 다시 말하면 하면서 계속 이어졌습니다.

  열두 사도들은 참다 참다 못하여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들은 무슨 제안을 했습니까? 12절을 보십시오. “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이니이다.” 제자들은 무리를 보내어 마을과 촌으로 가서 먹을 것을 얻게 하라고 했지만 사실 자신들의 배가 더 고팠습니다. 그들은 휴가를 왔지만 쉼은커녕 무리들을 섬기느라 더욱 지치고 피곤했습니다. 거기다가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가는데 먹을 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만 명이나 되는 무리를 볼 때 빈 들에서 먹을 것을 마련할 수는 없었습니다.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빈 들에서 쓰러지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능력의 한계, 심정의 한계, 관계성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13a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이는 참으로 엄청 부담스러운 말씀입니다. 너무나 파격적인 말씀입니다. 원문에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들 먹을 것도 없는데 만 명 이상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책임을 지고 무리를 먹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이 무리의 목자이기 때문에 그들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책임감이 사람을 위대하게 만듭니다. 책임을 지는 사람이 목자요 리더입니다. 리더가 힘든 이유는 모든 일에 최종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직 내에서 구성원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조사해보니 최고 리더가 가장 높고 그 다음부터는 현저하게 스트레스 지수가 낮게 나왔습니다. 사실 여기서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으시는 분은 제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무리에게 저녁 늦게까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무리를 각 마을로 보내어 먹을 것을 해결하도록 하자는 제자들의 제안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명언입니다. 예수님이 책임을 져야 하는데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심으로 제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이 책임을 지십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을 무리들의 목자로 키우고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도들이 자신들의 한계를 넘어서 무리를 먹이도록 도전하셨습니다. 사도들이 무리에 대해서 작은 책임감을 느꼈을 때 문제를 들고 예수님께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도 사도들이 무리를 먹일만한 음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아셨을 텐데 어찌 하여 먹이라고 하실까요? 대개 문제를 제시하는 사람이 문제를 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무리를 먹이라고 하셨지만 이미 자신의 마음에 무리를 먹이고자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원하신 것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또 문제를 들고 예수님께 나아온 사도들에게 너희가 먹이라고 말씀하심으로 이들의 믿음을 키워주고자 하십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제자들에게도 불가능이 없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그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무리의 목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한 사람의 목자 노릇하기도 어렵습니다. 만 명의 목자가 된다는 것은 훨씬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열 두 사도들이 힘을 합치면 할 수 있습니다. 우리로 말하면 요회 목자 열 두 명이 믿음을 갖고 힘을 합치면 만 명도 먹일 수 있습니다. 홍익대학 학생이 만 명입니다. 이들을 우리 동교센터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먹여야 합니다. 이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이들을 구원해야 합니다.

  그러면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23b절을 보십시오. “여짜오되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 하니(13b)”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한 사람의 한 끼 식사 밖에 되지 않습니다. 사도들은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는 남자가 한 오천 명 됨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먹어야 할 사람들의 입만 보았습니다. 만 개의 입이 먹을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자기들이 가진 것은 한 사람 몫밖에 없으니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살면서 할 수 없게 보이는 것이 많습니다. 내 힘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면 한계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내 인생에 대해서 꿈을 가질 수 있습니다. 불가능한 일들에 도전하여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어머니의 심정과 같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줄 것이 없을지라도 어찌하든지 찾아서, 없으면 빌려서라도 먹입니다. 목자의 심정도 어머니의 마음과 흡사합니다. 우리에게 어머니의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무리를 먹이십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고 방향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하여 다 앉힌 후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16,1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먹고 다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거두니라.”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으시고 감사 기도를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드린 이 보잘 것 없는 것을 기초로 예수님은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없는 것을 찾기보다 있는 것을 찾아보고 그 있는 것을 감사하십니다. 없는 것만 생각하면 절망이 되지만 있는 것을 생각하면 희망이 생깁니다. 없는 것으로 인해 불평하고 원망하면 에너지가 빠져 나가지만 있는 것을 감사하면 에너지가 생깁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드린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떼어 제자들에게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떼어 주셨는데 또 떼어 줄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작은 것을 떼어 주심으로 남자 오천 명,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여 만 명 이상을 먹이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받아서 무리에게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실제적으로 제자들이 한 일은 예수님의 심부름을 한 것입니다. 먹을 것은 예수님이 주셨습니다. 무리가 먹고 배부를 뿐만 아니라 남은 조각을 거두니 바구니 열둘이 가득 찼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능력을 새롭게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일용할 양식을 채워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광야 생활 동안 매일 거르지 않고 먹이신 주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채워주십니다. 저는 여러 사람들의 간증을 통해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번 여름수양회에서 누가복음 15장 말씀을 전한 이아브라함 목자님도 자신의 대학 등록금을 부모님을 통해 채워주셨는데 대학 공부를 할 동안 채워주시고 공부가 끝나니 아버지의 일이 끊겼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이 말씀에 순종했을 때 제자들은 무리를 배부르게 먹일 뿐만 아니라 자신들도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을 배부르게 먹이고자 할 때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귀히 쓰임을 받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말씀이 없어 영적굶주림으로 고통하는 사람들을 먹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맛있고 배부르게 먹으면서 영적인 성장을 지속하는 비결은 이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말씀을 학생들에게, 자녀들에게, 동역자들에게 가르칠 때 하나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힘있게 이루어집니다. 이 시간 주님은 우리에게도 명하십니다. 너희가 홍익대학생 만명에게 먹을 것을 주라! 너희가 태국을 먹이라. 너희가 코네티컷을 먹이라. 너희가 낭트 대학을 먹이라. 너희가 덴버를 먹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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