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주일말씀 성경별메시지 심포지엄 성경 검색
문제지 성경별문제지

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2강(1:16-45) 권위 있는 새 교훈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898회 작성일 12-04-29 13:54

본문

2012년 마가복음 2 강 
말씀 | 마가복음 1:16-45
요절 | 마가복음 1:27
권위 있는 새 교훈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구속역사를 섬기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전도하시고 병을 치유하시고 설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권위가 있었고 사람들은 질적으로 새로운 교훈을 듣고 매우 놀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권위가 있다는 것은 더러운 귀신을 말씀 한 마디로 굴복시킨 데서 볼 수 있습니다. 또 젊은 청년들을 보고 나를 따르라 하시자 그들이 배와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랐습니다. 그가 나병환자를 보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하시자 그의 짓물렀던 온 몸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는 그가 어떤 분이신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그를 인격적으로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개인 전도에 힘쓰신 예수님(16-20) : 예수님은 요한이 잡힌 후에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어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셨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호수인데 남북으로 길이 20Km, 동서로 폭이 10Km 정도이고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곳에는 고기가 많아 어업이 성행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종사하였습니다. 

  시몬과 안드레는 먹고 살기 위해서 열심히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평범한 어부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며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할 일이 없어서 놀고 있는 사람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성실하게 일하는 청년들을 부르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일대일 전도만 하신 것이 아니라 일대이 전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한꺼번에 두 형제를 부르셨습니다. 사실은 안드레가 먼저 따랐고 후에 그가 시몬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밤새도록 아무 것도 잡지 못했을 때 예수님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셨고 이 말씀에 순종하여 그는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권세에 놀랐을 때 “나를 따라오라”고 하시며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그의 삶과 사상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이제 고기를 낚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 잘 배우기만 하면 예수님께서 그들을 열매 맺는 전도자로 키우십니다. 그들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보고와 그 형제 요한을 보셨습니다.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고 있었습니다. 곧 예수님이 부르시니 그들도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사람은 천하보다 귀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얻어 제자로 키우는 일에 일생을 거셨습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의 시작은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 삼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 한 사람을 불러서 믿음의 사람으로 키우는 일에 25년을 투자하셨습니다. 그 이후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삭을 얻고  이삭은 기도로 야곱을 키우고 야곱은 열 두 아들을 낳아 이스라엘 민족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열두 사도들을 부르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제자들은 공통적으로 예수님의 부르심에 곧 순종해서 배와 그물을 버리고 좇았습니다. 배와 그물은 그들의 생계수단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는데 필요한 희생을 감수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고자 할 때 버려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 희생은 값비싼 희생이고, 의미 있는 아픔입니다. 사모님들이 아이들을 베이비 씨터에게 맡기고 일대일을 하려면 비용과 시간이라는 아름다운 희생을 치러야 합니다. 학생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 성장하려면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 희생은 정말 값어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봄학기에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새롭게 이십여명과 일대일 성경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로 자라기를 기도합니다. 각 가정 교회는 전도하여 그 가정 교회 믿음의 조상들을 세움으로 복음 역사의 기초를 놓고 사역을 확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관계망의 그물을 사용하여 사람을 낚습니다. 사람의 영혼을 낚는 인생은 얼마나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습니까?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12:3)

 둘째, 권위 있는 새 교훈과 예수님의 이름 권세로 더러운 귀신을 쫓아냈습니다(21-28) :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습니다. 가버나움은 도시로서 세관이 있었고 30여개의 회당이 있었으며 로마군 주둔지가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의 집이 여기에 있었고 예수님은 주로 여기서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습니다. 회당은 매우 컸고 주랑 아래는 학교와 빈민을 위한 숙소가 있었습니다. 회당장은 예배에 참석한 사람 중에서 지목하여 말씀을 전하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회당장이 지목하여 안식일에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의 가르침이 어떠하였습니까? 22절을 보십시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여기서 놀랐다는 것은 크게 놀라 충격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권위 있는 자와 같았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말씀의 권위와 하나님의 권위를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서기관들은 성경을 필사하고 재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회당에서 주로 가르쳤는데 “랍비 힐렐이 이르시되 …”라면서 권위 있는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여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전할 때에 애쓰고 힘써서 말씀을 준비하고 다른 사람의 좋은 설교를 듣고 배워야 합니다. 그 위에 성령의 역사하심이 합해질 때 능력있게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말과 함께 삶이 뒷받침될 때 말씀의 권위가 생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열정을 가지고 확신있게 전할 때 권위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로 가르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말하노니 …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성경의 저자요 해석자로서 자신의 것으로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교훈은 그의 말뿐만 아니라 삶으로 경험한 것을 가르치셨기에 권세가 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메시지는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었기 때문에 권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교훈을 듣고 사람들은 놀라면서 동시에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예수님의 설교는 그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때로 회개를 촉구하는 강한 책망이 포함되었지만 그들은 기쁘게 듣고 회개하고 생활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이 충만하여 큰 능력과 확신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전하신 말씀은 양날선 검과 같았습니다. 그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그들의 마음에 숨겨둔 죄를 도려냈습니다. 말씀의 빛이 비취자 그들의 마음 깊이 숨겨진 어두움을 드러냈습니다. 예수님이 증거하는 말씀은 불방망이와 같아서 듣는 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였습니다. 복사본보다 오리지널을 들을 때 감동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설교자의 연구와 그에 기초한 전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성경의 원저자이신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조명해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역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의 조명을 간구하고 믿음을 합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주시는 말씀을 들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 말씀이 믿는 자 가운데서 역사했습니다(살전 2:13). 이와 같이 우리가 전한 복음이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증거될 때에 내 안에 생명이 전달되고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UBF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일대일로 공부할 때 말씀의 능력이 무엇인지 체험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필요한 말씀을 그때 그때 주실 때에 큰 격려와 은혜와 힘을 얻었습니다. 또 목자님들의 설교를 듣고 소감을 써서 나눌 때에 그 말씀이 나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소감을 써서 회개한 내용을 나눌 때에 끈끈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부끄러운 죄라 할지라도 소감을 써서 나눌 때에 마음이 자유해지고 밝아지고 떳떳하게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기쁨과 힘으로 복음을 전하며 이제까지 복음전도자로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공부하고 설교를 듣고 진실되게 소감을 쓰는 것은 영의 양식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제대로 되면 제가 확언하건대 문제가 해결되고 영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시자 놀라는 존재가 또 있었습니다. 그게 누구입니까? 더러운 귀신입니다. 그 회당에 함께 예배를 보던 사람 중에 더러운 귀신 들린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말씀을 견디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24).”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왔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되자 사람 속에 숨어 있던 더러운 귀신이 놀란 것입니다. 그 귀신은 예수님이 자신들을 멸하러 온 줄로 알았습니다. 더러운 귀신은 본래 하나님 나라에서 수종들던 천사였는데 타락하여 쫓겨난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님이 어떤 존재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권세를 알고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자기들을 멸하여 지옥 불 속에 던져 넣는 줄 알았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귀신들은 알아보았습니다. 그를 알아보았을 때 이제 우리는 끝장이라 생각하고 놀란 것입니다. 또한 이를 보고 있던 사람들도 다 놀랐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더러운 귀신이 하나님을 예배하러 회당에 앉아 있던 사람 중에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귀신 들려다는 말은 귀신에 잡혔다, 귀신의 소유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리 믿는 자도 귀신의 영향 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귀신이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일곱 단계가 있습니다. 첫단계는 퇴보입니다. 이는 사탄의 유혹을 받아 말씀과 기도가 싫어지고 예배에 나오기도 싫어지는 단계입니다. 둘째 단계는 억제입니다. 이는 자발적으로 영적인 생활과 예배 등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셋째 단계는 외부적인 억압입니다. 영적인 억압을 당하는 상태입니다. 넷째 단계는 꺾이는 단계입니다. 이로 인해서 우울, 침울, 좌절을 느낍니다. 다섯째 단계는 압박입니다. 사탄은 꺾인 사람을 콱 눌러버립니다. 이런 사람은 자살 충동을 느낍니다. “죽어라 죽어”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여섯째 단계는 집착입니다. 이는 중독 증상을 보이는 것입니다. 쾌락에 집착하고 음란에 중독이 됩니다. 미친 듯이 한 가지 일에 집착합니다. 여섯 단계 까지는 신자들도 사탄에게 영향을 받습니다. 마지막 일곱째 단계는 소유입니다. 즉 귀신에게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거라사 광인과 같은 단계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람도 더러운 귀신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그 사람에게서 말씀 한마디로 쫓아내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시자 귀신은 꼼짝없이 그 사람에게서 나왔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 권세로 더러운 귀신에게 명령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몇 번 귀신을 쫓아낸 경험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끈질기게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때 더러운 귀신은 떠나갑니다. 귀신과 우리가 만나면 우리가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귀신이 무서워합니다.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빌려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마음이 깨끗해지면 더러운 귀신이 우리 마음을 틈탈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히 공부하고 들을 때 듣는 자는 살아납니다. 이는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영으로 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귀신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하면 귀신은 물러갑니다.

  셋째, 예수님은 각종 병을 치유하십니다(29-34) : 예수님은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시고 나와서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시몬의 얼굴이 좋지 않아서 그의 집에 심방을 가신 것입니다. 알아보니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시몬의 장모가 그들에게 수종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안식일이 끝나자 사람들이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오니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여들었습니다. 모인 사람들로 인해서 집 앞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 쫓으셨습니다. 그러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귀신이 떠드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을까요? 귀신이 예수님의 홍보대사가 되면 사람들이 예수님이 하는 사역을 귀신의 역사라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보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물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흑색선전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악한 세력과 결코 타협하지 아니하십니다.

  예수님은 상한 심정으로 병든 자들을 치료하십니다. 크고 작은 병, 중하고 가벼운  병, 열병, 위장병, 디스크, 당뇨, 치질, 위암, 난소종양, 한센병, 중풍병, 마음의 병, 우울증, 화병, 상사병, 안일병, 시기심병, 노이로제, 과로 등등 각종 병을 치료하십니다. 오늘날 예수님은 의사, 간호사, 상담 전문가 등 신유의 은사가 있는 종들을 세워서 함께 일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전문가들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이들도 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선택을 받아 일하는 주의 종들이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자기가 담당하는 병의 30%만 낫게 해도 명의 반열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넷째, 치료와 능력의 비결은 기도입니다(35-39) : 예수님은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각색 병자들을 일일이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능력있게 일하실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기도에 있었습니다. 특히 새벽에 기도하심으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새벽이슬과 같은 영롱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힘을 덧입으셨습니다.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하심으로 많은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지혜를 덧입으셨습니다. 우리가 새벽을 깨워 기도하고 낮에도 기도하고 밤에도 힘써 기도함으로 치유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바랍니다. 질병이 있습니까? 인생 문제가 있습니까? 새벽에 나와 기도하십시오. 금요일에도 나와 합심해서 집중적으로 기도하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병을 치료하시며 영광을 받으십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9:29).” 연약한 우리가 기도에 전념함으로 모든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섯째, 문둥병과 같은 죄를 깨끗이 씻어주십니다(36-45) : 예수님께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실 때에 시몬과 다른 제자들이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주님을 찾고 있습니다.” 병에 걸려 신음하는 사람들이 아침 일찍 예수님께 나아온 것입니다. 사실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은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계속 우리 곁에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도 나이를 먹으면서 아픈 데가 더 많아집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고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자기를 찾는 병자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방향을 잡으셨습니까?

  38,39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병자는 고쳐도 결국 죽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치료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전도한다는 말은 영어로 “preach”로서 설교한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예수님은 일대일 전도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더욱 힘써 설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두고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으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닫고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병들어 얼굴이 검게 된 사람이 화장을 아무리 잘 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속에 있는 병을 치료해야 합니다. 그러면 얼굴이 환하게 됩니다. 요한은 “사랑하는 자여 네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먼저 죄 사함을 받고 깨끗해져야 건강도 회복되고 범사가 잘 됩니다. 

  예수님은 한 나병환자가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자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셨습니다. 불쌍히 여겼다는 말은 내장이 다 움직였다는 뜻으로서 나병환자에 대한 깊은 동정과 연민, 긍휼과 사랑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에 깊이 동참하시고 긍휼히 여기십니다(히 4:15). 본래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면 부정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몸을 만지심으로 의식법을 초월한 무한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에게 병에서 낫는 것보다 먼저 필요했던 것은 바로 한 인간으로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자존감과 함께 해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게 되었을 때 문둥병자의 외로움에 찌들었던 내면이 회복되었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사랑받게 되자 마음이 펴지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그러자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해졌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44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왜 예수님은 이렇게 강하게 경고하셨을까요?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불쌍히 여기사 고쳐주셨지만 자신이 정말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앞에서 더러운 귀신에게도 잠잠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가르치실 때는 비유로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메시아다”라고 드러내지 않고 인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병을 고치는 것이나 능력을 행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영광의 메시아, 세상의 메시아로 보고 따르는 것을 경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지고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합니다. 그가 피를 흘림으로 인간의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이 메시아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그는 병 고치는 것이나 자신이 영광의 메시아로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 주어진 분명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신중하게 행동하셨습니다. 

  나병은 죄의 속성과 비슷합니다. 둘 다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시킵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성을 맺지 못하게 합니다. 고독과 외로움을 느끼며 살게 합니다. 예수님은 더러운 죄인들을 깨끗하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권세는 우리가 이 땅에서 죄를 사함 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고통을 느끼는 병에서 치유되기 전에 먼저 죄 사함을 받기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죄와 질병으로 고통하는 우리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함께 아파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치료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서 역사합니다. 예수님께 나아갑시다. 또 병든 자들, 죄인들을 예수님께 데려갑시다. 예수님께서 치료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온전하게 하십니다.

첨부파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1,323건 48 페이지
주일메시지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618 마가복음 이엘리야 972 05-13
617 마가복음 이엘리야 904 05-06
열람중 마가복음 이엘리야 899 04-29
615 마가복음 이엘리야 839 04-22
614 누가복음 이엘리야 1144 04-16
613 누가복음 이엘리야 1004 04-08
612 누가복음 이엘리야 965 04-01
611 누가복음 이엘리야 1008 03-25
610 누가복음 이엘리야 1059 03-18
609 누가복음 이엘리야 979 03-11
608 누가복음 이엘리야 1104 03-04
607 누가복음 1070 02-26
606 야고보서 이엘리야 1223 02-19
605 야고보서 David Park 1218 02-18
604 야고보서 이엘리야 1295 02-12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