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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4강(3:1-19) 열 둘을 세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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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971회 작성일 12-05-13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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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마가복음 제 4 강                                               
말씀 | 마가복음 3:1-19
요절 | 마가복음 3:14

  열둘을 세우시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큰 일을 위해서 먼저 작은 일부터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은 열 두 제자를 부르시고 양성하신 것입니다. 교회의 존재목적은 예수님의 제자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제자양성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왜 제자양성을 해야 합니까?

첫째, 네 손을 내밀라(1-12) : 예수님은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거기에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누가 보아도 불쌍해서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2절에 보면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들은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한 손 마른 사람은 석공이었는데 후천적인 원인으로 손이 말라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빌어먹고 사는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기의 손을 낫게 하여 빌어먹지 않게 해 달라고 간구했을 것입니다. 보통 이런 불행을 당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믿음을 저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은혜를 받고자 회당에 나왔습니다. 그는 손은 말랐지만 마음은 부드럽고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마음이 말라버렸습니다. 이렇게 불쌍한 사람을 보고도 그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완악했습니다. 완악하다는 것은 마음이 굳어지고 둔해졌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양들의 사정을 살피고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지만 마음이 굳어 있었고 양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이 양을 미끼로 삼아 예수님을 죽이고자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관심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안식일 전통과 율법 규례를 잘 지키는가 감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은 안식일 규례를 깨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위험인물로 생각하고 제거하고자 계획한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한 손 마른 자에 대한 사랑과 긍휼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기 위해서 241개의 규례를 자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바느질을 두 뜸 이상 하면 안 되고, 불을 켜도 안 되고, 엘리베이터의 스위치를 누르는 것도 다 일이라고 생각하여 금지했습니다. 담이 무너져 사람이 깔렸다면 그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할 정도만 무너진 담을 치우라고 했습니다. 살아 있는지 확인하여 살아 있으면 빼내어 치료하고, 죽었으면 그대로 두었다가 다음날 시체를 처리했습니다. 한 손 마른 병은 당장 생명의 위협이 없기 때문에 안식일에 물론 치료할 수 없다고 규정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왜 안식일 계명을 주셨는가 생각하기보다 안식일에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중심으로 판단했습니다. 본질을 잃어버리고 껍데기만 붙잡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왜 죄인들과 음식을 먹느냐는 정결의식 논쟁을 했고, 금식 논쟁을 했고, 이제 안식일 논쟁을 하고 있습니다. 사사건건 극과 극으로 싸우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관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간 중심이냐 하나님 중심이냐로 갈라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종교 지도자들인데 이들의 율법적이고 외식하는 문제로 인해서 시대에 대한 깊은 위기의식을 느끼셨습니다. 저는 한국교회 두 큰 교단이 주도권을 잡기 위한 투쟁과 지도자들의 교권에 대한 욕심이 분열을 가지고 온 현실을 볼 때 마음이 아픕니다. 서로 조금만 양보하여 교회를 살리고 공동체를 살리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가정에서건 직장에서건 교회에서건 내가 죽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조금 손해보더라도 공동체를 살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에게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바리새인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이는 누구나 대답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잠잠했습니다. 사실 그들도 예수님의 질문의 답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답하지 않은 것은 완악함 때문입니다. 알고 있지만 인정하기 싫고, 알고 있지만 계속 잘못된 길을 고집하는 태도입니다. 예수님의 옳은 말씀에 더 반발심이 생기고 마음이 딱딱해졌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 대해 탄식하사 노하셨습니다. 탄식했다는 말은 진리 앞에서 마음을 닫고 딱딱해 있는 그들로 인해 슬퍼하셨다는 뜻입니다. 목자의 심정을 잃어버린 그들을 볼 때 슬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또한 노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의 지독한 완악함에 대한 영적 분노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한 손 마른 사람에게 네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을 내밀라.” 사실 이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 내 놓아야 합니다. 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고소하고자 기회를 노리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고 그 편에 선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내밀었습니다. 그때 그 손이 회복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이 그의 마른 손을 치료했습니다. 생명이 없는 손, 말라 비틀어진 손이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한 손 마른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분은 외모로 인해서,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서, 어떤 분은 부모님에게 사랑을 받지 못함으로 인해서, 자기만이 아는 열등감으로 인해서 마음까지 말라버린 분이 있습니다. 목자인데 목양과정에서 받은 상처로 인해 사랑이 말라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당한 성폭행으로 인해서 마음이 말라버린 분도 있습니다. 그 말라버린 손으로 인해서 기를 펴지 못하고 무기력한 삶을 살아갑니다. 입시 실패로 인해서 마음이 말라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의 말라버린 손을 내밀라고 하시고 내밀 때에 치유하십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말라버린 마음도 치유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완악함을 인정하고 회개한다면 치료될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말라버리자 악한 영향력을 풍기고 있습니다. 독을 뿜어내고 있습니다. 6절을 보면 그들은 회개하는 대신에 나가서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예수님을 죽일까 의논하였습니다. 바리새인과 헤롯당은 원수지간인데 예수님을 죽이는 일로 합심동역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대단한 용기를 가진 분이십니다. 그는 진리 편에 서셨습니다. 그는 결코 거짓과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위험이 있더라도 맞서서 선한 목자의 길을 가셨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린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목숨을 버리더라도 한 손 마른 자를 고치기를 원하셨습니다. 반대로 바리새인들은 삯꾼들입니다. 그들은 자기를 위해서 양을 이용하고 버렸습니다. 그들은 갈수록 소외되고 양들은 떠나갔습니다. 어디로 떠나갔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랐습니다. 또 유대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와 요단 강 건너편과 또 두로와 시돈 근처에서 많은 무리가 그가 하신 큰 일을 듣고 나아왔습니다. 한 병든 영혼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용기와 절대적인 사랑을 듣고 사람들은 그에게로 몰려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나아온 무리들을 고치시고 더러운 귀신들도 쫓아내셨습니다. 사람들은 선한 목자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님은 동역자들이 필요했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부족한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완악함과 몰려오는 무리들을 보시고 열두 제자를 세우실 필요를 절감하셨습니다. 

둘째, 열두제자를 세우심(13-19) : 예수님은 산에 오르사 밤새워 기도하셨습니다. 왜 밤새워 기도하셨습니까? 사역에 전환을 가져오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제자 양성입니다. 제자 양성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첫째 목적, 원하는 자들을 부르심.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이 원해서가 아닙니다. 보통은 제자들이 스승을 찾아가 제자로 받아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절대 주권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15:16)라고 말씀을 하실 수 있었습니다. 제자의 조건은 어떤 인간적인 자격보다 예수님의 선택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제자들을 뽑으실 때 헬라어 시험을 보고 합격한 사람을 뽑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능력을 보고 뽑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경쟁을 시켜서 뽑은 것도 아닙니다. 그들의 가능성을 보고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뽑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이 우리 자신을 원하십니다. 주님이 나를 알아주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권적으로 택하셨기 때문에 그 선택은 절대적입니다. 이 절대적인 부르심은 예수님께서 책임져 주심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이 부족해도 예수님께서 세우셨기 때문에 책임지고 키우십니다.

  제자들은 순종하여 나아왔습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순종뿐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부르심에 절대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14,15절을 보십시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둘째 목적, 함께 있게 하려함.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사 그들을 통해서 무슨 큰 일을 시작하기보다 먼저 자기와 함께 있게 하셨습니다. 함께 있으면서 예수님과 사귐을 갖고 배우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을 통해서 말씀을 배우고 그의 인격과 사상을 배우기를 원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가시는 곳이면 늘 함께 하였습니다. 아픈 사람이 있으면 심방도 함께 가고, 태풍을 만나도 함께 만나고, 함께 전도하러 다니고, 함께 핍박과 고난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회당에 가시면 그들도 가고 늘 함께 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목자의 심정, 사랑, 기도의 삶, 용기, 희생 등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배우는데 있어서 함께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함께 하지 않으면 피상적인 배움이 되지만 함께 하면 인격적으로 배우게 됩니다. 이는 제자의 가장 큰 특권입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과 함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8:31).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가 지식적으로 공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에 순종하고 체험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깨달아야 실천하는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인격을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사람은 그 안에 그의 생명이 흐르게 됩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흐르는 사람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열매는 수액이 겉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인격의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의 열매를 맺습니다. 거룩한 열매를 맺습니다. 전도의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늘 함께 하면 그 사람의 영향을 받습니다. 공격적인 사람과 함께 하면 공격적인성향으로 갑니다. 부드러운 사람과 함께 하면 부드러워집니다. 위대한 인물들과 잠시라도 함께 하면 그에게서 큰 도전을 받습니다. 그런 사람과의 짧은 만남이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루를 누구와 함께 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의 영향력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배울 것이 있는 사람,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 사랑이 충만한 사람과 함께 하고자 힘쓰면 그런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셋째 목적, 보내사 전도를 하게 함. 예수님은 제자들을 계속 옆에만 두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사 천국 복음을 전파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지만 보내셨습니다. 제자들은 전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하고 복음의 능력과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전도자로 키우고자 하십니다. 천국 복음은 사람을 자유하게 하는 복임이요 영생을 주는 복음입니다. 전도는 예수님에게서 한 가지 배웠으면 한 가지를 가르치도록 함으로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가르치면서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가르치려면 자기가 배운 것을 다시 한 번 더 연구하게 되고 확신해야 합니다. 전도는 일찍 배울수록 좋습니다. 구원의 은혜가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복음은 힘있게 전파됩니다. 싹은 줄기가 아니라 가지에서 납니다. 새 가지에서 새싹이 잘 나옵니다. 우리가 어린 양들과 함께 복음을 전함으로 이들로보고 배우게 해야 합니다. 저도 일학년 때 전도훈련을 받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것을 보고 또 열심히 가르침으로 나 자신이 가장 많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자 할 때 거절당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시작할 때 두려움을 극복하면 자연스럽게 복음을 잘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생활화함으로 더욱 생동감이 넘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전도할 때 필요한 영적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무슨 증이나 학벌이 아닙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영적 능력, 영적 권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영적 권세를 갖고 사단의 지배하에 고통하고 있는 양들을 구원키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열매맺는 제자가 되려면 성령의 권능을 덧입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제자 양성은 성령의 권능으로 가능합니다. 성령은 그 권능으로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열 두 제자의 이름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또 가룟 유댜니 이는 예수님을 판 자입니다. 열 두 제자들은 출신, 성분, 직업이 다양합니다. 제자들은 모자이크 공동체입니다. 이는 다양한 세상 사람들을 품고 섬기도록 소망을 두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있듯이 열두 제자들을 통해서 새 이스라엘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이는 혈통이나 민족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적 새 민족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서 세계 만민을 구원하고 복주고자 하십니다. 우리를 이 거룩한 역사에 부르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우리도 일생 열 두 제자를 양성하는 역사에 자신을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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