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023년행 23강(27장) 로마로 가는 길에서
페이지 정보

본문
2023년 사도행전 제 23 강
말씀 | 사도행전 27:1-44
요절 | 사도행전 27:24
로마로 가는 길에서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오늘 말씀은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에 태풍을 만납니다. 이때 배가 파선하는 가운데 바울은 죄수가 아니라 목자로써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인생 항해를 할 때에 많은 어려움을 만납니다. 경제적인 위기, 인간관계의 위기, 건강의 위기, 신앙생활의 위기 등등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위기에 있나요? 이런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고 극복해야 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한 바울. 바울 일행 속에는 누가, 아리스다고, 디모데, 두기고 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가는데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가 책임을 지고 인솔하였습니다. 그들은 시돈에서 구브로 해안을 따라 항해하여 무라시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이탈리아로 가려 하는 국제선 격인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승선하였습니다. 순풍이 불면 무라시에서 니도 까지는 하루면 갈 수 있는 길인데 역풍으로 인해서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미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선장은 이곳에서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미항은 작아서 큰 배가 겨울 동안 머물기에는 적당하지 않았습니다. 승객들에게 충분한 숙박을 제공할 수 있는 여건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바울은 더 이상 항해를 계속하지 말 것을 권고했습니다. 앞으로 항해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어려움을 예견했습니다. 그는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을 했을까요? 바울은 여러 번 이 길을 오간 경험이 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였습니다. 지금은 역풍이 불어서 항해하기가 어려운 때입니다.
그러나 항해의 권한은 백부장에게 있습니다. 백부장의 지시에 따라서 선장이 이끌어 갑니다. 선장은 자기의 전문 지식과 경험을 믿고 나아갑니다. 선주는 돈을 위해서 빨리 가는 것이 좋습니다. 결국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었습니다. 또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는 자가 더 많았습니다. 여론과 함께 책임자가 이렇게 결정을 하면 우리는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하였습니까? 처음에는 남풍이 순하게 불자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기분 좋게 나아갔는데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갔습니다.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갔습니다. 이들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렸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습니다. 이것은 당시 상황이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해와 별은 나침반 역할을 하는데 해와 달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큰 폭풍으로 배는 파손되고 물은 차올랐습니다. 시꺼먼 바다 위에서 거대한 파도가 배를 덮칠 때마다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롤러코스터나 바이킹을 타는 것 같은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선장의 항해에 대한 지식과 경험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백부장과 군인들의 무기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선주는 화물도 잃고 배도 잃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한계적인 상황 속에서 모든 사람이 절망하고 죽음의 위험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때 오직 한 사람 바울만이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떻게 죽음의 위협 가운데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일어나서 사람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줄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함께 하면서 그를 로마로 이끌고 계셨습니다. 바울은 미래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분명하였습니다. 로마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했습니다(히 11:1). 바울은 믿음으로 행동과 힘을 끌어내는 미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과거에 매이거나 좌우되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알고 그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면서 하루하루를 살았기 때문에 늘 앞으로 이루어야 할 비전과 열정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고자 살고 있기 때문에 고난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바울을 주님은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그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의 일을 행하십니다. 사람들은 바울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고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십니다. 고난 가운데서 바울이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 더 잘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둘째, 비전을 제시하는 바울.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습니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합니다.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바울은 죽음의 공포로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안심하라고 위로합니다. 배는 큰 손상을 입을 것이지만 그들의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다고 말합니다. 23-25절을 보십시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모든 사람이 절망을 하고 있을 때 믿음을 갖고 희망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참된 지도자입니다. 목자는 절망적인 시대에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희망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하나님과 바울의 관계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자임을 강조합니다. 바울이 폭풍 속에서 믿음을 잃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구원의 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바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로마에 있는 가이사 앞에 서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뜻을 이루고자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어떠한 폭풍이나 재난도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바울은 죽어서도 안 되고 죽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는 결코 우리의 생명을 취하지 않으십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분들이 있습니다. 관심이 과거에 매어 있던지 현재의 문제 해결에 온 힘을 쏟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우리는 현재 삶의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우리는 미래를 생각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신년 계획을 세울 뿐만 아니라 5년, 10년, 20년 후를 생각하며 현재를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비전이 없으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열심히 살고 있는데 제 자리 걸음만 할뿐입니다. 잠언에서도 비전이 없으면 사람이 방자해진다고 했습니다(잠 29:18). 울창한 숲 속에서 사람들에게 앞으로 쭉 걸어가라고 하면 대부분 20m이내의 원을 그리며 걷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나가야 할 이정표, 내 인생의 목표가 필요한 것입니다. 기도하시면서 한 해의 목표를 잡고 2024년 12개월의 계획을 잘 세워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바울과 함께 항해하는 자들을 다 바울에게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배 안에 있는 사람은 바울을 제외하고 275명입니다. 하나님은 이들 모두를 바울에게 맡기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 가운데 현재 그들의 목자로서 그들을 돌보고 섬깁니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하나님의 말씀이 고난을 이기는 원동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고난 가운데 있는 현재 그의 인생에 빛을 비추어 주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나님은 우리를 사실적이고, 개인적이고, 실제적으로 도우십니다. 바울의 이 고백은 듣는 사람들에게 평안과 용기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셋째, 바울의 섬김의 리더십. 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그들이 아드리아 바다에서 이리 저리 쫓겨가다가 자정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였습니다. 그들은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였습니다.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 놓았습니다. 그들은 세월호의 선장과 승무원들과 같았습니다. 무책임하게 자기들의 목숨만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바울은 사공들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기 위해서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를 로마에 반드시 가게 하시고 자기와 같이 있는 모든 승객들의 생명을 살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는 그 약속만 붙들고 뒷짐 지고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폭풍 가운데서도 깨어 상황을 파악하였고 사공들이 도망가려는 것을 알고 즉시 막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도록 자기 편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책임을 다하는 자세를 통하여 자신의 주권적인 뜻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자기의 뜻을 이루시지만 사람의 책임 있는 행동을 통해 일하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믿었고,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책임성 있게 분별하고 섬겼습니다. 선원들이 없으면 돛은 누가 내리고 키는 누가 조종하겠습니까? 화물을 버려 배를 가볍게 하는 작업을 누가 하겠습니까? 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선원들의 역할이 필수적이었습니다. 바울은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대신에 어떻게 하면 사람을 살릴 것인가를 고민하며 그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사공들의 잘못을 보고 징계를 하거나 잘라 내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들의 존재가치를 귀히 여기고 공동체를 위해서 헌신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신실하신 마음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성품과 그의 일하는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군인들은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렸습니다.
33,34절을 보십시오.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바울은 낙담하여 지쳐 있는 그들에게 음식을 먹고 힘을 내라고 위로합니다. 그리고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자신이 먼저 떼어 먹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승객과 선원들 모두가 안심하고 받아먹었습니다. 사람이 먹어야 힘이 생기고 먹어야 우울한 마음이 사라지고 희망이 피어오르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함께 먹을 때 공동체가 견고해 집니다. 마음에 즐거움이 생깁니다. 잘 먹는 것이 우리의 구원을 위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영의 양식인 말씀도 잘 먹어야 하고 육의 양식인 밥도 함께 잘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영혼과 육체로 지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무시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들은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구원을 위해 필요한 일에 집중하였습니다. 우리도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제자로 키워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제자를 양성하고, 제자들을 통해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집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이번에 화랑 센터와 성탄 연합 예배를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만의 즐거움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을 초청하여 복음을 전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섬기는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는 서비스라고 합니다. 서비스는 종들이 하는 일들입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지만 사실은 우리를 섬기러 오셨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가난한 자들, 과부들, 고아들, 나그네들을 위로하시고 돌보십니다. 우리는 외로운 청년들, 수능을 끝내고 대입을 준비하는 고3, 입시생들, 취준생들, 어려운 이웃들을 초청하여 함께 성탄의 기쁨을 나눌 수 있습니다.
날이 새니, 어느 땅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모래밭이 있는 항만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배를 거기로 몰아 해변에 대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닻을 모두 끊어서 바다에 버리고, 동시에 키를 묶은 밧줄을 늦추었습니다. 이는 자동차의 브레이크를 푼 것입니다. 그리고 앞 돛을 올려서, 바람을 타고 해안 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자동차의 엑셀레이터를 밟은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두 물살이 합치는 곳에 끼여들어서, 배가 모래톱에 걸렸습니다. 이물은 박혀서 움직이지 않고, 고물은 심한 물결에 깨졌습니다. 참으로 위태위태한 상태이지만 육지에 제대로 정박을 하였습니다. 병사들은 죄수들이 혹시 헤엄 쳐 도망할까봐, 그들을 죽여 버리려고 계획하였습니다. 로마법에 의하면 호송하던 죄수들이 도망치면 호송을 맡았던 군사들이 자신들의 목숨으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래서 죄수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서 죽이고자 논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을 구원하기 위해서 군인들의 뜻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수영할 수 있는 사람들은 헤엄을 쳐서 육지에 올라가게 하고,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널빤지를 의지해서 육지에 올라가도록 했습니다. 저마다 죽기 살기로 헤엄을 쳐서 육지에 상륙했습니다. 그들이 밥을 먹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기진맥진하여 죽는 사람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로 인해서 모든 죄수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목자 한 사람이 난파당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변화시켜 276명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난타당한 배와 같은 가정, 요회, 직장을 구원하는데 쓰임을 받을 수 있을까요?
첫째로, 인생의 항해 속에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흔히 인생을 항해에 비유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순풍을 만나기도 하고 역풍을 만나기도 합니다. 인생이란 배가 난파되어서 구원의 소망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풍파를 만나서 원치 않는 방향으로 떠밀려갈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기회주의자들은 갈팡질팡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낙담하고 무기력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위로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온전한 사람은 성실하게 올바른 길을 계속 행하게 됩니다. 그럴 때에 구원의 길, 사람을 살리는 길로 인도를 받게 됩니다.
둘째는, 책임감을 가지고 섬기는 것입니다. 2014년 4월 16일 476명을 태운 세월호는 인천항을 출발해서 제주도를 향해 가다가 전남 진도에서 조류에 휩싸여 침몰했습니다. 승선한 476명 중에서 295명이 사망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사망한 사람들은 대부분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고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은 침몰하는 과정에서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들을 버려두고 도망쳐 나왔다는 것입니다. 난파된 알렉산드리아 호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배 안에는 바울이 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과 평안을 유지했습니다. 난파당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면서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한 사람의 책임성 있는 태도로 인해서 275명의 사람들이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난파된 인생의 배에 책임감을 가진 한 사람이 있을 때 난파된 한 영혼이 구원을 받습니다. 난파된 가정을 회복하고 행복하게 자녀를 양육하고 부부농사, 자녀농사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난파된 직장과 사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책임감이 있는 한 사람이 있을 때 그곳에서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책임감이 있는 사람들은 같은 고난을 겪으면서, 현장 속에서 사람들을 돌보고 인도합니다. 우리가 속한 요회와 직장과 가정에서 자기의 책임을 다 함으로 생명을 살리는 역사에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사도행전 27:1-44
요절 | 사도행전 27:24
로마로 가는 길에서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오늘 말씀은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에 태풍을 만납니다. 이때 배가 파선하는 가운데 바울은 죄수가 아니라 목자로써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인생 항해를 할 때에 많은 어려움을 만납니다. 경제적인 위기, 인간관계의 위기, 건강의 위기, 신앙생활의 위기 등등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위기에 있나요? 이런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고 극복해야 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한 바울. 바울 일행 속에는 누가, 아리스다고, 디모데, 두기고 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가는데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가 책임을 지고 인솔하였습니다. 그들은 시돈에서 구브로 해안을 따라 항해하여 무라시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이탈리아로 가려 하는 국제선 격인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승선하였습니다. 순풍이 불면 무라시에서 니도 까지는 하루면 갈 수 있는 길인데 역풍으로 인해서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미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선장은 이곳에서 바람의 방향이 바뀌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미항은 작아서 큰 배가 겨울 동안 머물기에는 적당하지 않았습니다. 승객들에게 충분한 숙박을 제공할 수 있는 여건도 갖추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바울은 더 이상 항해를 계속하지 말 것을 권고했습니다. 앞으로 항해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어려움을 예견했습니다. 그는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을 했을까요? 바울은 여러 번 이 길을 오간 경험이 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였습니다. 지금은 역풍이 불어서 항해하기가 어려운 때입니다.
그러나 항해의 권한은 백부장에게 있습니다. 백부장의 지시에 따라서 선장이 이끌어 갑니다. 선장은 자기의 전문 지식과 경험을 믿고 나아갑니다. 선주는 돈을 위해서 빨리 가는 것이 좋습니다. 결국 백부장은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었습니다. 또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는 자가 더 많았습니다. 여론과 함께 책임자가 이렇게 결정을 하면 우리는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는 어떠하였습니까? 처음에는 남풍이 순하게 불자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기분 좋게 나아갔는데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갔습니다.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갔습니다. 이들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렸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습니다. 이것은 당시 상황이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해와 별은 나침반 역할을 하는데 해와 달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큰 폭풍으로 배는 파손되고 물은 차올랐습니다. 시꺼먼 바다 위에서 거대한 파도가 배를 덮칠 때마다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롤러코스터나 바이킹을 타는 것 같은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선장의 항해에 대한 지식과 경험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백부장과 군인들의 무기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선주는 화물도 잃고 배도 잃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한계적인 상황 속에서 모든 사람이 절망하고 죽음의 위험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때 오직 한 사람 바울만이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떻게 죽음의 위협 가운데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일어나서 사람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줄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과 함께 하면서 그를 로마로 이끌고 계셨습니다. 바울은 미래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분명하였습니다. 로마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했습니다(히 11:1). 바울은 믿음으로 행동과 힘을 끌어내는 미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과거에 매이거나 좌우되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알고 그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면서 하루하루를 살았기 때문에 늘 앞으로 이루어야 할 비전과 열정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고자 살고 있기 때문에 고난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바울을 주님은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그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은 그의 일을 행하십니다. 사람들은 바울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고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십니다. 고난 가운데서 바울이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 더 잘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둘째, 비전을 제시하는 바울.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습니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합니다.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바울은 죽음의 공포로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안심하라고 위로합니다. 배는 큰 손상을 입을 것이지만 그들의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다고 말합니다. 23-25절을 보십시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모든 사람이 절망을 하고 있을 때 믿음을 갖고 희망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참된 지도자입니다. 목자는 절망적인 시대에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희망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하나님과 바울의 관계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자임을 강조합니다. 바울이 폭풍 속에서 믿음을 잃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구원의 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바울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로마에 있는 가이사 앞에 서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뜻을 이루고자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어떠한 폭풍이나 재난도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바울은 죽어서도 안 되고 죽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는 결코 우리의 생명을 취하지 않으십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분들이 있습니다. 관심이 과거에 매어 있던지 현재의 문제 해결에 온 힘을 쏟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우리는 현재 삶의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우리는 미래를 생각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신년 계획을 세울 뿐만 아니라 5년, 10년, 20년 후를 생각하며 현재를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비전이 없으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열심히 살고 있는데 제 자리 걸음만 할뿐입니다. 잠언에서도 비전이 없으면 사람이 방자해진다고 했습니다(잠 29:18). 울창한 숲 속에서 사람들에게 앞으로 쭉 걸어가라고 하면 대부분 20m이내의 원을 그리며 걷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나가야 할 이정표, 내 인생의 목표가 필요한 것입니다. 기도하시면서 한 해의 목표를 잡고 2024년 12개월의 계획을 잘 세워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바울과 함께 항해하는 자들을 다 바울에게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배 안에 있는 사람은 바울을 제외하고 275명입니다. 하나님은 이들 모두를 바울에게 맡기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비전 가운데 현재 그들의 목자로서 그들을 돌보고 섬깁니다.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하나님의 말씀이 고난을 이기는 원동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고난 가운데 있는 현재 그의 인생에 빛을 비추어 주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나님은 우리를 사실적이고, 개인적이고, 실제적으로 도우십니다. 바울의 이 고백은 듣는 사람들에게 평안과 용기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셋째, 바울의 섬김의 리더십. 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그들이 아드리아 바다에서 이리 저리 쫓겨가다가 자정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였습니다. 그들은 암초에 걸릴까 하여 고물로 닻 넷을 내리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였습니다.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거룻배를 바다에 내려 놓았습니다. 그들은 세월호의 선장과 승무원들과 같았습니다. 무책임하게 자기들의 목숨만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바울은 사공들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기 위해서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를 로마에 반드시 가게 하시고 자기와 같이 있는 모든 승객들의 생명을 살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는 그 약속만 붙들고 뒷짐 지고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폭풍 가운데서도 깨어 상황을 파악하였고 사공들이 도망가려는 것을 알고 즉시 막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도록 자기 편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책임을 다하는 자세를 통하여 자신의 주권적인 뜻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자기의 뜻을 이루시지만 사람의 책임 있는 행동을 통해 일하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믿었고,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책임성 있게 분별하고 섬겼습니다. 선원들이 없으면 돛은 누가 내리고 키는 누가 조종하겠습니까? 화물을 버려 배를 가볍게 하는 작업을 누가 하겠습니까? 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선원들의 역할이 필수적이었습니다. 바울은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대신에 어떻게 하면 사람을 살릴 것인가를 고민하며 그 일에 힘쓰고 있습니다. 사공들의 잘못을 보고 징계를 하거나 잘라 내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들의 존재가치를 귀히 여기고 공동체를 위해서 헌신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신실하신 마음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성품과 그의 일하는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군인들은 거룻줄을 끊어 떼어 버렸습니다.
33,34절을 보십시오.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바울은 낙담하여 지쳐 있는 그들에게 음식을 먹고 힘을 내라고 위로합니다. 그리고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자신이 먼저 떼어 먹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승객과 선원들 모두가 안심하고 받아먹었습니다. 사람이 먹어야 힘이 생기고 먹어야 우울한 마음이 사라지고 희망이 피어오르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함께 먹을 때 공동체가 견고해 집니다. 마음에 즐거움이 생깁니다. 잘 먹는 것이 우리의 구원을 위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영의 양식인 말씀도 잘 먹어야 하고 육의 양식인 밥도 함께 잘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영혼과 육체로 지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무시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들은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구원을 위해 필요한 일에 집중하였습니다. 우리도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영혼을 구원하여 제자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제자로 키워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제자를 양성하고, 제자들을 통해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집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이번에 화랑 센터와 성탄 연합 예배를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만의 즐거움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을 초청하여 복음을 전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섬기는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배는 서비스라고 합니다. 서비스는 종들이 하는 일들입니다. 예수님은 섬기는 자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지만 사실은 우리를 섬기러 오셨습니다. 예배를 통해서 가난한 자들, 과부들, 고아들, 나그네들을 위로하시고 돌보십니다. 우리는 외로운 청년들, 수능을 끝내고 대입을 준비하는 고3, 입시생들, 취준생들, 어려운 이웃들을 초청하여 함께 성탄의 기쁨을 나눌 수 있습니다.
날이 새니, 어느 땅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모래밭이 있는 항만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배를 거기로 몰아 해변에 대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닻을 모두 끊어서 바다에 버리고, 동시에 키를 묶은 밧줄을 늦추었습니다. 이는 자동차의 브레이크를 푼 것입니다. 그리고 앞 돛을 올려서, 바람을 타고 해안 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자동차의 엑셀레이터를 밟은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두 물살이 합치는 곳에 끼여들어서, 배가 모래톱에 걸렸습니다. 이물은 박혀서 움직이지 않고, 고물은 심한 물결에 깨졌습니다. 참으로 위태위태한 상태이지만 육지에 제대로 정박을 하였습니다. 병사들은 죄수들이 혹시 헤엄 쳐 도망할까봐, 그들을 죽여 버리려고 계획하였습니다. 로마법에 의하면 호송하던 죄수들이 도망치면 호송을 맡았던 군사들이 자신들의 목숨으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래서 죄수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서 죽이고자 논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을 구원하기 위해서 군인들의 뜻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수영할 수 있는 사람들은 헤엄을 쳐서 육지에 올라가게 하고,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널빤지를 의지해서 육지에 올라가도록 했습니다. 저마다 죽기 살기로 헤엄을 쳐서 육지에 상륙했습니다. 그들이 밥을 먹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기진맥진하여 죽는 사람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로 인해서 모든 죄수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목자 한 사람이 난파당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변화시켜 276명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난타당한 배와 같은 가정, 요회, 직장을 구원하는데 쓰임을 받을 수 있을까요?
첫째로, 인생의 항해 속에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흔히 인생을 항해에 비유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순풍을 만나기도 하고 역풍을 만나기도 합니다. 인생이란 배가 난파되어서 구원의 소망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풍파를 만나서 원치 않는 방향으로 떠밀려갈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기회주의자들은 갈팡질팡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낙담하고 무기력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위로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온전한 사람은 성실하게 올바른 길을 계속 행하게 됩니다. 그럴 때에 구원의 길, 사람을 살리는 길로 인도를 받게 됩니다.
둘째는, 책임감을 가지고 섬기는 것입니다. 2014년 4월 16일 476명을 태운 세월호는 인천항을 출발해서 제주도를 향해 가다가 전남 진도에서 조류에 휩싸여 침몰했습니다. 승선한 476명 중에서 295명이 사망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사망한 사람들은 대부분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고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은 침몰하는 과정에서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들을 버려두고 도망쳐 나왔다는 것입니다. 난파된 알렉산드리아 호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배 안에는 바울이 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과 평안을 유지했습니다. 난파당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면서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한 사람의 책임성 있는 태도로 인해서 275명의 사람들이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난파된 인생의 배에 책임감을 가진 한 사람이 있을 때 난파된 한 영혼이 구원을 받습니다. 난파된 가정을 회복하고 행복하게 자녀를 양육하고 부부농사, 자녀농사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난파된 직장과 사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책임감이 있는 한 사람이 있을 때 그곳에서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책임감이 있는 사람들은 같은 고난을 겪으면서, 현장 속에서 사람들을 돌보고 인도합니다. 우리가 속한 요회와 직장과 가정에서 자기의 책임을 다 함으로 생명을 살리는 역사에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