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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 18강(8:40-56) 두려워 말로 믿기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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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193회 작성일 11-07-24 15:35

본문

2011년 누가복음 제18강                                                   
본문 누가복음 8:40-56
요절 누가복음 8:50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질병과 죽음은 우리의 일상처럼 가깝게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려 주시고 혈루증 걸린 여인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주관자이시오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시간 우리도 두려움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생명을 살리는 역사에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각자에게 있는 두려움의 요소는 무엇입니까? 그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능력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거라사 지방에서 하신 일에 대한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돌아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필요로 했기 때문에 대대적인 환영을 합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 회당장 야이로가 있습니다. 회당장은 회당에서 가장 높은 직책인데 설교자를 선정하는 일이나 성경을 낭독할 사람들을 세웁니다. 회당장은 그 사회에서 매우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다. 이런 그에게 열 두 살 된 외동딸이 있습니다. 열두 살 된 이 딸은 매우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당시 유대사회에서 열두 살이 되면 결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딸이 그 인생을 꽃피워보지도 못하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아야만 하는 야이로는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봤습니다. 이 의원, 김 의원뿐만 아니라 큰 병원에도 가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결국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마지막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합니다(41). 다른 사람들에 대한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뭐고 없습니다. 그는 절박한 심정으로 예수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절망한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진정한 희망이 되십니다.
 
  우리의 딸들이, 아들들이 가진 죽음의 요소들은 무엇입니까? 우울증, 정신적인 연약함, 인간 관계를 잘 맺지 못해서 당하는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짧은 인생이지만 부모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받은 상처들이 있습니다. 해병대에서 일어난 총기 사건도 정 이병이 교회를 다니고 착한 사람이었는데 내무반에서 생활하면서 인격적인 무시와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것이 자기를 괴롭힌 고참들에게 복수심으로 이어졌습니다. 한 고등학생이 시신을 훼손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도 학교에서 다섯 명의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것이 분노로 잠재되어 있다가 엽기적인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자녀들의 문제, 청년들의 상처를 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께 간절히 구하여 치료와 구원의 역사를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간절한 요청을 받고 그의 집으로 따라나섭니다. 가실 때에 무리가 밀려듭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듭니다. 이때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예수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습니다. 혈루증은 자궁 내막염이나 만성 자궁 출혈증으로서 빈혈과 무기력을 동반했습니다. 또 부정한 병이라고 생각되어 사람들과 가까이 할 수도 없습니다. 혈루증 걸린 여자는 완쾌될 때까지 사회로부터 격리됩니다(레 15:1-12, 25-27). 사람들은 혈루증 걸린 자를 멸시 천대하였습니다. 여자로서 혈루증에 걸렸기 때문에 결혼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마가복음 5:26에 보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라고 기록했습니다. 이 여인은 많은 의원들에게  진료를 받으면서 많은 괴로움을 받았습니다. 얼마 있던 재산마저도 다 탕진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보험제도가 잘 되어 있다지만 암이나 중병에 걸리면 재산을 다 날려 버리게 됩니다. 이 여인은 병으로 인해서 인생이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습니다. 예수님께서 문둥병자도 고치고 귀신들린 자도 치료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여인은 누구처럼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안수를 해 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자신의 몸이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기도를 해도 민망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창피한 기도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밀면서 예수님 주위로 몰려들기 때문에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조용히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 뒤로 접근 해 나갑니다. 그리고 단지 그의 옷 가에 손을 댑니다. 그러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온 몸이 뜨거워지더니 혈루 근원이 말라버렸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을 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옷 깃에 손을 대고 몸을 부대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은 사람은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 가에 접촉한 여인뿐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합니다. 교회도 나오고 말씀도 듣고 소감도 씁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을 화합해야 합니다. 똑 같은 말씀을 들어도 믿음을 화합해서 들을 때 내 마음에서 말씀의 능력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믿는 자는 생명력을 충만히 누립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믿음으로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사랑을 실천하기를 기도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더 가까이 가려고 밀고 있을 때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손 댄 자가 누구냐고 물으십니다. 예수님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닙니까? 다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때 베드로가 정중하게 말씀을 드립니다.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이때 예수님이 지지 않고 말씀하십니다.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예수님은 자신의 능력이 나간 것을 인식하십니다. 그는 믿음의 역사에 민감하게 반응하십니다. 믿음이 없이 예수님을 만지면 능력이 나가지 않는데 믿음으로 만진 사람에게 예수님으로부터 능력이 나갑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자기 몸에 손 댄 자가 누구인지 찾으십니다. 여자는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립니다. 그리고 자신이 손 댄 이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합니다. 그녀의 인생 소감 발표가 즉석에서 이루어졌는데 매우 은혜롭습니다.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과 자신의 병에서 나음을 받고자 하는 소원을 불러 일으킵니다. 특히 야이로의 마음에 큰 감동이 됩니다. 그녀의 딸이 12살인데 이 여인은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데서 나음을 받았다는 말을 들을 때 믿음이 더욱 강해집니다. 여인은 자기가 부정한 여인이라 남의 물건이나 옷에 접촉할 수 없는데 허락도 없이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었고 나음을 받은 것에 대해서 죄책감이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능력을 훔친 것 같은 죄의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인의 고백을 들으신 후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4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여인을 딸로 영접해 주시고 그의 믿음을 인정해 주십니다. 고백을 통해서 여인은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고 구원의 확신을 갖습니다. 여인은 이제 나음을 받아서 공동체에 합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여인은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을 선물로 받습니다. 이제 자신의 삶에 이루어진 은혜의 역사를 간증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고백을 통해서 여인의 믿음은 더 견고해집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병자들이 있었겠지만, 이 여자와 같이 예수님을 알고 믿고 의지한 자만이 예수님께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인정치 않고 믿지 않은 자들은 예수님께로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죄인인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긍휼과 능력을 의지하고 그의 보내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할 때 치료를 받고, 생명을 얻고, 구원을 받습니다.

  이렇게 은혜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야이로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집니다. 49a절을 보십시오.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아직 말씀하실 때에”라는 말은 한참 은혜롭게 여인의 간증을 듣고 있었을 때라는 뜻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했고 자리를 뜨기가 싫습니다. 그런데 회당장의 집에서 온 사람이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비보를 알립니다. 야이로가 생각할 때 조금만 더 있으면 집에 도착하여 생명을 회복할 수 있는데 이 짧은 시간을 더 참지 못하고 죽었다니 너무나 통탄스럽습니다. 또한 은혜롭게 말하고 있는 여인이 순간적으로나마 원망스럽습니다. 더 나아가서 계속해서 여인을 붙잡고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사람들도 원망스럽습니다. 이렇게 쉽게 자기 딸이 갈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집에서 온 사람이 전하는 말입니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49b).” 그의 말은 예수님을 위하는 것 같지만 야이로에게 불신을 깊이 심는 말입니다. 그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 현실이 너무나 매정하게 들립니다. 야이로의 불타는 소망에 찬 물을 끼얹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필요없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살아 있는 사람은 고칠 수 있지만 죽은 사람은 어쩔 수 없다는 뜻입니다. 실 날 같은 희망을 품고 버티고 있는 야이로의 마음에 불신의 대못을 박는 듯 합니다. 이제 모든 일이 끝났으니 장례식이나 치르러 가자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할 때 이런 위기가 다가옵니다. 이제까지 해 온 모든 일이 다 헛되다는 생각을 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해 봤자 안 된다는 말도 들립니다. 이런 때가 바로 위기의 때요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50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예수님은 시기적절하게 야이로를 도우십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마음에 일어나고 있는 두려움의 광풍을 보십니다. 그 광풍에 믿음이 날아가 버릴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말씀으로 그를 붙잡아 주십니다. 그의 마음에 들어온 두려움과 싸우라는 것입니다. 두려움의 반대는 믿음입니다. 야이로가 가진 두려움은 무엇일까요? 예수님도 허당이 아닐까? 예수님께 폐만 끼치고 나도 싱거운 사람이 되는 것 아닌가?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 거리가 되는 것이 아닌가? 딸은 영영히 살리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등등 갖가지 염려와 두려움이 그의 마음을 채워갔습니다.

미국의 한 지방신문에 ‘닉 시즈맨’이라는 철도역무원의 죽음을 보도한 기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건강하며 별다른 걱정거리 없이 원만한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여름날 한 직원의 생일잔치라고 해서 모든 직원들이 한 시간 일찍 퇴근하게 되었습니다.직원들은 닉이 냉장차량 속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을 깜박 잊고 냉장차를 잠그고 퇴근했습니다. 닉은 얼마 뒤에야 자기가 닫힌 것을 알고 아무리 안에서 문을 두드리고 고함을 질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여기서 나가지 못하면 나는 몇 시간이 못되어 얼어죽을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닉은 대단히 절망에 빠진 채 칼로 나뭇 바닥에 다음과 같은 글을 새겨 나가기를 ‘너무나도 추워서 온 몸이 마비되어 가는 것 같다. 차라리 그냥 잠들어 버렸으면 좋겠다. 아마도 이게 나의 마지막 말이 될 것이다.’고 했습니다.다음 날 아침 역무원들이 냉장차량의 문을 열어 보니 그 안에 닉이 죽어 있었습니다. 시체를 해부해 보니 얼어죽은 증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밤에 냉장차량의 장치는 작동되지 않았고 그 차량 안은 얼어죽을 정도로 춥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닉은 추위로 얼어죽은 것이 아니라 추위에 대한 공포가 얼어죽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두려움은 이처럼 우리에게 악영향을 줍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각자 다른 형태의 두려움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려움은 모든 사람에게 있습니다. 문제는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직면해야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두려움의 실체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싸워야 할 대상을 잘 알아야 최소한 지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딸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승리에 가득 찬 말씀을 주셨습니다. 야이로의 마음에 현실보다 더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두려움을 몰아내고 소망찬 말씀을 주셨습니다.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믿기만 하라”는 말씀은 믿기만 하면 예수님께서 해결하겠다는 뜻입니다. 처음에 가졌던 믿음을 지속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과거에 발생했는데 변하지 말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믿기만 하라는 말씀은 명령법으로 쓰여 있습니다. 예수님은 위기의 때에 어떤 행동이나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대한 변함없는 신뢰를 요구하십니다. 상황이 바뀌었지만 처음 믿음을 계속해서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점에서 이제까지 병든 자를 치료하시는 예수님을 믿었다면 이제부터는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부활 신앙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위기 상황에서 머물기보다 승리했을 때의 모습은 무엇인가 그려보는 것이 좋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사귀지 못하는 자녀가 많은 친구들 속에서 뛰어 노는 것을 그려보는 것도 좋습니다. 직장 생활에서 큰 성과를 내서 상관과 동료들에게 축하를 받는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양이 없는 분들은 양들이 일대일을 해 달라고 순서를 기다리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작은 문제로 화를 잘 내는 분들은 영적으로 성숙한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서야 합니다. 위기 앞에서 누가 내 대신 싸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깊이 체험하면서 영성이 자라나야 합니다. 이것을 개인신앙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나 혼자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십니다.

  예수님은 야이로가 믿음을 갖고 중심을 지키자 그의 집으로 가십니다. 그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십니다. 이는 집이 좁아서 다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믿음으로 역사할 수 있는 영적 환경을 만드신 것입니다. 주님은 고향에 가셔서도 사람들이 믿지 아니함으로 능력을 행하실 수 없었습니다. 아니 능력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고쳐주셔도 다른 소리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 사람을 높이기 쉽습니다.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그들은 자신들이 언제 통곡하였느냐는 듯이 입을 삐쭉이며 비웃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합니다. 그리고 현실만 인정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다른 관점에서 보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소멸이 아니라 잠으로 보십니다.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죽음은 잠은 자는 것과 같습니다. 잠을 자고 나면 몸이 개운해집니다. 자고 나면 원기가 회복됩니다. 죽음은 부활을 위해서 잠시 잠을 자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야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아이의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아이가 병들어서 아무 것도 먹지 못했음을 아시고 먹을 것을 주라고 명하십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의 권세와 부활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주관자이십니다. 그는 생명의 부여자이십니다. 그는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그를 믿는 자들을 살리십니다. 죽은 영을 살리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놀라는 부모에게 경고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오해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병이나 고쳐주고 죽은 자들이나 살려주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인간과 세상의 더 근본적인 문제, 곧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는 친히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해 세상에 오셨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눅 5:32; 마 20:28).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부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오르십니다. 그의 구속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아십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라고 맡기신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심으로 부활의 권능자임을 보여주십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의 병을 고쳐주심으로 치유의 능력자임을 드러내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생명을 얻기를 바라십니다. 주님은 능력이 없어서 구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구원을 받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기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두려움을 이길 뿐만 아니라 각자의 문제에서 구원을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승리를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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