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37강(18:18-43)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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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누가복음 제37강
본문 누가복음 18:18-43
요절 누가복음 18:22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우리는 지난 주 강청하는 기도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이 아니십니다. 그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속히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응답이 더디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인내로 강청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분명한 한 가지 기도제목을 가지고 믿음의 기도를 드리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한 부자 청년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을 알게 하시고 영생을 얻도록 도우십니다. 그는 근심하며 돌아갑니다. 그러나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특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영생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어떤 관리가 예수님께 나아와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학자들은 이 관리를 니고데모와 같은 산헤드린 의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국회의원과 같습니다. 그는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또 큰 부자였습니다. 니고데모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이 청년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이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막10:17). 그는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17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과 영생을 얻는다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이 청년은 자신이 무엇을 하여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자기 힘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자 했습니다. 자신의 선행과 노력,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자 했습니다. 그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생활을 해 왔고 영생을 얻는데 필요한 자격이 더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선행으로 또는 고행으로, 율법을 행함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청년의 질문에 무엇이라고 대답하십니까? 19,2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십계명 중에서 사람 사이에 지켜져야 하는 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청년을 깨우치기 위해서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 청년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 발견을 하도록 도우시면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그 누구도 율법을 완전히 지키지 못하고 다만 ‘율법으로 죄를 깨달을 수 있을’(롬 3:20:갈 3:24)뿐입니다. 마 5:17-48절 산상 수훈에서 예수님은 율법을 재해석하셨습니다. 거기서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율법의 참뜻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자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에 대해서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3:6).” 고백했습니다. 그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율법을 준수했다고 하는데 마음에는 불안, 허무, 공허함이 가득 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그는 교회도 주일마다 빠짐없이 나가고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느 모로 보나 모범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외모로 볼 때 사람들은 그를 부러워했지만 그의 내면은 심히 곤고했습니다. 영생이 없었습니다. 신자라고 하는데 거듭남의 체험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신앙의 연륜으로 때울 수 없습니다. 자신이 정말 거듭나서 영생을 얻었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3:3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리고 5절에서는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우리가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타이거 우즈가 부자이고, 명예를 누리고, 엄청나게 좋은 집에서 행복하게 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에 기쁨과 행복이 없었습니다. 섹스 중독으로 인해서 가정이 파괴되었습니다. 잘 치던 골프도 이제는 비실비실 헤메고 있습니다. 돈 많은 부자라고 해서 다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부자 청년을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예수님은 그의 말을 들으시고 그에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십계명 중에서 마지막 계명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즉 탐욕에 대한 계명입니다. 그가 자신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면 하늘에서 그에게 보화가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그에게 있는 탐심은 넘어야 할 장애물이었습니다.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골3:5). 예수님은 그의 자만과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 정곡을 찌르셨습니다. 예수님은 놀라운 훈련관이십니다. 그가 자기발견을 하도록 정확하게 도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모양만 내는 구제가 아니라 적극적인 이웃 사랑을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마음에 있는 탐심을 드러내고자 이렇게 강하게 도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4:33절에서는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재물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더라도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말씀을 지키고 일생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 받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영생을 얻고 누리는데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없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재물에 대한 탐심이 문제였다면 다른 사람에게는 가족에 대한 정을 극복하는 것이 한 가지 부족한 것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일에 대한 욕심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 팔아야 할 한가지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게임이 팔아야 할 한가지입니다. 내가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그것이 바로 내가 팔아야 할 한 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습니다. 영생은 세상의 그 어떤 보물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23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그는 영생을 원하면서도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했습니다. 그는 매우 큰 열정을 가지고 영생을 얻고자 했지만 재물을 팔라는 예수님의 말씀 듣고 심히 근심했습니다. 한마디로 냄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는 두 마음을 품었습니다. 이 부자 청년의 마음 속에 일어난 걷잡을 수 없는 갈등과 고민은 그의 마음이 영생에 대한 욕망과 세속적인 탐욕으로 나뉘어져 있었음을 잘 보여 줍니다. 그는 부자로서 현실의 안락함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영생을 얻고자 하는 열정이식어버렸습니다.
천로역정에 보면 “믿음”씨가 천국으로의 순례 중에 습격을 받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가 곤고산이라는 산의 중턱에 이르렀을 때 나이가 매우 지극한 한 남자를 만났는데 그가 누구며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씨는 자신이 순례자이며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노인이 말하기를 ‘보아하니 당신은 정직한 사람 같은데 내가 주는 월급을 받으면서 나와 함께 살지 않겠소?’하고 권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그가 누구며 어디 사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이름은 첫 사람 아담이며 기만의 도시에 살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씨가 다시 그가 시킬 일은 무엇이며 품삯은 얼마 정도인가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일은 많은 쾌락들뿐이고 품삯은 그가 죽은 후에 상속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며 다른 종들을 거느리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기의 집은 아름다운 곳으로 세상의 온갖 맛있는 것들이 갖추어져 있고 종들은 전부 자신의 자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은 몇 명이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아들은 없고 딸만 셋이 있는데 그들의 이름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며 믿음씨가 원하기만 하면 그들 모두와 결혼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또한 얼마 동안 믿음씨가 그와 함께 살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죽을 때까지 계속 같이 살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씨는 그 노인이 지금 온갖 말로 유혹과 아첨을 할지라도 그를 따라가면 자신을 노예로 팔아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따라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근심하며 돌아가는 그를 보시고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24,25).”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재물을 의지하는 사람은 근심할 일이 많고 큽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물뿐만이 아니라 천하 만물을 관리하고 다스리도록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재물을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관리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관리하고 이웃과 함께 나누고 섬기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이 부자 청년이 근심한 것은 좋았는데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고후 7: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우리가 근심하고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탄식조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자가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부자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시니 이런 탄식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다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충만한데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니 충격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부자가 되는 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부자도 부자 나름입니다. 아브라함도 부자였고 욥도 부자였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도 부자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부를 잘 관리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부를 이차적으로 생각했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탐욕을 물리치고 주님을 따르도록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로 이룰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설령 이 부자 청년이 예수님의 말씀을 좇아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구제하였다고 해도 그 행위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에게 진정 필요했던 것은 오직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믿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32,33절을 보십시오.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지고 고난을 받으십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사형권이 없기 때문에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져 온갖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게 됩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부활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바로 나의 죄를 위한 것임을 믿을 때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이사야 53:5절은 말씀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죄인들을 위해 고난을 받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사랑을 찬양합니다.
베드로는 부자 청년이 심히 근심하며 돌아가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 아뢰었습니다.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베드로는 배와 그물과 고기를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젊고 평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버리기가 쉬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가 되는데 따르는 희생을 보상해 주십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이 포기한 그 모든 것을 보상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단지 물량적이고 세속적인 의미에서 보상의 기준을 삼아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물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의 뜻이 함께 하면 우리가 물질적 축복을 많이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많은 형제와 자매, 부모와 자녀, 집을 얻습니다. 사실 세상의 모든 것이 우리의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믿음으로 영생을 얻은 사람은 자유로우면서도 풍요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한 번뿐인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시도하고 위대한 일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연변 과기대와 평양 과기대 총장으로 일하시는 김진경 총장님도 그런 분 중의 한분이십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구원은 거듭남과 성화와 영화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저 인간이 정말 변화될 것인가 회의하기보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도록 기도하고 사랑을 베풀기를 기도합니다. 따지고 보면 내 안에도 극복되어야 할 죄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감당해주어야 합니다.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니고데모도 예수님을 찾아와 처음에는 어찌, 어찌하여 라는 말을 반복하며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변화되어 예수님의 장례를 잘 섬겼습니다. 우리의 근심이 회개를 이루어 변화의 역사, 구원의 역사를 체험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본문 누가복음 18:18-43
요절 누가복음 18:22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우리는 지난 주 강청하는 기도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이 아니십니다. 그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속히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응답이 더디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인내로 강청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분명한 한 가지 기도제목을 가지고 믿음의 기도를 드리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한 부자 청년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을 알게 하시고 영생을 얻도록 도우십니다. 그는 근심하며 돌아갑니다. 그러나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특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영생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어떤 관리가 예수님께 나아와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학자들은 이 관리를 니고데모와 같은 산헤드린 의원으로 보고 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국회의원과 같습니다. 그는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또 큰 부자였습니다. 니고데모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이 청년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이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막10:17). 그는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17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과 영생을 얻는다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이 청년은 자신이 무엇을 하여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자기 힘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자 했습니다. 자신의 선행과 노력,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자 했습니다. 그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생활을 해 왔고 영생을 얻는데 필요한 자격이 더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선행으로 또는 고행으로, 율법을 행함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청년의 질문에 무엇이라고 대답하십니까? 19,2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십계명 중에서 사람 사이에 지켜져야 하는 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청년을 깨우치기 위해서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 청년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 발견을 하도록 도우시면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그 누구도 율법을 완전히 지키지 못하고 다만 ‘율법으로 죄를 깨달을 수 있을’(롬 3:20:갈 3:24)뿐입니다. 마 5:17-48절 산상 수훈에서 예수님은 율법을 재해석하셨습니다. 거기서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율법의 참뜻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자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에 대해서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3:6).” 고백했습니다. 그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율법을 준수했다고 하는데 마음에는 불안, 허무, 공허함이 가득 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그는 교회도 주일마다 빠짐없이 나가고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느 모로 보나 모범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외모로 볼 때 사람들은 그를 부러워했지만 그의 내면은 심히 곤고했습니다. 영생이 없었습니다. 신자라고 하는데 거듭남의 체험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신앙의 연륜으로 때울 수 없습니다. 자신이 정말 거듭나서 영생을 얻었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3:3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리고 5절에서는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우리가 회개하고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타이거 우즈가 부자이고, 명예를 누리고, 엄청나게 좋은 집에서 행복하게 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에 기쁨과 행복이 없었습니다. 섹스 중독으로 인해서 가정이 파괴되었습니다. 잘 치던 골프도 이제는 비실비실 헤메고 있습니다. 돈 많은 부자라고 해서 다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부자 청년을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예수님은 그의 말을 들으시고 그에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십계명 중에서 마지막 계명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즉 탐욕에 대한 계명입니다. 그가 자신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면 하늘에서 그에게 보화가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그에게 있는 탐심은 넘어야 할 장애물이었습니다.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골3:5). 예수님은 그의 자만과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 정곡을 찌르셨습니다. 예수님은 놀라운 훈련관이십니다. 그가 자기발견을 하도록 정확하게 도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모양만 내는 구제가 아니라 적극적인 이웃 사랑을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마음에 있는 탐심을 드러내고자 이렇게 강하게 도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4:33절에서는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재물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더라도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말씀을 지키고 일생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 받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영생을 얻고 누리는데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없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재물에 대한 탐심이 문제였다면 다른 사람에게는 가족에 대한 정을 극복하는 것이 한 가지 부족한 것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일에 대한 욕심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 팔아야 할 한가지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게임이 팔아야 할 한가지입니다. 내가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그것이 바로 내가 팔아야 할 한 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습니다. 영생은 세상의 그 어떤 보물보다도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23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그는 영생을 원하면서도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했습니다. 그는 매우 큰 열정을 가지고 영생을 얻고자 했지만 재물을 팔라는 예수님의 말씀 듣고 심히 근심했습니다. 한마디로 냄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는 두 마음을 품었습니다. 이 부자 청년의 마음 속에 일어난 걷잡을 수 없는 갈등과 고민은 그의 마음이 영생에 대한 욕망과 세속적인 탐욕으로 나뉘어져 있었음을 잘 보여 줍니다. 그는 부자로서 현실의 안락함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영생을 얻고자 하는 열정이식어버렸습니다.
천로역정에 보면 “믿음”씨가 천국으로의 순례 중에 습격을 받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가 곤고산이라는 산의 중턱에 이르렀을 때 나이가 매우 지극한 한 남자를 만났는데 그가 누구며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씨는 자신이 순례자이며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노인이 말하기를 ‘보아하니 당신은 정직한 사람 같은데 내가 주는 월급을 받으면서 나와 함께 살지 않겠소?’하고 권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그가 누구며 어디 사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이름은 첫 사람 아담이며 기만의 도시에 살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씨가 다시 그가 시킬 일은 무엇이며 품삯은 얼마 정도인가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일은 많은 쾌락들뿐이고 품삯은 그가 죽은 후에 상속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며 다른 종들을 거느리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기의 집은 아름다운 곳으로 세상의 온갖 맛있는 것들이 갖추어져 있고 종들은 전부 자신의 자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은 몇 명이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아들은 없고 딸만 셋이 있는데 그들의 이름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며 믿음씨가 원하기만 하면 그들 모두와 결혼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또한 얼마 동안 믿음씨가 그와 함께 살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죽을 때까지 계속 같이 살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씨는 그 노인이 지금 온갖 말로 유혹과 아첨을 할지라도 그를 따라가면 자신을 노예로 팔아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따라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근심하며 돌아가는 그를 보시고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24,25).”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재물을 의지하는 사람은 근심할 일이 많고 큽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물뿐만이 아니라 천하 만물을 관리하고 다스리도록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재물을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관리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관리하고 이웃과 함께 나누고 섬기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이 부자 청년이 근심한 것은 좋았는데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고후 7: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우리가 근심하고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탄식조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자가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부자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시니 이런 탄식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다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충만한데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니 충격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부자가 되는 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부자도 부자 나름입니다. 아브라함도 부자였고 욥도 부자였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도 부자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부를 잘 관리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부를 이차적으로 생각했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탐욕을 물리치고 주님을 따르도록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로 이룰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설령 이 부자 청년이 예수님의 말씀을 좇아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구제하였다고 해도 그 행위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에게 진정 필요했던 것은 오직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믿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32,33절을 보십시오.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지고 고난을 받으십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사형권이 없기 때문에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져 온갖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게 됩니다. 그리고 삼일 만에 부활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바로 나의 죄를 위한 것임을 믿을 때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이사야 53:5절은 말씀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죄인들을 위해 고난을 받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사랑을 찬양합니다.
베드로는 부자 청년이 심히 근심하며 돌아가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 아뢰었습니다.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베드로는 배와 그물과 고기를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젊고 평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버리기가 쉬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가 되는데 따르는 희생을 보상해 주십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이 포기한 그 모든 것을 보상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단지 물량적이고 세속적인 의미에서 보상의 기준을 삼아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물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의 뜻이 함께 하면 우리가 물질적 축복을 많이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많은 형제와 자매, 부모와 자녀, 집을 얻습니다. 사실 세상의 모든 것이 우리의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믿음으로 영생을 얻은 사람은 자유로우면서도 풍요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한 번뿐인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시도하고 위대한 일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연변 과기대와 평양 과기대 총장으로 일하시는 김진경 총장님도 그런 분 중의 한분이십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구원은 거듭남과 성화와 영화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저 인간이 정말 변화될 것인가 회의하기보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도록 기도하고 사랑을 베풀기를 기도합니다. 따지고 보면 내 안에도 극복되어야 할 죄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감당해주어야 합니다.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니고데모도 예수님을 찾아와 처음에는 어찌, 어찌하여 라는 말을 반복하며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변화되어 예수님의 장례를 잘 섬겼습니다. 우리의 근심이 회개를 이루어 변화의 역사, 구원의 역사를 체험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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