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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2024년 느2강(4,5장) 크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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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82회 작성일 24-03-03 17:14

본문

2024년 느헤미야 2강
말씀 | 느헤미야 4장,5장
요절 | 느헤미야 4:14

크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라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오늘 공부할 4,5장은 성벽 건축을 시작하면서 유다 백성의 공동체가 외부와 내부로부터 받는 공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장은 외부의 공격, 5장은 내부의 공격입니다. 느헤미야는 이런 공격으로 공동체가 분열의 위기가 있었지만 이를 잘 대처하고 성벽 재건이란 목표를 이루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는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산발랏과 도비야는 유다 백성이 성을 건축한다는 말을 듣고 크게 분노하며 비웃었습니다.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고 말하였습니다. 대적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힘을 빼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대신에 자기를 바라보고 낙심하여 역사를 포기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에 패배주의를 심는 것이 사탄의 역사입니다. 오늘날도 캠퍼스에서 전도를 하지 못하게 하니 성경공부 할 학생을 얻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성장 시기는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학생들도 학업을 하면서 알바를 하고, 취직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일대일 성경공부를 할 양을 얻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왜 목자로 살아야 하는지 개인적이 확신이 부족합니다. 어떤 점에서 양들이 없는 것이 아니라 양을 불쌍히 여기고 섬길 준비된 목자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목자들을 준비시키고자 합니다. 또한 사람들이 말씀을 배우기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 싫어한다면 이단들은 왜 성장할까요?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기술이 발달할수록 마음이 공허하고 영적인 갈망이 깊어가기 때문에 진리와 사랑의 돌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목자로 준비가 되고, 지혜롭게 말씀의 씨를 뿌리면 양을 얻게 됩니다. 모두가 힘을 합해서 공동체를 세우고자 힘을 쓰면 교회는 살아나고 성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패배주의로 인해 손을 놓고 있으면 이단과 무신론자들이 득세하고 교회는 쓸모없어 문을 닫게 될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런 외부의 공격을 어떻게 막아냈습니까? 4,5절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그는 사람들과 싸우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불신과 패배의식을 심는 자들이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음을 지적하고 심판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유다 백성은 마음을 들여 일을 하였습니다. 사탄의 시험에 들지 않고 하던 일에 집중하였습니다. 사탄의 시험이 있을 때에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가르치는 일에 더욱 힘을 쓰면 스피릿이 생기고 실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이라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즉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찾아야 한다고 주님은 잃은 양과 탕자의 비유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이를 위해서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잃은 양을 찾으면 제일 좋은 것을 가지고 잔치를 베풀어야 합니다. 교회가 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를 잔치를 베풀어 알려야 합니다. 돌아온 탕자를 맞이한 아버지와 같이 교회는 돌아온 이들에게 모든 지원과 도움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돌아온 이들을 돕고 세우는 시스템을 가동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세우는 선순환이 일어나야 합니다.

  북쪽에서는 산발랏, 동쪽에서는 암몬 족속인 도비야, 남쪽에서는 아라비아 사람들, 서쪽에서는 블레셋인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였습니다. ‘중수’는 ‘아루카’(repairing)라는 단어로, 상처가 치유되고(healing)  상처 위로 새 살이 돋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벽 중수뿐만 아니라 유다 백성들이 회복되는 소망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수들은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며 실제적인 공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였습니다.

  그런데 원수들 곁에 살고 있는 유다 사람들은 김을 빼는 말을 합니다.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우리 힘으로 성벽을 건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원수들은 이르기를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그들 가운데 달려 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은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열심히 일하는 백성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즉 예루살렘이 위험하니 집으로 돌아오라고 종용했습니다. 당시 유다 외곽에 있는 마을과 성읍에서 성벽 건축을 위해 일꾼들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열 번이나 찾아온 걸 보면 얼마나 집요하게 성벽 재건을 방해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도자 느헤미야로서는 어떻게 외부의 공격을 방비하였습니까? 13,14절을 보십시오. “내가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이 그들의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하고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나라를 잃으면 기업도 가정도 고통을 하게 됩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일은 결국 자기를 위하는 일입니다. 느헤미야의 방비는 실제적이었습니다. 그는 계획과 진행이 치밀하고 전략을 가지고 싸웠습니다. 우리도 힘이 있어야 평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대적들은 자기들의 의도가 알려지자 좌절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꾀를 폐하셨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다 성에 돌아와서 각각 일하였습니다. 

  16-18절을 보십시오. “그 때로부터 내 수하 사람들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절반은 일을 하고 절반은 경계를 서고, 한 손에는 병기를 잡고 다른 한 손에는 도구를 잡고 일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철저한 경계 태세를 유지하면서 일을 하였습니다. 사실 한 가지만 집중하기도 힘든데 두 가지를 다 한다는 것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먼저 자립을 하고 나서 사명을 감당하자고 말합니다. 돈을 벌고 나서 양을 치고 사명을 감당하자는 말은 사탄의 전략입니다. 먼저 급박한 일을 해결하고 나서 사명을 감당하자고 말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두 가지를 다 하도록 도왔습니다. 여기서 볼 때, 느헤미야는 기도만 하고 나머지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신 게 아닙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최선을 다 해서 감당할 뿐만 아니라 마치기까지 일을 하였습니다. 하나님도 창조하시던 일을 육일 동안 마치시고 쉼을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와 백성들이 최선을 다해 싸우고자 할 때 그들을 위해 싸우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공사가 크고 넓으므로 성에서 떨어져 거리가 멀기 때문에 나팔수를 두어서 대비했습니다.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고 말하며 격려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같이 공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습니다. 그들은 오분 대기조와 같이 옷을 벗지 아니하였고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습니다. 그들은 대적들의 공격을 두려워하여 잠시 건축을 중단하고 무력 방어에만 집중하기 쉽습니다. 사실 하나만 하기도 벅찹니다. 그러나 그들은 건축을 중단하지 않고 동시에 건축과 방비를 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기도하는 동시에 행동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동시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에 백성들 앞서 솔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5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내부에 분열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1절에서 “그 때에 백성들이”라는 말과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미 있던 유대인들과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었습니다. 남아 있던 자들은 천한 사람들이고 능력이 없던 자들이었습니다. 돌아온 자들은 돈을 가지고 돌아오고 능력이 많아서 일을 잘 했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여기에 있던 백성들을 동족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이런 차별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별이 갈등으로 번졌습니다. 갈등을 잘 풀어내지 못하면 둘 다 망하게 됩니다. 백성들은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다”고 호소합니다. 같은 형제인 데 형제 같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가진 자들이 없는 자들을 형제처럼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형제 의식’은 이스라엘 백성을 단순한 민족 공동체가 아닌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가 되게 하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그런데 공동체의 핵심 가치가 무너질 수 있는 위기 상황이 온 것입니다. 

  본분에서 볼 때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부류는 당장 먹고 살 양식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느헤미야에게 양식을 얻게 해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아마도 총독의 권위를 이용해서 저장하고 있는 양식을 나눠달라거나 가진 사람들에게 압력을 넣어서 양식을 나누라는 요구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부류는 밭과 포도원과 집이 있어서 조금 형편이 나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흉년 때문에 제대로 수확을 할 수 없었고 또 남편들이 성벽 건축하는 일을 하느라 농작물을 수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땅과 집을 저당 잡히고 곡식을 얻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세 번째 부류 역시 밭과 포도원이 있지만 페르시아 왕에게 과중한 세금을 내기 위해 역시 땅과 포도원을 저당 잡힌 사람들이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높은 세금은 악명이 높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들 가운데는 빚을 갚지 못해 자녀를 종으로 팔아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밭과 포도원이 돈 빌려준 사람에게 넘긴 경우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돈을 빌려 주고 이자를 혹독하게 받았습니다. 이자는 빚의 악순환을 초래합니다.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면서 신앙생활을 할 때에 어려운 동역자들을 잘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관심을 가지고 살펴야 합니다. 구제를 함으로 실제적인 어려움들을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가족 공동체가 유지됩니다.

  느헤미야는 백성의 부르짖음과 이런 말을 듣고 크게 노하였습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고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었습니다. ‘깊이 생각했다’는 말은 분노의 감정 속에서도 냉철하게 문제의 본질과 해결책을 찾았다는 뜻입니다. 그는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 것을 대회를 열고 그들을 쳐서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도로 찾았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더구나 우리의 손에 팔리게 하겠느냐” 그들이 잠잠하여 말이 없기로 느헤미야는 해결방안을 제시합니다. 그는 우리가 이자 받기를 그치자고 말합니다. 그리고 꾸어 준 돈이나 양식이나 새 포도주나 기름의 백분의 일을 돌려보내자고 말합니다. 백성들은 느헤미야의 말대로 순종하여 돌려보내고 그들에게서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리고 맹세를 시켰습니다. 그는 옷자락을 털며 말하였습니다. “이 말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그 집과 산업에서 털어 버리실지니 그는 곧 이렇게 털려서 빈손이 될지로다 하매 회중이 다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습니다.”
 
  가난한 이웃을 돌보지 않고 착취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며 하나님의 성품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과거 그들은 이 율법을 지키지 않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성전 건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율법에 따라 ‘가족 공동체’를 회복하는 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수치가 무엇인가요? 가난한 게 아닙니다. 성전 건물이 없는 게 아닙니다. 가족 공동체가 아니라 이방인들하고 다르지 않은 세속적인 공동체로 사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유익을 앞세우고 사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제안은 한마디로 가진 사람들이 기득권을 포기하자는 말입니다. 손해 보자는 말입니다. 자기의 기득권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대적할 것인가, 공동체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기의 기득권을 포기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물질적인 손해를 보더라도 공동체를 유지하고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총독의 권한을 다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12년 동안 총독으로 세움을 받았지만 총독의 녹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먼저 있었던 총독들은 백성에게서,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사십 세겔을(노동자 다섯 달 치 품삯)을 징수하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 같은 일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성벽 공사에 힘을 다하며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그의 부하들도 함께 모여서 일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매일 150명 분의 식사 대접을 하였습니다. 매일 소 한 마리와 살진 양 여섯 마리를 준비하며 닭도 많이 준비하고 열흘에 한 번씩은 각종 포도주를 갖추어 섬겼습니다. 이는 백성의 부역이 중하였기 때문에 이들을 위로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는 지도자로서 먼저 희생하고 섬김으로 좋은 본을 보였습니다. 그는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기억하사 은혜 베푸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는 백성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으로 상처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보고 일을 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찾는 하나님은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는 사람들의 반응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이 기억하실 것을 믿고 끝까지 백성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부역으로 고생하는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외부의 대적의 공격을 받을 때도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싸우도록 백성들을 도왔고, 내부의 분열의 위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외적, 내적인 공동체의 위기를 극복하는 느헤미야의 리더쉽은 결국 하나님 경외하는 마음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우리가 봄학기를 맞이하여 캠퍼스에는 학생들로 북적거리게 됩니다. 이 중에는 목자의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잃은 양들이 있습니다. 요회별로 서로를 돌아보아 사랑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나아가 양들을 얻을 전략을 짜고 이들을 섬길 준비를 해야 할 때입니다. 각자가 한 손에는 성경, 한 손에는 도구를 들고 일을 하면서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와 사랑의 수고를 받으시고 풍성한 열매로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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