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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36강(18:1-17)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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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030회 작성일 11-11-27 13:51

본문

2011년 누가복음 제 36 강                                                 
본문 누가복음 18:1-17
요절 누가복음 18:1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누가복음 17장 후반부는 노아 시대와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고 예언했습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습니다. 말세에 사람들은 영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고 육적인 일에만 관심을 쏟게 됩니다. 이와 같은 말세에 우리는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인 소원이 없는 사람들은 그저 연예하고, 게임을 즐기고, 오락을 즐기고 돈 벌고 잘 먹고 술 취하는 일에 집중합니다. 뜨거운 가슴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찾기보다 쾌락을 즐기는 일로 타협해 버립니다. 우리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을 어떻게 보내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첫째,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라(1-8).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영적인 소원을 유지하는 길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필요를 간구하고 응답을 받을 때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말세를 살아내는 것이 어려운 우리가 하나님께 필요한 도움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내 힘으로 다 해결할 수 있다면 굳이 기도하지 않습니다. 한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환경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답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 보니 의료, 교통, 보험 등 모든 지원이 잘 되니 기본적인 것들에 대해서 기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면 정말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기도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으면 낙망하게 됩니다. 기도해도 안 된다는 불신이 들어오면 더 이상 기도할 수 없습니다. 커다란 문제에 짓눌려 마음이 막혀도 기도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브라함 같은 경우 자식을 달라고 10년을 기도해도 응답이 없자 인간적인 방법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육신의 아들 이스마엘을 얻자 기도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요즈음은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영적인 일에 소홀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맞벌이 부부를 해야 겨우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분들은 과중한 일로 인해서 심신이 지치고 피곤하여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할 시간을 내는 것이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학생들은 학업과 아르바이트로 인해서 마음이 분주합니다. 해야 할 일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위로부터 결과물을 내라는 압박이 마음을 짓누릅니다. 아이들은 아프고 여기저기 돌보아야 할 일들이 많아집니다. 기도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영적인 곤고함이 심해지지만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가정에서 인간 갈등은 심해지고 인격의 변화는 보이지 않을 때 신앙적인 회의가 찾아옵니다.
  그런데 우리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어찌하든지 시간을 내지 않습니까? 내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 가장 빠른 문제 해결의 길이 아닐까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면 가장 힘있는 분을 찾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인생의 탈출구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또 다른 경우는 영적인 안일에 빠져서 스스로 무너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적인 즐거움으로 자족하기 때문에 위대한 일에 도전하지 않습니다. 배부른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음식을 차려주어도 맛있게 먹을 수 없는 것처럼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면서 영적인 배고픔, 목마름이 없어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삶의 여건이 좋을 때 영적인 투쟁을 지속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탄식하셨습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장애물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 안에 있습니다. 영적인 안일과 게으름, 자족하는 마음 자세, 불신을 회개해야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신 경고와 같이 영적으로 볼 때 나의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좀 더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영적인 갈급함과 목마름을 어디에서 진정 해결할 수 있을까요? 나의 가련한 모습, 곤고한 심령을 어디에서 위로 받고 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세상 우물은 아무리 마셔도 목마름이 해결되지 않는 것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어디가 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예수님이 주시는 비유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었어요. 그는 정말 안하무인이었어요. 말도 거칠고 거만하기 짝이 없었어요. 거기다가 그는 다정다감한데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이 매정한 사람이었어요. 이 재판장은 힘이 있는 사람에게는 고분고분하지만 약한 사람들에게는 자기 마음대로 행동했습니다.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었어요. 이 과부는 돈도 별로 없고 의지할 사람도 없었어요. 그런데 교활한 원수가 그의 재산을 다 빼앗고 아들까지 잃게 되었어요. 이 과부가 자주 재판장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강청했어요. 재판장은 얼마 동안 듣지 않았지요. 무엇을 바라는지 시간을 끌었어요. 나중에는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며 위협도 했어요. 돈도 없으면서 재판을 받고자 한다고 변호사를 사야할 것이 아니냐면서요. 이 과부는 정의를 기대하고 재판정에 갔는데 재판관의 불의한 모습을 보니 낙담하기 쉬웠어요. 그런데 길이 없어요. 할 수 없이 자주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라고 재판장에게 매달렸지요. 출근시간에도 가고 점심 시간에도 가고 퇴근 시간에도 갔어요. 그래도 안 되자 집에 까지 찾아갔어요. 밤에도 찾아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머리를 풀고 흐느껴 울면서 강청했어요. 과부는 한 맺힌 문제를 풀지 않고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어요. 언젠가는 피눈물을 흘리면서 간구하는 모습을 재판관이 보았어요. 재판관은 속으로 겁이 나기 시작했어요.

  4,5절을 보세요.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도 과부의 포기치 않는 정신, 불개미 정신에 두 손 들고 말았습니다. 마가복음 7장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께 딸을 고쳐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계속된 거부에도 애원하자 예수님은 “자녀의 빵을 개에게 줄 수 없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여인은 이렇게 말해요.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먹나이다.”

 미국의 과학자이자 흑인 교육가인 부커 워싱턴은 어릴 때 무척 대학에 가고 싶었습니다. 인종차별이 심하던 당시 그는 앨라배마에 흑인을 입학시켜 주는 대학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천리 길을 걸어 찾아갔어요. 그런데 대학은 이미 정원이 초과됐기 때문에 입학이 불가능하다는 말만 되풀이 했어요. 부커가 돌아가지 않고 며칠간 간절히 애원하자 대학은 일단 그에게 청소를 시키기로 했어요. 최선을 다해 일하는 모습에 감동한 대학 관계자들은 마침내 그에게 입학허가를 내 주기로 했고 그는 훗날 이름 있는 과학자가 되었습니다.

  이번에 홍익대 총학생회는 ‘바람의 딸’ 한비야 씨를 초청했는데 8번을 포기하지 않고 초청했다고 합니다. 명강사 초청을 하고자 하는데 한 두 번 해서 안 되면 대개 어렵다고 그만둡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8번을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 초청하여 강연회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는 사람이 마침내 성공합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시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6-8a).”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하물며”입니다. 우리는 과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이 아니십니다. 과부와 재판관은 아무런 관계도 없어요. 남남이죠.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는 아버지와 사랑하는 아들, 아버지와 사랑하는 딸의 관계죠. 불의한 재판관은 청원을 마지못해서 들어줬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속히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사랑과 신뢰로 맺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분명한 한 가지 기도제목이 있어야 합니다.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에서 예수님이 우리가 갖기를 바라는 한 맺힌 문제, 밤낮 부르짖어 기도해야 할 기도제목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주님의 재림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약속했는데 2000년이 지나기까지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재림을 기다리면서 자기 생활에 충실하면서 제자 양성에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메시야를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시고 수천년이 지나서 마침내 이루셨습니다. 베드로후서 3:8,9절은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깨끗한 마음과 거룩한 행실로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재림 신앙이 충만하여 게으름을 피우는 성도들에게 바울 사도는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책망했습니다. 우리가 일만 만드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지런히 일을 하여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 형제들을 사랑하고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는 일에 힘써야겠습니다.

  우리는 때로 한 맺힌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하는데 기도 응답이 더딜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두 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기도를 안 들어 주시는 이유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이유는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더 좋은 길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자녀가 자기를 해칠 수 있는 칼을 달라고 할 때 위험하기 때문에 주지 않는 부모의 마음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이신지라 믿음으로 끝까지 기도하면 들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제목에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아이가 떼를 쓰는데 들어주지 않을 부모가 없는 것과 같아요. 시편 106편 15절을 보면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라고 했어요. 기도가 응답을 받았는데 그 영혼이 쇠약하여 지고 기쁨이 없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가 아니었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할 때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간구하는 자세에서 성숙해져야 합니다. 그 성숙한 자세란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귀를 기울여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혹시 내가 내 욕심으로 구하는 것은 아닌지,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필요를 구하면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데 대한 우리의 두 번째 반응은 믿음이 없는 경우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확실한데 믿음이 없어서 구하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8b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고 믿는 우리는 그의 자녀들입니다. 아버지는 자녀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무엇을 못줘서 안달이십니다. 그는 불의한 재판관과 달리 선하시고 인격적이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그는 의로우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기도를 기뻐하시고 응답하심으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기도는 입술로 간구하는 단계에서, 귀로 듣는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들으려면 침묵해야죠. 듣기 위해서는 내 생각, 내 원함, 내 뜻, 내 계획을 내려 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내려 놓음이 없이는 깊은 기도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내 손에 무언가를 움켜쥐고서는 하나님이 주고자 하시는 더 좋은 선물을 받을 수 없죠. 듣는 기도의 마지막은 순종입니다. 듣는다는 말은 순종을 의미합니다. 듣는 단계에서 영으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단계, 사귀는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은혜의 통로요 믿음의 표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기도입니다. 친밀한 사랑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합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에게 무엇을 받고자 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런 기도의 깊은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을 가진 기도는 인내로 표현됩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믿음이 없어 인내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밥상을 차려 들어가는데 참지 못해서 나가버리는 사람은 축복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말세가 될수록 사람들의 마음이 조급해 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시간을 두시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갖고 선물이 귀한 것임을 알도록 하고자 하심입니다. 또 우리의 내면을 연단하기 위해서 기다리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과 스케줄을 따라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선물을 주시지만 그보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자신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대한 신뢰를 가지고 믿음으로 그의 약속을 기다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이 아니라 나의 탄식을 들으시고, 성령님은 나를 위해서 탄식하면서 기도하세요. 선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생활에 열심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낙망하지 말고, 항상 기도하며, 기도 생활에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겸손한 기도(9-17). 예수님은 이어서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교회 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기 의를 주장하기가 쉽습니다. 나보다 덜 헌신하는 것 같은 저 사람이 나보다 더 잘 살고 잘 나가는 것 같을 때 하나님 앞에 자기 의를 주장하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섬겼는데 인간적으로 더 많은 축복을 받지 않은 것 같을 때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살기를 포기하고 적당히 형식적으로 신앙생활하기 쉽습니다.

  두 사람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는데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였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합니다. 성전에서 함께 손을 잡고 기도하면 보기에도 좋을 텐데 자기는 세리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그의 기도는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자랑으로 차 있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는 자기를 주장할 것이 없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자신의 죄를 애통해 하면서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리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집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는 깨어지고 상한 심령입니다. 겸손한 기도를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기도에 깊이 있는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15-17절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왔을 때 제자들이 꾸짖는 것을 보시고 주신 말씀입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어린아이들이 예수님께 나오는 것을 환영하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 다음 세대에서도 자녀들이 믿음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교육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거듭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모태 신앙인 아이들은 거듭남의 체험이 없이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기 쉽습니다. 이들이 말씀을 깊이 받고 개인 신앙이 자라도록 간절히 기도해야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겸손하고 잘 받아들입니다. 어릴 때 믿음을 잘 심어주는 것은 부모의 책임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기 의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를 구하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들어갑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때에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되 회개하면서 겸손한 마음 자세를 갖기를 바랍니다. 포기하지 말고 강청하는 자세를 갖되 불쌍히 여겨달라는 겸손한 자세로 구하기를 바랍니다. 이 가을에 하나님께 강청하여 기도의 응답을 받는 체험을 다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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