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주일말씀 성경별메시지 심포지엄 성경 검색
문제지 성경별문제지

사도행전 2023년행24강(28장) 로마의 셋집에서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63회 작성일 23-12-11 09:48

본문

2023년 사도행전 제 24 강         
말씀 | 사도행전 28:1-31
요절 | 사도행전 28:30,31

로마의 셋집에서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오늘 말씀은 사도행전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오순절 강림 이후에 성령께서는 제자들에게 오셔서 그들을 변화시키셨습니다. 성령의 권능이 임하자 제자들은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전반부는 베드로를 중심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지고, 후반부에는 핍박자 바울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임하사 그를 중심으로 이방 선교가 이루어집니다. 바울은 로마에 도착하여 셋집에서 담대하게 거침없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로 인해서 복음은 로마 사회로 급속히 전파되기 시작합니다. 바울은 쇠사슬에 묶이고, 셋집과 같은 열악한 환경에 있었지만 그가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 나라와 왕 되신 예수님을 증거했을 때 사람들이 변화되고, 시위대와 황궁이 변화되고 결국 로마 세계를 변화시켰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모든 것이 풍족한 로마 제국 사람들에게 왜 하나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했을까요? 

  난파된 알렉산드리아 배가 구조된 후에 그들은 멜리데 섬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멜리데는 오늘날 몰타섬입니다. 이곳에는 사도 바울 기념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바다에서 수영을 하던지, 널빤지를 잡고 육지에 올랐는데 여전히 비가 오고 있고 날이 찼습니다. 저체온증으로 인해서 입술은 새파랗게 변했고 온 몸은 오들오들 떨고 있었습니다. 그 섬의 원주민들이 난파된 사람들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다 영접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도 춥지만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었습니다. 그때 나뭇가리에 숨어 있던 독사가 뜨거움으로 인해서 나와 바울의 손을 물고 있었습니다. 원주민들이 이를 보고 서로 말했습니다.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한다.” 바울은 독사를 보고 펄쩍 뛰거나 당황하지 않고 그 짐승을 불에 떨어버렸습니다. 그는 조금도 상함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알고 기다렸습니다.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는 신이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7,18절 “믿는 자들은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이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엄청난 폭풍 중에서도 구원하셨고, 뱀의 독으로부터도 그를 구원하셨습니다. 미신을 숭배하는 원주민들은 이런 바울을 통해 전해지는 복음을 들을 마음 준비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삼개월을 이 섬에 있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었습니다. 그가 바울 일행을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였습니다.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였습니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바울과 의사 누가는 합심해서 병자들을 치료하였습니다. 병이 나은 그들은 후한 예로 바울 일행을 대접하고 떠날 때에 그들이 쓸 것을 배에 실었습니다. 바울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가 그의 사랑과 섬김을 통해서 멜리데 섬 사람들에게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이 세상에 오셔서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는 인생을 사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내어주시기까지 죄인들을 섬기셨습니다. 바울은 이런 예수님을 본받아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섬기고 돌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맛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섬김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합니다.   

  석 달 후에 바울 일행은 로마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형제들이 바울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나왔습니다. 압비오 광장은 로마에서 남쪽으로 70Km 정도 떨어졌고, 트레이스 타베르네는 56km 정도 떨어졌습니다. 로마의 성도들은 하룻길 이상을 걸어서 바울을 영접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그 일행을 뜨겁게 영접하고 섬겼습니다. 그들은 죄수의 몸으로 쇠사슬에 묶여서 가고 있는 바울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대략 3년 전에 고린도에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로마서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가 바울과 성도들 간에 더욱 깊은 관계를 맺도록 했습니다. 그들의 환영과 섬김으로 인해서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은 큰 것보다 작은 것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정성스러운 한끼의 식사 대접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또 우리가 성탄 카드를 보냈는데 이방 땅에서 외롭고 사명을 감당하느라 지치고 피곤한 선교사님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되었습니다. 바울은 죄수의 몸이지만 가택 연금 상태에서 약간의 자유를 허락받았습니다. 그에게는 아무런 제제를 받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습니다. 바울은 주택을 임대하여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바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예배할 수 있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그의 곁에는 항상 한 명의 군인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외출이 금지된 채 감시하는 군인과 사슬로 연결되어 살았습니다(20). 그래서 군인들은 사슬에 묶인 채로 바울에게 복음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궁궐 시위대에 속한 군인들로서 하루 네 시간씩 근무를 했습니다. 매일 6명의 군인들이 바울을 떠나지 않고 곁에서 지켰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매일 성경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군인들은 싫든 좋든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하루 4시간씩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말씀을 배웠겠습니까? 아마 6개월 정도 말씀 공부를 하고 변화되었을 때 새로운 군인들로 교체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교체된 군인들과 또 다시 말씀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생명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수고하는 것을 힘들어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로마의 셋집에 2년 동안 머무르며 꾸준하게 자신을 지키는 군인들과 성경을 공부했습니다. 빌립보서 1장 12-14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로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고 기록했습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쓴 편지입니다. 바울은 비록 죄수의 몸으로 가택연금을 당했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힘써 말씀을 가르쳤고 그 결과 시위대 안에 예수님을 주로 믿고 따르는 군인들이 생겨났습니다. 

  바울은 또 유대인 지도자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로마에 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자신은 아무 죄가 없었지만 유대인들이 자신을 죽이고자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이사에게 상고하여 로마에 오게 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로마에 온 진짜 이유는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이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의 소망은 ‘죽은 자의 부활’입니다(23:6; 24:15; 26:6,7). 죽은 자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되었습니다. 그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모든 불의한 세력들을 멸망시키고 다윗 왕국과 같은 강대한 나라를 이루실 것을 소망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소망 때문에 고난을 견디며 살았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가 마침내 이 땅에 오셨다는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서 쇠사슬에 매인 채 로마에 왔다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메시아에 의해서 다스림을 받는 영광스러운 다윗 왕국의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성경에서 예언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처럼 예수님이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바울에게는 예수님 한 분이 전부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얻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 자신의 일생을 헌신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의 남은 고난에 동참했습니다. 그는 날마다 죽고 날마다 부활의 권능을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소원하고 바라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 가운데 살다가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에게 유일한 참 소망입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한 집에 많이 왔습니다.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왕국입니다.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습니다. 민국은 선거의 의해서 시민이 뽑은 대통령이 헌법에 기초해서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왕 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법인 말씀으로, 진리로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사랑과 정의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정의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지 못하리니 하나님 나라는 너희 속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내 마음에 모셔들이면 그가 나를 통치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가 내 속에 이루어집니다. 로마서 14:17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내가 예수님을 왕으로 내 마음에 영접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내 마음에 들어오십니다. 그가 내 마음을 다스릴 때에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도록 죄를 깨닫게 하시고, 의로운 삶을 살도록 이끄십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바르게 회복된 사람은 자유와 기쁨과 평강을 누립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를 마음에 간직한 사람은 이 나라를 사람들에게 사랑과 섬김을 통해서 나누어 줍니다. 우리는 말씀을 나누어 줄 뿐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깁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는 실제적으로 개인적으로 우리의 공동체 속에서 자라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정치, 경제, 사회, 개인 속에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합니다. 

  당시에는 구약 성경만 있었는데 바울은 그 성경 안에 메시아에 관한 예언된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와 죽으심과 부활을 설명했습니다. 구약 성경은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라면 신약 성경은 오신 메시아에 대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할 때 우리는 구원에 이르는 진리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할 때 우리는 신자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죄를 깨닫게 되고 무엇이 바르고 의로운 길인지 깨우침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하게 됩니다. 성경을 공부할 때에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딤후 3:15-17).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의 지혜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는 자로 하여금 지혜롭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16:15,16).” 이와 같이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말씀을 들어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현실입니다. 복음을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귀를 닫아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강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영적인 소경이요 귀머거리였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들려줍니다. 26-28절을 보십시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바울은 그들이 떠나기 전에 이사야 6장 9,10절을 인용하여 그들의 불신앙을 강하게 책망하였습니다. 그들의 완악함이 너무나 강해서 자신들에게 전해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가장 먼저 복음을 듣고 구원 받을 수 있는 특권을 받았지만, 그들의 교만과 완악함 때문에 복음을 배척했고 구원의 기회를 상실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듣고 깨달아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은 치유를 받습니다. 죄 사함을 받고 자유를 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치유된 사람들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질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이방인에게로 나아가 복음을 전합니다. 이로써 구원의 선물이 이방인들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의 반응과 관계없이 자신을 위해서 택한 백성들을 불러 모으십니다. 물은 낮은 데로 흐르는 것처럼 복음은 항상 겸손한 자에게로 흘러들어갑니다. 영적 진리를 알기를 소망하는 사람, 비참한 상태에서 구원받기를 열망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이 들어갑니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0,31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사도 바울은 2년 동안 셋집에 자기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습니다. 곁에는 지키고 있는 로마 군인이 있었지만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모든 것을 드러내놓고 쉼 없이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사람이 없을 때에는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를 써서 보냈습니다. 이런 옥중서신을 통해서 오늘날까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사람이요,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바울 한 사람을 통해서 로마 사회가 점차 변화되어갔습니다.
 
  바울은 로마 셋집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말씀으로 도와서 주님의 제자로 키웠습니다. 그들은 또 다른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제자로 키웠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주님의 제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여 황궁 안에도, 시위대 안에도, 로마 법정 안에도, 보통 시민들 안에도 헌신된 주님의 제자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들로 인해서 로마 사회는 조금씩 바뀌었고 나중에는 로마 사회 전체에 교회가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로마 황제를 비롯한 권세자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기독교를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서 고문을 하고 화형에 처했습니다. 로마 도시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습니다. 카타콤이라는 지하 무덤에 숨어 살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계속해서 불어났습니다. AD 313년 콘스탄틴 대제는 밀라노 칙령을 통해서 기독교를 공인합니다. 392년에는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받아들입니다. 로마 인구의 54%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섬기는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셋집에서 시작된 성경공부를 통해서 로마가 복음으로 정복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말씀을 가르치고 전할 수 있는 성경선생을 양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생명을 걸고 일대일 성경 공부를 인도했습니다. 셋집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셋집에서 하나님 나라가 전세계로 퍼져나갈 소망으로 충만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도행전은 바울이 로마의 셋집에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모습으로 끝납니다.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복음 역사는 바울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완성될 것입니다. 바울의 셋집처럼 열 명, 스무 명이 모여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배우고 주님의 능력을 덧입어서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이 누룩처럼 소리 없이 세상으로 스며듭니다. 우리가 있는 이곳에 바울처럼 복음에 사로잡힌 사람, 주님을 사랑해서 주님으로 인하여 복음에 얽매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을 때,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캠퍼스 영혼들이 변화되고 우리가 사는 도시가 축복의 도시가 될 것입니다. 이승만은 한성감옥에서 성경을 읽다가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40명을 구원을 받게 하였고 감옥에 성경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들은 감옥을 복당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를 기독교 국가로 만들고자 하는 비전을 글로 써서 발표하였습니다. 또한 우리 선배들은 성서한국 세계선교라는 구호를 외치며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소감을 쓰며 실천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지난 60년 동안 우리 모임 가운데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셔서 일대일 성경공부를 통해서 놀라운 구원 역사를 이루어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을 통해서 사도행전의 역사를 계속하고 계십니다. 오늘이 사도행전 마지막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은 열린 상태로 끝을 냅니다. 사도행전 역사는 계속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를 통해서도 이 역사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 역사에 동참하는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함께 하길 기도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322건 5 페이지
주일메시지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1262 느헤미야 이엘리야 83 03-18
1261 느헤미야 이엘리야 48 03-10
1260 느헤미야 이엘리야 182 03-03
1259 느헤미야 이엘리야 50 02-25
1258 에스라 이엘리야 242 02-18
1257 에스라 이엘리야 55 02-12
1256 에스라 이엘리야 56 02-04
1255 에스라 이엘리야 66 01-28
1254 에스라 이엘리야 61 01-21
1253 디모데서 이엘리야 64 01-14
1252 신년특강 이엘리야 79 01-01
1251 누가복음 이엘리야 64 12-25
1250 누가복음 이엘리야 59 12-18
열람중 사도행전 이엘리야 64 12-11
1248 사도행전 이엘리야 83 12-04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