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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2024년 느 3강(6,7장) 하나님께서 이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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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48회 작성일 24-03-10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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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느헤미야 3강
말씀 | 느헤미야 6장,7장
요절 | 느헤미야 6:16

하나님께서 이루셨다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느헤미야와 백성들의 성벽 건축 공사는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대적들은 공사를 중지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방해하였습니다. 4장이 외적인 공격이라면, 5장은 내부적인 공격입니다. 6장은 지도자 개인에 대한 공격입니다. 지도자를 공격함으로 지휘체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전쟁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도하는 작전입니다. 우리가 이를 알고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에 대한 공격을 어떻게 극복하고 목표를 성취하였는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원수들은 사방에서 느헤미야가 성벽을 건축하여 허물어진 틈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습니다. 그 때는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였습니다. 산발랏과 게셈은 사람을 느헤미야에게 보내어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고 하였습니다. ‘오노’는 유다와 아스돗의 경계에 있고 사마리아와 가깝습니다. 예루살렘 공사 현장과는 하루 걸리는 거리입니다. 그러니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지점입니다. 그들은 실상 느헤미야를 해하고자 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곧 그들에게 사자를 보내어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중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이 네 번이나 이같이 사람을 보냈지만 그는 똑같이 대답하였습니다. 대적들이 네 번이나 같은 편지를 보낼 때 무시해 버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앞서 건축자들을 돌려보내라는 백성들의 요구를 열 번이나 거절했습니다(4:12). 그는 뚝심있게 하던 일을 밀고 나갔습니다. 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그에게 보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당신과 유다 사람들이 반역을 모의하고 있고, 당신이 성벽을 쌓는 것도 그 때문이라는 소문이 여러 민족 사이에 퍼져 있소. a가스무도(a '게셈'의 변형)  이 사실을 확인하였소. 더구나 이 보고에 따르면, 당신은 그들의 왕이 되려고 하고 있으며, 예루살렘에서 당신을 왕으로 떠받들고서 '유다에 왕이 있다'고 선포하게 할 예언자들까지 이미 임명하였다는 말을 들었소. 이러한 일은 이제 곧 왕에게까지 보고될 것이오. 그러니 만나서 함께 이야기합시다.” 그들은 느헤미야가 성벽을 건축하는 이유가 페르시아 왕을 배반하고 왕이 되기 위해서이며, 또 그가 선지자들을 세워서 유다에 왕이 있다는 예언을 퍼뜨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산발랏은 사람들에게 이런 소문이 퍼지도록 의도하였습니다. 과대광고처럼, 또는 그것이 유언비어라 해도 여러 번 들으면 사실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산발랏의 말이 아무리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이 소문이 페르시아 왕의 귀에 들어가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 왕의 신임을 받는 술 관원이고, 예루살렘에 올 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나중에 그의 결백이 밝혀질 수도 있지만, 이런 소문이 왕의 귀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느헤미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압박이 느헤미야와 백성들의 성벽 건축에 대한 동력을 떨어뜨리고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인터넷과 신문에 가짜 기사를 내보내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목적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목적을 이루고, 두려움을 심어 일에서 손을 놓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심겨지면 손이 피곤하여 하던 일을 중지하게 됩니다. 사탄은 지금도 두려움뿐만 아니라 질병이나 무기력, 의심, 인간 갈등을 일으켜서 힘을 쓰지 못하도록 공격을 합니다. 느헤미야는 이런 두려움을 심는 원수들에게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느헤미야는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말한 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느헤미야는 그들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 거짓을 진심의 단칼로 베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우리는 어떻게 원수의 말이 거짓인지 분별할 수 있을까요? 그들이 말하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면 됩니다. 또 기도하고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문제를 드러내십니다. 느헤미야는 기도의 미사일을 날림으로 적들의 공격을 막아냈습니다.

  우리는 자신뿐만 아니라 지도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은 영적 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우기 때문에 표적이 됩니다. 목사와 그의 가정, 요회목자, 가정에서는 가장 등 영적 리더들은 이런 공격에 늘 노출이 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중보 기도를 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가장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가정이 견고해집니다. 그런데 가장을 비난하고 판단하고 정죄하여 힘을 빼면 건강한 가정을 세우기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사탄은 부부 사이를 이간질 시키고 서로 싸우게 만듭니다. 합의할 일이 많기 때문에 말로 싸웁니다. 그러나 배우자는 나의 부족한 것을 보완하고 나를 영적으로 성장시키려고 하나님이 보내신 동역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요회의 동역자들, 무엇보다 부부가 한 마음이 되는 것이 영적 싸움을 잘 하는 비결입니다. 사도 바울도 동역자들에게 자신을 위한 기도요청을 늘 했습니다. “a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a 그, '형제들')(살전 5:25).” “또 하나님께서 전도의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셔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서도 기도하여 주십시오. 나는 이 비밀을 전하는 일로 매여 있습니다(골 4:3).”
 
  이 후에 스마야가 두문불출하기로 느헤미야가 그 집에 심방을 갔습니다. 그는 선지자인데 확신있게 말하였습니다. “그들이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머물고 그 문을 닫자 저들이 반드시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스마야는 느헤미야를 자기 집으로 불러들이고, 죽음을 피하기 위해 성전에 숨자고 제안을 합니다. 그만큼 느헤미야에게 두려움을 심고자 했습니다. 그가 느헤미야에게 성전에 가서 숨자고 한 걸 보면 제사장이었으며, 예언했다고 한 걸 보면 선지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12). 이런 사람이 두 번이나 그들이 자신을 죽이러 온다고 말하니 신뢰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성소에는 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곳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에 율법을 어기지 않고자 합니다. 자신은 도망치지도 않고 외소에 들어가지도 않겠다고 말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스마야가 하나님이 보내신 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스마야는 두려움을 심어 율법을 어기게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이 금지하신 일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스마야의 의도는 이렇게 느헤미야로 하여금 범죄하게 하여 사람들에게 비방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짓게 하려는 것입니다.

  스마야만 그런 게 아니라 여선지자 노아댜와 남은 선지자들 중에서도 뇌물을 받고 느헤미야를 두렵게 하려고 거짓 예언을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성전 건축 때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일으켜 준 사람들이 선지자들이었습니다(스5:2). 그런데 지금은 선지자들이 대적들 편에 서 있습니다. 또한 17-19절을 볼 때 유다의 귀족들이 원수들과 편지 왕래를 하면서 정보를 빼돌리고, 정략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느헤미야의 뒤통수를 쳐서 두렵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을까요? 굉장히 절망적이고 낙심할만한 상황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일을 할 때에 어떤 두려움이 있습니까? 두려움은 증폭됩니다. 두려움의 근본은 죽음입니다. 사람들이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사탄에게 종노릇을 합니다. 그러나 두려움과 맞설 때 우리는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부활 신앙을 가지고 죽고자 하면 살 수 있습니다. 두려움을 이기는 길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주님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사랑과 능력과 절제하는 마음입니다. 두려울 때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 대적들은 두려움을 심어 힘을 빼지만 하나님은 힘을 주십니다. 느헤미야는 두려움으로 약해질 때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함으로 다시 힘을 얻었습니다. 또 대적들은 느헤미야를 해하고자 하였지만, 그는 대적들과 싸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는 총독의 권위를 앞세워 대적들과 싸우지 않고 그들의 악한 소행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갚아주시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영적인 전쟁을 어떻게 해야 승리할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대적들의 말을 붙들고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안전을 앞세우기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법을 어기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고 하나님 한 분만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럴 때 자신을 두렵게 하는 말이 지어낸 말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고자 할 때 두려움을 주는 말들의 실체를 잘 분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영적 지도자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고 하나님 한 분만 두려워해야 합니다. 두려움이 들수록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성벽 건축 역사가 52일만에 끝났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고 모든 대적들이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습니다. 시작할 때는 대적들이 비웃었는데 이제는 거꾸로 그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가뭄과 경제적인 어려움, 그리고 대적들의 무수한 방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건축이 빨리 끝났습니다. 대적들이 볼 때에도 그야말로 초자연적인 역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역사가 가능했을까요? 느헤미야의 리더십과 백성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합력하여 일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 역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왜 대적들의 방해를 허용하셨는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느헤미야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성벽 건축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을 지어 이루시는 크신 하나님이 성벽 건축을 통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을 건축한 후에 성을 지킬 사람들을 세웠습니다. 성벽 건축으로 모든 게 끝난 게 아닙니다. 성을 보호하는 데 성벽이 필요하지만, 성벽이 성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대적들이 낙담하긴 했지만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또 선지자, 귀족들 가운데 대적들과 동맹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느헤미야는 하나니와 하나냐가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였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뛰어나기를 원합니까? 지식에서, 능력에서, 외모에서 뛰어나고자 하기보다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뛰어나기를 기도합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이 하나님께 충성하고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이 친히 그의 안전을 지켜주시고 성벽 공사를 이루시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영적인 공동체의 리더는 능력이 뛰어나거나 인간관계가 뛰어난 사람이면 좋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뛰어난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과 함께 하시고 도와주십니다.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또 예루살렘 주민이 각각 자기가 지키는 곳에서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성벽 건축 때 각자가 맡은 부분을 중수한 것처럼, 자기가 있는 자리를 잘 지키도록 했습니다. 공적인 파수꾼의 직분을 맡은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파수꾼이 되도록 했습니다. 자기 집을 잘 지키는 게 결국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는 길입니다. 우리는 자기가 맡은 직분,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공동체를 지키는 길입니다. 또한 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 집 수리가 필요한 데 그보다 우선 성벽 건축에 힘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인구조사를 하였습니다. 감동을 주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생각을 계속 주시면서 그를 인도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주재권을 가지고 리더와 공동체를 이끄시는 것입니다. 인구조사를 준비하면서 그는 93년 전 처음으로 돌아온 자들의 계보를 발견하였습니다. 선조들이 어떤 마음으로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에 돌아왔고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으면서 성전을 재건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역사 기록을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 남은 자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에 처음 정착했던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와 함께 한 공동체도 남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앞으로 찾아 올 400년의 영적인 암흑기를 견뎌야 할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남은 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많은 시련과 사탄의 방해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역사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대적들과 싸우시고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가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시고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성벽 재건 역사는 하나님이 친히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큰 역사에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를 귀하게 쓰셨습니다. 우리도 힘든 장애물,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일 앞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부르짖어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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