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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2누가복음 제 49강(24:36-53)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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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1,143회 작성일 12-04-16 16:40

본문

2012년 누가복음 제49강
본문 누가복음 24:36-53
요절 누가복음 24:48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우리를 죄와 죽음과 율법에서 구원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고 사명을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정말 의미 있고 영원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떻게 부활의 증인으로 살도록 도우셨습니까?

첫째,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 :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함께 모였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신 일과 엠마오 상에서 두 사람에게 말씀하시고 떡을 떼심으로 그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부활절 수양회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새로운 희망과 환희로 충만했습니다. 그들이 이 말을 할 때에 예수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인사를 하셨습니다. 샬롬!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들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혔던 손과 발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들은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때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고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의 부활만이 아니라 몸이 부활하셨습니다. 너무 기뻐서 아직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돕기 위해서 시청각적으로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믿음을 심으십니다. 예수님이 몸을 입고 부활하신 것처럼 장차 우리도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그 몸은 썩을 몸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몸이요, 욕된 몸이 아니라 신령한 몸이요, 약한 몸이 아니라 강한 몸이요, 하나님 나라에서 살기에 적합하도록 변화된 영광스러운 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거룩한 삶을 살기 원하지만 연약한 자신으로 인해서 넘어질 때에 탄식하며 몸의 구속을 바라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쇠약해지고 쉽게 병들고 조금만 운동을 무리하게 해도 잘 다치는 자신을 볼 때 세월을 한탄하게 됩니다. 젊은이들과 함께 운동을 하면서 보조를 맞추고 싶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습니다. 청년이라고 해서 다 건강한 것도 아닙니다. 아토피로 고생하는 사람, 각종 질병으로 앓는 사람, 마음의 병으로 인해서 꿈을 펼치지 못하는 사람, 무기력하게 살고 시간을 허비하며 방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의 몸은 순식간에 변화되어 예수님과 함께 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몸이 구속을 받고 만유가 회복될 그 날을 소망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면 사자가 어린 양과 함께 뛰놀고 늑대와 양이 함께 뒹굴게 될 것입니다. 그 나라에는 애통하는 것이나 눈물이나 죽음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영원한 나라를 사모하면서 이 땅에서는 날마다 죽는 삶, 날마다 부활의 능력을 덧입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루어진 예수님의 부활과 재림 사이에 살면서 깨어 사명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가르치신 예수님 :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 그들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그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했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3-5).” 그리고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사 53:11).” 시편 기자는 22편 1절에서 이렇게 그의 버림받으심을 예언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예수님은 성경에 예언된 대로 고난을 받으시고 말씀을 성취하셨습니다. 또한 그는 시편 16:9-11절에 예언된 대로 부활하셨습니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이렇게 구약의 예언이 그의 고난과 부활에서 성취되었기 때문에 성경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에 비추어 해석해야 합니다. 구약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내용을 이미 생전에 사도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부활하신 후에 이를 다시 상기시키십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십니다. 성경을 깨닫지 않고서는 도저히 부활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두려워하고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경을 깨달을 때 부활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깨달아야 할 성경의 핵심을 반복해서 가르치십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누구에게라도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준비시킵니다.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믿는 사람은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우리가 믿고 구원을 받도록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 성령의 능력과 확신 가운데서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명확하게 증거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자신을 위해서 죽으신 십자가 외에는 전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어제 변다니엘 목자님도 성경 공부를 하건, 소감 강사를 세우건 십자가를 전하고 심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을 때 서울대 양들 가운데 구원을 얻고 변화되는 역사를 이루었다고 간증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시급하게 알려야 할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지난 주 수요일에 18대 국회의원선거가 있었습니다. 선거가 끝나고 나서 방송사들은 누가 당선이 되었는지 빨리 알리고 싶어서 70억원을 드려 출구 조사를 했습니다. 그것이 맞지 않았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개표 방송을 하는 텔레비전을 시청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죄와 죽음의 세력 가운데서 고통하는 사람들에게는 죄사함을 받고 생명을 얻는 기쁜 뉴스, 복된 뉴스를 가장 시급하게 전해주어야 합니다. 어디까지 전파해야 합니까?

셋째,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를 모든 족속에게 전파하는 증인.  47절을 보십시오.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죄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죄 용서는 예수님의 이름을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인간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종교다원주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타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이 구원자라고 말하면 분위기가 싸늘하게 바뀝니다. 왜 그렇게 독선적이냐 교만하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중동지역에서는 죽여 버립니다. 그래도 사람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하나님께 용서를 받도록 길을 열어놓으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다른 이름으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다른 이름으로서는 죄 사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담대하게 전해야 합니다. 모든 족속에게 이 사실을 전해야 합니다.

  구약은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성취되었습니다.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라는 예언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3).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사 42:6)라고 예언했습니다.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그의 이름이 만방에 전파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자신이 이루신 일이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전파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현재 있는 장소인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일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행 1:8). 이 사역은 지금도 변함없이 계속해서 전파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48절을 다시 보십시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증인은 자신이 목격한 사건이나 사실에 대하여 알고 있는 대로 말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역사성 있는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으로 사도들을 세우십니다. 사도들을 통해서 복음 역사가 계승되고 발전되고 확장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도들을 통하여 그 모든 일들이 누가에게로 전파되었습니다. 누가는 누가복음을 기록할 때 이런 ‘증인’의 자세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1:1-2). 누가는 ‘목격자’입니다. 그는 증인입니다. 그는 이것을 당시 교회에 증거했고 그들이 그 시대의 목격자, 증인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메시지를 들은 모든 시대의 모든 이들이 증인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증인은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인 됨을 깊이 발견하면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이 죄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죄로 인해서 고민할 때 살았으나 죽은 자와 같이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바로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죄로 인해서 침상을 눈물로 적셨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실 때 첫 마디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였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2).”고 선언하셨습니다. 회개하고 죄사함 받은 체험을 한 사람들이 또 복음을 기쁘게 확신을 가지고 전할 수 있습니다.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을 때 우리의 마음에 기쁨이 충만해지고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게 됩니다. 회개할 때 멀게만 느껴졌던 하나님과의 거리가 가깝게 느껴집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소통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꿀보다 달게 먹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는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세계에 눈을 뜨게 하시고 영적인 귀가 열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입이 열려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이 주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렘 20:9).” 하나님의 말씀은 축복의 말씀뿐만 아니라 심판의 말씀도 전해야 합니다. 은혜로운 말씀만 아니라 부담스러운 말씀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는 자를 살아나게 합니다. 말씀을 듣고 공부하면 마음이 깨끗해지고 시원해집니다. 예레미야는 자기 백성들에게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했습니다. 이 말은 싸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기를 꺾어 놓았기 때문에 매국노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항복하는 자들에게 노략물을 얻듯이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당장에는 죽을 것 같지만 진정으로 사는 길입니다.

  바울 사도는 증인을 전도자로 부릅니다. 그리고 그 전도자의 중요성을 이렇게 외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3-15).” 구원사역은 전도자, 즉 증인을 통하여 전파됩니다. 전도자들을 통해서 복음 역사는 계승되고 확장됩니다. 복음 전도자가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할 필요성과 중요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대구 동신교회의 권성수 목사님은 5형제가 다 박사요 목사인 집안입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예수 믿으세요. 구원 받습니다.”이 한마디를 듣고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복음을 전한 분은 방해법(Herbert Blair) 선교사입니다. 그 할머니는 시아버지인 권성수목사의 증조할아버지에게도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워낙 완고하시던 분이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제사를 그만 두는 것이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할아버지가 5일마다 열리는 시장에 다녀오시다가 논두렁길을 걷다가 갑자기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이 분이 하나님께 바로 항복했습니다. “아이고, 며느리가 믿는 하나님 저도 믿겠습니다.” 그가 다시 논두렁 길을 걷다가 또 한 번 넘어졌습니다. 다리는 저신 것도 아니고 돌부리에 걸려넘어진 것도 아닌데 별 이유없이 실족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넘어지신 이 분은 조금 전 하나님께 드린 약속을 재확인하셨습니다. “아이고 하나님, 조금 전에 했던 약속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그는 그날 가족을 다 모아 놓고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오늘부터 나는 며느리가 믿는 예수님을 믿기로 했다. 너희들도 다 믿기 바란다.” 그 때만해도 집안 어른의 말씀은 곧 법이었습니다. 이 할아버지의 한 마디로 가족 모두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제 누님은 새벽에 울리는 교회의 종소리를 듣고 마음에 감동을 받아 교회에 다니기 시작해서 지금은 교회의 사모가 되어 전도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곽누가 목자님은 목욕탕에서 목자님을 만나 전도를 받고 믿음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훌륭한 의사목자가 되었고 매주 캠퍼스에 올라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누군가 전해주는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의 ‘타기’ 라는 사람은 한 평생 하루도 개인 전도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병들어 눕게 됨으로 전도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때 기도하기를 “하나님, 오늘도 전도하게 해 주세요.” 그런데 갑자기 비가 내리더니 길을 가던 사람들이 비를 피하기 위해 타기의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전도하였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 복음이 캠퍼스와 세상에 전파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친구들, 가족들, 친척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일 년에 한명이라도 구원을 받도록 전도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을까요?

  49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은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이 보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은 그들 자신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성령의 능력을 덧입을 때 가능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구입니다.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은 나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의 인도하심을 받고 그와 더불어 일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 사도행전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덧입기 위해서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러야 합니다. 제자들이 10일 동안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합심해서 기도할 때에 오순절에 성령이 바람 소리와 함께 불의 혀와 같은 모습으로 각 사람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들은 각 나라의 언어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덧입도록 간절히 폭풍기도를 합시다. 예루살렘이 두렵고 힘든 곳이지만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었습니다.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 기간에 신자들이 모여서 회개하는 역사가 불같이 일어났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너무나 강하게 일어나자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고, 많은 사람들이 사기, 공금 횡령, 실제적인 도둑질을 고백했습니다. 이때 경찰서에 다니던 한 반순포는 교회에 가서 그 고백만 듣고 증거만 잡아도 승진하는 데는 문제가 없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순한 목적으로 참석했던 반순포도 회개하고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자신의 죄를 토하는 회개의 역사, 전격적인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날 밤은 마지막 심판을 보는 것처럼 너무도 무시무시해서 이제까지 결코 목도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영의 현시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회개와 변화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서 홍대 1/3이 회심하고 홍대 주변이 변화되어 영적 부흥의 진원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날 복음은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1995년대부터 2005년까지는 선교사를 줄기차게 파송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복음전도가 약화되면서 제자 양성도 약화되고 선교사 파송도 약화되었습니다. 우리가 다시 복음 전도와 일대일 성경공부와 팀 모임을 통한 제자 양성과 파송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 성령의 불이 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우리 마음에 불이 있어야 합니다.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이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도구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고 나서 그들을 데리고 베나니 앞까지 나아가셨습니다. 이곳은 감람산 꼭대기입니다. 여기서 주님은 그들을 축복하시고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가셨습니다. 그는 그들이 본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들이 승천하시는 예수님께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사도들은 더 이상 두려움도 의심도 슬픔도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예수님이 승천하심으로 새로운 시대가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삶의 중심이 성전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힘있게 의지하고 홍대 가운데 부활의 산 증인들로 굳게 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능력과 확신으로 가르치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가운데, 우리와 성경을 공부하는 학생들도 변화된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복음의 증인으로 살 때 덤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도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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