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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012년 마가복음 1강(1:1-15)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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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838회 작성일 12-04-22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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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봄 마가복음 제 1 강 
말씀 마가복음 1:1-15
요절 마가복음 1:15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오늘은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복음은 헬라어로 유앙겔리온으로서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 기쁜 소식은 전쟁에서의 승리나 왕의 등극이었습니다. 새 왕이 등극하면 나라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대학생들과 그 학부모들은 반값등록금이 실현된다는 소식을 들으면 기쁠 것입니다. 정당인들은 자기들의 대표주자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 기쁠 것입니다. 목자님들에게는 양들이 줄을 서서 일대일 공부를 하겠다고 하면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그 무엇도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기쁜 소식은 무엇입니까?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다른 복음서는 예수님의 족보로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마가는 단도직입적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대제사장들 앞에서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눅22:70).”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사형 판결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백부장은 그 모든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눅 23:47).”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지만 다른 제자들의 증언을 끝까지 믿지 못했던 도마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의 모임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마가 그를 보고 대답했습니다.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8절은 왕의 전령 세례 요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고 기록했습니다. 전령은 왕의 행차에 앞서 “왕이 행차하신다. 엎드려라”고 외칩니다. 이렇게 왕이 가시는 길을 곧게 합니다. 이는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는 길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사실 회개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사탄의 철저하고도 집요한 방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그래서 회개하지 못하도록 온갖 방법을 다 씁니다. 성경 말씀을 멀리하게 하고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일용할 양식 먹는 것을 게을리 하게 합니다. 영적인 투쟁을 하지 못하도록 훼방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 사탄의 지시에 따르도록 유혹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탄의 역사를 잘 분간해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우상숭배의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자녀를 더 사랑한다면 그것도 우상입니다. 자녀들에게 하나님보다 세상적인 가치관을, 세상적인 성공을 먼저 추구하도록 돕는 것은 죄입니다. 물질이 되었건, 가족이 되었건, 학문이 되었던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목적이 되면 우상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자기 사랑이 앞서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도 자기 평안과 만족과 자기 성취를 위한 것이라면 죄입니다. 저는 갈수록 자신의 죄에 대해서 더 깊이 깨닫고 회개의 마음이 깊어집니다. 저는 죄사함 받은 의인이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삶은 실제적으로 이기적이었습니다. 집안에서도 섬기기보다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동역자를 힘들게 하였습니다. 동역자들과의 관계도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참으로 완악한 자신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제가 매일 하나님 앞에 죄인의 심정으로 나아가 회개하고 사죄의 은혜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요한이 광야에서 말씀을 전파하자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홍대에서 메시지를 전하였는데 서울 사람들뿐만 아니라 인천, 수원 사람들까지 다 나아와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세례 요한이 전한 메시지가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그가 성령이 충만해서 말씀을 확신있게 전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삶이 거룩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 낙타털 옷이나 메뚜기는 거친 옷이요 거친 음식입니다. 그나마 메뚜기에 꿀을 발라 먹었기 때문에 먹을 만 했을 것입니다. 그는 검소한 생활을 넘어 청빈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의 마음이 세상의 안락과 기쁨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할 것인지에 집중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생활보호대상자와 같이 살았지만 사람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겸손했습니다. 사람들의 인기가 치솟았지만 그는 사람들의 관심을 예수님께로 돌렸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예수님의 가장 낮은 종도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의 이런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얼마나 높으신 분이신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왕 중의 왕이시오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그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은 그를 평가하기를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그보다 더 큰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겸손은 하나님께서 그를 귀하게 쓰실 수 있는 자질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위대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사역과 비교하여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는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물은 더러운 것을 씻어냅니다. 우리가 세례를 베풀 때는 약식으로 하지만 여기서는 침례를 말합니다. 즉 사람을 물 속에 푹 담갔다가 올리는 예식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하여 옛 사람이 죽고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새 생명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물 세례는 물에 잠기지만 성령 세례는 성령에 잠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에 푹 잠겼다가 일어나면 죄가 씻기고 새 사람으로서 생명을 얻고 선을 행할 능력을 덧입게 됩니다. 성령에 푹 잠긴 사람은 성령의 온전한 다스림을 받습니다. 그러면 생활 변화를 보이기까지 근본적인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날마다 때마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다스림을 받을 때 성령의 열매가 맺힙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 등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을 때 형제의 허물을 덮어주고 끝까지 섬길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사는 것이 고난이지만 마음에는 하늘로부터 오는 평화가 넘칩니다. 바다의 표면은 파도로 출렁이지만 그 깊은 속은 고요한 것처럼 내면에는 말할 수 없는 평강이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감정을 쏟아내지 않고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자신을 죄인의 하나와 같이 여기시고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는 것은 장차 십자가에서 죽음의 세례를 받으시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0,11절을 보십시오.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하늘이 갈라진다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단어와 같은 것입니다. 하늘이 갈라짐과 동시에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자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합니다. 또한 비둘기가 그 위에 내려왔다는 것은 창세기 1:2절에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면서 지구에 생명을 불어넣는 단어와 같습니다. 즉 예수님은 성령을 통하여 생명 창조의 역사를 새롭게 이루십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신 예수님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시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고 생명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모든 병든 인생들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이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자 결단하시자 하나님께서 이를 기뻐하시고 그를 왕으로 세우시는 장면입니다. 이를 메시아 대관식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으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고 고난의 길을 가신 분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늘 문이 열렸습니다. 죄인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고난의 길을 가고자 작정하신 예수님을 기뻐하셨습니다.

  성령이 곧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십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는데 그 핵심은 자기중심적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믿기보다 자기 힘으로 빵을 만들어 먹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보다 자기를 높이라는 것입니다. 고난의 종으로서 구속 역사를 이루기보다 사탄에게 절을 한번 함으로 세상 임금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심으로 사탄을 대적하여 승리하였습니다. 사람이 자기중심적으로 살면 행복할 것 같지만 허무합니다. 죄의 종이 됩니다. 사람이 자기중심적이 되는 것이 불행의 시작입니다. 가정에서도 자기를 부인하고 섬길 때 사랑이 넘치고 기쁨이 넘치고 생명이 살아납니다. 그러나 자기중심적으로 살게 되면 가정의 분위기가 썰렁해집니다. 갈등이 생깁니다. 예수님은 제 2의 아담으로서 사탄의 시험을 이기심으로 우리의 실패를 만회하시고 우리를 죄와 사탄의 세력에서 구원하십니다. 우리가 사탄의 공격을 받을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하면 사탄이 물러갑니다. 이것이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신 것이 복음입니다. 더 이상 사탄의 종노릇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주님이 우리를 해방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결박 푸셨도다. 예수 결박 푸셨도다. 예수 결박 푸셨도다. 나는 자유 해!

  예수님은 요한이 잡힌 후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15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때가 찼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사역을 계승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오 왕으로서 그 나라를 다스리십니다. 우리가 그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야 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의 역사로 우리 마음에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생깁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구원자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이 세상 사람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탄의 나라에 속한 사람과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입니다.

  회개는 무엇입니까? 회개는 죄에 대한 통회와 인생 방향을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이 이를 수 없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을 치루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5).” 우리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위해서는 내가 지은 죄를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회개하는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그 마음에 이루어집니다. 회개할 때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완악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십니다. 우리 속에 있는 죄를 제거하시고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하십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옛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왔습니다. 사람이 전에는 사탄의 통치 가운데 있었는데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사랑과 평화와 공의로 다스리십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것을 잘 모르고 행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얼마나 물질중심적인지, 얼마나 욕심의 노예인지 알지 못하고 행동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나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는지 알지 못합니다. 죄가 사람을 눈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실체를 잘 보지 못합니다. 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병들고 추한 모습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죄인들의 특징은 교만합니다. 자기를 잘 알면 겸손할 수밖에 없는데 자기를 잘 모르니까 교만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오래되고 굳어지고 냄새나는 죄의 병을 치료해 주시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해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가 죄를 내려 놓고 사함을 받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날마다 누리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죄, 이기심의 죄, 물질사랑의 죄, 교만의 죄, 은혜망각의 죄, 말을 함부로 하는 죄, 사랑없음, 불신,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의 죄, 쾌락을 사랑하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 사람과 올바른 관계성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때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이 세상에서 시험도 있고 고난도 있지만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평강이 넘치고 생명이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생활의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성장하고 성숙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이 세상은 살맛나는 곳으로 변화됩니다. 그 입에서 찬송이 흘러넘칩니다. 생명이 약동합니다. 기쁨이 넘치고 평강이 넘칩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를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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